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에 해당되는 글 3건

  1. 기자와 작가, '헤밍웨이의 말'
  2. 냉소적인 부음, 소녀 수집하는 노인(+10가지 글쓰기 팁)
  3. 예술적 영웅들과 벌이는 연애 대결, <미드나잇 인 파리>




어니스트 헤밍뭬이 말년의 인터뷰들을 묶은 '헤밍웨이의 말'(마음산책)을 읽다. 소문난 플레이보이이자 낚시광, 사냥꾼, 투우애호가, 기자, 작가였던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쿠바의 거처에서 글을 썼는데,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1954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의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의 건강은 이후 쇠퇴일로였다. '헤밍웨이의 말'에 실린 인터뷰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헤밍웨이가 나이보다 늙어보인다는 점이었다. 비행기 사고로 인한 부상 때문에 그럴 것이고, 에너지를 젊은 시절에 모두 쏟아부어버렸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7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2시간 공연을 거뜬히 소화하는 믹 재거 같은 괴물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한평생 쓸 수 있는 정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말년의 헤밍웨이는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글쓰는데 쏟기로 한 뒤,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친교는 자제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사람들은 헤밍웨이를 가만 두지 않았다. 4편의 인터뷰 중 2편이 허락 없이 불쑥 찾아가 얻어낸 것들이다. 나도 기자지만, 어휴, 기자놈들. 그래도 이런 기자들 덕분에 헤밍웨이 말년의 생각과 태도들을 전해들을 수 있으니 기쁜 반면, 원치 않은 유명세에 시달렸을 헤밍웨이가 가엽기도 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헤밍웨이가 유명세를 지겹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유명세 덕에 누린 이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기자로 일했는데, 자기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되는 명사의 사생활을 캐물어야 하는 인터뷰가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말에서 내가 인터뷰 기사를 늘 힘들어하는 근거를 대려고 애썼다. 하지만 난 헤밍웨이도 아니고 어찌 됐든 일을 해야 하니 명사 인터뷰 거리가 있으면 한다. 마침 오늘 그런 기자회견이 있는데, 지독히도 가기 싫은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직업상 책무에 속하니 간다.   


'헤밍웨이의 말'에 대해 쓰려다가 딴 얘기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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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1938~)의 단편집 <소녀 수집하는 여인>을 읽다. 살아있는 미국 작가 중 매우 각광받는 인물이라고 하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올해도 도박 사이트에서 10위권 내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편의 단편은 모두 영미권 문학 대가의 말년을 상상해 그리고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손에 의해 요리된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다. 





내가 '요리'라고 표현한 건 이유가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각 작가의 작품 혹은 삶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의 말년을 재현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이것이 앞선 대가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읽으면 조이스 캐롤 오츠가 그린 그들의 말년이란 것이 무척이나 끔찍해 때로는 거의 조롱이 아닐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뽑힌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트웨인이다. 트웨인은 수십 년 째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는 처지지만, 가는 곳마다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트웨인은 이런 연기가 지긋지긋하다. 그저 특정 나이대(10살 이상 16살 미만) 소녀들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고픈 생각 뿐이다. 아버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트웨인의 딸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심초사하지만, 이 백발의 늙은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과년한 딸이 지긋지긋하다.  




젊은 날, 노년의 조이스 캐롤 오츠. 젊은 날 외모.



헤밍웨이는 만성적인 알콜 의존증세를 보이는데다가 모든 여자는 '보지'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헨리 제임스는 고매한 가문에서 자라 평생 따귀 한 번 맞아보지 않았으며, 상류층 사람들이 정교하고 우회적으로 느릿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을 써왔다. 1차 대전 부상병이 가득 실려오는 병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 제임스가 기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제임스는 이상하게 이 병원의 팔, 다리 없고, 구더기가 슬고, 피를 쏟는 참상에 끌린다. 제임스는 간호사 등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배설물을 치우고 피를 닦는 등 지저분한 일을 마다않는다. 그는 한 냉소적인 장교와 '우정'도 나눈다. 문제는 이 자원봉사가 단지 숭고한 인류애의 발현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아내를 잃은 에드거 앨런 포는 칠레 부근의 한 등대지기 일을 하며 홀로 지내다가 조금씩 미쳐간다. 나중에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등대섬에 밀려온 이름 모를 암컷 생물체와....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19세기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다. 디킨슨이 멀쩡한 이유는 소설에 실제 디킨슨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 조금 속물적인 중산층 가정에 디킨슨의 복제품이 '입양'된다. 이 시대에는 과거 유명 인물의 정수를 프로그래밍한 로봇, '레플리럭스'가 개발됐다. 19세기식의 말투와 태도를 간직한 디킨슨은 '문학 소녀' 감수성을 가진 중년 부인이 쓴 습작시에 대해 점잖지만 냉소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뒤늦게 시심을 발휘해 훌륭하지 않은 시를 쓰는 정도라면 타인에게 큰 해를 주진 않는다. 큰 문제는 남편이 저질렀다. 


살펴보면 이 책에서 남자들이란 문학 대가든, 평범해 보이는 시민이든 다들 어딘가 이상하다. 고집불통인데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난 조이스 캐롤 오츠가 남성 문학 대가들에 대해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부고를 썼다고 생각한다. 문학사를 다시 쓰는 동시, 대가의 관뚜껑에 못을 박은 셈이다. 이 대가들의 팬이라면 '장난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조이스 캐롤 오츠가 대가의 한 단면을 정교하게 잘라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마치 캐리커처가 인물의 특징을 과장해 그려내는 것처럼, 이 단편들은 대가들의 죽음을 캐리커처하듯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찾다 보니 이 70대 할머니 작가는 트위터를 하신다.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에 글 쓰기의 10가지 팁을 공개했다. 간단하니까 옮겨 보면


1. 가슴으로 써라. 

