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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마의 휴일2 (2)
  2. 로마의 휴일1

이날은 혼자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티볼리 같은 외곽지로 나가볼 생각도 했으나, 겨울이라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경우 로마 시내에서의 첫 행선지는 대개 콜로세오(라틴어로는 콜로세움, 현재 이탈리아어 표기는 콜로세오)가 될 것이다.

위로부터 콜로세오, 코스탄티노 개선문, 그 이후 포로 로마노의 고대 건물들, 코스탄티노 개선문은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인 콘스탄티노스가 정적을 물리치고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 문에 반해 프랑스로 뜯어가려 했으나 기술적인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파리에 유사한 형태의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로마식의 개선문은 세계 도처에 '개선문'이라 이름붙은 문들의 원형이 됐다. 심지어 평양에도 좀 더 모던한 형태의 개선문이 있다.

포로 로마노는 오래된 돌무더기. 이런저런 신전들이 있고, 카이사르의 화장터가 있고, 황제가 아내를 위해 지은 궁전이 있고, 여러 개의 개선문이 있다. 불에 그을리고 진흙이 묻고 비에 젖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손길을 탄 고대의 돌무더기. 고대 로마인들이 토가를 걸치고 오가는 모습이 영화의 오버랩 기법처럼 보였다. 돌 무더기가 너무너무 많아 대리석상 목 하나 자르거나 건물의 벽돌 하나 훔쳐 가방에 넣고 와도 티 안날 정도. 대체 저 신전 기둥들은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걸까.



로마의 분수들. 위로부터 판테온 앞의 분수, 나보나 광장의 분수 셋, 그리고 '분수 종결자' 트레비 분수. 로마엔 광장이 많았고, 그곳마다 분수가 있었다. 모두들 중세와 근대의 유명 조각가들 작품이다. 그리고 어디나 비둘기가 있었다.

트레비 분수는 뭐 굳이 가볼 필요 있나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좋았다. 저녁 무렵의 분위기가 운치 있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나도 즐거워졌다. 시스틴 성당의 프레스코화, 카라바지오의 유화, 피에타상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지만, 트레비 분수를 보면서는 무표정한 사람이 없었다. 그 왁자지껄함과 떠들석함에 기분이 들떴다. 웃음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물소리가 어울린 풍경.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의 유사 트레비 분수와 다른 점은 그 규모나 모양새가 아닌 흥겨운 분위기일터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성 마태 연작. 카라바지오의 작품. 참고로 로마에선 시스틴 성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마태가 소명을 받은 뒤 천사의 계시로 글을 쓰고 순교하는 모습이 세 그림에 담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선을 사로 잡은 건 왼쪽에 걸려 있던 <성 마태의 소명>. 성당의 설명에 따르면, 왼쪽의 마태와 그 동료들은 카라바지오 동시대인의 복장, 오른쪽의 예수와 베드로는 고대인의 복장이다. 성화에 동시대 복장 사람을 등장시키는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는데, 이같은 파격을 통해 카라바지오는 동시대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동시, 신에게 부여받은 소명이 당대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예수의 손짓은 마치 시스틴 성당 천정화 속 미켈란젤로가 그린 신의 손짓(이른바 <천지창조>의 그 신)과 비슷하다. 마태는 설마 자신은 아니겠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다른 이를 가르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손은 주화에 올려두고 있다. 신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선 현세의 재물은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르네상스 화가들 중에서 이토록 빛을 극적으로 사용한 이는 카라바지오가 독보적이었다.

카라바지오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당이었다. 성폭행, 폭력, 절도는 익숙한 일이었는데, 매번 유력자들이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는 대가로 보석금을 내주고 석방시켰다. 그렇지만 결국 카라바지오는 살인까지 저질러 멀리 탈출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개차반의 인생을 산 인간이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성스러움을 표현하는 손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회화사의 아이러니다. 훗날 렘브란트 등이 카라바지오 풍의 빛의 사용법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렘브란트는 어디까지나 세속화가. 카라바지오의 빛이 천상에 닿는다면, 렘브란트의 빛은 지상에 머문다. 이왕 노예일바에 귀족이나 부자의 노예보다는 신의 노예가 낫겠다.

