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해당되는 글 313건

  1. 에이리언의 기원, '에이리언: 커버넌트'
  2.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기, '특별시민'
  3. 영화는 영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4. 조금 달콤, 많이 씁쓸한 '토니 에드만'
  5. 공주는 없다. '미녀와 야수'
  6.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 '로건'
  7. 나와 너의 연결고리, '컨택트'
  8. 검사 영화의 최종판? '더 킹'과 한재림 감독 인터뷰
  9. 질투는 나의 것? '여교사'
  10.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너의 이름은.'
  11.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혁신적인, '라라 랜드'
  12. 프로파간다가 두렵지 않은 '판도라'
  13. 공식 포스터가 티저 포스터보다 촌스러운 이유, 이관용 인터뷰
  14. 마법과 현실의 크로스오버, '신비한 동물사전'
  15.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슈퍼소닉'
  16. 외로운 소년, 소녀의 진실과 거짓말, '가려진 시간'
  17.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웨스턴, '로스트 인 더스트'
  18. 슈퍼히어로물의 생명연장, '닥터 스트레인지'
  19. 매혹적이면서 구역질나는, '네온 데몬'
  20. 에로스톼 타나토스를 해결해주는 천사, '죽여주는 여자'와 이재용
  21. 애국의 품격,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22. 무엇에 쓰는 지옥인가,'아수라'
  23.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1)
  24.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 '카페 소사이어티'
  25. 영화에 미친 남자들, '연인과 독재자'
  26. 디펙티브 디텍이브의 활약, '범죄의 여왕'
  27. 시시한 악당, 시시한 영화,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28.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 '터널'
  29. 친일파에 대한 생각, 뒤늦게 '암살'을 보고 (1)
  30. 미진한 컴백, '제이슨 본'


재미 없지는 않지만, 기대만큼 좋지도 않은 '에이리언: 커버넌트'. 


여섯 번째 ‘에이리언’ 시리즈인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갓 깨어난 인공지능(AI) 데이비드(마이클 패스벤더)와 그의 창조자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피아노로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고, 차도 만들 줄 아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문득 묻는다. “누가 당신을 창조했습니까?” 

42세에 전설적인 SF호러영화 <에이리언>(1979)을 만든 감독 리들리 스콧(80)은 30여년이 흐른 뒤 <에이리언>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2012)로 돌아왔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 이후의 상황을 그린다. 우주 식민지 개척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나먼 목적지로 향하던 커버넌트호는 비행 도중 사고를 당한다. 예상보다 일찍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승무원들은 목적지 대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해 보이는 근처의 또 다른 행성으로 향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공포를 경험한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시도했던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초기 시리즈로 돌아간 듯 에이리언과 인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과 살육전을 더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스콧은 순수한 추격전과 폭력의 쾌감을 전시하는데서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1편 이후 3편의 후속작 <에이리언 2>(제임스 카메론·1986), <에이리언 3>(데이비드 핀처·1992), <에이리언 4>(장 피에르 주네·1997)가 더 제작됐지만, 그 어떤 영화도 내가 1편에서 던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이비드가 인간의 기원에 대해 묻듯, 스콧 역시 자신이 창조한 에이리언 세계의 시발점을 궁금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악당이 기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양들의 침묵>은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성장 배경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지만, 철창 뒤의 한니발이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에게 몇 마디 건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무서웠다. 1편 제작 당시 <에이리언>을 소개하는 마케팅적 설명은 ‘우주의 죠스’였다.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에이리언과 인간은 숨막히는 생존게임을 벌였다. 그때 에이리언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관객이 있었을까. 죠스가 왜 사람을 공격하는지, 죠스의 어미는 누구인지, 혹시 죠스가 핵실험에 의해 생긴 돌연변이는 아닌지 궁금해하는 관객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또 하나의 특징은 AI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인간적 감정까지 표현하는 AI 데이비드, 좀 더 이성적인 AI 월터로 1인 2역을 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이름이 배우 중 제일 처음 등장한다. 인류 최고 과학기술의 결집인 AI와 인류의 힘을 능가하는 괴생명체인 에이리언이 만나는 셈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과 미묘하게 다른 AI 패스벤더의 연기는 소름이 끼친다. 에이리언들이 인간의 육체를 갈가리 찢고, 피와 살과 뼈를 분리하는 풍경은 이 시리즈의 시각적 특징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끔찍한 풍경이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충분히 즐길 만한 수위를 유지하는 데서는 스콧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9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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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라든가, 개봉시점이라든가, 괜찮았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은 미적지근.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표현하지만, 막상 선거를 치르는 후보와 참모들은 ‘꽃길’을 걷지 못한다. 선거전(選擧戰)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오늘날의 선거는 ‘전쟁’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 개인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요즘 세상에선 선거 캠프 바깥의 유권자까지도 이 전쟁에 뛰어들곤 한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특별시민>에선 더 원색적이고 색다른 표현을 쓴다.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변종구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박인제 감독은 3년 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촬영 기간은 지난해 4~8월이었다. 그땐 천하의 용한 점쟁이라도 19대 대선이 2017년 5월 치러질 것이라고 예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새자유당 소속 변종구(최민식)는 민선 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이다. 3선에 성공하면 청와대까지 노릴 기세다. 변종구는 정치공작의 달인 심혁수(곽도원)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영입해 우세를 이어나간다. 젊고 패기 있는 광고인 박경(심은경)도 기발한 캠페인으로 변종구 캠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판세는 혼란에 빠진다. 상대 후보인 인권변호사 출신의 다함께미래당 양진주(라미란)는 미국 유학파 ‘엄친아’인 아들 스티브 홍(이기홍)까지 불러들여 치열한 추격전을 벌인다.

