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삼겹살을 안 먹을 수 있을까, <동물을 위한 윤리학>
  2. 콩고기 버거를 먹어봐야 소용없다고? <채식의 배신>
  3.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공장식 축산의 끔찍함 혹은 동물원의 열악함을 떠올리거나, 이 책과 같이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논변을 전개하거나, 결국 결론은 채식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우리는 삼겹살의 고소한 기름내를 멀리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내려야 하는 실존적 결단만이 남았다. 아마 그런 결단은 어떤 깨달음의 순간에 따라와야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임순례 감독이 전한 순간은 이렇다. 시장에서 사와 마루에 둔 검은 비닐 봉지 속의 바지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동물을 위한 윤리학

최훈 지음/사월의 책/368쪽/1만8000원


철학은 생각의 한계를 시험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확정된 생각의 경계는 그에 따르는 실천을 요구한다.


최훈 강원대 교수는 ‘채식주의 철학자’다. 이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moral status)를 윤리학적, 논리학적으로 따진 뒤 얻은 결론을 실천에 옮긴 결과다. 그의 전작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동물 윤리를 사육, 도살 환경, 채식 등 현장의 지식과 연관해 풀어낸 대중서였다. 신간 <동물을 위한 윤리학>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서를 지향한다. 데카르트, 칸트, 존 롤스, 피터 싱어 등의 윤리학을 경유해 동물 윤리에 대한 기초를 세운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시도다.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도덕적으로 의미 있게 고려한다는 뜻이다. 도덕적 지위를 갖는 대상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장난감에는 도덕적 지위가 없다. 실수로 장난감을 밟아 부숴뜨렸다면 그 장난감을 소유한 아이에겐 사과할지언정, 장난감에게 잘못을 느낄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체로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동물을 장난감, 돌, 식물과 같이 여겨왔다는 뜻이다. 이 책은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키워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감응력’이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고통을 느끼기에,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선 안된다면 동물에게도 고통을 주어선 안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감응력은 도덕적 지위의 충분조건이다. 어떤 이들은 합리성,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등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영·유아, 정신지체인 등에게 도덕적 지위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도덕적 지위의 기준을 낮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응력은 도덕적 지위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감응력이 있는, 즉 고통을 느끼는 존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쓸(mind/care) 수 있기에, 이런 존재에게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 광물 등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신경쓰지 못하는 존재에겐 도덕적 지위가 없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른 뒤, ‘가장자리 인간’ 논증으로 이들을 곤란하게 한다. 가장자리 인간이란 유아, 식물인간, 지적 장애인 등 합리성, 도덕성이 없고 언어나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동물이 인간의 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차별해도 된다고 여긴다면, 이들 가장자리 인간을 차별하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논리다. 종차별주의는 새로운 인간차별주의로 연결된다.


저자는 동물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육식, 동물실험, 구제역 살처분 등의 사례를 검토한다. 특히 구제역에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 돼지를 죽이는 대처방법을 비판한다. 인간을 전염병에 걸렸거나 전염병 창궐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여서 매몰해서는 안되듯, 동물도 마찬가지다. 살처분이 정당화되려면 ①그 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②살처분 이외에는 대처 방법이 없다. ③감염된 동물과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살처분은 병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현재의 공장식 축산 형태는 구제역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채식주의, 환경주의, 여성주의의 교차점을 검토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환경주의가 채식주의와 깊이 연관돼있다는 것이 세간의 인상이지만, 저자는 철학적으로 따져볼 때 두 진영은 예상외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환경주의는 도덕적 지위의 대상을 흙, 물, 식물 등으로까지 넓힌다. 하지만 감응력 이론을 따르는 채식주의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동물 이외의 대상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이는 그들에게 도덕적 지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식물이나 물을 훼손하면 간접적으로 인간, 동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채식을 비판하거나 사냥을 옹호한다는 점도 채식주의자와 다른 점이다.


