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킹'에 해당되는 글 4건

  1. 공포와 센티멘털, 스티븐 킹의 '리바이벌'
  2. 살아남기 위해선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돌로레스 클레이븐'
  3. 시스템이 만든 탐정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
  4.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



스티븐 킹(70)은 죽지 않았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처럼 그는 꾸준히 작품을 써낸다. 간혹 평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 수작도 섞여 있다. 2014년작으로 최근 국내에 번역된 '리바이벌'은 수작이다.  젊은 시절부터 스티븐 킹이 줄곧 보여줬던 공포와 어느덧 노년에 이른 작가의 여유가 어울렸다. 때로 으스스하다가, 때로 촉촉하게 센티멘털하다. 물론 결론은 센티멘털이 아니라 으스스. 


노년에 이른 록 기타리스트 제이미 모턴이 작중 화자다. 그는 여섯 살의 자신 앞에 나타난 젊은 목사 찰스 제이컵스와 가진 일생에 걸친 인연을 회상한다. 시골 마을에 부임한 목사 제이컵스는 활기차고 유능하고 친근한 태도로 모턴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아름다운 젊은 아내와 귀여운 아이가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뜨고(이 장면의 묘사는 역시 스티븐 킹답게 무시무시하다. 잔잔하게 나가다가 이런 장면을 넣는 걸 보면 악취미 같기도 하다), 제이컵스는 얼마후 예배 시간에 신성을 모독하는 설교를 하다가 마을에서 쫓겨난다. 제이미는 이후 그런대로 괜찮은 실력의 프로페셔널 기타리스트가 됐다가 약물에 중독돼 심각한 나날을 보낸다. 전기를 이용한 떠돌이 마술사가 된 제이컵스가 제이미 앞에 나타나 기묘한 전기 치료 방식으로 제이미의 마약 중독을 치료해준다. 제이컵스의 전기 사용법은 이후 소설의 핵심 소재가 된다. 


스티븐 킹의 많은 소설이 그렇지만, '리바이벌' 역시 '미국적'이다.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 나타난 젊은 개신교 목사라는 설정이나, 그가 테슬라 같은 괴짜 과학자를 연상시키는 전기 오타쿠라는 설정이 그러하다. 전기를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힘과 연결시키는 설정은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내가 더 끌린 건 이런 공포 문학의 요소를 끌어안는 아련한 회고조의 분위기였다. 록 기타리스트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주인공은 어쩌면 평범하고 어쩌면 비극적인 가족사를 간간이 돌이킨다. 어머니는 암으로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고, 사랑스러운 큰 누나는 제정신 아닌 남자를 만났다가 죽음을 맞았다. 남은 형제들은 그럭저럭 성공한 삶을 살았다. 가족의 슬픔은 큰 상처를 남겼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인생을 이어간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애송이 기타리스트 시절에 만난 첫사랑, 그녀와의 풋풋하고 서툰 연애,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사랑이 별 이유 없이 시드는 모습, 그리고 먼 훗날의 우연하지만 결국은 계획된 재회. 살다보면 슬프고 끔찍하고 잊고 싶은 기억들이 생기지만,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산다. 상처엔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는다. 물론 흉터는 남지만, 흉터 몇 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공포 문학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전언들이 '리바이벌'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리바이벌'의 또 하나의 교훈은 '공짜는 없고, 모든 것은 돌아온다'는 것. 생각해보면 스티븐 킹의 소설은 대개 그랬다. 깊은 우물에 빠트린 부인의 시체가 살아 돌아오고, 나쁜 교도소장은 결국엔 파멸한다. 인과응보, 뿌린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자주 배신당하는 세상이지만, 이 세상이 아니면 저 세상을 포함해 생각해서라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싶다. 스티븐 킹은 그럴 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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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지 않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얼마나 많이 썼는지, 꽤 읽었는데도 아직 남아있다. 언젠가 영화로도 제작된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추석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역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가정폭력 문제를 이보다 더 잘 쓰기가 쉬울까. 이른바 '순수문학'에선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여성이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겠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에선 복수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실에선 전자의 경우가 많겠지만, 우린 장르소설 속에서라도 복수를 꿈꾼다. 


영화화된 <돌로레스 클레이본>. 캐시 베이츠가 <미저리>에 이어 다시 한번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 영화에 출연했다. 



