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선'에 해당되는 글 3건

  1. 버니 샌더스의 수수께끼, 샌더스 관련 2제
  2.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평전과 자서전
  3. 보수의 뇌구조, <똑똑한 바보들>




샌더스는 할 말 다 하고도 선거에서 이긴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버니 샌더스 지음·홍지수 옮김/원더박스/416쪽/1만8000원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

버니 샌더스 지음·이영 옮김/북로그컴퍼니/328쪽/1만5000원


“국민들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도 국민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법안을 거부하고 이 나라의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 가족,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보다 나은 법안을 만들어낼 수 잇다고 믿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저는 이제 물러나겠습니다.”


2010년 12월 10일 오후 7시, 백발의 정치인이 미국 상원회의장 발언대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당시 69세였던 그는 식사를 하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8시간 37분의 연설을 이어갔다. 회의장에는 보좌관과 직원들, 중계진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회의장 바깥에는 난리가 났다. 정치인의 사무실에는 격려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했다. 연설 동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했고, 각 언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이 정치인은 이후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고, 지금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버니 샌더스 이야기(74)다. 


이날 샌더스의 필리버스터는 부자 감세 조치를 2년간 연장하는 법안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선거기간 내내 전임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했던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뒤 이 정책을 연장시키려 했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 공화당이 밀어붙이는 법안을 막을 힘이 무소속 샌더스 상원의원에게는 없었다. 샌더스는 법안 표결을 3일 앞둔 이날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이유를 전 미국에 알리고자 했다. 부자 감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여야 하며, 그 돈은 기반시설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고, 이를 통해 중산층 붕괴와 빈곤층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필리버스터 연설의 골자였다. 백악관은 이날 샌더스의 필리버스터에 적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오후 4시쯤 오바마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비공개 만남에 관한 기자 브리핑 시간에 아예 클린턴을 대동해 기자들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에 관한 책 2권이 나란히 나왔다.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원제 The Speech)은 이날 필리버스터 연설을 번역한 책이다. 통상 필리버스터 연설은 전화번호부를 읽거나 노래를 하는 등 시간을 끄는 수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샌더스는 이날 별다른 대본 없이 자신의 이전 연설과 관련 자료들을 총동원해 연설했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원제 Outsider in the White Houes)은 1997년 나온 샌더스의 자서전이다. 샌더스의 성장과정과 정치 이력, 특히 정치적 고향인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시절의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다. 미국내 샌더스 바람 때문에 미국에서도 올해 개정판이 나왔고, 샌더스가 서문도 새로 썼다. 


샌더스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 대학 재학 시절 진보적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군소 진보정당인 자유연합당의 후보로 버몬트 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매체들은 거대 양당 후보들에만 관심을 가질 뿐,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했다. 샌더스는 양당과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를 널리 알리진 못하는 제3당의 역할과 한계를 동시에 깨달았다. 


한동안 정치를 떠나 개인 사업을 하던 샌더스는 1980년 버몬트 주 최대도시 벌링턴 시장 경선에 무소속 후보로 나서면서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버몬트 주 유권자들이 진보적인 무소속 후보에 호의적일리 없었다. 하지만 샌더스 진영은 각 선거구의 투표 성향을 분석했고, 밑바닥부터 표를 다졌다. 저소득층 거주 지역 대표, 대학교수, 환경보호주의자, 재산세 인상을 우려하는 보수적 주택 소유자 등 다양한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샌더스는 처음부터 ‘교육’이 아니라 ‘승리’를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미 전역에서 유일하게 거대 양당이 아닌 무소속 시장으로 선출됐다.  


버몬트 시장 4선, 미국 연방 하원의원 8선, 미국 연방 상원의원 재선의 정치 이력 동안 샌더스는 자신의 견해를 숨기거나 모호하게 표현한 적이 없다. 이라크전에 반대하다가 보수진영으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았고, 성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했고, 탐욕스러운 1%의 거부들을 격한 언어로 비난했다. 샌더스는 말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내게 선거에서 이기려면 보수적이어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돌아 버리겠다.” 