위로부터 판테온 내부에서 본 천상으로 뚫린 돔, 판테온 외부,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아그리파가 지은 판테온은 그리스의 여러 신을 한꺼번에 모신 신전이었는데,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 유일신을 위한 신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헐지 않은게 다행이다) 성 베드로 광장이나 나보나 광장에는 저런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집트의 신을 위한 오벨리스크를 가져와 위에 십자가를 꽂아놓고 기독교식으로 전용했다. 응용력이라 해야 하나, 오만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저런 광장이 시내 곳곳에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대형 잔디밭이나 중앙 분리대가 아닌 진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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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6일 출장 기간 중 4일이 휴일. 말그대로 로마에서 보낸 휴일. 기가 막힌 일정에 투덜대며 떠난 길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볼거리가 많았다. 일정 중 짬을 내 로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루는 가이드를 따라 바티칸 투어, 다음날은 홀로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위로부터 바티칸 박물관 안뜰, 멀리 보이는 성베드로 성당의 돔, 이름 모를 대형 고대 조각상. 바티칸 시민은 교황과 전세계 추기경으로 구성됐다. 그러므로 한국의 추기경은 한국과 바티칸의 이중국적이다. 출산율은 이론적으로 0%.

이번 로마행의 최대 수확인 라오콘 군상. 라오콘은 트로이 사제였다. 그리스인들이 목마를 놓고 사라지자, 트로이인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하며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으려 했다. 라오콘은 목마를 의심했고, 그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때 이른 승리감에 도취된 트로이인들은 라오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날밤, 그리스의 신들은 자신들의 계략을 알아차린 라오콘에게 물뱀을 보내 세 부자를 살해한다. 기원전 2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대리석상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굴됐다. 신들의 계략을 알아차릴 정도로 영리하다는 '죄' 때문에 죽음에 이른 라오콘과 그의 무죄한 아들들.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혹은 도움을 청하며 바라보지만 이미 라오콘의 근육 곳곳에는 독이 뻗쳤다. 너무 많이 안 자의 숙명, 거대한 운명 앞에 선 왜소한 인간의 무력감. 2000여년전 고대인들의 달관의 마음과 숙련의 손길. 바티칸의 프레스코화도 훌륭했지만, 더욱 감동적이었던 건 이런 대리석상들이었다.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살아 움직였다. 대리석 안에 원래 형상이 있었고, 불필요한 부분만을 쳐낸 듯한 조각가의 손길.  


반면 기대를 잔뜩 품고 간 성베드로성당의 피에타상은 이런 모양이었다. 1970년대. 한 헝가리 수도사가 망치를 들고 뛰어들어 성모 마리아의 얼굴과 팔을 내려치는 바람에, 이후엔 저런 방탄 유리 뒤로 모습을 숨겼다고 한다. 어머니가 어찌 이런 수난을. 마음이 몹시 상해 얼마 머물지 않고 지나쳤다.

위로부터 성 베드로 성당의 화려한 내부, 성 베드로 성당의 야경. 세계 카톨릭의 본산이자 기독교 예술의 정수가 모인 성 베드로 성당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괴테는 카톨릭의 엄숙하고 기나긴 의식을 본 뒤 자신의 "개신교적 견유주의"를 언급했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에게 "햇빛 가리지 말아달라"는 유일한 부탁을 했듯, 괴테는 "신과 직접 소통할테니, 번거로운 의식일랑 사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괴테의 견유주의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카톨릭의 의식에도 무시못할 의미가 있다. 어떤 마음은 의식을 통해 생긴다. 머털이는 누덕도사 밑에서 물 긷고 밥 하고 청소 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절로 도술을 익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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