이념, 돈, 복수심, 승부욕, 권력, 열정, 미신이 뒤섞인 선거전 자체가 상업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건 자연스럽다. <특별시민>을 보면, 선거 열기가 유독 뜨거운 한국에서 왜 지금까지 ‘선거영화’가 안 나왔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특별시민>은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는 데서 시작해, 선거 결과가 나오는 데서 끝난다. 선거 이전과 이후를 거두절미한 선택은, 선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보인다.




과연 <특별시민>은 선거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변수들을 재현한다.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각 후보 진영은 그 책임 소재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가족 문제도 불거진다. 변종구의 부인은 고가의 미술품을 샀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술품 구입 자체가 범죄는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은 후보자는 물론 그 주변 인물에게도 고결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양진주 진영도 마찬가지다. 양진주의 아들은 미국 변호사이자 자전적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유명인이지만, 그를 유세에 활용하면 후보자의 이혼 문제, 아들의 국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선거전에서 “어떤 서울을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사라진다. 변종구와 양진주는 모두 ‘승리를 위한 승리’를 추구하는 검투사들처럼 보인다. “일단 이기자”고 생각하는 이 마키아벨리의 후예들은 공식적인 캠페인을 넘어, 도청하고 협박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검은돈을 쓴다.

다만, 선거의 다양한 변곡점들이 차곡차곡 쌓여 절정에 오르기보다, 평평하게 나열된다는 점은 문제다.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가 해결되고, 다음 변수가 발생했다가 또 해결되는 식이다. 매회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는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였다면 이런 방식이 어울렸겠지만, 상영시간 130분짜리 상업영화의 호흡으로서는 능란하지 않다. 각 에피소드의 성긴 틈새를 잇는 것은 최민식, 곽도원, 문소리(정치부 기자 정제이 역) 같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다. 정치인을 ‘악마화’하거나, 설익은 계몽주의를 내세우지 않는 것도 <특별시민>의 장점이다.

최민식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엔딩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인상적이다. 18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최민식은 “ ‘정치 현실도 징글징글한데 이런 시국에 또 정치영화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라며 “이 작품은 그 지겨운 데로 들어가서 끝을 보고 결론을 내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박인제 감독은 “권력욕의 상징인 정치인들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의 꽃이 선거라고 생각했다”며 “영화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렵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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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판 '공각기동대'를 영원히 기억할 걸작으로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원작'에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풍조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새로운 필드로 들어온 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은 <공각기동대>는 이후 나온 많은 SF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설정은 <매트릭스>(1999) <아바타>(2009) 등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기획 단계부터 여러모로 기대와 우려를 받았다. 복잡하고 기묘한 원작의 세계관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어떻게 소화할지 관건이었다. 주인공 ‘메이저’ 역에 스타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원작의 유색인 역할을 백인 배우로 대체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논란을 불렀다.