그래도 샌더스는 이겼다. 그는 탁상공론하는 급진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었다. 덕분에 보수적인 경찰 노조부터 빈곤층 시민까지 유권자의 고른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샌더스가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걸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샌더스는 항상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최우선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사실 샌더스의 메시지는 35년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최고 부유층 15명이 하위 40% 국민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체제는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월스트리트의 사기꾼들’을 비난하며, 인권을 옹호한다. 정적들은 “샌더스는 똑같은 얘기만 주구장창 해대서 따분하다”고 비난한다. 샌더스는 답한다. “그들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반면 극소수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현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제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다. 결과야 어찌됐든, 샌더스 현상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의는 그리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진 소득과 부의 불평등,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 등록금, 여성 차별, 지구 온난화, 전쟁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샌더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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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다툴 때도 내심 클린턴을 응원했다. 난 연설을 지나치게 잘하는 사람을 별로 안믿는 편인데, 버락 오바마가 딱 그랬다. 반면 클린턴은 그 권력욕, 권모술수, 추진력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꽤 어울릴 것 같았다. 사랑받지 못하지만 일은 잘하는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뭐라고 생각해봐야 내겐 미국 대통령 투표권이 없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은 해외에서 반응이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주의 이론, 사상적 지향점 같은 걸 알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린 그저 버락 오바마와 다른 힐러리 클린턴의 포지션, 케네디, 부시에 이어 클린턴 가문이 미국의 왕가로 등극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와이즈베리/504쪽/1만8000원


힘든 선택들

힐러리 로댐 클린턴 지음, 김규태·이형욱 옮김/김영사/860쪽/2만9000원


힐러리 로댐 클린턴(67) 전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다음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는 클린턴을 제외하고는 유력한 후보가 없다. 공화당에서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렌드 폴 켄터키주 상원의원 등이 대선 주자 후보군이지만, 현재 클린턴의 인기와 지지율에는 크게 못미친다. 결국 내년 11월 치러질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선거는 ‘클린턴 대 그 외 후보’의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마침 클린턴의 삶과 생각,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볼 수 있는 책들이 나란히 나왔다.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미국의 정치 전문 기자들이 클린턴의 동료, 지지자, 정적 등 200여명을 만난 뒤 써낸 책이다. 전반적으로 클린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국 정치판의 흥미진진한 면모를 양념처럼 서술했다. 미국 정가의 흑막을 그린 인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과장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클린턴이 2008년 6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탈락한 직후부터 시작한다. 클린턴의 보좌진들은 지지자들이 떠나간 텅빈 사무실에서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운동 기간동안 클린턴을 지지하는 의원, 오바마를 지지하는 의원, 관망하는 의원을 세심하게 분류했으며, 지지자라 하더라도 얼마나 성실했는지까지 철저히 기록했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클린턴의 정치 인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생부는 다시 권력을 잡았을 때 상벌을 내릴 기준이 된다. 


재기를 위해서는 패배수락 연설조차 명연설이어야 했다.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도 자신이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룬 성취를 알리고, 그럼으로써 향후의 지지세력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클린턴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길 꺼렸으나, 이 연설에서는 보좌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비록 우리가 이번에는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유리 천장을 부수지 못했지만, 1800만 개의 균열(클린턴이 얻은 1800만 표를 뜻함)을 냈습니다”라는 표현을 삽입했다.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는 치열한 경쟁상대였던 클린턴에게 최소 3차례 국무장관직을 제안했고, 클린턴은 그때마다 상원의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결국 오바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클린턴은 곧바로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를 제치고 오바마 내각에서 가장 힘있는 장관이 됐고, 의료 개혁 문제 등으로 오바마가 흔들릴 때도 변함없이 대통령을 떠받쳤다. 


미 국무장관은 전통적, 법적으로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는 정치인들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클린턴이 국무장관직 수행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시, 세계 속 미국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고 평가한다. 클린턴과 같이 일한 사람들은 처름엔 두려워하다가, 마지못해 존경하다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게 된다고 증언한다. 





<힘든 선택들>은 클린턴이 주로 국무장관 재직 시절을 돌아본 자서전이다. 스스로 쓴 책이니만큼 클린턴 자신의 정치관, 세계관, 인생관 등을 다소 장황하게 펼친다. ‘힘든 선택들’이란 정부 최고위층이 국가의 안전, 힘,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불완전한 정보와 상충하는 긴급한 책무들”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상황을 뜻한다. 


