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슈퍼히어로물의 생명연장, '닥터 스트레인지'
  2. 안전하고 영리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3. 안티히어로적인 슈퍼히어로, <데드풀>



마블 슈퍼히어로에 조금 싫증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로 약간 생명 연장한 것 같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적 돌연변이(엑스맨),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갑부(아이언맨, 배트맨), 외계인(슈퍼맨), 신(토르)에 좀도둑(앤트맨)까지 나왔으니, 더 나올 것이 있나 싶다. 그렇게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이, 관객들이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결과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는 조금씩 시드는 조짐이 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향후 나올 또 다른 <어벤져스>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도 확보했다.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다소 오만한 인물이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채 고급 자동차를 운전하던 그는 운전 부주의로 큰 사고를 당한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위험하고 정밀한 수술을 거침없이 해내던 손은 망가져버렸다. 스트레인지는 재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네팔의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서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턴)을 만난 스트레인지는 특별한 능력을 전해받는다. 스트레인지는 스승을 도와 세상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당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를 막아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미국 현지에서 예고편 개봉 시점부터 논란이 있었다. 1960년대 원작 만화에선 아시아계로 설정된 에인션트 원을 영화 속에선 영국 출신 백인 여배우 틸다 스윈턴이 맡았기 때문이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 배역을 줄이는 표백(화이트워싱) 문제와 맞물려 반발을 샀다. 공개된 영화는 ‘동양의 신비’에 대한 서양식 고정관념에 적절히 기대면서도, 이에 매몰되지는 않는 영리한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식 의학기술, 이성, 물질주의의 신봉자인 스트레인지는 삶의 막바지에 몰린 끝에 동양의 대안적 가치를 찾아나서지만, 이를 선뜻 받아들이진 못한다. 에인션트 원이 내미는 동양의학 서적은 선물가게의 기념품 취급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경험은 환각물질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에인션트 원의 압도적인 능력 앞에 결국 무릎 꿇은 스트레인지는 제자가 되길 자처한다. 




그렇다고 스트레인지가 갑자기 교주 행세를 하는 건 아니다. 이성과 추론을 통한 서구식 회의주의를 간직한 그는 카마르 타지의 오랜 규율을 가볍게 어기는가 하면, 스승의 무오류, 절대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근대 아시아 개화파 지식인들의 사상이 ‘동도서기(東道西器)’였다면, 스트레인지는 ‘서도동기’를 따른다. 

영화의 분위기도 이 같은 방법론을 뒷받침한다. 고대의 엄숙하고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선 적재적소의 서구식 유머가 터진다. 예고편에서도 공개된 ‘와이파이 유머’가 대표적이다. 에인션트 원의 또 다른 제자 모르도가 스트레인지에게 기괴한 문자 쪽지를 전해준다. 스트레인지가 마법 주문이냐고 묻자, 모르도는 “와이파이 비번이야”라고 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본분에 걸맞게 탁월한 시각적 쾌감도 제공한다. 뉴욕, 런던, 홍콩의 혼잡한 도심 속 거리, 마천루들이 수직, 수평으로 쪼개지고 생성되는 모습은 이전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보지 못한 풍경이다. 배트맨, 아이언맨, 헐크가 제아무리 장쾌한 액션을 선보였다 한들, 이 액션은 단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과 공간을 재치있게 뒤섞음으로써 슈퍼히어로 영화 액션의 범위를 한 뼘 넓혔다. 

제아무리 기묘한 시각효과를 쓴다 해도, 영화의 중심엔 스타로서의 광휘를 뽐내는 배우가 있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자(컴버배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미켈슨),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스윈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레이첼 맥애덤스)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두루 갖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특히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으로 공전의 인기를 얻은 컴버배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첫 주연을 맡아 연착륙에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2018년 공개 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합류할 예정이다. 컴버배치의 개성있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또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어떤 화학작용을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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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 관리에 소홀해 한 달 늦게 업데이트 하고 있음. 난 이 영화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흥행 성공은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도 앞섬. 


과거 슈퍼히어로들은 외부의 적과 싸우기 바빴지만, 요즘엔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는 데 힘쓴다. 슈퍼히어로들이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방법론을 두고 대립하는 것이다. 사실 큰 힘을 가진 존재들은 자주 그랬다. 미국은 베트남 정글의 적은 물론 내부의 반전 여론에도 고전했다.

