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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21세기의 석유인가-<7광구>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 해역의 대륙붕에 위치한 해저 광구인 7광구.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이 지역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10배 가까운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인들은 ‘산유국의 꿈’에 들떴다. 가수 정난이는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을 노래하는 ‘7광구’를 불렀다. 한국과 일본은 이 지역 개발권을 두고 외교분쟁까지 벌였다. 26일 언론시사회를 연 영화 (감독 김지훈)는 이곳을 배경으로 한다. 최근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사로 떠오른 윤제균 감독이 제작했고, 업계 1위 CJ E&M이 투자·배급을 맡았다. 게다가 는 로 점화된 3D영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첫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총제작비 130억원대의 는 올 여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 기대작으로 꼽혀왔다.. 더보기
그을린 사랑 리뷰+드니 빌뇌브 감독 인터뷰 의 어머니 나왈. 자기만 빼고 다 죽은 참사의 현장에서. 어머니 나왈의 유언은 기묘했다.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기도문 없이 묻어주세요.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시신은 엎어놔 주세요. 비석은 놓지 말고 이름도 새기지 마세요.” 아연실색한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가 남긴 또 다른 당부를 듣고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잔느에겐 죽은 줄 알았던 생부를, 시몽에겐 존재조차 몰랐던 형을 찾아 밀봉된 편지를 전하라는 것이다. 유언은 이어진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햇빛 아래에 내 이름을 새겨도 됩니다.” 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가 그려냈을 법한 가족 드라마다. 또 양 극단의 원리주의자들이 끝없이 반목하는 현대 중동의 정세에 대한 정치 영화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를 능란하게 오가며 .. 더보기
당신이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고지전> 리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고 말했다. 20일 개봉한 (사진) 역시 그 많은 등장인물을 모조리 죽이고야 끝내겠다는 듯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프로덕션을 진행했던 장훈 감독은 “지금 이 상황에서 전쟁영화를 찍는 게 맞느냐는 회의” 속에서 작업해야 했다. 회의와 번민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결과물인 은 보여준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일어나 53년 7월27일 휴전협정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역사에 굵은 글씨로 남는 사건은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1·4 후퇴 정도다. 51년 6월 이후 전선이 교착되면서 전쟁 당사자 간의 휴전 협정이 진행됐다. 그 사이 교착된 전선에선 지도.. 더보기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베스트셀러 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신작 을 내놓았다. 는 올 가을과 내년 봄에 나올 2권과 3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2006년 를 마무리한 뒤 내놓은 가 ‘쉬어 가는’ 듯했다면, 는 다시 본격적인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다. 는 지금까지 줄곧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내왔던 한길사가 아닌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해외의 유명 저자들을 둘러싸고 흔히 그러하듯, 이번에도 출판사간의 판권(료)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오노는 십자군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1077년 ‘카노사의 굴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의사에 어긋나는 인사를 감행했다. 격분한 교황이 황제를 파문하자, 황제가 교황이 머물던 한겨울의 카노사 성 앞에 맨발로 3일간 서서 용서를 .. 더보기
안녕, 해리 포터 의외로 빨간색 불을 쏘는 해리 포터와 파란색 불을 쏘는 볼드모트. 한 해에도 수백 편의 영화가 개봉되고 어떤 영화는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로 제작되지만, 한 세대의 ‘문화적 기억’에 새겨지는 영화는 드물다. 2001년 이래 10년간 이어진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바로 그 드문 예에 해당한다. 마지막 ‘해리 포터 영화’인 가 13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금요일 개봉이 관행인 미국에서는 15일 개봉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2편이 시작한다. 덤블도어, 도비 등 정든 인물들은 묘지에 묻혔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절대악 볼드모트의 수하인 스네이프에게 장악됐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의 삼총사는 볼드모트를 이기기 위한 마지막 가능성을 찾지만 승산은 높지 않다. ‘해리 포터 영화’를 여태 ‘애들.. 더보기
