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해당되는 글 19건

  1. <화장>에 대한 몇 가지 생각
  2. 임권택 감독의 말+<달빛 길어올리기> 리뷰
  3. 주목할만한 독립영화. <파수꾼> vs <애니멀 타운>
  4.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이윤기 감독 (1)
  5. <그대를 사랑합니다> 리뷰
  6. 탕웨이 인터뷰+<만추> 리뷰
  7. 영화 <글러브>리뷰+유선 인터뷰 (34)
  8. 쿠바 남자의 사랑 (4)
  9. <황해>, 나홍진 감독 인터뷰 (2)
  10. 심형래의 <라스트 갓파더> 리뷰 (2)
  11. 개와 개장수와 개판. <황해> 리뷰 (5)
  12. 귀신 보는 남자. 차태현.
  13. 연애대행업의 시대 <시라노 연애조작단>+<김종욱 찾기>
  14. <김종욱 찾기>, 공유 인터뷰
  15. <이층의 악당> 리뷰
  16.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17. 수애 ‘첫사랑 이미지’ 버리고 악역 해보세요
  18. 추자현
  19. 김곡+김선=방독피






<화장> 시사회를 다녀왔다.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총체적인 감상을 적기는 어렵다. 그저 짤막한 단상 정도. 스포일러 포함. 





1. 오상무(안성기)가 똥을 싸는 아내(김호정)를 욕실에서 씻어주는 장면은 정확하다. 빼고 더할 것이 없다. 알려진 바로는 임권택 감독은 김호정에게 하반신을 노출하고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일에서야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배우와 미리 상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는 노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다른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똥오줌을 가리면서 사람이 된다. 아이는 똥오줌을 가릴 때쯤 서서히 자아를 갖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어른이 똥오줌을 못가린다는 것은 그의 신체적 능력이 아이 수준으로 퇴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처지를 알만한 어른으로선 감내하기 힘든 일이다.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에서 병을 앓던 아내도 침대에서 똥을 싸는 순간 그렇게 절규했다. 평생 우아하고 지적인 삶을 살았던 서유럽 여인이었기에 더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화장>으로. 오상무와 딸은 병실에서 막 사온 떡볶이와 순대를 뜯는다. 그때 병상의 아내는 저도 모르게 똥을 지린다. 딸은 어쩔줄 몰라하더니 곧 화장실로 가 오열한다. 오상무는 묵묵히 아내의 성인용 기저귀를 간다. 바지를 내리고 기저귀를 빼고 휴지로 닦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올린 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리기까지 조금의 주저함, 망설임도 없다. 아마 안성기와 김호정은 이 장면을 매우 여러번 연습했을 것이다. 아내는 이때쯤부터 확연히 쇠약해진다. 욕실에서 하반신을 드러낸 채 남편에게 뒤를 맡기는 장면은 그 절정이다. 아내는 스스로 씻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도 씻기는커녕 스스로 몸도 못가눌 사정임을 노출한다. 다 씻었다 싶을 때 아내는 다시 똥을 지린다. 그리고 어눌한 발음으로 미안하다며 오열한다. 중한 병, 다가운 죽음 앞에 몸과 마음이 모두 허물어진 인간을 이 장면은 정확하게 드러낸다. 비참하고 사실적이다. 병구완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이는 장면. 죽음은 그렇게 티를 내며 찾아온다. 부끄러움도 지저분함도 모른 척 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장면. 




2. 원작인 김훈의 소설 <화장>을 읽은 적이 있다. 주인공의 마음이나 작가의 시선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었다. 영화 <화장>은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원작의 줄거리를 따른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에 비해 훨씬 쉽게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임권택이 가진 시선의 깊이, 안성기의 연기에 힘입은 바 컸을 듯하다. 사실 안성기는 최근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적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주류, 젊은 감독들이 이 배우를 다소 기능적으로 기용해왔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다. 하지만 <화장>에서 안성기는 자신이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을 숨김 없이 발휘한다.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지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가만히 많은 이야기를 한다. 오상무는 따뜻한 척하면서도 실은 차가운 인물이다. 한국에 마냥 뜨거운 배우는 많지만(그리고 이런 배우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식되지만), 안성기는 차가움을 잘 표현하는 배우다. 한국 배우들은 차가움을 표현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는 편인데, 안성기는 임권택이 준 기회를 제대로 살렸다. 사실 안성기 말고 이 나이대의 배우 중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 안성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1%의 후회가 깃든 표정. 


3. 오상무가 추은주를 무용수의 얼굴에 대입하거나, 죽어가는 아내와의 정사 장면에서 떠올리는 장면은 요즘 감각으론 좀 구식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펠리니라면 망설임 없이 찍었겠지만, 지금은 2015년이므로 다른 표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진 않는다. 임권택도 그렇게 직접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상무의 욕망이 그렇게 직접적이었으므로. 


4. 영화 중반부까지 유일하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요소는 김수철의 전자 음악이었다. 그러나 바삐 전화를 걸면서 걸어 내려오는 오상무를 보여주는 엔딩에선 그마저 어울렸다.


5. 오프닝의 으리으리한 장례 행렬은 종결부에 대단한 반전으로 작동한다. 난 이 장면에 어떤 혐의를 두고 의심했다. 서구의 평론가들이 장이머우, 첸카이거에게 두는 혐의와 비슷한 종류다. 그러나 임권택은 내 뒤통수를 쳤다.  



임권택이 놓은 함정같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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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말'은 정말 독특했다. 알다시피 그는 어눌하고 느리고 게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말을 구사한다. 말에는 마침표가 없어서 말을 끊지 않는 한 다 듣는데 오래 걸린다. 방송 인터뷰를 하기엔 부적당하고, 신문에서 쓰려면 문어로 각색해야 한다. 이번에 쓴 기자간담회 기사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길고 느리고 종횡하는 말들이 결국 끝까지 들으면 일이관지하는 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들 사이에 정연한 논리가 서 있고, 전후맥락이 고려돼 있으며, 유머도 잠복해 있다. 동서양 지혜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제자들을 말로 가르쳤고, 이후의 제자들이 이 말을 불완전한 글로 옮겼다. 어쩌면 임권택 감독의 말은 그런 스승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불륜 비슷한 것'에 대한 통찰이라든가, 자신이 만들었던 반공영화, 새마을영화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이런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던 임권태 감독의 말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달빛 길어올리기> 리뷰도 함께 올린다.

<달빛 길어올리기> 현장의 임권택 감독.

-한지에 대해 얼마나 연구하셨나요.
한지와 언제 만났느냐 얘기하자면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때부터 한지와 만나, 사방에 천정, 장판, 모든 것이 한지. 술자리에서 민병록 교수께서 한지 얘기를 하고 친구분이 한지 사업에 들어가서 많은 아픔을 겪은 분이 있다고 해서, 그쪽을 취재하면은 재미있는 소재인 것을 알 것이라고... 거기에 성큼 현혹됐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말에 얼른 빠져든 것은 뭐이냐하면은 아시다시피 저는 판소리, 동양화 통해서 우리 선조들이 해놓은 한국인의 문화가 갖는 흥이나 정서 등 이런 것들을 주욱 해오면서 이제는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다음 영화를 걱정하고 있을 적에, 한지를 소재로 하자는 제의를 해오면서 앞뒤 없이 들어가면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서 1년 이상 취재를 했고요, 그렇게 하면서 또 많은 분도 만났고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이 영화는 우선 이 한지가 지금 우리에게는 뭐인가. 그 좋았던 한지가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잃고 있는 이런 시대를 살면서 이것은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알리는 것은 우리 한지가 얼마나 좋은 한지였으며 우리가 이 한지를 왜 되찾아야 하는가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많은 한지와 얽힌 생활문화를 다 따라가면은 한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시나리오를 해가지고 4개월을 찍었는데 그때도 한지에 관해서 얘기해줄게 있다 해가지고 계속 정보를 주신 분들이 있었는데 듣는 것마다 다 새로운 얘기들예요. 그래서 촬여이 끝날 무렵까지도 새로운 한지 얘기를 들으면서 이게 섣불리 한지의 깊고 넓은 세계를 겁도 없이 영화화한다고 대들었다는 그런 제 경솔함, 이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후회를 하면서도 이런 깊은 세계를 어느 한쪽이나마 영화로 담을 수 있는 그런 행운을 잡았다는 점에서 한쪽으로는 좋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지에 대해 많은 것을 찍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도 했으나 현재 담겨진 그런 내용만이라도 우리가 한국민족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런 훌륭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다 관심을 가져주고 영화를 꼭 좀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요 제가 찍으면서도 강수연양은 우리가 다큐멘터리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묻기도 했어요. 사회자께서 말씀하신대로 여러 가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고요, 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옛 군사정권 때 반공영화도 찍고 새마을영화도 찍은 감독이면서 정권이 요구하는 그런 주제나 소재를 영화에 강제로 담아가는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하는 마음 안에서의 걸림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국책이랄지 여러 그 당시의 정권의 지향했던 것을 영화에 담아내지 않으면 안됐던 시절의 얘기고, 지금은 나같은 나이든 감독이라도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해서 남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생각도 했고.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해서 해외 영화에제서 큰 관심을 안보인 이유 하나는 아마도 우리 나라 문화에 대해서 강제로 존재를 너무 인위적으로 드러내려는 불쾌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잘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고요. 열심히 했습니다.  

-한지 영화인줄 알았는데, 세 남녀의 애욕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집사람 들으면 곤란한 소리인데.(웃음) 전주시가 하는 왕조실록 복본하는데 취재하다 보니까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되는 것도 아니고 지지부진하고 세월은 가고 있는데 7급 공무원은 자기 집안의 환자를 둔 가장으로서 공무원의 생활. 가장으로서의 생활을 해가는 것을 과장없이 죽 따라가서 잡아내는데 그 생활이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적인 요소는 드라마틱한 거는 없다고 할지라도 사소한 삶을 어떻게 실감있게 잡아내고 거기서 별 자극없이 그런저런 인물을 가지고 사는 사람, 가족들, 한지에 미쳐서 다큐 만들고 있는 이런 사람들의 감정을 가감없이, 과장도 모자람도 없이 이렇게 잡아내고자 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었고요. 이런 영화에 다큐 작가와 7급 공무원 사이의 불륜 비슷한 이런 것을 이 영화에서 삶 안에 깊이 파고들어와서 삶 자체에 대해 뭐인가 불편한 것을 주는 극적 확대를 굉장히 경계했고요. 그냥 둘 사이의 불륜스러운 감정들이 일상을 살면서 늘 안으로부터 피어나기도 했다가 잠자기도 했다가하는 큰 사고 없이 일상이 지나간다는 것. 그 이상 확대해서 봐서는 안될 영화라고 생각하고요. 여러분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한지의 좋다는 것을 알면서 그 안으로 빠져들어가는 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기. 이 정도로 봐주시기를 바라면서 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에게 혼날까 해서..(웃음)"

 -아지막으로 덧붙일 인사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달빛>에서 큰 틀 정해놓고 계속 열어놓고 늘 대화했던 연기자는 박중훈씨거든요전에는 제 틀을 미리 정해놓고 완강하게 틀 안에 살곤 했는데 이렇게 편하게 열고 서로 상의 하면서 이렇게 영화를 완성을 하면서 이렇게 영화를 해가는 이렇게 많이 열어놓고 되는구나 알아차린 계기가 됐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달빛 길어올리기>의 임권택 감독과 강수연.


<달빛 길어올리기> 속에서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 민지원(강수연)은 극영화로 넘어가지 않고 다큐멘터리에 남은 이유로 ‘책임감’을 든다. ‘의무’가 법적 강제성을 주는 어감이라면, ‘책임’은 도덕적 구속에 가깝다.

101번째 영화의 소재로 한지(韓紙)를 들고나온 임권택 감독도 극중 민지원처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천대받고 잊혀진 전통 한지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다. 그렇게 커다란 짐이 70대 중반의 노장에게 지워졌다.


