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고진'에 해당되는 글 3건

  1. 학술서적 북디자이너는 수도사와 같다. 콜롬비아대학출판사 북디자이너 이창재씨
  2. 김우창, 가라타니 고진의 '동아시아 문명의 보편성' 대담 전문
  3. 문학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창재씨는 미국에서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전시회 소식을 미리 알려왔다. 아마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보도자료는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실 재미교포에 대한 선입견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이창재씨는 재미교포 하면 떠오르곤 하는 과장된 쿨함, 느끼함이 없었다. 중학교 때 이민 갔다고 하는데 한국어 어휘, 발음이 모두 정확했다. 물론 북디자인도 한국의 많은 학술서들과는 달리 아름다웠다. 






1996년 미국 뉴욕의 예술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이창재씨(49)는 두 군데 직장에서 면접을 봤다. 모두가 웹 디자인에 눈을 돌리고 있어 프린트 디자인을 지향하는 이는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콩데나스트는 한때 100종 이상의 잡지를 발행한 거대 출판 기업이었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들어가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온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8등신 모델들 사이로 세련된 옷차림의 편집자들이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 콜롬비아대학 출판사는 반대였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원고뭉치 사이에 앉은 백발 성성한 편집자들이 새로운 구직자를 힐끗 쳐다봤다. 아트디렉터인 면접관은 마르그리트 뒤라스, 들뢰즈와 가타리 등의 저서를 내밀며 “이런 책을 만드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콜롬비아대학 출판사를 선택했다. ‘수도사’처럼 20년을 일한 그는 지금 그곳의 수석 북디자이너로 재직중이다.


20일 서울 합정동 갤러리 사각형에서 개막된 ‘책을 만들고 보는 열 세가지 방법-컬럼비아대학출판사 북디자인, 1990~2015’전(30일까지)에는 이창재씨와 그의 동료들이 디자인한 책 120여권과 표지, 자료 등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씨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미주 한국학의 발전적 성과와 한계를 함께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합정동 갤러리 사각형에서 만난 컬럼비아대학출판사 수석디자이너 이창재씨. 손을 올리고 있는 왼쪽 책무더기는 일본학 관련, 오른쪽 책무더기는 한국학 관련 서적이다. 같은 주제의 책들인데 저렇게 양적 차이가 난다. /강윤중 기자


 

미국의 출판 생태계는 대형 상업출판사, 독립출판사, 대학출판부(사)로 나뉜다. 2013년 영국의 펭귄과 미국의 랜덤하우스가 합병해 직원수만 1만여명에 이르는 대형출판사가 탄생한데서 보이듯, 상업출판사의 위세는 엄청나다. 하지만 130여개의 대학출판사도 세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학술서, 교재는 물론 대중인문서도 펴낸다. 컬럼비아대학 출판사는 1893년 설립돼 1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매년 180여종의 신간을 낸다. 대학으로부터 재정과 경영이 독립돼 있으며, 비영리적 목적을 강조한다.


‘비영리적’이라는 말을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거나 ‘안팔려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번 전시회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미국 대학출판사의 책은 여느 상업출판사의 책 못지 않게 아름답다. 특히 화려하기보다는 정갈하게 책의 뜻을 전달하는데 강점을 보인다. 이창재씨는 “디자이너는 저자와 독자의 만남을 돕는 매개자”라며 “나만 해도 책 표지가 안 예쁘면 사기도 싫다”며 웃었다.


이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을 따라 도미했다. 여느 재미교포들처럼 그의 부모님도 아들이 안정된 직장을 갖기를 바랬고, 이씨 역시 대학의 프리메드(Pre-Med) 과정에서 의사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나 우연히 들은 미술사 과목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동시집 <일하는 아이들>(이오덕 엮음) 초판본을 보물로 간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그는 미술과 책이 결합된 직업인 북디자이너가 됐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작가·학자의 저서들이 서서히 번역되고 있다는 데서 한국적 문화 배경을 갖는 이로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이태준의 <무서록>,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김소월의 시집 등 번역되는 작품마다 디자인을 도맡았다. “디자인을 통해 책의 역사적 배경을 전달하고 싶다”는 그는 추사 김정희, 김환기, 임옥상, 신학철 등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표지에 사용했다. 초창기엔 출판사 컴퓨터에 한글 프로그램도 깔려 있지 않았다. 손글씨로 편지를 쓴 후 스캔한 뒤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해 한국 예술가들에게 보내 작품 사용 허락을 받아냈다.