인간의 영혼과 기계의 신체를 결합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미래 사회.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는 강력 범죄를 담당하는 특수부대 섹션 9을 이끈다. 섹션 9은 첨단 로봇 기술기업 한카 로보틱스를 파괴하려는 범죄 조직을 추적한다. 메이저는 사건의 실체에 근접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원작으로부터 3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묻는 질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프고 병든 사람들은 이미 신체의 많은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인체의 확장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충격 이후, 인간은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공각기동대>는 원작의 정체성 질문을 주제적으로 확장하는 대신, 시각적으로 정교화했다. ‘잘하는 것을 잘하겠다’는 태도다. 빼어난 시각효과 기술력으로 인간과 기계의 기묘한 접점을 보여준다. 덕분에 주인공 메이저에게서는 ‘인간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다 상처를 입으면 ‘부상’이 아니라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요한슨의 아름다운 얼굴 역시 인조 피부가 벗겨질 때 섬뜩한 느낌을 안긴다. 걸음걸이도 조금 부자연스럽고, 대사엔 웃음기가 말라있다. 크고 작게 이같은 ‘의체’를 받아들인 인물들이 많다보니, 온전한 인간으로 남은 인물들이 오히려 어색하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로봇에게 느끼는 불쾌감을 뜻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정도는 아닐지언정, 음산하고 기괴한 시각효과와 음악으로 인해 <공각기동대>의 미래도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쪽에 가깝다. 

로봇끼리 싸우는 모습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신물나게 봤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 기계를 이식한 인간, 기계가 얽혀 싸운다. 액션 설계가 독특하기보다는 분위기가 독특해 인상을 남긴다. 스칼렛 요한슨의 ‘백인 메이저’는 후반부에 나오는 설정 덕에 ‘화이트워싱’ 논란을 교묘히 피했다. 다만 여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요한슨이 중성적이고 기계적인 메이저 역에 잘 어울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 정도 규모의 액션영화를 홀로 이끌 여배우가 요한슨을 포함해 몇 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29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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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것 같으면서도 우울하고,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슬픈 '토니 에드만'. 


딸은 가족 모임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일중독자다. 반려견이 죽은 뒤 적적함을 느낀 아버지는 예고 없이 딸이 일하는 루마니아로 찾아간다. 

새로운 계약 체결에 사력을 다하는 중인 딸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부담스럽다. 약간의 다툼 끝에 아버지는 독일로 돌아가는 척하지만, 얼마 뒤 ‘토니 에드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아로 분해 딸의 친구 모임이나 직장 주변을 배회한다. 우스꽝스러운 틀니와 검은 더벅머리 가발을 쓴 토니 에드만은 매번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며 딸을 당황스럽게 한다.

<토니 에드만>의 줄거리를 읽으면 일에 쫓겨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고, 부녀 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가슴 따뜻한 가족극이 연상된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아 토니 에드만의 황당한 언행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토니 에드만>은 뭉클한 가족애와 유쾌한 코미디를 통해 현대인이 되새길 만한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인기를 끌 만한 영화다. 할리우드가 2010년 <에브리씽 유브 갓>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였던 잭 니컬슨을 이 영화의 리메이크작으로 컴백시키기로 한 이유도 <토니 에드만>의 보편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꺼풀 들춰보면 <토니 에드만>은 보기보단 조금 복잡하고 비전형적인 영화다. 영화는 택배 배달부 앞에서 아버지가 벌이는 기행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배달부를 맞이한 아버지는 집 안에 동생이 있는 척하며 퇴장하고, 곧이어 토니 에드만으로 분한 아버지가 나와 택배를 받는다. 코믹하게 묘사되지 않았으면 다중인격자의 섬뜩한 기행처럼 보일 법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딸 앞에서 꾸미는 상황들도 심상치 않다. 아버지는 딸의 푸대접에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고 말했다가 금세 “농담이다”라고 정정하거나, 딸의 주요 거래처 사람들 앞에서 “딸 노릇을 대신 해줄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런 ‘과격한’ 농담들은 토니 에드만으로 변신한 뒤 정도가 심해진다. 스스로 독일대사라고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하면, 딸의 직장 상사에게 접근해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착한 창녀 셴테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한 사촌 슈이타로 1인 2역을 한다는 내용의 희곡이었다. 