7급 공무원 한필용(박중훈)이 전주시청 한지과에 새로 부임한다. 필용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몸이 불편한 아내 이효경(예지원)의 병수발을 들고, 아들은 큰 집에 맡겨놓은 채 살고 있다. 필용은 시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성공한다면 승진 기회를 얻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일한다. 일에 불철주야 매진하던 그는 지원의 다큐 작업을 도와주면서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늘 집에만 있는 아내는 필용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영화는 한지 다큐를 방불케한다. 필용이 보면서 연구하는 텔레비전 다큐, 지원이 찍는 한지 다큐, 전체 영화의 경계가 때로 흐려진다. 필용과 지원이 다큐 가편집본을 보다가 그 가편집본이 다큐 시사회장의 스크린으로 넘어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노감독의 책임감은 등장 인물들에게 많은 말을 하게 한다. 특히 영화의 중심이 된 필용은 복화술사 감독의 인형이 돼 한지의 아름다움과 이를 재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예찬한다.

<달빛 길어올리기> 스틸.

임 감독은 한 남자(필용)와 두 여자(효경·지원)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소재의 무게를 더는 길을 찾는다. 이들의 삼각관계에 대한 묘사는 흔해 보이면서도 힘이 있다. 효경은 말 한 마디 쉽게 하지 못하는 장애를 겪고 있고, 이는 필용이 저지른 윤리적 방종의 결과다. 필용에게 효경은 평생 안고가야할 물리적·정신적 빚인데, 필용은 가끔 이 빚을 덜어보려는 수작을 부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는 엄청난 악당도, 타고난 선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종이 뜨는 천민 출신’인 효경은 필용과 결혼하면서도 시댁으로부터 박대를 당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폐적인 삶을 사는 그는 현재 남편의 사랑을 구하는 대신, 지명만 알 뿐 어디있는지 알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한지의 기원을 찾던 영화는 효경이라는 캐릭터 덕에 마음의 기원을 찾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강수연이 추천해 오디션 끝에 역을 따냈다는 예지원은 안방의 이불 속에 머물면서도 머나먼 고향을 꿈꾸는 효경 역을 노련하게 소화했다. 취재를 하면서도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지원은 영화를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지 세계화’를 추진중인 전주시가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임 감독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임 감독이 이에 응하면서 <달빛 길어올리기>가 시작됐다. 100편의 필름 영화를 찍어온 임 감독의 첫 디지털 영화이며, 1996년작 <축제> 이후 첫 현대물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최초로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의 3대 투자·배급사가 공통 지원에 나섰다. 영화팬이라면 김동호, 김영빈, 민병록 등 국제영화제의 전·현직 위원장과 임 감독의 부인인 채령 등 카메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17일 개봉.


<달빛 길어올리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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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2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수꾼>은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제일이다. 10개월이 더 지나도 이 영화는 여전히 기억날 것 같다. <애니멀 타운>은 논쟁적이다. 극 초반엔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실린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몹시 불쾌해할 관객도 있겠다.


파수꾼


2011년 한국 독립영화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몇 년 간의 침체를 벗어나 상업영화가 감히 꿈꾸지 못한 방식의 수작들을 내놓고 있다. 3월 들어 잇달아 선보이는 <파수꾼>과 <애니멀 타운>에 주목할만하다. 이들은 국내외 각종 영화제를 돌며 상찬받은 뒤 한국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올해의 발견, <파수꾼>=2011년이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수꾼>은 이미 ‘올해의 발견’감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졸업생을 대상으로 장편 프로젝트 제작을 지원하는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 3기 작품이다. 지금까지 연구과정 영화들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배급했는데, <파수꾼>은 CJ엔터테인먼트의 중저예산 영화 전문팀인 필라멘트 픽쳐스가 따로 배급한다.

한 아이가 또래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 중 한 명은 전학갔고, 다른 한 명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 고교생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감정을 재구성한다.

<파수꾼>은 넓은 의미에서 ‘성장영화’다. 제목도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영감을 얻었다. 청소년은 성인과는 달리 마음에 갑옷을 미처 갖춰입지 못한 시기다. 사소한 시선, 무심한 말 한 마디에 큰 상처를 받는다. 세 친구들도 그렇다. 두 명끼리 주고받는 눈짓 하나에 나머지 한 명은 그 의미를 추궁한다. 아무 뜻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오랜 기간 쌓아온 우정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파수꾼. 폐역사를 아지트로 삼은 고교생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프로 바둑기사가 아마추어 기사의 듣도 보도 못한 수에 당황하는 것처럼, <파수꾼> 속 청소년들의 행동은 숙달된 관객의 예상을 매번 비껴나간다. 끈질기게 ‘진실’을 찾는 극중 아버지도 결국 세 아이들의 얽키고 설킨 사연을 이해하지 못한 채 끝내 방관자로 남는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설명하기는 힘든 감정을 스크린에 온전히 구현한 건 각본·연출을 맡은 윤성현의 공이다. 윤성현은 의뭉스럽게도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빵부스러기처럼 조금씩 흘린 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어쩌면 거대하고 어쩌면 사소한 진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많은 좋은 영화가 그렇듯, <파수꾼>도 드러내 말하지 않으면서도 창작자와 관객이 발딛은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파수꾼>의 소년들은 그들이 몸담은 작은 집단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아닌 권력에 도취돼 파국으로 치닫는다. 권력의 속성을 탐구한 성장물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파수꾼>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밀착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섬찟하다.

애니멀 타운. 초반부의 한 장면. 그는 욕구를 다 해소하지 못한다.

◇날 것 그대로의 영화, <애니멀 타운>=전규환은 한국 관객에겐 미지의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4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다. <모차르트 타운>(2008)을 시작으로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의 ‘타운 3부작’을 찍었고, 인도를 배경으로 한 <바라나시>를 완성해둔 상태다.

<애니멀 타운>은 아동 성범죄자와 그를 쫓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오성철은 막노동을 하면서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다리에 찬 전자발찌는 두꺼운 양말로 간신히 감춘다. 그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우며 사는 9살 소녀를 향한 시선을 힘겹게 억누른다.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는 김형도는 우연히 오성철을 목격한다. 교회에 다니고,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어찌된 일인지 오성철의 주위를 맴돈다.

윤리적·법적으로 엄히 단죄해야 마땅한 성범죄자를 때로 동정이 가는 인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애니멀 타운>은 논쟁적이다. 그의 낡은 거주지에는 물과 난방이 끊겼으며, 공사장에서는 자금 사정을 이유로 밀린 임금을 끝내 주지 않는다. 어렵사리 택시 기사 자리를 구했지만, 밍크 코트를 입은 뒷자리 여자 승객은 길을 돌아갔다며 다짜고짜 욕설을 해댄다.

애니멀타운. 성범죄자 오성철.

영화 초반부는 불안하다. 촬영과 편집의 리듬이 불안정하다. 생소한 배우들의 얼굴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골격을 드러내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는 힘을 낸다. 김기덕의 초기작에서 미의식을 제거한 듯한 날 것 그대로의 연기, 연출이 이어진다. 제목의 ‘애니멀’은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 성범죄자와 그를 쫓는 남자 모두를 뜻한다. 베드신에서는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성철의 성기까지 노출된다. 영화의 미학도 그렇게 동물적이다.

<모차르트 타운>은 노점상과 이주노동자, <댄스 타운>은 탈북자 등이 주인공이다. 모두 도시 주변부의 하층민, 아웃사이더다. 전규환 감독은 상업영화 제작자로 나섰다가 일이 풀리지 않자 직접 메가폰을 잡고 언제 개봉할 지 알 수 없는 장편 독립영화를 4편 찍어두었다. 그는 “언젠가 내 영화를 이해하고 봐주는 관객들이 늘어나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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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전작 <멋진 하루>는 내 2000년대 한국영화 페이버릿 중 하나다. 그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에는 공교롭게 <밤과 낮>이 있어, 2008년의 개인적인 리스트에서 <멋진 하루>는 2위였다. 난 여전히 그 영화가 좋다. 이번에 이윤기 감독을 만나서도 <멋진 하루>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는 <멋진 하루> 이후 하정우, 수애를 주연으로 찍다가 제작도중 촬영이 중단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멋진 하루>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잘못 알고 와서 보다가는 화를 내는 관객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석우 기자

현빈과 임수정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성에 혹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러가려는 팬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겠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함께 살던 부부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그 집 안에서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의 일이 이 영화의 전부다. 두 배우는 크게 웃거나 울거나 싸우지 않는다.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찻잔을 정리하고, 요리책을 넘기고, 잠시 텔레비전을 보고, 외식 계획을 포기한 대신 저녁을 준비한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는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종일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이윤기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여자, 정혜>에서 시작해 <멋진 하루>까지 이어지는 이윤기 영화의 궤적을 따라온 관객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새로 유입될 관객에게는 낯선 영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 며칠 ‘잠적’했다가 나타난 그를 2월 28일 만났다.

“대중이 현빈, 임수정의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판단할 수 있나요. 배우들은 여러 모습을 갖고 있는데, 전 그 중 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들(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그는 “우리 나라는 배우 퀄러티가 제일 좋다. 제작자, 감독, 투자자, 기자보다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들의 능력치를 모두 보여주기엔 한국영화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규모가 작았지만, 전도연, 하정우, 한효주, 김지수 등 스타 배우들이 잇달아 출연했다. 이번 영화에도 현빈, 임수정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에 갈증을 가진 배우들이 이 감독의 “무모한 시도에 서슴없이 동참”해준다는 설명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이은 ‘현빈 쓰나미’에 휩싸인 상황이 기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현빈이 있어서 주목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티켓 파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며 “영화에 대한 논쟁은 환영이다. 하지만 ‘현빈 효과 없었다’는 식의 실패작으로 만들게 뻔해 미리 짜증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쓰나미의 주범. 이 영화를 찍은건 <시크릿 가든>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는데, <시크릿 가든>에서 머리를 어떤 컨셉으로 갈지 정해지지가 않아 일단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머리를 하고 <사랑한다...>를 찍었다.

<사랑한다…>는 섬세하고 느린 영화다. 드라마적 효과를 위한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들리는 음향은 빗소리 뿐이다. 지하에서 3층까지 빗소리를 모두 다르게 설계해 녹음했고,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서도 다르게 들리도록 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는 일반적 관점에서는 둘에 대한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겠지만, 애초 그걸 다루려고 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그린 것은 둘의 ‘마음 상태’다. 영화 시작부터 이어진 12분간의 롱테이크(길게 찍기)는 영화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눠 찍으면 인위적으로 강조하게 되니까. 중요한 건 대화 자체보다 말의 뉘앙스, 표정, 시선이었습니다.”

여자가 바람 나서 집을 나가겠다는데 현빈처럼 묵묵히 반응하는 남자가 있을까. 이 감독은 현빈 캐릭터를 “감정 표현에 미숙한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그 안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속 임수정도 비슷한 사람이어서 둘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터뜨려 해결하기보다는 안으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지만 속으론 곪아들어간 사람. 이별조차 시원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한다…>의 주인공들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5편의 작품 중 4편이 여성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번 영화의 원작은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아레노의 단편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이다. 그는 “원할 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건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도 관심이 많으며, 모두 놀랄만한 대단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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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니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이번주 예매율은 5위다. 1위는 <만추>, 2위는 <아이들...>이다. 하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이순재 볼래 현빈 볼래, 혹은 김수미 볼래 탕웨이 볼래 하면 답은 뻔하긴 하겠다. 주말이 지나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봉 첫 주에 시선을 끌지 못하면 금세 밀려나는 것이 요즘 극장가의 생리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명색이 상업영화라지만 솔직히 이 영화엔 관객을 끌 요소가 많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것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노인 4명의 사랑이야기, 영화화돼서 성공한 적이 없는 강풀의 만화 원작, 제목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심지어 강풀조차 만화를 처음 그릴 때 “이런 만화를 독자들이 좋아할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일단 영화를 보면 대체로 운다. 기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관람한 시간이 영화에 대한 ‘리액션’이 강한 일반 시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반 이후엔 사방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성마른 영감 만석(이순재)은 폐지를 줍는 송씨 할머니(윤소정)를 만난다. 아내와 사별한 만석은 어엿한 자식에 손녀까지 있지만, 송씨는 독거노인이다. 퉁명스러웠던 만석은 송씨와 만나며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가 된다.