이창재씨가 디자인한 표지들. 위로부터 이태준의 <무서록>,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황순원의 <잃어버린 사람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믿기지 않는 믿음의 필요>. 마케터들은 최윤의 소설이 <꽃잎>으로 영화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 스틸을 쓰자고 했으나, 이창재씨는 "영화 스틸 쓰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창재씨 제공




그러나 20세기 초반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일본, 중국 작품에 비하면 한국 문학 번역은 갈 길이 멀다. 이씨는 1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한국문학번역원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통합시키려는 정부의 아이디어가 “안타깝다”고 했다. 이씨는 “일본은 이미 노벨문학상도 여러 차례 받았고 상업출판사까지 일본 문학을 번역하지만, 여전히 국가가 설립한 문학번역원에서 번역을 지원한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도 영상매체의 위력은 책의 영향력을 넘어선다. 한국의 ‘스크린셀러’처럼, 영화에 기대 책을 판매하려는 시도가 잦다.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표지에 극중의 케이트 윈슬렛이 욕조에 앉아있는 스틸 사진을 쓴 것이 한 사례다. 하지만 대학출판사는 이같은 마케팅 기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씨는 “영화 사진은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세계의 저명한 작가, 학자의 책을 만들어왔다. 이씨는 일본의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을 “가장 까다로웠던 저자”로 꼽았다. 가라타니는 자신의 저서 <역사와 반복> 표지 디자인을 수차례 반려했고, 영문 표기도 일본식의 ‘가라타니 고진’이 아니라 영미식의 ‘고진 가라타니’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폭력과 시민다움>의 제목은 손글씨로 썼는데, 발리바르는 잉크가 번진 듯한 글씨체가 “핏방울을 떠오르게 한다”며 만족했다고 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의 표지 시안들. 가라타니는 맨 위의 것, 중간 것을 차례로 반려했고, 그 결과 가장 아래 것이 채택됐다. 그 과정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저자의 요청에 따라 '고진 가라타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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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5)와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71)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의 거인이다. 30여년전 미국에서 처음 만나 오랜 친분을 맺어온 두 사상가가 ‘2013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도쿄 빅사이트에서 3일 다시 만났다.  


가라타니는 이날 대담을 앞두고 김우창 교수에게 미리 서한을 보냈다. 한국은 통일신라, 일본은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각자 중국화를 진행했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한국이 ‘민심은 천명’이라는 맹자의 왕도사상을 받아들인 반면 일본에서는 민심을 챙긴다든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관습이 없었다. 이런 전통은 한국에서 시위가 자주 일어나지만, 일본에서는 시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논의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답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가라타니 센세(왼쪽)와 김 선생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

김우창=일본의 근대란 일본과 서양의 관계가 주된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근대에는 한국, 일본, 서양이라는 세 개의 축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근대화에 대해 일본에 비해 복잡한 생각을 했다. 근대화는 일본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또 일본이 아니라 서양으로부터 배워야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서양에 대해 주체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서양의 근대화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근대의 극복에 대한 논의에서도 일본보다는 한국이 복잡하다. 


또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전통문화가 훨씬 많이 파괴됐다. 식민지 시절, 한국전쟁, 군사정부 독재, 민주화 운동을 거치는 과정에서였다. 전통문화는 파괴됐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수용은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가 발전했지만, 민주주의를 좀 더 내면화하고 내실화하는 과제는 남아있다. 민주주의와 더불어 자본주의도 성황을 이루었는데,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지자 사회정의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은 정치적으로 복지사회, 민주사회주의의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또한 전통에도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한국의 왕정체제는 적어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민본주의를 주장했다. 사회복지,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있지만, 사회 전체는 하나의 자본주의적 체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문학이 그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가라타니 선생이 지적했듯이 일본문학은 개인적인 체험을 많이 이야기했다. 사소설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사소설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최근까지도 주류를 이루는 것은 사회적인 관심을 가진 문학작품이었다. 그게 지금 거의 끝장이 난 것 같다. 개인적인 체험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것보다는 시장을 의식하는 문학작품이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시장문학의 시대가 된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민의’의 의미에 대해