2.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쓴 다음에나 쓸 수 있다. 초고는 지옥이다. 완고는 낙원이다. 

3. 후대인이 아니라 동시대인를 위해 써라. 운이 좋다면, 당신의 동시대인은 후대인이 될 것이다.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염두에 둬라. "조금 진지하면 위험하다. 대단히 진지하면 치명적이다."

5. 한 챕터를 어떻게 끝낼지 모르겠다면, 총 든 남자를 등장시켜라. (이건 내가 아니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조언이다. 난 이렇게 해보지 않았다.)

6.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면(덜컹거리고 모호하게), 단락을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 둬라. 

7. 당신 자신의 편집자, 평론가가 되라. 공감하면서도 잔인하라. 

8, 이상적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독자가 있긴 하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

9. 열심히 읽고, 관찰하고, 들어라. 마치 당신의 삶이 거기 달려있는 것처럼. 

10. 가슴으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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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운좋게도 <미드나잇 인 파리> 언론 시사회가 있었다. 개봉 하면 보러 가게될 확률이 90% 이상인 이 영화를 미리 볼 기회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헐리우드 각본가 길이 약혼녀 이네즈, 그녀의 부모와 함께 파리 여행을 온다. 그런데 길과 이네즈 집안은 뭔가 좀 안맞다. 길은 비록 몸은 할리우드에 있지만 마음은 파리에 머물고 싶어한다. 조금씩 소설을 밀고 나가지만 자신의 재능에 확신은 없어 보인다. 비맞으면서 산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70% 정도 현실에 발목 잡혀 있으나 여전히 보헤미안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반면 이네즈 가족은 현실적이다. 조금 경멸적인 의미에서의 전형적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은 미국 바깥에서 살 생각이 전혀 없다. 파리는 그저 값비싼 골동품 가구를 구하는 장소 정도의 의미가 있다. 비가 오면 냉큼 차를 집어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이(76)를 고려하면 멀쩡해 보이는 우디 앨런


어느날 살짝 술에 취해 호텔로 돌아가던 길은 우연히 고풍스러운 자동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1920년대 파리에 발을 디딘다. 바로 길의 예술적 영웅들이 있는 곳이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T.S. 엘리엇, 피카소, 달리, 브뉴엘, 만 레이를 만나 감격하고 대화하고 영감을 얻고 영감을 준다. 당대의 비평가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작품을 보여준 뒤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가 아침이 되면 다시 2010년대, 자정이 되면 1920년대. 길은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현실과 이상을 체험한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우디 앨런의 영화다. 길은 사랑에 빠진다.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함께 좋아했던 한 여인. 그러나 현실에 70% 발목 잡힌 길은 약혼녀를 과감히 떠날 수 없다.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우가 '홍상수풍 남자'가 되듯, 우디 앨런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우는 '우디 앨런풍 남자'가 된다. 앨런 본인이 연기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앨런의 영화에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던 오웬 윌슨도 첫 대사부터 곧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우디 앨런풍 남자' 연기를 한다. 자신이 열광하는 대상에 대해 수다스럽고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면전에 대고 나쁜 말을 할 용기는 없는, 그리고 가끔 말을 더듬기도 하는 그런 남자. 


길은 헤밍웨이, 피카소와 사랑의 대상을 두고 다투는데, 근소한 차로 이길 가능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연애의 대가'인 앨런이 자신의 예술적 영웅들과 벌이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대결같기도 하다. 헤밍웨이처럼 쓰거나 피카소처럼 그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여자를 빼앗을 기회를 노릴 수는 있다는 이야기. 


<미드나잇 인 파리>가 연애에 대한 앨런의 자신감 말고 다른 것을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몇 가지 잔재미가 있긴 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1920년대 파리의 예술가 영웅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 지나치게 흡사하게 등장해 웃음을 준다. 헤밍웨이는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눈빛으로 전장에서의 경험을 읊어대더니, 술만 마시면 복싱을 하자고 주사를 부린다. 피츠제럴드 부부는 모두가 상상하듯 철없는 향락에 빠져 있다.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애드리언 브로디의 살바도르 달리 역시 키득대고 웃을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길이 자신을 "미래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초현실주의자'인 달리, 만 레이, 브뉴엘이 전혀 놀라지 않고 받아들이는 유머도 기억에 남는다.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위로부터)


그러나 그 정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시대를 부정하고 앞 시대를 사랑한다"는 전언은, 우리가 오랫동안 생각하기엔 좀 약한 화두다. 앨런의 영화는 'bittersweet'이 비율이 잘 맞았을 때가 좋은데, <미드나잇 인 파리>는 'sweet'의 비율이 좀 높다. 그의 2000년대 영화를 돌아보면 <매치 포인트>는 작심한 듯 'bitter'가 강했고, 그래서 좋았고, <환상의 그대>는 두 맛이 고루 있었다. 신작 <투 로마 위드 러브>는 앨런이 직접 출연함에도 평이 시큰둥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한국에 들어오면 나는 찾아본다. 



그래도 마리온 코티아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라는 사실에는 우디 앨런과 나를 비롯해 전세계의 안목 있는 인간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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