오히려 채식주의는 여성주의에 친연성을 보인다. 특히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 사이에 역사적, 경험적, 기호적, 이론적으로 중요한 연관이 있다는 입장”인데, 이는 채식주의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소비를 비판하는 논리는 고기의 상품화 비판 논리와 통한다. 저자는 “일관적인 사고를 하는 합리적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하자고 말한다. 좀 더 간결하게는 “각 동물의 본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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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 자체는 흥미로웠는데 서술이 다소 장황한 편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하고 싶은 말, 무엇보다 울분이 넘쳐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보도록 하자. 왠지 저자를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람일지 눈에 떠오르는 것 같다.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40쪽/1만5000원


20년간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우유, 꿀 등도 일절 먹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 즉 비건으로 살아온 리어 키스는 어느 날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기공(氣功) 선생을 찾았다. 기공 선생은 키스의 맥을 짚은 뒤 말했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군요. 기가 전혀 없어요.” 키스가 동물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고기든 생선이든 먹지 않는다고 간신히 말하자, 선생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건 자연의 이치”라고 답했다. 키스는 “전 큰 물고기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런 답으로 지난 20년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가 잘 알았다.


키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참치 통조림을 샀다. 피곤에 찌든 손으로 통조림을 뜯은 뒤 플라스틱 포크를 이용해 참치를 입에 넣었다. 이 순간에 대해 어떤 비건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느낌”이라고, 다른 비건은 “배터리에 연결된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키스는 “내 온몸의 세포, 글자 그대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후 3주동안 키스는 매일 고기를 먹은 뒤 누워 쉬었다. 고기를 통한 재충전 과정이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이다. 키스의 ‘변절’ 소식에 어떤 비건은 자신도 고기를 먹고 있다고 고백했고, 어떤 비건은 등을 돌렸다.


동물을 고문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항거하기 위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키스는 16살이었다. 신음하는 지구에 연민을 느낀 키스는 채식주의자들의 고귀한 신념에 설득당했다. 그러나 키스의 몸은 그 신념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비건 식사를 한 지 6주쯤 지났을 때 저혈당증을 경험했고, 3개월만에 생리가 멈췄다. 만성 피로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후엔 위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우울증, 초조감 등 정신적인 문제도 겹쳤다. 몸이 아픈 건 비건 식사 때문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키스는 애써 부정하려 했다. 그저 신념과 정의로 나약한 육체를 이겨내려 했다.


<채식의 배신>(원제 The vegetarian myth)은 회심한 채식주의자의 참회록이다. 이 참회는 자신의 몸과 지구에 동시에 적용된다. 아울러 채식주의가 그 고결한 의도에도 불구, 지구를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키스는 지구를 구하는 또다른 방법을 말하는데, 그것은 비건의 식생활이 그랬듯이 극단적이다. 어정쩡한 방법으로 수습하기엔 지구가 너무 큰 위험에 빠져있다고 키스는 생각하고 있다. 


돌아 눕지도 못할 정도로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태어나고 죽어가는 돼지, 24시간 인공조명 아래 하루 종일 알을 낳는 닭, 쇠똥 위에 쇠똥을 누고 그 위에 뒹굴어야 하는 소 등의 뭇생명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목소리 없는 동물, 식물, 지구를 대신해 발언하겠다는 의도도 숭고하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매번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채식주의도 그렇다고 키스는 진단한다. 비건이기를 고수하는 이들은 대부분 올바른 정보를 알지 못하고, 안다 해도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가지 측면에서 채식주의의 오류를 파악한다. 우선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을 해치길 싫어한다. 리스는 “얼굴이 있거나 엄마가 있는 건 먹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생명 중에 ‘엄마’가 없는 생명이 있는가. 게다가 ‘얼굴’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얼굴인가. 더 나아가 동물은 죽이면 안되고 식물은 죽여도 되는 이유가 있는가.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의 것과 같지는 않을지언정 나름의 ‘감정’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숱하다.


과일만 먹는 ‘과식(果食)주의자’는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분파다. 과일을 먹기 위해서 나무를 죽일 필요는 없기에,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조차 사과를 먹은 뒤 씨앗을 심지는 않는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씨앗을 퍼트리기 위함인데도 말이다. 사과로선 배신을 당한 셈이다.


비건의 식단. 맛있겠는데 뭘. 


채식주의자 중에선 스스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 그 결실을 먹는다면 이상적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농업이야말로 생태계를 파괴한다. 작물은 땅의 양분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낌 없이 짜먹으려 한다. 즉 농업은 ‘육식성’이다.