주차장 관리인 군봉(송재호)에겐 아내 순이(김수미)가 있다. 치매에 걸린 순이는 벽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떠먹여줘야 밥을 먹고, 바지를 입은 채로 똥을 싼다. 그러나 자식 삼남매를 분가시킨 군봉에게 순이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다.



나이가 들었다고 별다른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걱정에서 시작된다. 매일 보던 시간에 송씨가 나타나지 않자 만석은 온갖 걱정을 다한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제 맘대로 열성을 다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만석은 송씨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가 그가 ‘까막눈’인 걸 알자 그림 편지를 쓴다. 아이들의 그림 일기처럼 단순하지만 보는 순간 뜻을 알 수 있는 편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는 읊었는데, 만석은 주민등록증조차 없이 송씨라고만 불리던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이뿐’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이순재가 슬랩스틱까지 해가며 대부분의 코믹한 상황을 책임지는데, 70대 중반의 그가 10대들까지 웃길 수 있음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입증이 됐다.

영화가 중반쯤 흘렀을 때 두 커플의 행복은 절정에 달한다. 그래서 조마조마하고 두렵다. 나머지 상영시간 동안 이들 두 커플이 결국 이별하리라는 건 필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 결말을 담건 안 담건, 이들 주위에는 사신(死神)이 어슬렁거린다는 게 감지된다.

나머지 3명의 노인들은 자신의 나이듦을 겉으로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아기가 된 순이는 솔직하게 말한다. “늙지마 여보, 늙으면 못써.” 사실 모두들 같은 심정일 것이다.

많은 상업영화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환상을 창조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받치는 환상은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믿고 싶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여기선 사랑하는 주체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사랑할 힘은커녕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를 근력도 부족해 보이는 이들, “팔아버릴라카이 돈 안되고 내버릴라카이 아까운” 고물차같던 이들이 뜨겁고 왕성한 사랑을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 다음 기회에 실패하면 또 다음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등장인물들에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들은 강제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군봉의 말대로 이들은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죽음 앞에 겁쟁이가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이다.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4명의 ‘할매’가 나오는 <마파도>,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야기 <사랑을 놓치다>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를 합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돌이켜보니 <마파도>가 재미있었던 것은 할매들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성실한 삶을 살아왔고 감독은 그 삶을 긍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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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웨이. <만추>는 탕웨이의 얼굴에서 시작해 탕웨이의 얼굴로 끝난다. <, >의 매력은 우연도 아니고 리안의 마술도 아니었다. 인터뷰는 7~8개 언론이 공동으로 50분 가량 진행됐다. 이런저런 질문에 이런저런 답변이 나왔는데,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어떤 답변을 리드로 써도 좋을 듯한 좋은 말들이 나왔다. 인터뷰를 한 뒤로 탕웨이가 더 좋아졌다. 인터뷰 전문과 <만추> 리뷰.

    사진 이석우 기자


-
한국의 고전영화 리메이크에 중국 여배우가 나왔다.

"감정이란 것에는 국경이 없다. 언어라는 것도 감정에 비하면 힘이 없다. 한국 영화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처음 출연했는데, 계기나 믿음이 있나.

"좋은 시나리오, 좋은 감독, 좋은 상대 배역이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믿음이 확인됐다. 난 현장에서 유일한 중국인이었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다 가족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의 영화는 중국에서 상영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만추>도 상영되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움은 없나. (<, >가 친일하는 내용이 있어 중국이 탕웨이가 출연하는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전에 있었다)"

"아직 할지 안할지 모른다. 내 다른 출연작 <크로싱 헤네시>는 상영됐다."

 

-그렇다면 <만추>의 중국 상영에 대한 기대감이 있겠다.

"기대된다. 중국에서 개봉하면 현빈씨도 같이 가고 싶은데, 아쉽게도 갈 수 없어서 아쉽다. 지금 중국에서 현빈씨 인기가 폭발적이다. 주변에도 현빈씨에게 미친 팬들이 너무 많다.(웃음) 홍콩에서는 신문에 '현빈 바이러스'라는 제목으로 한 면 전체에 걸쳐 기사가 난 적이 있다. "

 

-연기 상대로서의 현빈씨는 어땠나?

"굉장히 안정적인 배우였다. 그 나이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어른스럽다. 매사에 진지했고, 농담을 받아들이는 자세조차 진지했다. 그런 면에서 현빈은 코미디 배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현빈씨의 어떤 면이 좋은가.

"애나의 훈이 좋다. 왜 훈을 좋아하냐면 훈은 밝은 햇빛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애나는 7년동안 마음이 죽어있던, 잠들어있던 얼음같은 사람이다. 그녀의 인생은 7년전 끝났다. 훈의 햇빛으로 얼었던 마음이 녹았다.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얻었다. 그런 훈을 어느 누가 싫어하겠나. 어제(시사회날) 난 그런 생각을 했다. 난 애나로서 훈을 사랑한다. 이 천사를 데려다니면 좋겠다고. 어제 현빈씨 보면서 많은 여자팬이 소리 지르는데, 많은 이들에게 현빈씨는 훈 같을 것이다. 많은 이에게 기쁨을 준다. 특히 그 보조개에서 나오는 미소가 햇빛같다. 그래서 많은 분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애나가 되기 위한 준비작업이 있었나.

"촬영 2달전 시애틀에 들어갔다. 애나라는 사람의 배경, 환경을 이해해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애틀에서 성장한 사람과 다니면서 시애틀 사람처럼 생활했다. 화교들이 사는 곳에 생활했고 이야기 나누고 친구 사귀었다. 애나에겐 이런 추억들이 있었겠구나 하고 저장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 하자 김태용 감독님은 다 비우라고 했다."

 

-영어 발음이 좋은 것 같다.

"<만추> 촬영전 런던에 있다가 시애틀로 갔다. 런던에서는 영국식 영어를 공부했는데, 시애틀 도착하자마자 다이얼로그 코치를 배정받아. 시애틀식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영어 수업을 했는데 이후엔 선생님과 수업한게 아니라 시애틀에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시애틀은 어떤 곳이었나?

"시애틀은 내 고향인 항저우와 닮았다. 축축하고 음산한 느낌이 그렇다. 시애틀은 항상 흐리기 때문에 자살율이 높다. 도시 느낌이 우울한데. 더 깊이 들어가면 오래된 도시이고 역사, 문화 등 아름다운 배경이 있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애나의 이민생활이 그래서 더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훈이라는 불꽃을 만났을 때 얼음처럼 녹았을 것 같다."

 

-애나가 결국 훈을 만났을 것 같나.

"만났으면 정말 아름다웠겠지만,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가지고 예쁘게 꾸미고 도착해서 기다리는 순간이 있었다는 거다. 그게 가장 행복한 순간일 듯하다. 삶과 사랑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애나는 오랜 시간동안 기다림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살았던 인물이다. 전혀 희망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키스신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키스신이 없었다. 어머니 장례식 장면을 찍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시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신이 필요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장면과 감정을 설명하는데 심장이 뛰었다. 그 얘기에 몰입됐다. 그래서 ', 필요하겠군요.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키스신을 찍는 순간을 기다렸다. .아울러 참 오래 찍었다.(웃음)"

 

-극중 이미지가 자신과 잘 어울린 것 같나.

"시사회에서 영화를 볼 때는 아직도 애나였다. 애나의 마음으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내 모습이 어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다. 그저 저 안개가 빨리 걷히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보는 분이 더 객관적일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훈과 손잡고 밤새도록 달리는 장면이다. 애나가 모든 마음 속의 무거움 버리고, 코트 조차 벗고, 내 안의 모든 것을 떨쳐나가는 장면이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애나에게 그런 순간은 그때밖에 없을 것이다. 촬영할 때 참 좋았다."

 

-<, >도 그렇고 주로 진지하고 우울한 역을 맡았는데, 본인의 실제 성격대로 쾌활하고 발랄한 여성 역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나.

"<급속천사>에 여자 레이서로 나온다. 그때야 내 모습같다고 생각했다. 구멍난 청바지에 남자처럼 걷는 평상시 내 모습이 나온다. 엄마가 그 영화 촬영할 때 의상 보더니 '이제야 너 같다'고 말해줬다."

-리안 감독, 김태용 감독의 같은점과 다른점은.

"닮은 점이 더 많다. 김태용 감독의 연출을 얘기하면 답이 되겠다. 굉장히 세심하고 예민하다. 말이 많지 않은데, 만나보면 눈이 반짝거린다. 겉모습은 어른인데 어린아이같은 눈빛을 갖고 있다.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긴 말도 아니고 짧게 얘기하고 학생처럼 단정한 태도인데, 깊이 얘기하다보면 자기 주장에 대해 강하게 요구하고 열렬히 추구한다. 그걸 굉장히 착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전달하지만, 전달력은 정확하다.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사란 대하는 태도, 영화 만드는 진정성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진다고 들었다.

"정말 그런가. 다시 한국영화를 찍는다면 크나큰 영광이다."

 

-왜 본인이 외국의 영화에 캐스팅된다고 생각하나.

"모든 나라 분들이 각자 자기 이미지만을 가지고 유형화된 것 같다. 다른 나라, 문화를 가진 사람하고 일하는데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외국 배우에게 제의하는 것 같다. 그 호기심들이 같이 만나면 어떻게 작용될까 궁금하고 즐겁다. <급속천사>에도 중국, 홍콩, 일본, 대만 배우가 다 나온다. 지금은 모든 분들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한국영화만의 특징이 있나.

"감히 어떤 평을 내리기는 어렵다. 100편은 더 봐야 답을 하겠다. 다만 영화보다는 최근에 같이 일한 김태용 감독, 현빈씨, 김우형 촬영감독 등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한국영화인들은 집중력이 강하고 마음을 다해서 만든다.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대상이 생기면 몰입하는 깊이가 깊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내내 행복했다."

 

 

-공리, 장쯔이 등은 할리우드 진출했다. 당신의 계획은.

"난 원래 계획이 없이 산다."

 

-어떻게 배우가 됐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연기를 접하고 나서야 이렇게 편한 일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할 때 제일 편하다. 생활 속에서는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는걸 연기에서 진실로 표현할 수 있다. 관객은 내가 표현하는 걸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더라. 그래서 연기에 재미를 찾게 됐다. 평상시 하지 못하는 역. 예를 들어 미치광이같은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다."

 

-<만추>처럼 힘든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7년동안 갇혀있다가 3일 나와 하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웃음) 사랑 경험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고통은 누구나 겪는다."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

"와서 오래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어쩌면 한국인들과 일하면서 이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가 좋고 아름답게 들린다. 문법, 어법 물어보면 중국어랑 어순도 다르고 해서 호기심이 생긴다. 지금 이렇게 얘기를 나누지만 그 뜻은 모르지 않나. 난 여러분의 눈을 보면서 얘기하고 싶다. <만추> 현장에서 영어로 외국 스태프와 얘기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통역을 부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그러고 싶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 다들 도망간 건가?(웃음) 김태용 감독님하고도 그렇게 해서 정말 완벽한 호흡을 맞췄다.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통역을 부르지 않았다. 나중엔. 통역사가 감독님과 나 사이의 언어를 못알아들을 정도로 둘만의 언어가 생겼다."

