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소문, 뒷담화를 퍼트리는 이유,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존 휘트필드 지음·김수안 옮김/생각연구소/392쪽/1만6000원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인근의 식당을 찾았다. 두 군데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한 곳은 손님이 가득찼고, 한 곳은 파리만 날렸다. 두 곳 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로 들어갈까. 보통은 사람이 많은 식당을 찾게 마련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고기조차 다른 물고기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덩달아 좋아한다. 생물학자 리 듀거킨은 트리니다드 섬에 사는 거피(Guppy) 물고기로 실험을 했다. 네 개의 투명 상자 안에 관찰자 암컷, 시범자 암컷, 색이 화려한 수컷, 초라한 수컷을 한 마리씩 넣었다. 그리고 초라해 매력이 떨어지는 수컷과 가까운 곳에 시범자 암컷의 상자를 두었다. 때문에 관찰자 암컷은 시범자 암컷이 초.. 더보기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함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휴머니스트/각 권 380쪽·392쪽/각 권 2만3000원 역사는 사실의 나열을 넘어 관점의 개입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 각기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함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자들의 국적이 공존, 평화가 아니라 침략, 피침략으로 엮여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 2차대전이 끝난 지도 70년이 다 돼가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여전히 근현대사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잊을만하면 '망언'이 나오고, '피해보상'이나 '사과' 문제도 여태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세 나라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기술해놓지 않으면, 상처가 아물기능커녕 .. 더보기
그래요. 멸망입니다. <멜랑콜리아> 이렇게 보니 호그와트를 닮은 클레어의 집 (스포 조금. 그런데 이런 영화에 스포가 중요한가) 안보고 못보다 보니 영화와 조금씩 멀어지려던 차, 지난 금요일 퇴근길 힘을 내 를 보았다. 영화와 너무 멀어져서는 안되겠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서도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몇 줄 적는게 이 괜찮은 영화에 대한 도리. 영화는 1부 '저스틴'과 2부 '클레어'로 구성된다. 1부에서 동생 저스틴은 멋진 고성에서 격식있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대형 리무진이 산길을 잘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신랑, 신부가 2시간 정도 예식에 늦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저스틴이 아마 고질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울증에 다시 빠지면서 비롯된다. 번듯한데다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저스틴은 망설인다... 더보기
필연과 자유 사이의 긴장이 미를 만든다. <미의 기원> 미의 기원요제프 H. 라이히홀트 지음·박종대 옮김/플래닛/376쪽/1만8000원 진화론은 유력하지만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찰스 다윈의 방대하고 독창적인 이론 체계 사이에는 몇 가지 구멍이 나있다. 이후 많은 후학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했고,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윈의 골치를 아프게 한 동물이 몇 종 있다. 특히 수컷 공작이 화려한 꽁지깃을 펼칠 때마다 다윈은 당혹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꽁지깃은 길고 많은데다가, 동물의 눈동자를 닮은 강렬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수개월간 지속되는 발정기동안 수컷은 꽁지깃을 부채꼴로 펼쳐보이며 암컷에게 구애한다. 그런데 발정기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수컷 공작의 길게 끌리는 꽁지깃은 이제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꽁지깃은 비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지상에서 .. 더보기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9명씩 낳고, 음식 대신 티비를 사는 이유,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이순희 옮김/생각연구소/396쪽/1만7000원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는 거지들을 모아놓는 구빈원과 채무자를 가두는 감옥이 나온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엄격한 법적·도덕적 원칙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고 사회도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며 “가난한.. 더보기