<토니 에드만>의 딸은 혹독한 경쟁에 내몰리다 못해 스스로를 착취하기에 이르고, 아버지는 맨정신으론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생각에 토니 에드만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불러낸다. 토니 에드만은 서구 상류층 기업인의 관습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언행으로 조금씩 상황을 반전시킨다. 

조금씩 코너로 몰리던 딸이 즉흥적으로 꾸민 누드 파티는 영화 결말부 하이라이트다. 모두를 당황시키는 이 해프닝은 딸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목표의 파괴와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딸이 아버지의 기행을 이해하는 걸 넘어 심지어 그를 뛰어넘는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 <토니 에드만>은 해피엔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 채 허탈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의 표정은 여러 가지 뉘앙스를 안기는 결말이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며, 서구의 각종 언론들에게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다. 여성 감독 마렌 아데가 연출했다. 1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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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은 지금보단 연기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미녀와 야수'는 흥행했지만.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는 18세기 프랑스 동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흉측한 외모의 야수와 용기 있는 미녀가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호소력이 있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미녀와 야수>는 1991년 선보인 동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리메이크다. ‘미녀와 야수’ 모티브는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이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큼 광범위한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원작의 인기를 계승하는 동시에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프랑스 어느 고성의 왕자(댄 스티븐스)는 오만한 언행 때문에 저주를 받아 야수의 외모를 갖는다.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면 저주가 풀리지만, 문제는 무서운 외모의 야수를 사랑할 여성이 없다는 점이다. 인근 마을의 젊은 여성 벨(에마 왓슨)은 야수의 성에서 꽃을 꺾으려다 붙잡힌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의 포로가 된다. 벨은 차츰 야수 내면의 다정함과 지성에 끌린다.






<겨울왕국>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21세기 디즈니 영화 속 여성은 더 이상 왕자의 키스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다. <미녀와 야수>에서도 그렇다. 벨은 마을에 얼마 되지 않는 책을 빌리고 또 빌려 읽는 책벌레이며, 당나귀를 이용한 ‘세탁기’를 만든 발명가다. 벨이 야수에게 처음 반하는 계기 역시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야수의 지성이었다. 벨은 핍박받는 야수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말을 달릴 때 아름다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마을의 모든 여성이 선망하는 전쟁영웅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구애를 간단히 물리치는 당찬 성격도 가졌다. 개스톤이 겉으론 용맹하지만 사실 무례하고 소유욕에 사로잡힌 ‘옛날 남자’라면, 야수는 내면이 따뜻하고 지적인 현대적인 남성상을 구현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똑똑한 헤르미온이자, 스크린 밖에서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에마 왓슨은 ‘벨’이 되기 위한 여러 요소를 두루 갖췄다.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상을 통해 한국 기자들과 만난 왓슨은 “영화는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며 “여성이 동등한 사회의 일원임을 상상하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스톤의 친구인 르푸(조시 게드)가 성소수자처럼 보인다는 점도 <미녀와 야수>의 새로운 요소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지역 극장에서는 <미녀와 야수>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빌 콘돈 감독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는 포용”이라고 말했다.게드 역시 “사람들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개스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야수가 마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해 공격하려 하는데, 이런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녀와 야수>는 한동안 거의 만들어지지 않다가 <라라 랜드>로 재조명된 뮤지컬 장르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미녀와 야수>의 전반부는 <라라 랜드>의 성취가 특수한 사례였음을 확인시켜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은 분명 판타지이지만, 한동안 관객은 이 판타지적 관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두운 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벨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장르를 가동하지만, 왓슨과 여러 배우들의 노래와 춤은 마치 현실을 모방한 애니메이션을 다시 따라 연기한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벨과 야수의 본격적인 감정선이 드러나 관객을 몰입시키기까지는 그 어색함을 참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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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한동안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듯.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해석이다. 그 캐릭터는 창조된 것이지만, 관객이 좋아하는 한 살아있는 생명체나 마찬가지기 때문. 