키스 역시 텃밭을 가꾸었다. 곤란한 것은 민달팽이였다.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민달팽이가 어린 채소들을 완전히 갉아먹기 일쑤였다. 농약을 치기가 싫어 ‘유기농 해결책’으로 알려진 규조토를 썼는데, 규조토의 원리는 그 입자에 선 작고 날카로운 날로 기어가는 민달팽이의 배를 가르는 것이었다. 상처입은 민달팽이는 결국 탈수되어 죽는다. 민달팽이를 하나씩 잡아 숲에 버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면 먹이도 없는 그곳에서 죽어갈 것이다.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해봐야, 직접 가스를 틀지 않았지만 유대인 가스실 이송 계획에는 서명한 나치 관료나 마찬가지다.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먹고, 식물은 그러다가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양분을 취하는 것이 이치다. 여기엔 도덕도 부도덕도 없다. 자연은 초도덕이다. 이렇게 먹이사슬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그린다. 생명이 다른 생명의 죽음에 기대 살아간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다음은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 이 대목에선 과점 기업이 지배하는 곡물 시장의 문제를 제기한다. 카길과 컨티넨털 등 두 개의 곡물회사가 전세계 곡물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옥수수와 콩의 경우 4~5개 회사가 전세계 생산량의 75~80%를 장악한다. 이들은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을 심어 곡물 가격을 싸게 유지한다. 물론 이 농지를 넓히기 위해선 이전부터 있던 숲을 깎고 그곳에 살던 동물을 내쫓아야 한다. 선진국의 저가 농산물은 빈국의 농업을 파괴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렇게 생산된 곡물을 먹으며 자신들이 지구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 많은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농지가 늘어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십 억 인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키스는 진단한다. 인구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도 죽는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한다는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들도 저자는 반박한다. 인간은 육식, 채식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소화하는 능력을 갖췄고, 이는 식량이 부족했던 시대에 살아남기에 유리했다. 


물론 지금은 당장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식량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현대의 채식주의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탄수화물 소비를 촉진하려는 곡물 대기업의 계략에 지방을 죄악시하는 섣부른 연구 결과가 뒷받침 돼 날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북극의 원주민들 중에는 곡물을 전혀 먹지 않고 육류와 짐승의 젖만으로 살아가는 종족이 많은데, 이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없다. 정부, 의학계, 제약사의 지속적인 캠페인 결과,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지방 섭취는 10%,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의 수도 28% 줄었다. 그러나 지방 및 콜레스테롤이 유발한다고 알려져왔던 심장병 발병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열정적인 비건들이 모인 게시판에서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으면 이들이 마치 컬트 종교의 신도들인 것처럼 비춰진다. 실제 <채식의 배신>은 컬트 종교 탈출기에 가깝다. 예를 들어 동물들이 살해당하지 않는 아이디어라며 세렝게티 초원 가운데 담을 세워 사자와 영양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육식 동물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고기 산업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댓글은 찬성 일색이었다.


심지어 ‘호흡주의자’까지 나왔다. 이는 인간은 먹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바나나, 요구르트, 사과 등으로 식사를 줄여가며 음식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차 한 잔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몇 달씩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30년간 호흡주의자로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미국호흡주의협회 창립자가 편의점에서 핫도그와 케이크를 사들고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는 주변에 불량 식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먹어 없애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키스는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한다. 비건이 되겠다는 마음은 갸륵했으나, 콩고기 버거를 먹는 것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키스는 이전의 자신이 자유주의자였다면, 이제 급진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개인주의를 체득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사회 운동을 하나의 커다란 ‘집단 치유’로 만들었고, 현실에서의 구체적 성취 대신 그것을 통해 개인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중시했다. 그러나 키스는 “사회 운동가의 임무는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갈고닦아 체제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키스는 비건이 돼 스스로를 혹사하는 대신,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세 가지 일을 제시한다. 차를 타지 않는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자기가 기른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 키스는 지구에는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60억명이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1만년에 걸친 인류의 특권 의식”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있기에, 이제는 인류가 특권을 버리고 번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를 위해 출산을 포기하자. 키스의 진의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주장은 그가 이전에 속했던 비건 게시판의 ‘생명 존중’ 분위기만큼 극단적으로 여겨진다. 지구 혹은 한참 뒤 후속 세대의 안녕을 위해 현세대의 즐거움을 포기하자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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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어느 영화사가 회집에서 연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 많은 회를 두고 풀만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는 잘 마셨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이렇다. 된장찌개인지 무엇인지를 끓여먹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바지락을 한가득 사왔다. 그것을 마루에 두고 잠시 잊었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살아있는 바지락이 껍질을 열고닫으며 바스락대고 있었다. 차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던 바지락이 살겠다고 꼬물락거리는 모양이라니. 그는 이후 바지락은 물론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이고, 절을 찾아가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올린다. 그의 전작은 <날아라 펭귄>, 막 개봉하는 영화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다음 작품은 옴니버스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다. 물론 앞의 2편에서 동물은 직접적 소재라기보다는 은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다.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를 옮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지난 사랑의 잔여물을 되새기는 멜로드라마이자, 인간본성을 찾아나서는 불교 구도극이고,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누비는 로드무비다. 소외된 이웃들의 비루한 삶을 정직하게 응시해왔던 임순례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는 김도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임 감독이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이제 기존의 것과 조금은 다른 걸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4일 5번째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개봉에 맞춰 임 감독을 최근 만났다. 