오히려 재미있는 대목은 국무장관으로 112개국, 160만㎞를 여행한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촌평이다. 정적에 의해 사면받은 아웅산 수치를 만나서는 “대안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협력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일부분이다”라고 조언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다른 국가의 지도자를 약쟁이, 야만인으로 헐뜯는 면모와 매우 신사적인 면모를 동시에 가진 사람으로 평가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상대의 말을 듣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고집쟁이였지만, 푸틴이 열정을 가진 야생동물 보호에 대해 이야기하자 마음 문을 여는 사람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에게는 ‘봉사 유전자’가 있으며,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소명은 없다고 강조한다. 남편이 대통령이었고, 직속 상관도 대통령이었던 여성이 이제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고 나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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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크리스 무니 지음·이지연 옮김/동녘사이언스/394쪽/1만6500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지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씨는 있다”고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말한다. 물론 오해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크리스 무니 스스로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똑똑한 바보들> 역시 보수주의자의 고지식함을 비판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정식 출간 전인 지난해 11월 <똑똑한 바보들>의 주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즉각 무니를 공격했다. 보수적 논객인 조너 골드버그는 이 책이 ‘보수주의자에 대한 골상학’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책의 원제는 <The Republican Brain>, 즉 ‘공화당지지자의 뇌’다. 한국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새누리당지지자의 뇌’가 되겠으니, 일단 발끈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물론 막무가내로 보수주의자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무니는 뇌과학, 심리학의 실험과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보수주의자에게도 미덕이 있으니 진보주의자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그 미덕을 흡수하라고 제안한다.


일단 티파티와 기독교 우파로 대표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황당한 생각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이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심지어 오바마가 국제 좌파 운동의 세뇌를 받은 꼭두각시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낙태는 여성에게 유방암 또는 정신 장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제로 발견되지 않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여전히 믿는다. 진화론을 거부하고 지구온난화를 부정한다. ‘상식’으로 여겨지는 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의 구절들을 원용해 반박한다. 이들은 ‘사실’보다는 ‘신념’에 관심이 많다. 위키피디아에 대항해 만들어진 컨서버피디아의 설립자 앤드루 슐래플리는 “나는 신문에 인쇄된 내용들을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우리는 지식을 표현할 우리만의 방법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념을 훼손하는 진보적 편견들은 많이 제거될수록 좋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걸까. 분명히 잘못된 생각인데도 왜 철회하지 않는걸까. 보수주의를 변화에 저항하고 불평등을 수용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면, 이 뒤에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결하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가 있다. 보수주의자는 개방적이진 않지만 성실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준다. 뉴욕대의 존 조스트와 컬럼비아대의 데이나 카니의 연구 결과, 보수주의자의 침실에는 달력, 스탬프, 청소도구 등이 많았다. 모두 생활을 더 계획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성실성은 떨어지지만 개방적이다. 자기 자신의 관점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을 고려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너무나 뻔한 결론조차 쉽게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때마저 있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는 논쟁에서 자기 편도 못 들 사람”이라는 농담이 나온다. 진보주의자의 침실에는 책, 음악 CD, 문구, 여행 책자 등이 많았다.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정치적 지향은 소득수준, 교육수준보다 성격과 더 많은 관계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자신의 계급과 어긋나는 정치 성향을 보이는 ‘강남좌파’의 모순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일 어떤 이가 개방적인 성격이라면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보수주의, 진보주의 모두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의 울타리 안에서도 지나친 집단이 있다. 바로 권위주의자 집단이다. 저자는 미국 보수주의 세력 중에서도 권위주의자들이 점점 강력해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군인 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민주당에 가까운 진보적인 정책들을 많이 펼쳤다.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의 귀환을 알린 레이건조차 꽤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를 필두로 한 오늘날의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주의자에 가깝다. 이들은 애매모호함을 못 참고 집단사고를 선호하고 외부인을 불신한다. 폐쇄적인 마음을 가진 이들은 세상을 선악, 시비, 구원과 저주, 흑백의 이원론으로 구분해 어느 한쪽에 자신들을 위치시킨다. 공화당이 더욱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외된 중도파들은 무당파 혹은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평생 공화당에 투표했던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기상학자 케리 이매뉴얼은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공화당원들에게 질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찍었다. 조지 W 부시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데이비드 프럼은 오바마에 대한 턱없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공화당 동료들이 “미쳤다”고 한다. 