살림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아빠의 이동> 아빠의 이동제러미 스미스 지음·이광일 옮김/들녘/332쪽/1만3000원 전통적인 남성 영웅의 특징은 무엇일까. 큰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영웅이라 부르기 어렵다. 조건없는 자기희생이야말로 모든 남성 영웅이 갖춰야할 미덕이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하프 조율사 켄트 호프먼을 만나보자. 그는 이른바 ‘주부 아빠’(stay-at-home dad)다. 이는 아내가 직장에 나간 사이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담하는 남성을 말한다. 호프먼이 처음부터 살림을 자청한 것은 아니었다. 호프먼은 잘나가는 금융자산관리사인 동갑내기 여성 미순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이가 좋았지만 “더 나아가려면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프먼은 양육에 자신이 없었고, 미순 역.. 더보기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아기보기 아침 시간에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낸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전날밤부터 부담이 되고 아침이면 긴장을 해 초조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7시가 조금 지나면 아이가 주섬주섬 일어나 침대 옆에 서서 아빠를 깨우거나 내가 먼저 일어나 조용히 방을 나간다. 내가 나가도 아이는 금세 알고 일어나니 굳이 조용히 나갈 필요가 없긴 하다. 아이는 사랑하는 인형 친구 '크크'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가장 먼저 관심을 끄는 책이나 장난감을 집어든다. 책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장난감 이름을 발음하며 자신의 어휘력을 뽐낸다. 아이와 잠시 놀아준 나는 아침을 챙기러 간다. 이때가 조금 고비다. 아이가 혼자 놀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같이 놀아달라고 올 때가 있다. 커피를 내리거나 수프를 끓일 때 아이가 다.. 더보기
우리들의 최후방어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336쪽/1만6000원 몇 달 전의 경험이다. 퇴근을 위해 2호선 지하철을 잡아탔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지하철 한 칸의 내부가 어느 스포츠 의류의 광고로 도배돼 있었다. 벽면 광고판은 물론, 지하철 천정과 바닥까지 모두 다 같은 회사의 광고였다. 지하철이 아니라 의류 회사의 홍보 차량에 오른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프로 농구가 중계되고 있었다. 경기 막바지에 접어들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상박이 카메라에 잡혔다. 민소매 운동복 아래로 드러난 어깨 부분에 해당 팀을 후원하는 기업의 로고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물론 지울 수 있는 문신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지하철에는 언제나 광고가 있었다. 손잡이를 .. 더보기
신이 많은 미국, 신이 없는 덴마크. <신 없는 사회> 신 없는 사회 필 주커먼 지음·김승욱 옮김/마음산책/368쪽/1만6000원 사회학자 필 주커먼이 고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의 동네 은행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한 손님이 은행 간부 직원의 책상 앞에서 갚기 힘든 빚에 대해 상담하고 있었다. 직원은 손님에게 조언했다. “채무 자료를 모두 모으세요. 신용카드 청구서, 대출금 청구서, 대출 서류, 연체 통지서…. 그것들을 봉투에 넣은 뒤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세요.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시고, 빚을 없애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세요.” 직원은 매달 50달러씩 헌금을 내면 1년도 안돼 빚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게 해서 효과를 본 사람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은행 안의 누구도 이 ‘조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보기
인간은 무엇이고 기계는 무엇인가, <페가서스 10000마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 컨테이너 터미널인 홍콩 콰이충 터미널에 들어서고 있는 페가서스. /워크룸 프레스 제공 페가서스 10000마일이영준 지음/워크룸 프레스/320쪽/2만원 엘리베이터로 고층건물을 오르내리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스마트폰으로 친구와 통화하고, 거실의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본다. 현대인은 이렇게 기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기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드물다. 인간은 무엇이고 기계는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를 둘러싼 자연이란 또 무엇인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51)는 ‘기계비평가’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기계비평가라고 부르는 이는 이영준씨가 유일하다. 그는 기계의 구조를 연구하고 거기에 얽힌 의미를 밝히려 한다. 이영준씨가 이번에 연구한 기계는 ‘CMA CGM .. 더보기