가라타니=김우창 선생을 마지막 만난 것은 2005년 고려대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였다. 그때 나는 ‘역사의 반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청일전쟁과 같은 상태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실현됐다. 그때 김우창 선생은 유교가 갖는 현대적 의미를 도쿠가와 시대 초기 에피소드를 들어 말씀하셨다. 조선통신사 사람들이 한반도로 돌아와 1630년 남긴 소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괜찮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전쟁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유교를 공부하고 있다.” 유교가 평화사상을 갖고 있고, 무나 군이 아니라 문에 의한 치세가 한국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난 상당히 감명받았다. 같은 시기 난 칸트에 대해 생각했다. 칸트의 평화가 갖는 의미를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칸트의 평화를 처음 소개한 이는 기타무라 도코쿠인데 그는 25살에 자살했다. 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평화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자살 이후 3개월 뒤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중국과 서양을 의식해왔다. 그러나 나는 일본과 중국, 일본과 서양을 비교해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오히려 한국과 비교를 하면 차이가 더 잘 보인다고 지난 15년 동안 생각해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 대한 반성의 동기가 됐다. 한국 사극을 보면 왕 앞에서 관료들이 토론을 한다. 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쫓겨나거나 왕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론은 없다. 주군이 하라고 하면 ‘네’라고 말하고 끝난다.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전 작업으로 조율한다. 지금도 조직 안에서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사전 작업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상처를 준다. 


맹자가 강조한 것은 천명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은 곧 민심이었다. 왕조는 천명에 의해 존재한다. 민심이 없어지면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유교의 근본 사상이다. 이 사상은 한국에 유입돼 뿌리가 깊어졌다. 고려왕조 이후는 이 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일본에서 하늘은 천황이었다. 천황의 생물학적 생명이 하늘이었다. 천명은 없고 민심도 없다. 천황을 모시는 것이 곧 옳은 일이었다. 가마쿠라 막부에도, 에도 막부에도 정의 같은 것은 없었다. 현재의 사회운동의 형태를 보면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난다. 


김우창=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논쟁이 많았다. 중국보다도 심했다. 이데올로기가 강해지고 그것이 갈등을 만들었다. 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민의를 존중하고 천명에 따르는 것에 보편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보편성은 서양하고 대조해 이야기할 수 있다. 서양의 전통은 군사적이고 동양의 전통은 평화적이다. 중국의 <시경>에는 보통 사람의 삶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서양 문학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모두 군사에 관한 것이다. 가라타니 선생의 보편성, 민본주의, 민주주의에 평화까지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가라나티=유교의 왕도는 무력에 의한 침략 지배를 말하지 않는다. 최근 쑨원에 대해 공부했다. 쑨원도 왕도를 이야기한다. 중화혁명은 마오쩌둥을 포함해서 모두 유교전통에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최근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것만 갖고서는 그토록 큰 민족을 유지할 수 없다. 


김우창=그런 부분은 북한에도 남아있다. 남아있다고 할 수도 있고, 왜곡돼서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치와 도덕, 문학에 대해

가라타니=처음엔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받았다. 그때는 거절했다. 그러면 그 외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오늘의 테마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내게 문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내가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날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내가 문학평론가였다는 점을 모르기도 한다. 서양의 삶 속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진, 선, 미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감정(미)은 가장 밑이었다. 그것을 긍정하기 시작한 것이 낭만주의다. 낭만주의 직전의 사람이 칸트인데, 칸트는 도덕성에 상상력을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 상상력은 인간의 지적 능력 중에서도 가장 밑이라고 간주됐다. 칸트는 감정 또는 창조력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였다. 진과 선을 연결해주는 것으로서의 창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서양에서 문학 혹은 창조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지위를 얻게 된 것은 불과 200년 전부터였다. 문학이자 창조력은 진, 선하고는 다른 영역이다. 도덕성이 강할 때 그에 대항하는 형태로 문학이 나타난다. 지금 도덕이란 말을 쓰지만, 그것은 곧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란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일본에서 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것, 도덕적인 것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문학의 지위도 내려갔다. 문학은 정치로부터 해방돼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해방됐지만, 이후엔 아무 것도 없어졌다. 21세기 이후 일본문학은 그렇다. 사소설은 ‘나’다. 나 이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문학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 한국에서도 그런(없어질) 상황에 놓인 것 같다. 