히피 군인에 대해-초(민망한)능력자들 의 케빈 스페이시(좌)와 조지 클루니. 히피족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있습니까. 이번주 개봉하는 영화 에는 그런 군인이 나옵니다. 원제는 (The men who stare at goats)로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쓴 논픽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실존했다는 미 육군 산하 특수부대의 이야기입니다. 30여년전에 설립된 이 부대의 주특기는 원격투시, 주파수공격, 벽 통과하기, 노려봄으로서 죽이기 등입니다. 한마디로 초능력자 부대입니다. 특종을 찾아 헤매던 영화 속 기자 밥 월튼(이완 맥그리거)은 묘한 분위기의 남자 캐서디(조지 클루니)를 만나 신기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캐서디는 자신이 미 육군의 초능력자 부대 소속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합니다. 밥은 호기심에 캐서디를 따라 이라크에 갔다가 온갖 온.. 더보기
천만이란 무엇인가 그 유명한 지난달 29일 개봉한 가 개봉 7일만에 386만 관객을 모았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각각 743만, 744만 관객을 동원한 1, 2편보다 더한 초반 기세다. 수입·배급사인 CJ E&M 측은 “적어도 800만, 많으면 그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 ‘그 이상’이 말하는 숫자는 분명하다. ‘1000만’. 지금까지 한국영화 , , , , 그리고 외화로선 유일하게 가 넘어선 ‘꿈의 숫자’다. 올여름엔 ‘작심한’ 블록버스터인 , , 가 개봉한다. 연말엔 한국에서의 손익분기점이 1000만인 도 있다. 누군가에겐 꿈, 누군가에겐 경계, 누군가에겐 비판의 숫자인 ‘1000만’. 영화인들에게 ‘1000만’에 대해 물었다. 윤제균( 감독. · 제작)=는 처음으로 도전한 블록버스터라서 제작과.. 더보기
하이퍼텍 나다의 마지막 순간 6월 30일 오후 9시 45분. 이란 영화 의 상영이 끝났고, 한국 예술영화 관객들의 메카와도 같았던 하이퍼텍 나다가 문을 닫았다. 객석을 가득 채운 120여명의 관객들 앞에는 평론가·감독 정성일과 이 영화관을 운영해온 김난숙 대표가 서 있었다. 김 대표는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1995년 대학로에 동숭시네마텍이 개관했다. 같은 해 영화전문지 키노와 씨네21이 창간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프랑스문화원의 정기상영회, 수십 번 복사돼 배우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불법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하던 고전·예술영화팬들에게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김 대표는 “나 아니면 누가 봐주겠냐는 생각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을 보러갔다. 그런데 극장 바깥까지 줄이 늘어서 있었다”고 돌이.. 더보기
역시 '미국'영화, 트랜스포머3 의 맥스무비 예매점유율은 96.13%. 역대 최고치다. 개봉 첫날 관객은 54만명으로 이 역시 역대 최고치다. 수입하고 배급한 CJ는 겉으론 조용하지만 속으론 '1000만'을 외치고 있을 거다. 몸매를 아낌없이 과시하는, 전쟁터를 뒹굴어도 얼굴이 뽀얀 칼리. 2편보다 낫고 1편보다 못하다. 대단하지만 놀랍지는 않다. 전편들의 장점과 단점도 여전하다. 2007년, 2009년 개봉해 한국에서만 도합 15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은 시리즈. 2편이 나온 지 2년만인 올 여름 (29일 개봉)가 다시 찾아왔다. 멋진 자동차, 변신 로봇, 미녀 여자친구라는 남성 혹은 소년의 ‘로망’을 전시한 시리즈였다. 기계생명체인 오토봇과 디셉티콘 무리들은 선과 악으로 갈려 싸우고 있다. 오토봇은 무리의 수장 센티넬에게 마지막.. 더보기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에 대해 가수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가 뒤늦게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임재범은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공연 중 나치 군복 상의와 모자를 착용하고 나왔다. 임재범은 나치식 거수경레를 한 뒤 “하일 프리덤”, “히틀러 이즈 데드” 라고 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비평의 대상”이라며 “온갖 충격에 익숙한 대중을 ‘미적으로’ 도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작곡가 김형석은 다시 “아무 계산없이 그 무대에 어울리는 소재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 것 뿐”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되받았다. 소속사는 “카리스마 있는 록 무대를 꾸미기 위한 일종의 연출”이라며 “록의 정신이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기.. 더보기