 

 

멍든 얼굴, 멍한 표정의 여자가 한적한 주택가를 어기적대며 걷는다. 여자는 문득 발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간다. 한 남자가 고개를 바닥에 쳐박은 채 쓰러져있다. 여자는 자신과 남자가 찍힌 사진을 찢어 먹어치운다.

7년 후, 수감중인 여자 애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다. 모범수인 그녀는 72시간의 휴가를 얻는다. 버스를 타고 시애틀의 집으로 돌아오던 애나는 한 남자를 만난다. 머리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양, 여자에게 접근하는 매너 등이 예사롭지 않다. 남자 훈은 여자가 원하는 남자 노릇을 한 뒤 돈을 받는 것이 직업이다.


3일 후의 예정된 이별, 그 사이 벌어지는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가 <만추>의 전부다. 애나는 중국인, 훈은 한국인이다. 둘은 영어로 대화하고, 가끔 모국어로 혼잣말한다. 사연 많은 애나와 그 만큼의 사연이 있는 훈이 서로를 온전히 알기에 72시간은 너무 짧다. 그러나 평생 간직할 사랑의 추억을 만들기엔 충분히 길다.


또다른 ‘고객’을 찾던 프로페셔널 훈은 애나를 요리조리 찔러본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남편을 죽인 뒤 영어의 몸이 된 애나가 낯선 이에게 마음을 쉽게 열리가 없다. 교도소에선 수시로 애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온다. 훈 역시 쾌활한 척 하지만 실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늘 자욱한 안개가 끼어있고 자주 비가 오는 시애틀의 풍광은 두 남녀의 관계처럼 질척댄다. 러닝타임이 절반은 지나서야 둘은 독백, 방백이 아니라 대화하기 시작한다.




두 배우는 정확한 영어로 많은 대사를 하지만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만추>는 말이 아닌 감정의 영화다. 그 감정은 대양의 파도가 아니라 호수의 물결 같다. 어쩌다 비친 햇빛, 찡긋하는 눈빛, 흩날리는 머리결같이 미세한 표현법으로 그들의 감정이 전달된다. 훈은 말한다. “어떤 얘기는 꼭 말로 해야만 하는건 아니죠”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반응은 갈릴 것 같다. 굵직한 이야기와 빠른 전개를 즐기는 관객들은 될듯 말듯 아무 것도 안되는 둘의 관계에 복장을 터뜨릴지 모른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느릿한 템포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올해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만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10일 오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다시 공개됐다. 지난해에는 ‘탕웨이의 <만추>’였는데 그 사이 ‘현빈의 <만추>’가 됐다. 이날 시사회가 열린 왕십리CGV는 수 많은 취재진, 관계자들 때문에 최근의 그 어느 한국영화 시사회장보다 혼잡했다.


그러나 영화가 누구의 것이든, 두 배우는 충분히 매력있다. 탕웨이는 데뷔작 <색, 계>의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런 여배우를 한국영화에 캐스팅했으므로, 한국영화의 자장과 역량은 충분히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남자를 현빈처럼 느끼하지 않게 표현하기도 힘들다.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지금은 프린트가 유실된 이만희 감독의 동명 원작(1966)에 근거했다. <만추>는 김기영, 김수용 감독에 의해서도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작품이다.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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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 설명 중, 엘티 트윈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근거해 작성한 대목이 있었음을 사과드립니다. 해당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정재영은 <글러브>에서 엘지 트윈스 소속 선수다. 


설날 극장가 성수기를 앞두고 개봉하는 <글러브>는 많은 부분에서 예상가능한 영화다. 강우석과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 스태프가 모여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짐작하는 만큼의 눈물과 웃음이 있고, 화면은 평균적인 한국 관객이 소화하기 좋을 정도로 구성됐다. <글러브>에서 예상을 벗어난 것은 다소 긴 상영시간(144분)뿐이다.


그러나 강우석의 예상가능한 영화들은 언제나 시장에서 통했다. <글러브>는 서너 번 크게 울리고, 여러 번 작게 웃긴다. 뻔한 대사, 뻔한 이야기, 뻔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아무튼 눈물이 난다. 충주 성심학교의 청각장애 야구부 이야기를 극화했다. 프로야구 에이스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잇달아 사고를 쳐 징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 야구부의 임시 코치로 부임한다. 음악교사 겸 야구부 매니저 주원(유선)과 교감(강신일)은 꿈도 크게 “전국 대회 출전!”을 외치지만, 김상남이 보기엔 어림도 없다. 대충 시간을 때우던 김상남은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잃었던 야구에 대한 꿈과 열정을 발견한다. 김상남과 아이들이 하나가 돼 야구에 몰두할 무렵, 야구위원회에선 김상남에 대한 징계절차가, 학교에선 야구부 해체 논의가 시작된다.

난 이 장면에서 조금 울 뻔 했다.



몇 가지 교훈적인 주제가 전달된다.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때로는 자기 뒤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야구도 때론 싸움이라는 것. 대단한 접전이 때로는 허망하게 끝나기도 한다는 것. 이 문장들에서 ‘야구’를 ‘삶’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겠다.

강우석 영화에는 종종 안되는 걸 되게 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공공의 적> 속 형사 강철중은 자기보다 훨씬 힘센 인물들을 잡아넣으려 했고, <실미도>의 북파공작원들은 무작정 북으로 가려 했고, <이끼>의 주인공은 고립된 마을에서 주민 전체와 싸웠다. 이 비합리적인 의지의 인물들은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왔다.

<글러브>의 '실미도스러운' 장면들.

<글러브> 역시 이토록 강한 의지를 칭송하는 영화지만, 성심학교가 군산상고를 이기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는 현실적이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예견되는 사람들을 그린다는 측면에서, <글러브>는 강우석의 2000년대 작품들 중 <실미도>를 가장 닮았다. 성심학교 야구부의 훈련 장면이 <실미도> 공작원의 훈련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이후 강우석 감독의 영화로서는 처음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20일 개봉.


사진 이석우 기자

배우 유선은 동료 여배우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받을 것 같다.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지만 줄곧 ‘남자 영화’만 찍어온 강우석 감독이 두 번 연속 기용한 유일한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흥행작 <이끼>, 곧바로 출연한 <글러브>에서 유선은 충주 성심학교의 음악교사 겸 야구부 매니저인 나주원 역을 맡았다. 나주원은 야구부 임시 코치로 부임한 스타 김상남(정재영)과 청각장애 야구부 학생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한다.

역을 소화하기 위해 유선은 3개월간 수화를 배웠다. 대사만 익히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했다. 간단하게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유선은 “수화도 외국어 같아서 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면서도 몇 가지 손동작을 해보였다.

역할 특성상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에서 연기를 했다. 하도 야외에 서 있었더니 나중엔 양말 신은 발과 발목의 경계선이 ‘박세리 발목’처럼 두 가지 톤으로 나뉘었다. <이끼>에 이어서 여배우로선 예쁘게 보이기 힘든 역이다.

“외모에 집착하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편하던 걸요. 배우로서 달리 신경써야 할 부분이 적어지니까 몰입도도 커지고…. 무엇보다 <이끼>의 영지나 <글러브>의 주원이나 충분히 예쁘게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그 내면이 보이니까요.”

<이끼>와 <글러브>에서 모두 주요 배역으로선 촬영장의 홍일점이었다. ‘불편하지 않았나’라고 물으니 “솔직히 다른 여배우가 없어서 더 편했다”고 답했다.

“드라마에서 여배우는 대부분 대립 구도로 캐스팅돼요. 극적 긴장감이 실생활까지 연결될 때가 있어요. 두 여배우가 같이 나오면 연출자와 스태프까지 긴장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묘한 긴장감이 흘러요. 정말 잘 맞는 배우라면 오히려 작품 끝나고 더 친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 성격이 밝고 명랑한 편인 유선은 영화 속에선 우울하고 기괴한 역을 주로 맡았다. 지금까지의 영화 연기보다 두 톤 정도 밝은 <글러브>의 주원은 “정말 기다린 역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힘들었다”고 전했다. 한 번도 안 해봤으니 당연했다. 영화 촬영 3분의 1 지점까지는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취미를 묻자 유선은 “없다”고 단언했다. 할 일이 없으니 쉬는 것도 안 좋아한다고 했다. “연기는 일이 아니라 꿈, 촬영 자체가 매일 꿈”이다. 이 때문에 여러 사정으로 현장에 서지 못했을 때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가발>이 끝나고 1년 가까이 공백기가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유선에겐 행복하게도 당분간 일복이 터졌다. <이끼> 개봉도 하기 전에 <글러브> 촬영에 들어가더니, <글러브> 홍보 일정이 끝나면 바로 구한말 배경의 사극 <가비> 촬영에 들어간다. 이후엔 다시 억울하게 죽은 딸에 대한 복수를 하는 어머니 역을 맡은 <돈 크라이 마미>의 주연이 된다.
일 욕심 많은 유선에게 2011년은 욕심을 채워주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진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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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분명히 들었다. <쿠바의 연인> 시사회. 정호현 감독의 자전적인 쿠바 혹은 쿠바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 침대 위에서 함께 보낸 다음날 아침 상황인 듯,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남자는 맞은편으로 팔꿈치를 괴고 누웠다. (한국에 살 수 있겠어?) "너와 함께라면." (내가 없으면?) 남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리고선 하얀 시트 바깥으로 삐져나온 여자의 엄지 발가락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이게 뭐지?" 그리고 거기 키스한다. (아니 빨았나?) 순간 난 분명히 들었다. 어느 여자 관객의 탄성. "어우~~~"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청객들이 자주 내는 탄성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들릴락말락한 탄성. 그러므로 이 탄성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생리적인 것이라 봐야 한다. 그 쿠바 남자의 귀여움과 에로틱함에, 감독의 시점 카메라에 저도 모르게 동화돼, 폐부 아래에서부터 나온 탄성. 

오리엘비스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감독보다 10년 연하다. 몸이 마르고 탄탄하다. 춤을 잘춘다. 음악도 만든다. <쿠바의 연인>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그림도 그린다. 보도자료에는 쿠바 디자인대학 3학년이라고 돼있다. 그가 한국에 와 감독의 친척들과 함께한 장면이 압권이다. 남자들은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다. 안경을 쓰고, 밋밋한 셔츠를 입었고, 단정하게 가르마를 넘겼다. 이 자리에 나타난 오리엘비스는 정말 폭탄같은 남자다. 며칠전 정호현 감독과 통화한 내용.

-이국의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는데 거부감이나 장벽은 없었나?
"그러기엔 너무 잘생겼다! 오로(오리엘비스의 애칭)는 그쪽에선 미남 축에도 못낀다. 프라이버시 강조하는 캐나다에 있다가 쿠바에 가니 너무나 큰 환대를 받았다. 여성 입장에서는 확 끌렸다."

-일기식으로 기록하다가 작품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가.
"비디오 다이어리처럼 소소하게 일상을 기록했다. 초기에 쿠바에 도착해서는 <쿠바에 미친 여자>라는 가제 하에 만들려고 했는데, 연애를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안 보던 것도 보이고, 안 들리던 것도 들렸다. 쿠바하면 춤, 음악, 낭만일텐데,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적어도 현지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담아야 했다. 실상을 다 아는데 춤, 음악, 낭만만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겠다 싶었다한국 관객에게 쿠바가 이런 모습이 있다고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작품은.
"쿠바 얘기를 두 세 번 더 하고 싶다. 거기서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 매체들은 3주 정도 비자 받아 갔다 온다. 난  더 깊게 들어가는 이야기를 할 거다.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끝나면 어떻게 보내주나를 그리고 싶다. 그들은 13~14세면 첫 섹스하고,. 17~18세 되면 동거 시작한다. 동거는 3~4년 가는데, 그 관계에서 어떻게 동거 생활 시작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아래는 1월 6일자 관련 기사. <심장이 뛴다>와 묶어 썼다.