소설은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안주인 베라를 죽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온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1인칭 진술 형식이다. 돌로레스는 자신은 베라를 죽이지 않았지만, 사실 수십년 전 남편을 죽였다고 털어놓는다. 남편은 개차반이었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돌로레스가 참지 못해 대항하자, 이번엔 어린 딸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돌로레스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죽이기로 한다. 남편 살해의 모티브는 베라가 제공했다. 베라는 심술 궃고 까탈스러운 마나님인다. 베라와 돌로레스는 서로를 싫어하는 듯 보인다. 침대에 누워 거동을 못하는 말년의 베라는 일부러 똥을 싸 돌로레스를 골탕먹인다. 돌로레스 역시 베라를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친다. 그러면서도 둘은 은근하고 묘한 연대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제 너무 흔히 사용되는 말 '애증'이다. 소설의 핵심은 베라가 돌로레스에게 건네는 아래와 같은 충고다.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 못된 년이 되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사건이 한 판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베라와 돌로레스는 모두 범행 후의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이 죄책감은 스티븐 킹 식의 그로테스크한 판타지로 표현됐다. 끔찍하게 썩은 시체가 살아나 산 자에게 돌아오는 설정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에서 종종 나온다. 살아남기 위해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됐지만, 이 역시 일정 수준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스티븐 킹의 전언이다. 영원히 발 뻗고 편히 자는 죄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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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미량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의 '첫 탐정 추리소설'을 표방한다. 오랫동안 보스턴에 살아온 작가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을 소재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는 새벽부터 취업박람회에 줄을 서있던 가난한 서민들을, 훔친 메르세데스로 마구 치어 죽인 살인마가 등장한다. 살인마의 정체는 극 초반부터 밝혀진다. 어머니와 단둘이, 다소 이상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 이 청년은 얼핏 성실하고 모난데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에 대한 끔찍한 적의를 품고 있다. 킹은 청년이 연쇄살인마가 된 가족사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누구나 괴물이 되는건 아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타고난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재판을 받았다면 정신이상을 호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은퇴한 뒤 허무의 늪에 빠져있던 늙고 뚱뚱한 형사가 주인공이 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은 아주 새롭진 않다. 형사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그러면서 인생의 깊이를 적당히 갖춘 여인이 나타난다는 건 클리쉐다. 신경과민에 빠진 40대 여성, 똑똑하고 침착한 흑인 청소년이 형사의 조력자가 돼 범인 검거에 나선다는 건 익숙하진 않아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소설이고 드라마고, 그 숱한 범죄물에는 이미 온갖 탐정과 경찰과 범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티븐 킹이 마스터는 마스터다. 그리 독창적일 것 없는 요소들로 잘 읽히는 소설을 써냈다. 작가를 모르고 읽는다면, "천부적인 탐정소설 작가는 아닌데, 탐정소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럴듯한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초고를 알 수 없이 바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의 사례나, 킹이 스스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했듯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고 한 것을 봐도, 미국 출판계는 편집자의 권한과 능력이 무척이나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킹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스터 메르세데스> 원고 뒤에는 킹 뿐 아니라, 킹의 능력치를 잘 아는데다가 탐정소설의 구조까지 꿰뚫고 있는 막강한 편집자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이 '시스템'이다. 


킹이 타고난 탐정소설 작가는 아니지만, 타고난 공포 작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대목이 있다. 범인이 누군가를 독살하려고 만들어둔 음식을 범인의 어머니가 잘못 먹고 죽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묘사가 후덜덜하다. 대략 아래와 같다. 


이미 너덜너덜해질 지경으로 씹힌 그녀의 아랫입술이 보인다. 윗도리 앞섶에 묻은 피가 거기서 나온 피다. 적어도 일부분은 그렇다. (...) 그녀는 대답 대신 다시 행진을 시작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불룩 튀어나온 눈으로 천장을 잠깐 쳐다보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꺾는다. 등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베어링 위에 얹혀 있기라도 한 것 같다.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살짝 막힌 하수구로 물이 빠지려고 할 때 나는 소리다. 그녀의 입이 떡 벌어지고 토사물이 뿜어져 나온다. 토사물이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 위로 떨어지는데 맙소사, 절반이 피다. 



킹이 설마 쥐약을 먹고 죽어나는 사람을 관찰한 경험이 있을 리는 없을텐데, 대체 이런 광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걸까. 또 이런 글을 써나갈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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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소설도 재밌지만, <유혹하는 글쓰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있다"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죽음의 무도>도 읽어볼만 하다. 물론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책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타사에 나온 리뷰를 보니 '번역이 거칠다'는 평도 있던데, 킹 특유의 미국식 유머와 구어체가 섞여 있어서 번역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을 죽이면 정갈하고 읽기 좋겠지만, 번역자는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

 

먼저 퀴즈. 다이아몬드부터 쓰레기까지, 온갖 종류의 공포영화를 봤으며 스스로도 무시무시한 공포를 창조해내는 작가 스티븐 킹이 두려움에 떨다가 관람을 포기한 영화가 단 한 편 있다. 킹은 이 영화를 같이 보던 아들에게 “저 빌어먹을 영화를 꺼!”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정답은 글의 결말부에.