김우창=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한국에서도 문학은 끝났다. 한국에선 도덕이 지나칠 정도로 중요했다. 특히 소설은 ‘작을 소’를 쓰는데서 보듯 낮은 지위에 있었다. 유학자들도 소설을 보긴 했지만, 책상 밑에 감춰놓고 봤다. 이제 도덕은 끝났고 문학도 끝났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봐서, 정치, 도덕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갈등에 대해 

가라타니=그것이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이다. 한국의 현대정치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일본은 80년대까지 그랬다. 한국은 군사정권이던 시절이다. 당시 일본은 자민당 독재 체제였다고 기억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당시의 사회당은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자민당과 사회당은 대립하면서도 뒤에서는 긴밀히 연결됐다. 자민당의 리버럴과 사회당의 우파는 거의 생각이 같았다. 왜 그런 형태를 취했을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도 의외로 사회복지를 추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련에는 실업자가 없는데, 미국에는 실업자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강해졌다. 노동운동은 사실상 형식만 남았고 힘을 잃었다. 그렇게 현재까지 이어졌다. 동아시아 내 중국, 북한, 한국과의 문제가 논의된 것도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문제들이 해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 문제는 실질적인 보상 직전까지 갔지만 90년대 이후 뒤집혔다. 정부 차원에서 정해진 것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상횡이 됐다. 그것이 지금의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정부가) 대립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것은 미국이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국가중추의 전략을 꿰뚫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못해 지고 있는 셈이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 민주당 정권이 있었다. 너무나 오래돼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때 민주당 정권이 할만한 일을 모두 두려워했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의 미군을 쫓아내는 문제나 관료 개혁 문제다. 지난해부터 민주당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 민심의 변화가 일어났다. 국회 주변에 20만명이 모인 데모도 있었다. 일본에서 사는 동안 예가 없었던 일이다. 이를 센카쿠 열도 문제가 한 방에 누르고 여론을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 화가 나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일 생각하고 있다. 


김우창=한·일, 중·일 관계가 긴장 상태에 들어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가라타니 선생께 우리 동아시아도 EU(유럽연합)처럼 우호관계가 발전하는 지역이 돼야한다고 제안했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정치만 믿을 수는 없다. 정치를 줄이면서 우호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가라타니=동아시아가 EU처럼 될 수 있을까. 십 수 년 전에는 동아시아경제공동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했다. 옛 자민당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그것이 실현되면 가장 난처해지는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거기 못을 박으려했다. 전쟁까지 가면 곤란하지만, 적어도 대치하는 상황은 만들어야 했다. 동아시아에 EU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고, 일본의 국가중추도 그에 동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대항해야 한다. 방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난 미국 친구가 많지만 미국이라는 국가는 싫어한다. 사실 모든 국가를 싫어한다. 국가가 하는 짓이라고는 거의 똑같다. 좋은 국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민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늘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할까. 영화든, 티비든, 여행이든 좋다. 사고방식은 변한다. 일본에서 한류 붐이 있은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바뀌었다. 물론 질투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것이 인터넷 우익이다. “나는 인기 없는데 너는 왜 인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람에 대해 알게되면 인상이 바뀔 것이다. 작년에 중국에 갔었는데, 필담을 하다보니 “배우 다카쿠라 켄을 참 좋아한다”는 식의 말이 나왔다. 중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영화,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그것이 의사소통의 한 가지 방법이다. 지식인들이 회의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웃음), 


김우창=말씀하신대로 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기관에도 동아시아 내의 회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걸 공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EU에는 사회헌장이 있다. 강제력은 없지만, 여러 나라의 정책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정부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지수를 발표한다든가 하면 정부에 압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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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다. 일본의 사상가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저서로 보인다. 책의 제목은 파울 첼란의 <빛의 강박>에 실린 한 시구를 인용했다고 사사키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인데, 인류 역사의 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고쳐 쓰는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사키는 "우리는 혁명으로부터 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여섯 가지 혁명을 언급하는데, 이는 중세 해석자 혁명, 대혁명,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미국혁명, 러시아혁명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논하는 것은 통상 '혁명'이라고 언급되지 않는 중세 해석자 혁명과 대혁명이다. 