이제는 정겹기까지 한 조지 W 부시


보수주의, 진보주의의 성향은 일정 수준 뇌에서부터 결정된다. 진화적으로 더 오래된 부분인 편도체는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 자극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핵심 역할을 한다. 편도체보다 나중에 발달한 전대상피질(ACC)은 교정 반응이 요구되는 실수나 오류를 감지한다. 런던대학교 대학생 90명을 대상으로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찍은 결과, 정치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학생은 편도체가 크고, 진보주의자 학생은 ACC의 회백질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갑자기 큰 소리를 들려준 후 눈 깜박임의 강도를 측정하거나, 벌어진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 사람 얼굴에 거미가 앉은 이미지를 보여줬을때 보수주의자들은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외부 공격으로부터 생명과 신체를 반응하는 일에 더 빨랐다. 반면 스크린에 M자가 보이면 재빨리 키보드를 누르도록 시킨 뒤, 다섯 번에 한 번은 스크린에 M대신 W자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과제를 더 잘 수행했고, ACC 활동성도 더 컸다. 즉 바뀌는 단서나 상황에 기초해 자신의 신념, 반응을 맞춰나갈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의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엿보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팀은 3~4세 아동의 성격을 측정한 다음 20년 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알아봤다. 그 결과 불확실한 것을 불편해하고 죄책감에 민감한 아이들은 보수주의자, 자주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아이들은 진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재료(성향)라도 어떤 조리기구로 어떻게 만드느냐(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문제는 두 가지 성향의 사람이 모두 존재하므로, 음양의 조화처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데는 진보주의자가, 결단력 있고 성실하게 일을 추진하는데는 보수주의자가 능하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특히 보수주의 진영에 ‘똑똑한 바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걱정한다. 아예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모르겠으나, 지금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진 채 그것을 확증하는 통로만을 반복해서 강화하고 있다. 언론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그라 할 수 있는 폭스뉴스가 대표적인 채널이다. 몇 가지 연구조사 결과, 폭스뉴스 시청자들은 이라크 전쟁, 지구온난화, 건강보험 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다른 뉴스 채널 시청자들보다 높았다. 


책에는 진보주의 진영의 ‘승리’를 위한 충고가 가득하다. 물론 저자가 지지하는 진보진영이란 버락 오바마가 이끄는 민주당 정도의 노선이다. 일단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이 충분한 정보만 있으면 올바른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동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프랑스 혁명기의 콩도르세 후작은 진보주의의 과학적 비전을 믿은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탁월한 수학자였고 당시로선 보기 힘든 수준의 강경한 무신론자였으며 볼테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의 친구였다. 인간의 이성을 ‘자연 법칙’이라고 믿은 그는 용기있고 일관된 행동을 보여줬으나, 사실에 기반한 그의 논증은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콩도르세 후작은 당국에 체포된 뒤 감옥에서 죽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 확신이 틀렸다는 증거를 대면 그 증거의 출처를 의심한다. 그리고 기존의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 종말론의 신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정된 종말일에도 세계가 멸망하지 않으면, 신도들의 기도에 힘입어 종말이 연기됐다는 식의 변명으로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 “논리적·이성적 논거를 가지고 그 신념을 공격하여 뇌에서 그 신념이 사라지거나 멈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신념이란 물리적인 것이다. 신념을 공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 일부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가 이슈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받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가정하는 제퍼슨식 민주주의는 기반이 약하다. 인간은 여러 가지 사실들로 객관적으로 추론하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자신의 논변에 맞는 증거들을 취합하는 변호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론에 이르러 크리스 무니는 이른바 ‘진영논리’를 주장한다. 진보적 성향의 유럽 지도자들은 경제 위기에 빠졌으면서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끝도 없이 미적거리는 정상 회담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분명한 아젠다도, 지도부의 리더십도 없었기에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요구는 이렇다. 진보주의자들은 정책적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 의미에서 보수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것. 생각의 본질이 아니라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투쟁할 때 특히 그래야 한다는 것. 오바마는 진보진영의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지만, 끝없이 회의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어떻게든 오바마의 흠집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과는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한 마당이니, 진보주의자들끼리 티격태격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무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바마에게는) 당신의 신뢰와 헌신이 절실하다. 당신은 보수주의자들이 조지 W 부시에게 보이는 똑같은 충성심을 오바마에게 보여주어야 한다.…우웩 하고 싶은 소리라는 것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게 요점이다. 당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과학적 연구와 정치적 조언과 개인적 신념이 섞여 있는 저작이다. 타인의 입장과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강점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막판에는 ‘두말 할 것 없이 오바마에게 한 표를!’이라고 외친다. 흥미로우면서도 모순적이다.  



"He wants you!" 그래서 닥치고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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