연초 두 편의 한국영화가 선을 보인다. 극영화 <심장이 뛴다>와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이다. 두 영화의 겉모습은 매우 다르다. <심장이 뛴다>는 톱스타 김윤진·박해일이 출연한 상업영화이고, <쿠바의 연인>은 정호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이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들이 가진 정서와 삶의 방식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이 뛴다>는 여자 주인공, <쿠바의 연인>은 여자 주인공의 가족이 기독교인이다.



왜 당신은 다른 이의 삶이 안중에 없는가

◇ <심장이 뛴다> 속 이기적인 종교 = <심장이 뛴다>는 가족을 살리려는 두 남녀의 대결을 그린다. 남편과 사별했지만 서울 강남에서 영어유치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연희(김윤진)에겐 큰 걱정이 있다. 어린 딸 예은이는 심장이 약해 빨리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마침 예은과 혈액형이 같은 뇌사 직전의 환자가 응급실에 나타나자 연희는 환자 보호자에게 거액을 준 뒤 심장 이식 동의를 받는다.

그러나 환자의 아들 희도(박해일)가 나타나 이식을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평소 어머니와 의절하다시피 살아온 희도이지만, 삶의 막바지에 몰린 어머니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희도는 어머니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연희는 그 심장을 빼앗아 딸에게 이식시키기 위해 대결한다.

영화 초반부 연희는 선인, 희도는 악당처럼 보인다. 연희의 원장실 책상에는 해외봉사에 다녀온 듯 외국 어린이들과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연희는 이주노동자의 심장을 사서 이식하자는 불법 장기 브로커의 제안도 거절한다. 반면 희도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건달이다. 부모에 대한 천륜, 친구에 대한 우정도 없다. 입만 열면 육두문자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 선인과 악당의 위치가 바뀐다. 평소 착하게 보이던 연희는 딸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이웃에 대한 배려를 멈춘다. 아직 죽지 않은 환자를 보호자 동의 없이 빼돌리기까지 한다. 영화는 중간중간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연희의 모습을 강조한다. 연희는 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기도할 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안중에도 없다. 희도는 “사람 목숨 다 똑같은 거 아니냐?”라고 항변하지만, 연희의 재력에 동원된 폭력배들 앞에선 무력하다. 딸 예은은 엄마를 ‘천사’라 여기지만, 타인에겐 목숨을 빼앗는 ‘악마’나 다름없다.

이 영화로 데뷔한 신인 윤재근 감독은 “한국이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구조적인 대결, 갈등의 문화가 조장됐다”며 “한국의 강남, 영어교육, 교회로 상징되는 계층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당신은 다른 이의 믿음이 틀렸다 하는가

◇ <쿠바의 연인> 속 배타적 종교인 =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정호현 감독은 캐나다 유학중 10일간 쿠바 여행을 떠났다. 그때의 감흥을 잊지 못해 이듬해 다시 쿠바를 찾아 4개월간 머물렀다. 처음엔 쿠바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인 춤, 사랑, 낭만 등을 다루려 했으나,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하고, 사람들은 일하는 척한다”는 쿠바 사람들의 마음속 말을 들으면서 작품 방향이 달라졌다. 더욱 결정적인 계기는 10살 연하의 쿠바 남성 오리엘비스와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쿠바의 연인>은 한국 여성과 쿠바 남성이 사랑을 시작하면서 겪는 문화적 차이를 다룬다.

영화는 오리엘비스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오리엘비스는 뭐든 복잡한 한국에 질린다. 특히 낯선 건 한국의 기독교 문화다. 감독의 어머니는 검은 피부의 사위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애쓴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교회 집사까지 동원한다. 심지어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한 할머니는 오리엘비스의 ‘폭탄머리’가 사탄처럼 보인다며 기독교식 말세의 징조라고까지 말한다.

정 감독은 전작 <엄마를 찾아서>에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사연을 담았다. 정 감독은 “어머니는 왜 맹신도 혹은 독실한 신앙인이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려 했다”며 “불교를 믿는 8남매집 맏며느리로 들어가 원래 갖고 있던 종교를 버려야 했던 어머니에게 교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본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라는 한 한국인의 질문에 오리엘비스는 “어느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저 한 사람일 뿐, 이념의 틀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리엘비스는 자신을 전도하려는 장모를 이해하려 한다. “나를 새 가족으로 받아주셨으니,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려 하시는 것 같아. 그게 바로 구원이겠지. 그러나 이것 아니면 다 틀렸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는 쿠바식 사회주의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들 스스로 자신이 유일한 진리임을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기주의(심장이 뛴다), 배타주의(쿠바의 연인)가 연초 두 편의 한국영화가 보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인 셈이다. 정 감독은 “문화로서의 종교는 좋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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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쓰지는 않았지만,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영화 줄거리나 디테일에 대한 지엽적인 질문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가 그렇겠지만, 이 영화도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계산 아래 만들어졌음을 알았다. 따지자면 난 <추격자>보다는 <황해>를 선호한다.

하정우는 올해의 고생상을 받아 마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선 젊은 연인들이 <황해>를 보면서 느낀 건 끝 모를 광기와 절망이었을 터다. 영화판에서는 한없이 늘어난 촬영기간과 그에 따라 치솟은 제작비, 감독의 열정 혹은 집착을 둘러싼 온갖 루머도 나돌았다.

아무튼 <황해>는 세간의 소문, 논란, 호평, 악평을 뒤로 하고 개봉 첫 주 100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하고 있다. 역시 숱한 화제를 만든 <추격자>로 데뷔해 두 번째 작품 <황해>를 갓 선보인 나홍진 감독을 28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순수’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했다.

“제가 너무 정직하게 간 것 아닌가 걱정했어요. 너무 순수했던 것도 같고요. 사건을 순수하게 표현하려 했거든요. 저는 만족했지만, 그 순수함을 관객에게 보여드리려 하니 슬슬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 야생의 사내들이 인천공항에 나타나는 순간, 영화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손도끼, 쇠뼈다귀 등을 이용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는 면가(김윤석) 역시 감독의 해석으로는 ‘순수한 남자’다. “너무나 순수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고 나 감독은 말했다.

<추격자>는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를 상상하며 구상한 작품이었다. <황해> 역시 감독을 따라다닌 한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추격자> 프리프러덕션 과정이었는데, 분식집에 떡볶이를 먹으러 갔어요. 거기서 추레한 작업복 차림의 10살가량 되는 아랍계 아이가 덮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맛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내 몸을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마음만 있는 것 같았어요. 무서웠어요.”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는 소년의 이미지가 영화 속 구남(하정우)으로 연결됐다. 한 치의 희망도 없이 비정한 세상은 감독의 세계관일까.

“마지막 컷에서는 영화마저 주인공을 버립니다. 시종일관 그를 쫓아가던 카메라마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몇몇 관객은 이 남자의 운명을 느낄 것 같아요. 냉정하고 꼿꼿하게, 흔들림과 치우침 없이 담아내려 했어요. 살려고 충돌하고 발악하던 사람들이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이후의 이야기, 그 어두운 면을 담으려 했습니다.”

<황해>를 좋지 않게 본 이들도 이 영화 속 자동차 추격 장면의 박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 감독은 자동차 하나하나에 ‘인격’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 차는 구남처럼 보여야 하고, 저 차는 면가처럼 보여야 했다. 또 텅 빈 도로에서 ‘그림’을 만드는 게 싫어서 컷마다 보조출연 차량으로 틈을 채워나갔다. 나 감독은 “유상섭 무술감독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극중 김태원(조성하)이 살인을 교사한 진짜 이유는 영화 막판의 반전에 가깝다. 나 감독은 “무시무시하고 지저분한 사건의 원인이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만큼 천박하고 사소한 이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에서 캐스팅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황해>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영화인들의 화제였다. 감독이 완벽주의를 고수하느라 수많은 스태프와 마찰을 일으켰으며, 그 와중에 스태프들이 떠나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 감독은 “<황해>가 안주가 됐다”며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스태프들이 대거 교체된 이유에 대해선 “많은 스태프의 계약 기간이 4개월이었다. 촬영기간이 여느 영화의 2배가 넘는 11개월이다 보니 다음 영화를 위해 그만둬야 하는 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황해>의 기나긴 촬영기간을 견디며 어느 순간 ‘지옥’을 맛봤다. 그러나 영화는 그 어느 분야보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성향이 강하다. 100억원대의 순제작비가 투입된 <황해>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 지옥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갓 지옥에서 빠져나온 나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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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색하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정색을 하면 지는 걸까.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심형래나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과 관련한, 그 알 수 없는 '글로벌'에 대한 욕망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게다가 난 심형래의 슬랩스틱을 보고 유쾌하게 웃기 힘들었다. 그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너무나 많아, 그가 넘어지고 맞을 때마다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영구가 이런 아가씨와 로미오와 줄리엣 놀이를 한다. 심형래도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심형래와 원더걸스의 공통점. 둘 다 세계 대중문화의 본산인 미국 시장 진출을 끝없이 노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만큼의 성과는 못 올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심형래가 연출하고 주연까지 겸한 신작 <라스트 갓파더>가 29일 개봉했다. 심형래가 영화에 출연한 것은 <드래곤 투카> 이후 14년 만이다. 심형래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캐릭터는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영구’다.

<라스트 갓파더>는 <대부>를 패러디한다. 1950년대 뉴욕의 마피아 대부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는 은퇴한 뒤 유일한 혈육에게 조직을 물려주려 한다. 한국에서 온 돈 카리니의 외아들은 다름 아닌 영구다. 누가 봐도 덜떨어진 새 후계자의 출현에 부하들은 당황한다. 돈 카리니는 라이벌 본 판테 일당에게 쫓겨 한국에 숨어산 적이 있었고, 그때 운명의 여인과 만나 낳은 아들이 영구였다는 설정이다. 돈 카리니는 아들을 진짜 남자로 만들어보려 하지만, 영구는 멍청한 짓만 골라한다. 영구는 본 판테의 외동딸 낸시를 우연히 구해주고 그와 친구가 된다.

<라스트 갓파더>가 <디 워>보다 나은 점은 감독의 주특기인 코미디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디 워>보다 상영시간이 13분 길다는 것이다. 심형래는 <라스트 갓파더>에서 코미디언으로서의 전성기였던 80년대식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인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웃기긴 하지만, 적어도 언론시사회장에선 박장대소가 터지지 않았다. 문제는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을 연결하는 영화의 고리들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는 뻔하고, 인물의 성격에는 깊이가 없으며, 연기 지도도 철저하지 않다. 심형래는 “5살 아이부터 80살 할아버지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온갖 영화적 기교와 복잡한 이야기 구성과 배우들의 열연에 익숙해진 현대의 젊은 영화팬들이 <라스트 갓파더>를 ‘영화적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라스트 갓파더>에도 장점이 있다. 피, 살점, 칼, 욕설이 난무하는 최근의 한국영화에 염증을 느낀 관객이라면 착하디착한 <라스트 갓파더>가 반가울 수도 있다. 아울러 때깔도 좋다. 세트의 만듦새나 촬영 기술은 할리우드급이다. 허나 기술적 성취가 곧 영화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심형래와 원더걸스 이야기. 원더걸스는 이 영화에 카메오 출연한다. 실의에 빠진 영구와 동료 마피아가 술을 마시기 위해 찾은 클럽에서 원더걸스는 빌보드 차트에도 오른 자신들의 히트곡 ‘노바디’를 노래한다. 5명의 소녀들이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노래하는 사이, 영구와 마피아는 “밥만 먹고 살 수 있냐”고 히죽대며 웃는다.