먼저 대혁명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한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은 "세계 전체에 형태를 다시 주는 것"이었으므로 '혁명'이라고 번역해도 무리가 없다고 잇는다. 대혁명이란 곧 '성서를 읽는 운동'을 말하는데, 루터가 당시의 타락한 기독교를 구원하기 위해 성서를 읽고 또 읽고,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새롭게 세울 수 있었다.16세기 초까지 독일어 서적 간행 총수는 40종이었는데 루터와 그의 적대자들의 저술에 힘입어 1523년에는 498종에 이른다. 루터는 성서에 근거해 당시 세속 사회까지 지배하던 교회법까지 완전히 부정했다. 그래서 대혁명은 '법의 혁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혁명이 이어진다. 40세의 평범한 남자 무함마드는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꾼 뒤 메카 인근 히라 산의 동굴에 틀어박혀 명상을 하다가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만난다. 매우 현실적이게도, 무함마드는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쳤다고 의심해 동굴에서 도망치는데, 아내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다시 동굴을 찾는다. 지브릴은 무함마드에게 말한다. "읽어라, 창조주이신 주의 이름으로". 무함마드는 문맹이었음에도 말이다. 


루터의 '혁명'보다 생소한 것이 중세 해석자 혁명이다. 이는 '모든 유럽 혁명의 어머니'인 12세기의 법혁명을 뜻한다. 11세기말 피사의 도서관 구석에서 600년 가까이 잊혀졌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전 50권)이 발견된다. 이후 유럽은 그때까지 몰랐던 정치한 법 개념과 법률 용어를 입수한다. 사사키는 자신이 매우 크게 영향받은 피에르 르장드르를 인용해 국가의 본질은 폭력 기구 같은 것이 아닌, "아이를 낳아 기르는 물질적, 제도적, 상징적 준비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방대한 법전을 해석한 중세 해석자들은 세례, 교육, 구빈, 혼인, 성범죄, 고아 과부 병자 노인의 보호 등을 통괄하는 '삶의 규칙'을 세웠다. "근대 국가의 원형은 이 중세 해석자 혁명에서 성립한 중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습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때의 문학이란 소설, 시 등의 좁은 의미가 아닌 글로 쓰여진 포괄적인 텍스트를 일컫는다. 그리고 '고작' 5000년 된 문학의 '종언'을 말하거나, '망했다'고 말하는 것은, 3만년~7만년 된 회화, 무용, 음악 등에 대해 할 소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멸망하리라고 믿는 종말론 역시 매우 유아적이고 유치한 발상이라고 일축한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문맹률은 90%였는데,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등은 나머지 10%를 상대로 승부해 이겼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쓰고 또 쓰는 것 뿐, 쓰지 않는다면 다른 할 일이라도 있느냐고 사사키는 쏘아붙인다. 



사사키 아타루('사상가'라는 직함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그러나 글을 읽으면 짐작이 가는 스타일)


그러므로 사사키 아타루에게 읽는다는 것은 엄중한 행위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저 글자를 훑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다. 루터 또는 무함마드에게도 '읽다'는 것은 세계와 자신과 책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생생한 이물로서 타자성으로 분리되고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자신이 미쳤는가 아니면 세상이 미쳤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지독한 열광의 독서가이자 과도한 '문학'지상주의자인 사사키는, 아감벤에게는 "제발 부탁이니 사전 정도 찾아보는게 어떨까"라는 조롱을 던지고, 그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한 가라타니 고진을 비판한다. "정보에 토실토실 살이 찌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비평가"와 "초라하게 자기 진영에 틀어박혀 비쩍 말라가는 전문가" 모두를 거부한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라는 질 들뢰즈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정보에 대해 무지하지만 텍스트를 정면으로 마주하는데는 자신감이 있음을 내비친다. 이 책은, 사사키 스스로의 표현을 원용하면 '벌거벗은 광기의 독서'를 권장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지나쳐 보이는 비장미가 부담스러울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독서의 자세, 나아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해준다. 그러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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