윤계상은 풍산개 지난주 개봉한 는 주말 동안 23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한다. 다만 이같은 저예산에는 배우, 특히 스태프들의 '희생'이 있었고, 가능하면 이러한 희생을 담보로 영화를 찍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의 주연 윤계상/강윤중 기자 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배달부. 영화 내내 한 마디 대사도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한다. god 시절의 눈웃음치는 ‘장난꾸러기’, 의 ‘훈남’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 속 윤계상의 모습 중 가장 남성미 강한 배역이다. 6㎏을 감량하며 만들어낸 근육질 몸매는 여성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다. 그는 “god 시절의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 때문인지 남성적 .. 더보기
<소중한 날의 꿈> 안재훈 감독 인터뷰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에서 만난 안재훈 감독/강윤중 기자 11년. 98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 의 기획부터 개봉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림 첫 장을 그린 시기만 따져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2002년 3월이다. 23일 개봉하는 의 제작기는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처럼 지난했다. 안재훈 감독을 그의 스튜디오인 서울 대학로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최근 만났다. 그는 작업 동료이자 아내인 한혜진 감독과 함께 을 만들었다.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흥행과 비평 양 측면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 전례 없는 일에, 그것도 18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장편 애니메이션에 선뜻 투자를 하겠다는 곳은 드물었다. 돈이 생기면 그렸고, 돈이 떨어지면 외주 작업을 했다. 애니메이션판 나 가 그 사이 그린 외주작이다. 은 .. 더보기
서부는 어디인가-잭 런던과 코맥 맥카시의 경우 코맥 맥카시(위)와 잭 런던 한반도란 땅덩이는 여기 봐도 사람, 저기 봐도 사람이라 어디 개척하겠다고 나설 데도 없지만, 그래서 한때 확인할 길 없는 '만주 벌판' 운운하는 농담이 나왔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과 조건이 달라, 인구가 늘어나 동부 연안이 좁아지자 금이 묻혀있다고 소문난 서부로 달려가는 모험가, 건달, 사기꾼, 부랑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서부엔 샌 프란시스코니, 로스 앤젤레스니, 샌 디에고니 하는 도시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19세기엔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의 모험 혹은 한탕의 정신은 1세기쯤 지난 뒤 낭만화됐고, 발빠른 영화인들은 서부의 '신화'를 영화로 만들어 장르로 정착시키기도 했고, 아마 소설에도 비슷한 장르가 있는 것 같다. 잭 런던이 태어난 1876년.. 더보기
잉마르 베리만과 1년간의 특별전 안락한 영화관 의자에 파묻혀 길고 길고 길고 느리고 느리고 느린 영화를 보고 싶은 변태같은 욕망이 들 때가 있다. 90년대의 영화팬들은 모두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고 불렀던 감독에 대한 이야기. 그 유명한 의 한 장면.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됐다. 베리만은 데뷔작 (1946)부터 마지막 작품 (1982)에 이르기까지 40여편의 극장용 영화, 20여편의 텔레비전용 영화, 여러 편의 연극을 연출한 다산의 예술가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20세기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인’으로도 꼽힌다. 미국의 명감독 우디 앨런은 베리만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07년 베리만의 타계를 즈음해 뉴욕타임스에 ‘The man who asked har.. 더보기
아렌트의 시대-아렌트 읽기 첫 문장은 명백히 개인 의견이다. 아렌트를 읽을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990년대의 탈근대주의자들은 대체 뭘 한 걸까. “해체할 것이 없을 때까지 해체하라”던 데리다의 주장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원제 Why Arendt matters)의 역자 서유경은 “만일 해체가 기존 체제의 비판 차원을 넘어서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무정란에 불과한 공허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다시 소환된다. 저자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은 아렌트를 사사한 두 명의 수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렌트를 21세기에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세 가지 주요 저서를 통해 소개한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무명의 지식인이던 아렌트는1951년 출간된 을 출간하면서 미국에서 주목받는다. 전체주의란 무솔리.. 더보기