<라스트 갓파더> 측은 이 영화의 장르를 ‘글로벌 휴먼 코미디’라 부르고 있다. 또 “원더걸스의 카메오 출연은 미국 진출을 위해 노력하는 연예인 후배와의 적절한 콜라보레이션 사례”로 ‘심형래 감독의 특별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건 미성년자 멤버가 있는 원더걸스가 술집에서 노래한다는 설정 때문에 정작 이 장면은 미국 개봉판에서 삭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박한 코미디에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나, 미국에서 상영되지 못할지도 모르는 장면을 찍어놓고 ‘글로벌 전략’이라고 홍보하는 것이나 앞뒤가 맞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 원더걸스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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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를 본 뒤 몇 가지 논쟁이 있었다. 우선 김윤석과 그 일당이 맛있게 먹은 고기가 무엇인가. 돼지설, 개설이 오갔고. 심지어 사람설까지 나왔는데 설마. 아무튼 김윤석은 이 돼지뼈다구인지 개뼈다구를 들고 싸운다. <하몽하몽>에서 돼지 뒷다리 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고 하는데, 아무튼 <황해>의 무기는 독창적이다. 

어떤 장면을 보면 그냥 "미쳤다"는 소리가 나온다.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재미있기는한데, 누군가에게 선뜻 보라고는 말 못하겠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봐.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인과 손잡고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나름 흥미진진하겠다.   

김윤석은 옌벤의 개장수다. 다크 포스가 물씬 풍긴다. 하정우의 표정이 불쌍하다.


<황해>의 등장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개가 적당할 것 같다. 이 개 같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서로 물고 물리고 죽이고 잡아먹힌다. 때로 개들은 광견병에 걸려 필요 이상 난폭한 짓까지 저지른다.

실제 <황해>의 도입부에는 영화에서 유일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옌볜의 택시기사 구남(하정우)은 열 한 살 때 ‘개뱅’(개병, 즉 광견병)이 돈 얘기를 전한다. 병에 걸린 개는 제일 먼저 제 어미를 물었고 이후 아가리로 물 수 있는 건 모조리 물어죽였다. 며칠 뒤 삐쩍 마른 꼴로 나타난 그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고, 구남은 개를 묻어줬다. 어른들은 그날 밤 묻힌 개를 꺼내 잡아먹었다. 구남은 다시 “개뱅이 돌고 있다”며 내레이션을 마무리한다.

구남은 절망적이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여섯 달째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를 받기 위해 빌린 사채빚은 갚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그때 개장수이자 청부살인 브로커인 면가(김윤석)가 접근해 솔깃한 제안을 한다.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오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구남은 돈을 벌고 아내도 찾을 겸 한국행 밀항선을 탄다. 그러나 구남이 죽이려는 대상은 눈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살해당한다. 구남은 몰려든 경찰에게 쫓긴다. 청부살인을 의뢰했던 태원(조성하)은 증거인멸을 위해 구남을 없애려하고, 이 과정에서 옌볜에 있던 면가까지 한국으로 넘어온다.

자동차 20대를 완파시키면서 이런 장면을 찍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

구남은 한국에 가면 찾을 수 있는 돈과 여자, 옌볜에 남은 자식 등 세 가지만을 생각한다. 그 외엔 생각하려야 생각할 수 없이 절박한 처지다. <황해>의 각본가·연출자인 나홍진은 ‘옌볜이 아니라 그 어떤 곳에 있는 남자들도 이 세 가지 욕망을 좀 더 세련되거나 단순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 듯하다.

나홍진은 역시 하정우·김윤석과 함께한 전작 <추격자>에서 서울 강북 지역 주택가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황해>에선 공간이 확장됐다. 카메라는 옌볜, 동해, 황해, 울산, 부산, 서울을 오간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아저씨>가 태국의 킬러를 초청했다면, <황해>는 옌볜의 살인 브로커를 끌어들인다. 폭력을 다루는 한국의 상업영화는 이제 한국 폭력배를 넘어 범아시아 폭력배까지 불러모으고 있다.

야생으로 살아온 옌볜의 조폭들과 온실에서 지낸 서울의 조폭들이 마주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구남이 홀로 동분서주하는 1시간가량이 지나면, 서울 조폭 태원이 등장하고 이어 옌볜 조폭 면가가 나온다. 서울내기들은 그 야생성에 금세 기가 죽는다. 태원이 애완견 두목이었다면 면가는 들개 두목이다. 들개들이 휘젓자 한국은 금세 개판이 된다.

<황해>는 그 개판을 표현했다. 화면에는 한국의 상업영화가 허용하는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열정 혹은 광기가 넘실댄다. 특히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을 보고 나면 기가 빼앗기는 듯 힘이 든다. 관객이야 즐기면 그만이지만, 내심 스태프나 배우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의 장면이 이어진다.

얼굴에 "힘들다"고 써있다.

하정우는 <황해> 촬영에 대해 “군대 재입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밀항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3일간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도입부에 잠시 나온 뒤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김윤석의 연기는 <타짜>의 ‘아귀’급이다.

개는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생존하려 할 뿐이다. 개가 될 바엔 살아남는 개가 되려다가 도리어 죽음의 아가리로 기어들어가는 구남을 보면서 관객은 무엇을 생각할까. <황해>는 영혼을 정화하거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가 아니다. 도리어 세상의 비정함과 악함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한다. 주로 여자들이 토막 살해당한 <추격자>는 밸런타인데이, 남자들이 떼죽음당하는 <황해>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했다. 감독과 배급사도 참 짓궂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개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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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할 말 다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출연작에 대한 아쉬움과 단점도 솔직히 말했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사색이 될 일이지만,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쌩큐~



차태현은 언제나 웃었다. 30대 중반에 졸지에 할아버지라 불렸어도(과속 스캔들) 일단 웃었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차태현은 운다. 영화가 시작하면 수면제 몇 움큼을 집어 삼킨다. 수면제 자살에 실패하자 이번엔 강으로 뛰어든다. 지금까지 차태현이 맡은 역할 중 가장 어둡다.

이후 4명의 귀신이 한꺼번에 차태현을 찾아와 소원을 들어달라고 생떼다. 이들을 보내지 못하면 죽지도 못한다. 차태현은 이들에게 빙의돼 차례로 소원을 들어준다. <헬로우 고스트>는 포스터만 보면 요절복통 코미디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엔 의외로 웃음기가 적다. 오히려 종반부에 생각도 못한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초강력 눈물 폭탄을 터뜨린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걸 왜 읽으라는 거지?’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결말에 이르러 ‘오잉?’ 했죠. 제가 우는 연기를 잘하는 애가 아닌데,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이렇게 운 것도 처음이에요.”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는 차태현의 1인 5역에 맞춰져 있다. 차태현은 변태 영감, 골초 아저씨, 울보 아줌마, 식탐 많은 아이의 귀신에 빙의돼 차례로 그들을 흉내낸다. 차태현은 글로 볼 때는 재밌던 빙의 연기를 막상 현장에서 하려니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네 귀신의 모습을 흉내내야 하니, 상대방이 없이는 사전에 연습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차태현은 스스로 “순발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특징을 잡아내 따라하는데 재주가 있다는 뜻이다.

차태현과 함께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만든 오종록 PD는 차태현을 두고 “못된 역을 해도 밉지가 않다. 다른 배우가 하면 욕먹는데 차태현이 하면 욕 안 먹는다”고 했다고 한다. <헬로우 고스트>의 상만도 너무나 외로워 틈만 나면 죽으려고 하는 남자다. 그러나 영화는 우울하거나 무섭지 않다. 차태현이 자체 발산하는 ‘긍정 에너지’ 덕분인 것 같다.

“드라마든 영화에서든 욕하는 게 싫어요. 대사에 있어도 입에 안 붙어 뺄 때가 많아요. 꼭 해야할 때는 얼버무려요. 결혼하고 애가 생겨서 그런지…. 뉴스에서 끔찍한 범죄가 나올 때 어떤 영화를 보고 따라 했다고 하잖아요. 물론 따라한 사람이 가장 나쁘지만, 만일 제가 그 영화 주인공이었으면 기분이 어떨까 싶어요.”

그는 “악연은 마지막 숙제”라고 했다. 언젠가 하고 싶지만 “나 이런 것 할 수 있어”라고 과시하기 위한 악역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살인의 추억> 속 박해일의 연기는 부럽다고 했다.

차태현은 20살에 방송사에서 주최한 ‘슈퍼 탤런트’ 선발 대회에 입상하면서 데뷔했다. 그는 “뭐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4년간 단역만 전전했다. 그때 생각했다. “10년 연기해도 30살이다. 길게 보자.” 이후 ‘귀여운 악동’ 같은 이미지로 전성기를 맞았지만, 조금씩 나이 들면서 실패작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영화 <복면달호>의 작은 성공과 <과속 스캔들>의 큰 성공이 찾아왔다. 요즘은 제주도에서 경마 기수로 등장하는 영화 <챔프>를 찍고 있다. 촬영하느라, <헬로우 고스트> 홍보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는 “스케줄만 보면 제2의 전성기”라며 웃었다.

<과속 스캔들>, <헬로우 고스트>, <챔프> 등 ‘12세 관람가’ 언저리의 가족 영화만 3편째다. 그러고 보니 <엽기적인 그녀> 이후론 내세울 만한 로맨스 영화가 없다. 그는 “결혼 즈음해서 일부러 멜로 영화를 하지 않았다. 어제 결혼한 애가 오늘 멜로 영화 나오면 이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결혼한 지도 4년쯤 됐으니, 이쯤에서 로맨틱한 영화를 해도 색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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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들 제라르 드파르듀가 나온 <시라노>를 본 것 같다. 그 느낌을 되살려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흥행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오랜만에 흥행한 로맨틱 코미디다. 스릴러도 좋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나오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지겨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 글의 결론은 아래 사진처럼 앉아있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것!



 
시라노는 필요합니까.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열어야 했습니까.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김종욱 찾기>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일종의 ‘연애 대행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가을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19세기 프랑스 희곡에 느슨하게 기반을 두었습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갈 자신감이 없는 시라노는 잘생긴 부하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발산합니다. 영화에는 마음에 둔 여자에게 다가갈 용기와 방법이 없는 남자에게 연애기술을 전수해주는 대행소가 등장합니다. 소형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프로페셔널들의 조언에 따라 의뢰인은 여자를 사로잡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합니다.

<김종욱 찾기>의 주인공 한기준은 많은 이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 속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냅니다. 의뢰인들은 첫사랑의 행방을 알지 못해 사무소를 찾지만, 아마 안다 해도 직접 다가가기가 어려워 대행소를 거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잇달아 나온 이런 영화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경을 징후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황당하다고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유명 결혼정보업체의 이벤트 현장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말쑥한 차림의 선남선녀들이 모여 사회자의 재치있는 진행에 따라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로맨틱한 분위기에 의지해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는 점에서 결혼정보업체야말로 ‘연애 대행업’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 목수정은 최근작 <야성의 사랑학>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작정 여자에게 다가가 차 한 잔 하자고,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국 남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서 책의 문제의식이 시작됩니다. 목수정은 사랑이라는 돌발적 충동을 이성으로 간신히 억누른 채 ‘스펙 쌓기’와 상대에 대한 저울질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시대의 불안과 삶의 무게가 사랑을 방해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를 수백번 반복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강백호가 ‘빨간 원숭이’라 불릴 만큼 야성이 넘치는 남자이기 때문이죠. 현대 한국 사회 대부분의 남자에겐 그런 야성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상처에도 크게 앓을 만큼 면역력이 약해져 있습니다.