개봉 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두 영웅은 슈퍼맨이 고향별에서 온 외계인과 싸우느라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을 두고 대립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도 상황은 비슷하다.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으로 강력한 적을 물리친 건 분명하지만, 그 와중에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그간의 슈퍼히어로들은 그 어떤 국가, 법, 여론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이제 세계는 국제연합 산하기구가 슈퍼히어로를 관리하는 ‘소코비아 협정’을 체결하려 한다. 충직한 미군이었던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는 스스로 책임지는 정의를 주장하지만,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거부인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의외로 국제기구의 관리 체계를 지지한다. 때마침 캡틴 아메리카의 오랜 친구 윈터 솔져가 연루된 테러가 일어난다. 사건 해결의 방법론에 대해 수많은 히어로들은 캡틴 아메리카 편, 아이언맨 편으로 나뉘어 대립한다. 아이언맨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휘하에 들어가고, 캡틴 아메리카는 거부하는 셈이다. ‘내전(시빌 워)’이 시작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지만, 이 영화에는 <어벤져스> 못지않게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팔콘,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 블랙 위도, 워 머신 등 <어벤져스>의 등장인물은 물론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등 새로운 히어로도 출연했다. 이렇게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스파이더맨의 그물, 아이언맨의 미사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같이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무기들이 부딪치는 액션 장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또 무기만큼 다른 인물들의 개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자칫 어떤 인물은 뜬금없이 등장했다가 별일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영리하게도 인물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히어로가 저마다의 논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설득력 있게 행동한다. 대신 신(神)인 토르, 분노하면 이성을 잃는 헐크처럼, ‘군사행동에 따른 민간인의 피해(콜래트럴 데미지)’라는 영화의 주제 아래 다루기 힘든 캐릭터는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목적은 대학 교양수업에서 다룰 법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히어로 집단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정확히 두 편으로 갈라진 계기는 다소 작위적이다. ‘자위적 정의’를 추구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선택은 미국적 자유주의의 전통 아래서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이언맨의 선택은 갑작스럽다. 이전까지 여러 편의 영화에서 국가, 윤리와는 완전히 무관한 자신만의 부, 테크놀로지에 심취해 살아가던 아이언맨이 아들 잃은 어머니의 비판 한 번에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자신감을 얻은 앤서니·조 루소 형제가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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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아니 5년 전쯤이었다면 <데드풀>을 더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양각색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고 있다. 옛 슈퍼히어로들에겐 용기, 헌신, 정의감이 필수 덕목이었지만, 요즘 히어로들은 복수심, 공명심, 편집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데드풀’은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하다. 17일 개봉한 <데드풀>은 가장 안티히어로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라 할만하다. 전직 특수부대원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푼돈을 받는 해결사로 살아간다. 단골 술집에서 만난 연인 바네사 칼리슨(모레나 바카린)과는 침대 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미래를 약속한 사이다. 어느날 윌슨은 불치의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는다. 그런 윌슨에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은밀히 접근해 암 치료를 위한 비밀 실험을 제안한다. 윌슨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실험에 참가해 온갖 고통을 겪는다. 결국 윌슨은 강력한 자기 치유력을 가진 히어로로 거듭나지만, 부작용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갖는다. 데드풀이라는 이름의 히어로로 다시 태어난 그는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악당을 찾아나선다. 


데드풀(가운데)과 시네이드 오코너를 닮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 


<데드풀>은 오프닝 크레디트부터 작정하고 ‘B급 유머’를 선보인다. 배우, 스태프는 진짜 이름 대신 ‘감독: 돈만 많이 처받는 초짜’(실제 이 영화는 신인 팀 밀러가 연출), ‘제작: 호구들’ ‘쓰잘데기 없는 카메오’ 등으로 표기된다.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출발하는 첫 장면도 우스꽝스럽다. 데드풀은 다른 슈퍼히어로처럼 날거나, 첨단 기술로 무장한 탈 것에 오르는 대신, 노란 택시에 탑승해 인도인 기사의 인생 상담을 들으며 사건 현장으로 떠난다.


데드풀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등을 배출한 미국의 마블 코믹스 소속이다. 원작 만화 속 데드풀은 자신이 만화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였다. 영화 <데드풀>도 비슷하다. 수다스러운 데드풀은 끝없이 다른 슈퍼히어로 주인공들을 언급하며, 20년 이상 활황세인 할리우드산 슈퍼히어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예를 들어 <데드풀>에는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자비에 영재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에 들른 데드풀은 엑스맨 소속의 히어로 콜로서스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를 만난 뒤 말한다. “집이 이렇게 큰데 달랑 둘이야? 나머지 엑스맨은 출연료가 모자라 못나오나?”



데드풀이 되기 전의 웨이드 윌슨(오른쪽)과 그의 속궁합 잘맞는 연인. 


한국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은 영화답게 피가 튀고 인체가 절단되고 성적 유머가 난무한다. 지난해 <킹스맨>은 이같은 코드를 썼음에도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때는 킹스맨 집단이 가진 대의, 영국 귀족식 매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데드풀>은 별다른 포장 없이 폭력과 성의 코드를 노출한다. 점잖은 연인이 ‘데이트 무비’로 선택한다면, 얼굴을 붉힌 채 극장문을 나설지도 모르겠다. 


한국보다 1주 먼저 개봉한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지에선 가볍게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편 제작도 이미 확정됐다. 엔딩 크레디트가 끝난 뒤 나오는 쿠키 영상도 챙겨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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