4D와 5D 관람기 이제 가만히 앉아 영화 볼 수도 없게 생겼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도록 의자를 흔드니. 피곤한 일이다. 4D 영화관 기술의 혁신은 곧 영화산업의 혁신이었다. 입만 벙긋거리던 배우들이 노래하기 시작했고(유성영화), 무채색 배경은 천연색으로 빛났다(컬러영화). 1950~60년대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자, 영화는 텔레비전에서 맛볼 수 없는 2.85:1 와이드스크린의 스펙터클로 맞불을 놓았다. 2009년 말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의 는 기술 혁신이 영화산업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최신 사례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흥행 기록을 순식간에 갈아치운 이 영화는 정체 상태에 빠진 영화산업의 구원병 역할을 했다. 일반상영관보다 1.5~2배 비싼 3D영화도 장사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 영화인들은 앞다퉈 3D.. 더보기
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한가-일루셔니스트 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할까요. 참 이상합니다. 2년 전 아껴 입던 그 옷을 올해 꺼내 입으려니 참 민망합니다. 지난해 여름 질리도록 들었던 그 노래는 참 촌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피곤합니다. 여름철의 생선회보다 변하기 쉬운 대중의 취향 때문입니다. 어제의 흥행 감독이 오늘은 흥행에 참패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잘 팔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제비 새끼가 먹이 달라며 입 벌릴 때보다 더 열렬히 새것을 구하는 이들이 바로 대중입니다. 애니메이션 는 ‘시대착오적 예술가’를 다룹니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렸던 영화감독 자크 타티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1950년대쯤으로 추정되는 시대, 일루셔니스트는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빈 와인잔을 채우는.. 더보기
엄마 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아무튼 난 세상 이런 저런 현상의 근원에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흥미롭지만, 사실의 분석이 아닌 상상력의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진 리들로프는 19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올해 3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의 선상가옥에서 세상을 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25세 때 유럽 여행에 나섰다가 완전히 다른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남미 밀림으로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는 두 남자를 만난 뒤 즉석에서 그들을 따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카우라 강 상류에서 석기시대를 유지하며 사는 예콰나족은 리들로프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75년 처음 출간된 (원제 The Continuum concept)는 예콰나족의 육아법을 통해 본 현대인의 잘못.. 더보기
부지영+양익준=애정만세 부지영(왼쪽)과 양익준 감독. 김기남 기자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민낯의 중년 아줌마에게도 사랑은 있다. 여고생이라고 30대 남자를 좋아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나 세상 온갖 사랑을 그린 영화들도 이런 사랑은 다루지 않았다. 2편의 중편을 묶은 는 조금 색달라 남다른 시선을 받는 사랑들을 그린다. 전주국제영화제, KT&G 상상마당, 인디스토리는 2007년부터 단편영화 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숏숏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사랑’으로 잡고 부지영, 양익준 두 감독을 섭외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주제의 범위는 너무 넓다. 부모와 자식, 연인, 신과 신도의 관계도 사랑으로 묶을 수 있다. 짜맞춘 것도 아닌데 두 감독이 써온 시나리오는 ‘나이 차에 힘든 사랑’이란 주제로 모였다. 부지영의 은 대형.. 더보기
이사, 뿌리를 옮기는 삶 처음 잠실에 살기 시작한 건 4년전이다. 태어났을 때는 한강변의 어느 아파트에, 유치원 무렵엔 반포의 어느 아파트에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대학과 대학원, 사회 초년 시절엔 신촌, 이대, 홍대 부근을 맴돌았다. 어느덧 결혼을 할 시기가 됐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신접 살림은 잠실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차렸다. 아기가 생기면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무채색 공간을 조금씩 점유한다. 결혼을 하기 보름전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아 휑한 느낌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이 집으로 돌아왔다. 총각 시절의 로망이었던 아내와 함께 큰 화면으로 디비디 보기도 종종 했다. 그리고 아기를 가졌다. 어떤 아내들은 출산 전후에 친정에서 조리를 한다.. 더보기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 <죽음의 친구>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의 를 읽다. '1833년 안달루시아에서 몰락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문명을 떨치다가, 결혼을 계기로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돌변해 순식간에 영향력을 잃었다' 정도로 책 날개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난 아무튼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해제까지 쓴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편 와 단편 가 실려 있다. 특히 에서 매우매우 놀랐다. 기구한 운명을 비관해 스스로 거의 목숨을 끊을 뻔 했으나 '죽음'의 방문을 받고 그의 친구가 된 주인공 힐 힐. 힐은 죽음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해(사람이 죽는 때를 미리 알려주는 것) 권력을 누리지만. 종반부에 경천동지할 반전이 있다. 필립 K. .. 더보기