‘밀당’(밀고 당기기)이라는 연애 용어도 있던데, 지금으로선 미는 순간 튕겨져 나가는 남자가 대다수입니다. 이 약한 남자들에게 내성이 생기기를, 그들의 낯이 좀 더 두꺼워지기를 기다려봅시다. ‘대행업’을 통해서라도 연애를 하려 한다는 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대행업마저 없어진다면? 연애 불모지에 어떤 생명인들 살아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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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얘기해보니 공유는 괜찮았다. (요즘 만난 배우는 다 괜찮은 것 같다) 대화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정연하게 말했다. <김종욱 찾기>는.....뮤지컬은 보지 않았지만 영화보다 나을 것 같다. 영화의 만듦새보다는 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현재로선 언론 반응보다는 관객 반응이 좋다고 한다. 임수정과의 케미스트리도 좋았다.                                                                                                         





공유(31)는 ‘남자’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복근과 184㎝의 훤칠한 키는 금세 눈에 띈다. 로맨스 연기를 할 때는 여전히 “오글거린다”는 배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할 생각이 없다. 동년배 남자 배우들이 하나같이 액션이나 스릴러로 달려가 치고 받고 싸울 때, 공유는 여성 취향의 로맨틱 코미디를 택했다. 멀리 내다보고 조급해하지 않기. 그는 영리한 배우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직후 입대한 뒤, 전역해 처음 택한 작품이 영화 <김종욱 찾기>다.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삼았으며, 원작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유정이 영화 감독에도 도전했다.

공유는 이 영화에서 얼떨결에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낸 어리보기한 남자 한기준 역을 맡았다. 그는 사무소의 첫 손님 서지우(임수정)의 아련한 첫사랑인 ‘김종욱’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빈다. 그 사이 한기준과 서지우 사이에는 감정의 전류가 흐른다.

“장르를 정해놓은 뒤 선택하고 싶지는 않아요. 1~2년 배우하고 말 것도 아닌데…. 어릴 때는 마초적인 캐릭터를 하고 싶은 적도 있어요. 이젠 그런 역이 진부하게 느껴져요. 중요한 건 영화지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런 연기를 하면 ‘끝’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연기에 끝이 어딨어요. 로맨틱 코미디같이 평이해 보이는 역할이 더 어려워요.”

한기준과 서지우는 서지우의 첫 사랑인 김종욱들을 찾아나서는데, 이런 사람도 만난다.

공유는 이 영화에서 1인 2역을 한다. 현실의 한기준과 서지우의 회상 속 첫사랑 김종욱이다. 2:8 가르마를 탄 한기준이 좀생원에 가깝다면, 인도 여행 중 만난 김종욱은 머리 뒤에 항상 후광이 비치는 연인이다. 공유는 “제 팬이시라면 이 영화에서 제 두 가지 모습을 다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수정과 공유는 오랜 친구다. 항간에선 열애설까지 나돈 적이 있다. 장 감독은 “두 사람이 친구다 보니 로맨틱한 장면을 찍을 때 설렘이 생기지 않아 좀 고생을 했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제가 낯간지러운 장면을 찍는데 힘들어하고 머뭇거려요. 마치 어린애들이 멋쩍으면 장난치는 것처럼요. 제가 리드를 잘했어야 하는데….”

두 배우는 드라마 <학교4>(2001)로 함께 데뷔한 뒤 이번에 처음 다시 만났다. 두 배우는 그 사이 충무로와 여의도의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공유는 “(아무리 친해도) 공사는 다르다. 촬영 초반에는 서로 관찰하기도 하고, 선의의 경쟁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가 설렁거리다가 ‘아싸 걸렸다’ 하는 식인데, 임수정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배우였다. 너무 치열해서 무서운 부분까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다가 정분 나는건 예상된 일.

공유로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이어 연속해서 여성 연출자와 작업했다. 그는 “여배우는 남자 감독의 뮤즈 아닌가. 감독은 배우를 사랑해야 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한 감독의 시선이 느껴졌다는 얘기다. 아울러 여성 연출자 특유의 섬세함도 설명했다.

별다른 의식 없이 찍었는데, 관객 대상 시사회에서 여성 관객의 탄성이 나온 장면이 있었다. 남성은 무심하지만 여성은 각별히 반응하는 코드를 연출자가 정확히 짚어냈다는 설명이었다.

영화만 치면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 이은 두번째 주연작이다. 그는 첫 주연작에 대해서는 “좀 아쉽다. 개인의 주관보다는 함께 일하는 분들의 조언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 피와 살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김종욱 찾기>는 그의 진정한 첫 주연작이 되는 셈이다.

그는 “예전에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상업예술하는 입장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믿고 도와주신 분들에게 손해는 안 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년간 무산소 운동에 목을 맸다. 덕분에 군살 하나 없는 몸을 갖게 됐지만, 운동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2~3일만 운동을 쉬어도 “근육이 다 빠지는 것 같아 미칠” 정도였다. 얼마전부터 그는 무산소 운동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간간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운동에 대한 생각처럼, 공유는 지금보다 더 유연한 배우가 될 것 같다.

왕년에 기타를 잠깐 친 실력으로 보건데, 임수정은 평소에도 기타를 칠줄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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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흥행하든 안하든, 사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층의 악당>은 좀 잘 됐으면 좋겠다. 비록 인터뷰하고 싶었던 한석규를 만나진 못했지만(몇 건의 인터뷰 후, 바람같이 강원도로 갔다고 한다....), 아무튼 난 이 영화가 무척 재밌었기 떄문이다. 난 한석규야말로 과소평가된 배우라고 생각한다. 손재곤 감독이 빨리 다음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디 앨런은 현대 도시인들의 뒤틀린 심리를 빼어나게 포착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창조하는데 일가견이 있으며, 지적인 대사를 잘 쓰고,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능숙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웃음이라는 커다란 도가니에 넣어 녹여낸다. 그의 영화는 ‘코미디의 이상형’에 근접한다. 손재곤 감독은 두 번째 장편만으로 한국 영화계가 맛보기 힘들었던 코미디의 경지에 올랐다.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배우들에게서 최대치의 능력을 뽑아내고, 귀에 박히는 대사들이 속출하고, 현실을 환기시키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층의 악당>은 한국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남편을 여의고 모녀(김혜수·지우)가 단 둘이 사는 가정집 2층에 조용한 집필 장소를 찾는다는 작가(한석규)가 세를 든다. 말이 청산유수라 계약서도 쓰지 않고 단기 임대 계약을 맺은 이 작가의 정체는 사실 이 집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연주(김혜수),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수시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딸 성아(지우) 때문에 작가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작가는 1층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기 위해 연주에게 자신의 소설 속 여주인공이 되어달라면서 유혹한다.

상황은 명확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1층의 선인과 보물을 노리는 2층의 악당. 그러나 마냥 정을 주기에는 1층 모녀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데서 영화의 힘이 나온다. 연주는 고교 졸업 후 “그 시아버지 개새×” 때문에 바로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자다. 덕분에 30대 중반이지만 중학생 딸이 있다. 남편이 빚만 남기고 죽은 뒤 혼자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다.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하지만, 어디 가서 고민을 늘어놓을 상대도 없다. 의사나 2층 작가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한국 남자들이란 저마다 “나이 처먹어 아저씨 되면 조언하고 충고하는 자격증 같은 걸 국가에서 발급” 받은 듯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닥터 봉> 이후 15년 만에 호흡을 맞춘 한석규와 김혜수의 연기는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배우이며, 한국영화가 한동안 이들의 재능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로 알려진 한석규가 입에 착 붙는 욕설을 달고사는 범죄자를 연기하고, ‘건강미인’의 대명사 김혜수가 신경쇠약 주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스크린 세계에서만 가능한 재미다.

별것 아닌 대사가 영화 속의 기묘한 상황 속에 깨알같이 박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음보가 자극받는다. “유럽연합 기준으로…” “이 사랑스러운 비관론자” “학교 다니지마. 돈이나 벌어!” 같은 대사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다시 생각해도 웃을 수 있다. 웃음이라는 당의정으로 쌓여있지만, 대개의 좋은 코미디가 그렇듯 <이층의 악당>도 사회 현실과 맞닿아있다. 모기업의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해 만든 갤러리에서 미술품 구매비를 빼돌리는 재벌 2세, 인터넷 동영상을 통한 사생활 침해, 전염되는 현대인의 우울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영화는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하다. 사랑과 사기 사이, 대박과 쪽박 사이, 성공과 실패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간다. 누군가는 “인생이 거지같다”며 울지만, 누군가는 큰 돈을 만진다. 영화의 결말도 해피 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 헷갈린다. 어느 쪽이든 결론을 지어주면 더 많은 관객이 좋아하겠지만, 삶이란 원래 이도저도 아니다. 24일 개봉했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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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어느 영화사가 회집에서 연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 많은 회를 두고 풀만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는 잘 마셨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이렇다. 된장찌개인지 무엇인지를 끓여먹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바지락을 한가득 사왔다. 그것을 마루에 두고 잠시 잊었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살아있는 바지락이 껍질을 열고닫으며 바스락대고 있었다. 차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던 바지락이 살겠다고 꼬물락거리는 모양이라니. 그는 이후 바지락은 물론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이고, 절을 찾아가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올린다. 그의 전작은 <날아라 펭귄>, 막 개봉하는 영화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다음 작품은 옴니버스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다. 물론 앞의 2편에서 동물은 직접적 소재라기보다는 은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다.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를 옮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지난 사랑의 잔여물을 되새기는 멜로드라마이자, 인간본성을 찾아나서는 불교 구도극이고,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누비는 로드무비다. 소외된 이웃들의 비루한 삶을 정직하게 응시해왔던 임순례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는 김도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임 감독이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이제 기존의 것과 조금은 다른 걸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4일 5번째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개봉에 맞춰 임 감독을 최근 만났다. 


-김영필, 공효진이 ‘인간 주인공’이지만, ‘먹보’란 이름의 소가 눈에 띈다. 

“시나리오에선 암소라고 설정돼 있었는데, 황소 먹보를 보는 순간 비주얼에 흡입력을 느꼈다. 암소보다 출연료도 비쌌다. 트럭에 타고 내리는 정도는 먹보 혼자 연기했다. 다만 앉히는 게 힘들었다. 소가 잘 때 빼고는 잘 앉지 않는다. 1~2시간 산보를 시켜 피곤하게 한 뒤 앉히는 연기를 시키곤 했다. 촬영 중에 구제역이 발생해 도시 간 이동을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에 관심이 많았나.

“평소 소에 대해선 눈이 착하다는 생각 정도였다. 두달 촬영하면서 저와 스태프 모두 소에 대해 많은 걸 얻고 느꼈다. ‘소가 이 정도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었구나’ 하는 것. ‘쫑파티’ 할 때 스태프들이 그랬다. 소를 고기로만 생각했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조감독 2명이 소시장 헌팅 다니다가 팔려가면서 눈물 흘리는 소를 봤다더라. 그 뒤로 쇠고기를 못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영화 하면 (가난해서) 어차피 못먹을 텐데 그렇게 깨달음 얻고 안 먹는 게 낫겠다’고 했다.(웃음)”

임 감독은 동물에 관심이 많다. 현재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유기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한 개 워리의 앞날이 불투명하자 직접 사서 안전한 집으로 분양했다. 차기작은 옴니버스 영화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중 길고양이를 다룬 <고양이 키스>다. 그는 “소에게 연기를 시켰다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존중하고 잘 대해줬다. 힘들거나 피로해하면 쉬게 하고 배려했다”고 전했다. 개든 소든 좋은 마음을 주면 좋은 마음과 연기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공효진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쿨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여자 캐릭터가 필요했다. 시나리오상에는 30대 후반 여자였는데, 공효진은 나이만 빼놓고는 잘 어울렸다. 게다가 공효진에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떨 때는 발랄한 20대 같고, 어떤 때는 30대 중반 같다.”



임순례 감독


-김영필은 스크린에선 얼굴이 낯설다. 스스로도 ‘박해일 형’이라고 소개할 만큼 그와 느낌이 유사하다. 임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박해일 느낌을 좋아하는 건가.