노른자에 대하여-부활절 스페셜 오전에 날씨가 좋기에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가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사이, 얼굴에 웃음을 띤 젊은 여성 몇 명이 다가왔다. 오늘은 부활절. 인근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예쁘게 포장된 달걀을 나눠주러 온 것이다. 아이는 넙죽 받았다. 아이와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짜장밥. 별 생각 없이 식탁 위에 놓아둔 달걀을 아이는 계속 가지고 놀려 했다. 그러고보니 짜장면에도 삶은 달걀 반 쪽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난 달걀을 까서 아이에게 주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노른자를 먹지 않았다. 처음엔 밀쳐내더니, 다음엔 무심코 먹었다가 뱉어냈다. 대신 흰자는 다 먹었다. 이게 놀라운 이유는, 나도 노른자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계란 과자, 스크램블드 에그, 오믈렛 같은 것은 먹는다.. 더보기
죽어서 사는 여자,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레베카 스클루트 지음·김정한·김정부 옮김/문학동네/512쪽/1만8000원 1920년 8월 1일 미국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의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는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다. 헨리에타가 4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열 번 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떴고, 헨리에타는 곧 할아버지네 집에 맡겨졌다. 어린 시절부터 우유 짜기, 닭 모이 주기, 담배잎 따기 등의 노동을 했던 헨리에타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촌과 자연스럽게 몸을 섞은 헨리에타는 열네살 때 첫 아들 로런스를 낳았고, 그 이후로도 2명의 아들, 2명의 딸을 더 낳았다. 1951년 헨리에타는 자궁에 혹이 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근에서 흑인을 치료해준 유일.. 더보기
말 하는 아이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얼마전까진 내가 말을 하면 아이는 그 말에 해당하는 그림 혹은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식이었다. 동물이 있는 그림책을 보면서 "사자 어딨지?" 하고 물으면 아이는 사자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런데 약 열흘 전부터 아이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사자"라고 발음한다. 연령을 고려하면 빠른 편은 아니다. 여자 아이, 그리고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가 말을 빨리 배운다고 한다. 게다가 정확한 발음도 아니다. 아이가 지시하는 대상이 '사자'라는 것을 알고 들어야만 식별할 수 있는 발음이다. 그러나 열흘이라는 시간을 고려하면 대단한 속도다. 그 많은 단어들을 다 알면서도 발음하지 않다가 한꺼번에 내놓는가 싶을 정도다. 사자, 기린, 코끼리, 거북이, 토끼 등 그림책에서 자주 보던 동물.. 더보기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금까지 북섹션 프론트 페이지에 쓰기 위해 10권 가량의 책을 읽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과 함께 가장 좋은 편에 속했다. 배운 것과 느낀 것이 고루 많아, 내 '마음'에도 영향을 줬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328쪽/1만5000원 택시 기사는 민심의 풍향계다. 서민들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면 된다. (원제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을 보면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이다. 그런데 사회운동가인 저자 파커 J 파머는 뉴욕에서 난폭한 택시에 올라타 기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또다른 생각을 이어갔다. 파머가 “이 직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고 묻자 기사는 답했다. “글쎄요, 어떤 손님이 탈지 전혀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 더보기
평생 독신남의 연애 소설, 헨리 제임스와 <데이지 밀러>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다지 재미없었다는 인상만 남았다. 이든, 이든 마찬가지였다. 은 '유령 나오는 이야기'였다는 기억은 나는데, 은 심지어 읽었음에도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임스는 '영문과 학생들이 보면 되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터. 보르헤스가 선별한 제임스의 단편집 를 읽고선 마음이 바뀌었다. 제임스는 절정의 리얼리스트이자 이른 모더니스트로 평가받지만, 보르헤스는 제임스의 이야기 중에서도 환상 소설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을 골라냈다. 더욱 내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제임스가 자신의 소설을 결말 직전까지 리얼한 방식으로 끌고 가다가, 뜬금없이 환상적인 요소를 삽입해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면 독자는 황당해하면서 화를 내거나,.. 더보기