게이들의 수다. 김조광수 vs 이혁상 사진 강윤중 기자 김조광수는 한 눈에 알아봤다. 그는 2001년쯤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던 이혁상을 어느 영화제 파티에서 만났다.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은 아닐 거라고 했지만, 김조광수가 맞았다. 김조광수는 자신의 게이더(게이+레이더)가 꽤 정확하다고 했다. 10년이 흘러 둘은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인·활동가가 됐다. 흥행작 의 제작자·장편 데뷔를 준비하는 감독·LGBT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김조광수와 의 감독 이혁상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뜻하는 LGBT 영화제는 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소수자 영화제로, 6월 2~8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한 지난해 최고의 독립영화인 은 게이 4명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더보기
아빠가 되려는 소년, 조니 뎁 는 인어떼 장면이 볼만하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조니 뎁은 꿈꾸는 떠돌이 소년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가 되려고 합니다. 뎁이 주연한 가 19일 개봉합니다. 의 네번째 편인 이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총 1천160만 관객을 모은 인기 시리즈입니다. 뎁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해적선장 잭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습니다. 스패로우 선장은 할리우드가 낳은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군에 속할 겁니다. 명색이 해적인데 그리 사악해보이진 않고, 엄청난 위기를 몰고 다니지만 얼렁뚱땅 헤쳐나갑니다. 바람둥이 같은데 애인은 없고, 비겁하지만 때론 터무니없이 용감합니다. 무엇보다 스패로우, 나아가 해적을 규정하는 특징은 정착하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보물을 찾아 망망대해를 떠돌고, 어쩌다 뭍에 닿아도 싸구려.. 더보기
제인 에어 vs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의 는 진취적이고 굳센 의지를 가진 여성상, 적당히 음산하고 기괴한 고딕 분위기, 소설 중반 이후까지 지속되는 미스테리,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는 낭만성 덕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책이며, 여태껏 22번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읽어보면 현대 독자가 받아들이기엔 터무니없는 설정들이 있다. 브론테가 태어난 이듬해 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그런 황당한 설정이 전혀 없다는 점, 현대의 독자를 빨아들이고 현대의 작가를 반성하게 할만큼 합리적이라는 점, 그런 점이야말로 브론테의 '무리수'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로체스터가 "끔찍하리만치 못생긴" 집시 노파로 변장해 제인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점을 쳐주겠다며 접근하는 대목.. 더보기
70 평생 비실비실, 우울. 우디 앨런. 11일 개막한 제6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우디 앨런의 신작 가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잘 안풀리는 작가가 파리로 여행왔다가 어떤 시간 여행 방법을 통해 파리를 주름잡았던 과거의 예술가, 즉 달리, 피카소,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브뉴엘 등을 만나고 누군가의 애인과 연애도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내가 관심 많은 마리온 코티아르가 나오고, 별 관심 없는 카를라 브루니가 박물관 가이드로 카메오 출연한다. (남들) 재미 없어도 (나는) 재미 있겠다. 영화를 본 누군가가 앨런의 85년작 를 언급했다. 나도 그 영화가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한동안 잠자던 디비디 플레이어를 돌렸다. 그리고 미아 패로의 그 표정을 봤다. 이 영화는 미아 패로의 표정이다. 대공황 시대, 실직한 남편은 또다른 실직자들과 동전 .. 더보기