“박해일은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을 보고 캐스팅했다. 김영필도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다. 어떻게 보면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셈이다.(웃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후반부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임 감독의 영화에선 낯선 분위기다.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 그렇지 않은 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전하는 이 가르침이 영화 주제와 연결된다. 일부러 색다른 걸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판타지를 구사했지만, 다른 감독과는 다르게 현실과 차별되지 않게 했다.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관객들이 헷갈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만 보면 애잔한 멜로영화 같다. 영화의 의도와 마케팅이 어긋나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스님이나 (극중 등장하는 절인) 맙소사, 연꽃을 마케팅할 수도 없고…. 멜로영화 보러와서 구도영화를 본다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덜 감각적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이게 뭐야’ 하기보다는 ‘예상과 다른 걸 봤지만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관객들이 임순례에게 무슨 멜로를 기대하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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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애가 한국에서 가장 멋있게 악한 여자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자는 손예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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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는 좀 더 못되게 굴어야 합니다. ‘추억 속 첫사랑의 그녀’ 노릇일랑은 잊어버려 주세요.
 



지난주 개봉한 <심야의 FM>이 주말 동안 전국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애로서는 2004년 <가족>으로 데뷔한 이래 처음 차지해본 박스오피스 1위라고 합니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외모 때문에 잠시 잊곤 하지만 수애는 동년배 여배우와 비교해서도 연기력이 빼어난 편입니다. 그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역할을 곧잘 해냈습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이드 노릇을 하는 탈북자, <님은 먼 곳에>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베트남전으로 향한 남편을 찾아나서는 아내,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는 외세·시아버지·남편 사이에서 고난의 삶을 살아내는 명성황후 역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배우로선 탐나지만 여자로선 하기 힘든 역이었습니다. 겁 많은 듯 커다란 눈, 부러질 듯 가냘픈 몸매 덕분인지, 힘든 역을 하면 할수록 수애의 강단은 더욱 돋보였습니다.
 






여성스러운 외모를 중화시킨 건 그의 목소리입니다. 수애의 외모에 들떴던 마음은 낮고 중성적인 목소리에 가라앉습니다.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직업은 새벽 2시에 시작하는 영화음악 방송 DJ입니다. 여느 작품에서보다 훨씬 정갈하게 가다듬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실제 DJ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듯 했습니다 .



그러나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목소리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그의 이미지였습니다. 전작들에서 수애는 억척스러웠을지언정 못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야의 FM>에서 수애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이기적이고 모질게 보입니다. 
애청자가 보내준 선물을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처박고,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여성을 싸늘하게 외면합니다. “난 착한 여자가 아니야. 당신의 아련한 첫사랑도 아니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동작이었다고 할까요. 


세상의 때가 묻었을지언정 마음속 한구석엔 변치 않는 선의를 간직한 수애의 모습은 벽에 부딪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심야의 FM>에서 수애는 그 벽을 넘어섰습니다. 


비슷한 궤적을 따라 ‘연기파’의 꼬리표를 얻은 배우로 우리는 이병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병헌이 진짜 배우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맑게 웃을 때가 아니라 <달콤한 인생>에서 혼란에 빠진 조폭 역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최근 메릴 스트립의 역할 중 오래 회자되는 것은 <맘마미아>의 건강미 넘치는 여성이 아니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 같은 편집장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착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아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물론 영화에서조차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제작자는 지루한 천국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지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입니다. 착한 척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짧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배우가 악역을 소화한다는 건 입을 만한 코트를 한 벌 더 갖추는 일입니다. 가을 햇살이 빛나는 날엔 아이보리 코트를, 우중충한 날엔 회색 코트를 입으면 됩니다. 수애는 <심야의 FM>으로 회색 코트를 장만했습니다. 전 수애가 좀 더 낮은 목소리로 좀 더 악독한 대사를 내뱉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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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현은 말을 잘 했다. 표현이 유려하다거나 말이 많다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을 넘어 그 속의 진심이 넘어다 보이는 경우가 있다. <참을 수 없는>에서도 추자현은 영리한 연기를 했다. 게다가 여배우로서의 중요한 능력, 즉 매력을 발산한다. 

난 원래 그가 이전 작품(사생결단, 미인도, 실종)에서 보여준 것 같은 연기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한국에서 '열연'에 대한 칭찬은 과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난 그가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서 열연했다고 믿게 됐다. 

추자현이 앞으로 좋은 작품을 선택해 오랫동안 스크린에 섰으면 한다.  





추자현은 자신의 5번째 영화 <참을 수 없는>에서 “깔깔대고 웃는 연기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영화 속 추자현은 마약중독자거나 지독한 짝사랑을 하거나 연쇄살인마와 대결해야 했다. 

<참을 수 없는>은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를 연출한 권칠인 감독의 신작이다. 전편과 유사하게 30대 언저리 여성의 삶, 사랑, 고민을 담는다.
이 영화에서 추자현은 하루 아침에 직장과 집을 잃고 신혼의 친구집에 얹혀살기 시작한 지흔 역을 맡았다. 겉으론 행복하지만 속으론 답답한 삶을 사는 친구 경린(한수연)이 ‘나쁜 남자’ 동주(김흥수)와 불륜에 빠진 사이, 지흔은 완벽하지만 재수없어 보이는 친구 남편 명원(정찬)과 교감을 나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명원·경린 부부의 집에 들어온 지흔은 천덕꾸러기다. 술이 덜 깬 모습으로 주전자째로 물을 들이켠다. 소설을 쓰겠다고 자판을 두들기지만 제대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자칫 혀를 끌끌 차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지만, 추자현의 능청스러운 연기 덕에 지흔은 활기를 얻었다. 관객은 이 주책없고 한심하고 무능력한 인물을 심지어 사랑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추자현으로서는 첫 주연작이다. 


“제가 못하겠으면 주인공을 줘도 안해요. 그런데 이제 추자현이 인생을 조금 알 것도 같고, 제가 지흔이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이를 숫자로 하나 더 먹어서가 아니라, 인생에 찌릿한 무엇이 있다는 걸 알겠어요.”

영화 속에서 추자현은 3분의 1 정도 술을 마시고, 3분의 1 정도 술에 취해 있다. 나머지 시간엔 담배를 피운다.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 여배우로서의 매력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예뻐 보여서 얻는 게 뭐냐”고 되물었다. 

“인기가 아니라 연기를 얻고 싶어요. 여배우로서 예쁜 모습을 보여서 얻는 행복도 좋지만 캐릭터를 분석해서 표현하고 영화에 빠지는 것이 더 행복해요.”

추자현은 이 영화에서 술취해 넋두리하는 연기를 실감나게 한다. 권 감독은 추자현이 실제 술을 마시면 눈동자가 불그스름해지는 걸 알아채고는 연기를 하면서 눈동자 색깔까지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추자현은 그렇게까지 하진 못했지만 눈물이 나올 듯 말 듯 그렁그렁하는 모습은 표현했다며 흡족해했다.

<참을 수 없는>도 그랬지만 이전 작품에서도 추자현은 대역 없는 베드신을 선보였다. 그는 “베드신을 찍는데는 확신이 필요하다. 확신이 없는데 대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찍는 건 매우 위험하다. 확신만 있다면 베드신 연기는 다른 연기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사생결단>으로 영화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 추자현은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드라마 <카이스트>로 인기를 얻고, <명랑소녀 성공기>로 CF를 찍었지만, 당시의 자신을 배우로 볼 수 없다고까지 했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누군지조차 잃어버린 시절이었다.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긴 한데, 20대 초반의 여배우에게 진지하고 과감한 역을 맡길 연출자는 없었다.

“데뷔했다고 다 연기자는 아니잖아요. 영화를 하면서부터 저는 비로소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배우가 된지는 얼마 안되죠. 전엔 감독 눈치를 보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 이제 같이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일을 시작하면 거기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현장에선 대본 보면서 분석하기에 바빠 거울 들여다볼 시간도 없다고 밝혔다. 성격이 소탈한 것 같지만,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힘을 쏟아부어 평소에는 집에 있는 성격이다.

추자현은 언젠가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답이 안 나오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역할은 몸과 마음이 다 힘들지 않으냐’는 우문에는 “힘들다. 그런데 행복하다”는 현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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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은 확신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오만하다거나 경박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방독피>는 중간까지는 미심쩍다. 솔직히 미리 잡아둔 인터뷰를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취소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힘이 가득하다. 종반부에는 서울 거리에 엄청난 묵시록적 풍경이 나온다. 김선이 인용한 오시마 나기사의 말은 매우 멋지다.



전위라고 다 전위가 아니다. 미학의 전위에서 정치적 보수성을 드러내거나 급진적인 정치사상을 고루한 형식에 담아내는 예술가가 부지기수다. 

1978년생 일란성 쌍둥이 형제 김곡·김선은 현재 한국 영화의 최전위에 선 감독들이다. 미학과 정치 양 측면에서 모두 최전위라는 점에서 이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반변증법>(2001), <자본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2003) 등을 내놓으며 주목받았고, 김곡은 <고갈>(2008)을 따로 공개하기도 했다. 

<방독피(Anti Gas Skin)>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됐으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줄거리는 이렇다. 서울시장을 뽑는 투표일, 파란색을 상징으로 쓰는 여당 국회의원 주상근은 아내와 함께 투표소로 향한다. 마침 서울에는 방독면을 쓴 연쇄살인마가 출몰하고 있다. 주상근은 “뽑히면 죽는다”는 협박편지를 받고 불안해한다. 얼굴에 털이 난 늑대소녀는 경찰 간부인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고 믿는다. 
늑대소녀는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하길 원하는 이들을 몰고 다닌다. 주차질서요원 보식은 셔츠 안에 남몰래 슈퍼맨 의상을 입은 뒤 살인범 잡는 날을 꿈꾼다. 한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백인 미군병사 패트릭은 여자친구가 살해당하자 살인범의 자취를 쫓는다. 




정치 비판, 무의식을 파고드는 성폭력, 성장 위주의 한국 기독교, 소시민의 과대망상,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 등 온갖 소재가 한 영화에 녹아 있다. 혼란스럽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일찍이 한국 영화가 목격한 적이 없는 묵시록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김선은 관객과의 대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우병 쇠고기 파동 직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들썩들썩하던 한국의 정치사회, 시민사회에 대해 역사적으로 일갈하고 기록을 남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영감을 얻는 곳은) 세상, 세상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야말로 엄청난 아이디어를 줬어요. 전의를 불태우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할까요. 대단한 세상이에요. 쓰는 데 1주일밖에 안걸렸어요.”

종반부의 편집은 긴박하고 강박적이다. 한 관객은 “너무 강박적이라 지루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선은 “극진한 사랑을 기대하진 않았다. 세상을 잘 재현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지루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래도 쉽게 만들 수 없느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신이 그렇게 시킨다. <방독피>는 이 시대에 한 번은 꼭 나와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고갈> <방독피> 등은 이들의 초기작에 비하면 정연한 내러티브를 갖춘 편이다. 김선은 “내러티브가 영화의 이미지 구축에 해가 되는 영화가 있고 도움을 주는 영화가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영화를 다 한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조만간 대기업이 투자한 상업영화를 내놓을 것이란 점이다. 그룹 티아라의 함은정, 황우슬혜 등이 출연하는 공포영화 <화이트>다. 지금까지 만든 모든 영화의 제작비를 합쳐도 <화이트>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 





촬영 막바지 단계라는 <화이트> 때문에 김곡은 부산에 내려오지 못했다. 김선도 <방독피> 상영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고 귀경해야 했다. “상업영화라서 다른 건 못느끼겠다. 어떤 영화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영화 작업 자체는 똑같다”고 김선은 말했다. 

김선은 근사한 말들을 많이 했다. 때로 독특하게 높은 톤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극중 주상근 의원이 겪는 불안한 하루를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빗대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집에 가고 싶은 어린애” 같다고 해석했다. 영화 속에는 “세상엔 깨끗한 사람과 지지한(지저분한) 사람 사이의 휴전선이 있다. 투표일은 그 경계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날”이라는 대사가 있다. 

“일본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졸X 맞는 말이죠. 독립영화계는 좀 더 공격적이고 불법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윗분’들이 보면서 ‘이거 불법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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