아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동요들 아기를 재우기 위해 어두운 방에서 이런저런 동요를 조용히 부르다 보면, 그 중에서도 가사와 멜로디가 특히 아름다운 곡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또 노래라는 것은 몸에 참으로 깊숙히 각인된다는 점을 느낀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불러본 적이 없는데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바로 입에서 나오는 그 노래들. 태교 시절, 아내의 배에다 대고 불러준 노래는 '반달'이었다. 제목 보다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되는 가사로 더 널리 알려진 곡이다. 1924년에 발표된, 한국 창작 동요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고 방금 포털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사가 좀 생경하다. '쪽배'가 뭔지, '계수나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으며, 돛대니 삿대니 하는 단어들.. 더보기
또 하나의 그라운드 제로. 3.11을 생각한다 <사상으로서의 3.11> 사상으로서의 3·11 쓰루미 슌스케 외 지음·윤여일 옮김/그린비/272쪽/1만5000원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만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정갈한 도시가 지진 해일 속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세계를 불안에 떨게했다. 고도성장, 안전, 혁신적인 기술 등은 이제 의미없는 말이 됐다. 일단은 살기 바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폐허 위에도 사유의 싹은 자란다. 이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1922년생 쓰루미 슌스케부터 1973년생 사사키 아타루까지 18명(혹은 팀)의 일본 지식인들이 급히 글을 썼다. 은 지난해 3, 4월 집필돼 6월 일본에서 '긴급간행'된 책이다. 먼저 재난을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자세부터 갖.. 더보기
(영화를) 낳은 정, 기른 정. <휴고>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두 명이 3개월 사이에 나란히 첫 3D 영화를 내놓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을, 마틴 스콜세지는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를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모두 가족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3D는 애들용'이라는 인식 때문?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본격적인 영화(스필버그 같으면 나 , 스콜세지 같으면 나 )를 찍기 전의 워밍업? 아무튼 을 봤을 때는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를 보고 나니 스필버그 대 스콜세지의 3D영화 대결 1라운드는 스콜세지의 완승. -그런데 를 온전히 '가족영화'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 과 달리 는 스콜세지의 매우 개인적인 프로젝트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필버그는 와 의 유사성을 의식하고 있었으.. 더보기
부끄러운 삼위일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이 영상을 본 뒤 걸프전의 야간 투시 기법 촬영을 떠올렸다는 덕후, 미스터 피터 노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피터 노왁 지음·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432쪽 | 1만7000원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류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의 상대와 실시간 채팅을 한다. 속이 든든해지는 햄버거 세트를 3000원에 사먹을 수 있다. 거실의 로봇 청소기는 스스로 먼지를 찾아 없앤다. 인류는 더 이상 배곯지 않고 편리한 삶을 누리며 온갖 즐길거리에 둘러싸여 있다. 다 과학 기술 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추동했을까. 삶의 질을 높이기로 다짐한 기술자의 헌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과학자의 노력? 굶주리는 이웃에 대한 농부의 연민? 과학 기술에 대한 글.. 더보기
당신의 한 표가 사람을 죽인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지음·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76쪽 | 1만3000원 1966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대, 뉴욕대에서 정신의학 교수로 재직해온 제임스 길리건은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그 예방책을 연구해왔다. 20세기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살피던 그는 이 두 가지 수치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길리건은 자살과 타살을 아울러 ‘폭력치사’라고 부르는데, 이 수치는 조사기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갑작스럽고 큰 규모로 오르내렸다. 무엇이 폭력치사 수치를 오르내리게 했을까. 길리건이 얻은 결론은 상당히 놀랍고 꽤 선동적·선정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보수가 집권하면 사람이 죽는다. 는 2011년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책의 원제도 번역 제.. 더보기
