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나 옷에만 유행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감정이나 태도는 유행을 탄다. 한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는 예전이면 열정이었겠지만 요즘은 스토킹이다.

<무적자>는 홍콩영화 <영웅본색>(1986)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은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쐈던 저우룬파(周潤發)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모습이 깊게 각인된 건 영화 속 남자들의 우정, 의리가 당대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김혁(주진모)과 이영춘(송승헌)은 무기 밀매로 부를 쌓고 있다. 김혁은 어머니와 동생 철(김강우)을 북에 남겨두고 떠나온 데 대한 죄책감이 있다. 철은 어머니를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게 만든 형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탈북해 남한까지 들어온다. 부하 조직원 정태민(조한선)의 배신으로 혁과 영춘은 조직에서 밀려난다. 경찰이 된 철은 무기 밀매 조직을 잡으려 한다. 원작에서 형제의 갈등은 범죄자와 경찰이라는 각기 다른 삶에 기인했다. <무적자>는 2010년 한국 실정에 맞게 탈북자라는 설정을 덧붙였다. 덕분에 인물들의 감정선은 원작보다 또렷해졌다.

그러나 <무적자>를 지배하는 감정은 루스 삭스나 잠자리테 안경같이 한때 유행했으나 지금은 착용하기 쑥스러운 아이템 같다. 형제의 우애, 친구의 우정은 보편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무적자>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구태의연하고 촌스럽다. 송해성 감독은 내적 결함 때문에 파멸로 향하면서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남성을 그리는 데 일가견을 보여왔는데, <파이란>이나 <역도산> 때와 달리 <무적자>의 남자들에겐 연민을 보이기 힘들다. <무적자>의 남자들은 관객이 불쌍하게 여기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선글라스를 올려 쓰는 제스처는 잊지 않는다. 제 감정과 멋에 먼저 도취되는 등장인물들에게 빠져들 관객이 많을까.

감독은 혁과 영춘이 함께 총을 휘두르는 모습을 ‘의리’라고 부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의리가 아니라 조폭의 패거리주의다. 능력이나 사람 됨됨이에 상관없이 동향 사람을 권력의 핵심에 심는 정치인의 순혈주의다. 이런 감정을 의리라고 부른다면, 의리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순제작비만 100억원대의 대작이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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