바르셀로나의 배신, <카탈로니아 찬가> 나도 그랬지만, 아마도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조지 오웰을 의 반공주의자로 알고 있을터다. 그러나 을 보면 그는 반공주의자 이전에 반자본주의자이며, 를 보면 반공주의자긴 하지만 사회주의자다. (사람을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는게 웃기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 을 읽은 김에 더 유명한 까지 읽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즘 진영에 맞서 싸우던 공화파 내부의 분열상에 대해서는 켄 로치의 에서 이미 접한 바 있지만, 로치의 영화조차 가 없었다면 그 뼈대를 세우기 힘들었을 듯하다. 오웰은 이 출간된 직후인 1937년 스페인으로 떠났다. 공화파 의용군으로 입대해 파시스트 몇 놈이라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공화파 의용군은 믿을 수 없을만큼의 오합지졸. 군기는 엉망이고 총쏘는 법조차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 더보기
<인사이드 잡> 리뷰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 번은 미국에서, 한 번은 한국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모델로 사회를 뜯어고치고 있는 한국에서라면 낯선 일도 아니지만, 을 보고 나면 ‘반면교사’란 사자성어를 되새겨볼 때도 된 것 같다. 감세 정책을 둘러싼 논쟁,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의 ‘상부상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은 2008년 전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미국발 금융위기의 막전막후를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MIT 정치학 박사 출신 감독 찰스 퍼거슨의 두번째 작품이다. 미국의 문제점을 미국 내에서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은 미국 영화계 최대 축제인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은 이 영화를 두고 “미국은 이제 학계가 아니라 할리우드가 지킨다는 세간의 .. 더보기
옥보단+천녀유혼 리뷰 의 류이페이(유역비) 대부분의 리메이크 영화는 리메이크 소식이 전해졌을 때가 제일 재미있다. 원작의 광휘, 팬들의 기대를 모두 넘어서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중화권에서 만들어진 2편의 리메이크 영화가 12일 나란히 개봉한다. 음지에서 사랑받은 과 양지에서 사랑받은 이다. 특히 전자는 새 기술의 도움을 받아 로 태어났다. 는 ‘전 세계 최초 3D 에로티시즘’을 표방하는데, 한국만 따져도 가 3D로 개봉했으니 ‘최초’란 표현은 틀렸다. 아무튼 옛 콘텐츠와 새 영상 기술을 결합시킨 는 먼저 개봉한 홍콩과 대만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상영이 금지된 중국 관객들까지 단체로 원정을 와 관람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 출연한 일본 AV스타 하라 사오리 줄거리는 원작과 비슷하다. 미앙생은 지고지순한.. 더보기
니체, 허무의 품격. <토리노의 말> 토리노의 말 허무의 밑바닥엔 무엇이 있습니까. 6일 끝나는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국제 영화제에서 유명하지만 국내 관객에겐 매우 낯선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을 먼저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56세의 타르는 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영화는 조만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5년에 한 번 꼴로 기나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내놓곤 했던 그가 이 은퇴작에서 전한 메시지는 ‘허무’였습니다. 영화는 ‘허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시작합니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머물던 니체는 마부가 고집센 말에게 마구 채찍질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니체는 사건 한복판에 뛰어들어 말의 목덜미를 감싸안고 흐느낍니다. 숙소로 .. 더보기
왜 현대음악인가. 진은숙 & 김택수 김택수와 진은숙. 김기남 기자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는 올해로 6년째를 맞은 현대음악 기획공연이다. 상임작곡가 진은숙은 이 공연을 통해 한정된 레파토리에 의지했던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에 동시대의 새 음악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올해 아르스 노바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 아르스 노바 초기부터의 팬이었으며, 진은숙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한 학생 김택수가 쓴 곡 ‘게레레(독주 하프시코드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가 초연된 것이다. 아르스 노바가 한국의 젊은 작곡가에게 자극을 주고,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아르스 노바에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김택수는 과학고를 나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였으나, 졸업후 작곡으로 진로를 튼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최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스승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