사회주의 슈퍼히어로 <강철군화> 잭 런던이 1908년에 발표한 를 두고 '소설 자본론'이라는 평가도 있는 모양인데, 저승의 마르크스가 통곡할 소리다. 물론 이 소설이 그리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뒤이은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실현은 마르크스가 꿈꾼 역사의 발전이기는 했을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이 그리 단순하게 요약될리 없지 않은가.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가 에이비스 에버하드가 죽은 후 700년 뒤, 그녀의 원고가 발견돼 공개한다는 액자식 설정을 갖고 있다. 앤서니 메러디스가 인류형제애 시대 419년에 쓴 서문이 액자의 틀이다. 에이비스가 남편 어니스트에 대해 남긴 기록이 소설의 골자다. 메러디스는 어니스트를 두고 "수많은 영웅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다소 깎아내렸는데, 에이비스는 당연히도 남편을 유일한 영웅처럼 소개한다.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더보기
살아남아야 할 괴물. <모비 딕> 본문만 684쪽인 장편을 읽었으니 무슨 말이든 한 마디 남겨야겠는데, 선뜻 모르겠다. 초반 100쪽은 '이렇게 재밌는 얘기가 있나' 싶어 읽었는데, 막상 피쿼드 호가 출항을 시작했는데 고래 한 마리 나타나지 않고, 또 그 사이를 틈타 이슈메일은 고래의 생태니 포경업의 유래니 전설 속의 바다 괴물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밑도 끝도 없이 하니, 이게 고래 백과 사전인가 장편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서 차라리 도판이 들어있는 4만8000원짜리 책을 샀으면 고래에 대해선 박사가 됐을텐데 돈 아낀다고 2만원짜리 그림 없는 책 샀다가 읽기 힘들기만 하다고 후회하다가, 그래서 중간에 교보문고에 가서 고래 그림 구경이라도 하려고했는데 광화문점에는 품절이라고 없어서 헛수고하고 오기도 하고. 텍스트와 큰 관련 없.. 더보기
평등은 좌파의 표어가 아니라 시대정신이다 <평등이 답이다> 책세상에서 낸 개념사 시리즈 도 조만간 읽어야겠음. ▲ 평등이 답이다…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전재웅 옮김 | 이후 | 448쪽 | 2만1000원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들이닥쳤을 때, 미국 뉴올리언스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망자가 최소한 1836명, 실종자는 700명이었다. 인명사고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뉴올리언스에서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룩했던 문명이 사라졌다. 카트리나 이후 수주 동안 약탈, 살인, 방화, 강간, 기아가 이어졌다. 투입된 군대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구호품을 전달하는 대신, 약탈자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것이 21세기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미증유의 자연재해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2008년 중국의 대지진, 20.. 더보기
빨치산이 된 철학자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 1949년 12월4일자 동아일보에는 “약 2주일 전 태백산 전투에서 적의 괴수 박치우를 사살하였다”는 육군총참모장의 발언이 보도됐다. 이것이 해방공간에 월북했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무장 투쟁을 벌인 한 빨치산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빨치산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다. 박치우(사진)는 이후 한국 철학계의 거두로 자리 잡은 박종홍(1903~1976)과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제5회 동기였으며,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몰래 복사해 돌려 읽던 마르크스주의 철학서 의 저자였다.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철학자 박치우의 삶과 사상을 본격적으로 살핀 책이 처음으로 나왔다. 위상복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도서출판 길)이다. 박치우는 1909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개신교 목사 박창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 더보기
렘브란트 구하기 <모뉴먼츠 맨> ▲ 모뉴먼츠 맨 로버트 M 에드셀·브렛 위터 지음·박중서 옮김 | 뜨인돌 | 624쪽 | 3만3000원 사진 오른쪽의 남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제7군 소속이었던 해리 에틀링어 이병이다. 그는 독일 남서부의 도시 칼스루에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 해리가 유대교 전통의 성년식인 미츠바를 치른 직후인 1938년 9월, 에틀링어 가족은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해 11월 나치는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십자군 운동’을 전개했다. 7000여개의 유대인 상점, 200여곳의 유대인 회당이 잿더미가 됐다. 해리가 미츠바를 치른 회당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사람들은 수용소로 강제이주됐다. 해리의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칼스루에 박물관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이 걸작.. 더보기