-김영필, 공효진이 ‘인간 주인공’이지만, ‘먹보’란 이름의 소가 눈에 띈다. 

“시나리오에선 암소라고 설정돼 있었는데, 황소 먹보를 보는 순간 비주얼에 흡입력을 느꼈다. 암소보다 출연료도 비쌌다. 트럭에 타고 내리는 정도는 먹보 혼자 연기했다. 다만 앉히는 게 힘들었다. 소가 잘 때 빼고는 잘 앉지 않는다. 1~2시간 산보를 시켜 피곤하게 한 뒤 앉히는 연기를 시키곤 했다. 촬영 중에 구제역이 발생해 도시 간 이동을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에 관심이 많았나.

“평소 소에 대해선 눈이 착하다는 생각 정도였다. 두달 촬영하면서 저와 스태프 모두 소에 대해 많은 걸 얻고 느꼈다. ‘소가 이 정도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었구나’ 하는 것. ‘쫑파티’ 할 때 스태프들이 그랬다. 소를 고기로만 생각했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조감독 2명이 소시장 헌팅 다니다가 팔려가면서 눈물 흘리는 소를 봤다더라. 그 뒤로 쇠고기를 못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영화 하면 (가난해서) 어차피 못먹을 텐데 그렇게 깨달음 얻고 안 먹는 게 낫겠다’고 했다.(웃음)”

임 감독은 동물에 관심이 많다. 현재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유기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한 개 워리의 앞날이 불투명하자 직접 사서 안전한 집으로 분양했다. 차기작은 옴니버스 영화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중 길고양이를 다룬 <고양이 키스>다. 그는 “소에게 연기를 시켰다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존중하고 잘 대해줬다. 힘들거나 피로해하면 쉬게 하고 배려했다”고 전했다. 개든 소든 좋은 마음을 주면 좋은 마음과 연기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공효진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쿨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여자 캐릭터가 필요했다. 시나리오상에는 30대 후반 여자였는데, 공효진은 나이만 빼놓고는 잘 어울렸다. 게다가 공효진에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떨 때는 발랄한 20대 같고, 어떤 때는 30대 중반 같다.”



임순례 감독


-김영필은 스크린에선 얼굴이 낯설다. 스스로도 ‘박해일 형’이라고 소개할 만큼 그와 느낌이 유사하다. 임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박해일 느낌을 좋아하는 건가.


“박해일은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을 보고 캐스팅했다. 김영필도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다. 어떻게 보면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셈이다.(웃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후반부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임 감독의 영화에선 낯선 분위기다.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 그렇지 않은 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전하는 이 가르침이 영화 주제와 연결된다. 일부러 색다른 걸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판타지를 구사했지만, 다른 감독과는 다르게 현실과 차별되지 않게 했다.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관객들이 헷갈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만 보면 애잔한 멜로영화 같다. 영화의 의도와 마케팅이 어긋나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스님이나 (극중 등장하는 절인) 맙소사, 연꽃을 마케팅할 수도 없고…. 멜로영화 보러와서 구도영화를 본다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덜 감각적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이게 뭐야’ 하기보다는 ‘예상과 다른 걸 봤지만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관객들이 임순례에게 무슨 멜로를 기대하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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