대중 소설을 경원시하는 독자도 스티븐 킹은 알 것 같다. 공포, 서스펜스, 판타지 등 장르를 아우르는 킹의 책은 전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이 판매됐다. 2010년 현재 <캐리>, <쇼생크 탈출>, <샤이닝>, <스탠드> 등 49권의 책을 냈다. 이 중 상당수가 영화화돼 젊은 관객에게도 친숙하다.

<죽음의 무도>는 킹의 첫번째 논픽션이다. 1981년 처음 독자와 만났으며, 30여쪽의 머리말을 붙여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 문학,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공포물에 대한 소개, 그것이 유통되는 이유,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뤘다. 즉 공포에 대한 문화비평, 창작론, 작품평, 짧은 자서전이다. 킹의 필체는 입담이 좋은 나머지 때로 수다스럽고 때로 구성진 욕도 내뱉는 아저씨같다. 물론 언급되는 텍스트들이 대개 미국 대중문화권에 속한 것들이라, 개별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읽는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킹의 비평은 차가운 평론가가 아니라 뜨거운 애호가의 자세를 닮아서, 재치 넘치는 표현을 읽으면 해당 작품을 찾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조차 액션 영화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대중성 만점의 레니 할린 감독”(딥 블루 씨), “영화 결말이 당신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미스트), “뻥이야! 그냥 장난삼아 넣어 봤어!”(처키의 신부).


킹을 비롯한 공포 소설가들이 기자, 비평가, 정치인, 대중에게 종종 듣는 질문은 이런거다. “사람들의 가장 끔찍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은 어떻게 해명하실 거죠?” 사실 어떤 이들에게 공포물은 모두 쓰레기다. 청소년이 무언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의 방에서 경찰이 가장 먼저 찾아내고 언론에 알리는 것은 악마를 숭배하는 록음악, 공포영화, 괴기소설 등이다.


킹은 어린 시절부터 공포물을 좋아했고, 이후 공포물을 창작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러므로 킹은 위의 질문에 대해 그럴듯한 답변을 준비해뒀다. “공포가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말하기 두려워할 만한 것들을 바로 직설적으로 말하고, 계속 짖어 대기 때문이다. 공포는 사회가 우리에게 억제하라고 부단히 요구하는 감정들을 운동시킬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또 “우리가 괴물스러움이라는 개념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열망하는 질서의 재확인이기 때문”이라는 것. 디오니서스적 무질서가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줌으로써 아폴로적 질서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공포물은 매우 보수적이며, 공포 작가는 규범의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공포물은 ‘유사 죽음’을 체험케하는 스릴 만점의 롤러코스터다.



공포는 때로 당대의 사회상과 연결된다. 킹은 자신이 겪은 1957년 10월 오후의 공포를 들려준다. 갓 10살이 된 킹은 극장에서 폭력적인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내용의 <지구 대 비행접시>를 보고 있었다. 비행접시들이 미국 수도를 공격하려는 찰나 영사기가 멈췄다. 관객이 웅성대자 곧이어 무대에 오른 극장 매니저가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우주 위성을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을…스푸우트니크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원인 모를 공포에 휩싸여있던 당대 사회는 ‘공포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지’였다.

그러나 킹은 ‘잘 만든 공포는 우리가 우리 자신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었던 마음 속 방의 비밀문을 찾아낸다’고 말한다. 공포는 좀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 상상하는 눈을 가졌지만, 논리와 합리에 길들여져가는 어른들은 눈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간다. 공포 작가는 한쪽으로 편중된 마음의 벽을 잠시 동안 부순다.


“우리는 자궁에서 무덤으로, 하나의 암흑에서 또 하나의 암흑을 향하여 추락하면서, 이전의 암흑에 관하여 거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앞으로 닥칠 암흑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이렇듯 단순하면서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들 사이에 끼어있는데도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룩하다고 할 만한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퀴즈의 정답은 <블레어 위치>다. 킹은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 명단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겁에 질린 10살짜리 어린아이로 퇴행했던”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다고 한다. 조재형 옮김.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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