값싼 전쟁, 비싼 평화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전쟁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공진성 옮김 | 책세상 | 332쪽 | 2만원 전쟁은 어디서 누가 왜 벌이는가. 그 유명한 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기틀이 잡힌 뒤인 18~19세기 군인이었던 그에게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속”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가 벌이는 것이고, 전쟁의 목표는 분명해야 하며, 전쟁이 언제 시작하고 끝날지는 확실하다. 전투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적의 용기를 꺾어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의 하나다. 최고지휘관도 인간이기에 학살은 피하려 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간인을 해치는 것은 금기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정치학자 헤어프리.. 더보기
아이의 특별한 하루 오늘은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아기가 본격적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세상에 발을 디뎠다. 아내는 2년 반의 휴직을 마치고 3월부터 복직을 한다. 오늘은 복직을 위한 1주일간의 연수 교육 중 첫 날이었다. 교육을 위해 아내는 7시 30분쯤 집을 나서야 했다. 내가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엔 금요일까지지만, 3월 이후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건 온전히 내몫이 된다. 아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적응을 위해서였다. 1년 반 동안 하루 종일 아이를 봐온 아내에겐 한 숨을 돌릴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는 여전히 집에 머물렀던지라, 아이는 9시30분쯤 어린이집에 가 4시쯤 돌아왔다. 3월부터는 다르다. 아이는 9시도 안돼 어린이집에 가서 5~6시쯤 .. 더보기
애플, 몰스킨, 나꼼수의 인기. <니치> 지금 팔리는 몰스킨은 사실 1997년 처음 나온 브랜드라는 놀라운 사실. 그들은 헤밍웨이, 마티스, 피카소가 '몰스킨'을 썼다고 홍보하지만, 이때의 몰스킨은 '기름먹인 가죽 재질의 양장본 수첩'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에 가깝다는 사실. 결국 지금의 몰스킨사는 '아방가르드의 추억'을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뿐. ▲ 니치… 제임스 하킨 지음·고동홍 옮김 | 더숲 | 336쪽 | 1만6000원 1969년 첫 매장을 연 미국의 의류업체 갭(Gap)은 오랜 시간 성공가도를 달렸다.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와 티셔츠는 반항적인 10대와 그들의 부모, 조부모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브랜드 이름은 ‘세대 차이’(generation gap)에서 따왔지만, 갭의 옷은 세대를 포괄해 사랑받았다. 갭은 .. 더보기
필름, LP, 아날로그의 끝자락 로모 카메라로 찍은 정동길/ by 잘 아는 분 필름 회사 이스트만 코닥이 파산을 신청했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만든 회사가 코닥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영'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경제경영서에 나온다. 나는 지금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무려 18년전인 1994년 무렵.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LP는 멸종되고 있었다. 가요 음반이 100만장, 200만장씩 팔리는 시절이었지만, 대세는 CD였다. 갓 20대에 접어든 내가 그리 이르게 향수를 느낄 줄이야. LP 구경은 내 고교시절을 즐겁게해준 몇 안되는 놀이였다. 어쩌다 시간이 있는 주말이면 나는 다운타운의 대형 레코드 가게로 향했다. 팝, 록, 프로그레시브,.. 더보기
믿어서 나쁠 것 없는 신. <신의 뇌>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고 잘 읽힌다. 카렌 암스트롱의 책이 대표적이며, 내 입장과도 비슷했다. 신의 뇌 라이오넬 타이거·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 김상우 옮김 칼 세이건은 “믿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설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간절한 필요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열망하지만 결국은 성취불가능한 윤리적 질서나 생활 방식의 근거로서 신을 찾는다”고 이죽댔다. 카를 마르크스는 더욱 냉소적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지만, 종교에 대한 이 세 사람의 태도는 유사성을 가진다. 종교 혹은 신은 인간의 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