늙고 지친 표정의 사내가 있다. 주름진 피부와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한쪽 다리를 전다. 리무진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자는 어디서든 술을 찾는다. 그는 퇴행성 뇌질환에 걸린 채 휠채어에 앉아있는 90대 노인을 봉양중이다. 근사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노년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한때 슈퍼히어로였다. 다리 저는 사내는 ‘울버린’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로건(휴 잭맨), 90대 노인은 ‘프로페서X’였던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다. 2000년 처음 나온 <엑스맨> 시리즈에서부터 이들 돌연변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 속에서도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프로페서X는 박해받는 돌연변이들을 위한 영재학교의 교장으로 세상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했고, 울버린은 두려움 없이 거친 세상을 떠도는 터프가이였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자>가 ‘수정주의 서부극’인것처럼, 28일 개봉하는 <로건> 역시 ‘수정주의 슈퍼히어로영화’라 불릴만하다. <용서받지 못한자> 속 늙은 총잡이는 젊은날의 살육과 무모함을 되새기며 쓸쓸한 삶을 살아갔다. <로건>의 로건과 자비에 역시 늙고 병든 채 ‘살인의 추억’에 괴로워한다. 

로건은 돈을 모아 요트를 사서 자비에와 함께 바다로 나가 말년을 보내려 한다. 한때 강력한 두뇌를 소유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비에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쫓기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로건에게 맡겨진다. 로건은 자신을 닮은 로라를 살리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 '로건'




<로건>의 공간적 배경은 멕시코 접경 지대다. 시대 배경은 2029년이라지만, <로건>이 떠올리는 장르는 고전 서부극이다.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땅,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에는 총 든 사내들이 득실댄다. 영화 속에 직접 인용되는 서부극 <셰인>의 마지막 대사는 <로건>의 주제를 함축한다. 셰인은 다시 황야로 떠나기전 소년에게 말한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해. 어쩔 수 없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더군. (…) 여기선 살인을 저지른 뒤 살 수 없어. 옳든 그르든, 그건 낙인이야. 돌이킬 수 없어. 이제 가서 엄마에게 말하렴. 모든게 잘될 거라고. 이제 이 계곡에 총은 더이상 없다고.” 

셰인처럼, 홀로 거칠게 살아온 로건 역시 지나간 시대의 죄업을 짊어지기로 한다.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피에 물든 손으로 평화롭게 은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로건>은 그만큼 잔혹한 액션을 보여준다. 신체훼손의 수위가 높다. 격렬하고 육중하게 설계된 액션장면 사이로 늙은 로건의 고단함과 슬픔이 묻어난다. 

휴 잭맨은 <로건>을 마지막으로 17년간 9번 연기한 울버린 역을 떠난다. 휴 잭맨 울버린의 마지막으로서는 처연하지만, 이런 결말이야말로 처음부터 울버린에게 준비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아이낳고 저녁마다 텔레비전을 보는 울버린을 상상하기는 어려우니까. 

어떤 사내는 예정된 고난을 담담히 맞이한다. 운명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진짜 슈퍼히어로다. <앙코르> <3:10 투 유마>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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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차기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타자와의 접촉은 위협인 동시에 축복이다.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동시, 그 경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2일 개봉한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세로로 선 거대한 조개 모양의 괴비행체(쉘)가 전세계 12개 지역에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쉘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각국의 과학자, 군인들은 이때 쉘 안으로 들어가 다리가 7개 달린 거대한 문어 모양의 외계인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내기 위해 나선다. 정부는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지구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의도 파악이 늦어지면서, 인류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컨택트>의 원작은 최근 가장 명망있는 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중편 <네 인생의 이야기>다. 테드 창은 지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소설들로 유명하다. 영화 역시 원작의 사색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접촉에서 예상되는 영화 줄거리, 즉 지구 자원을 둘러싼 전투라든가 환상적인 모험은 찾기 어렵다. 영화 전반부는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음성·문자 언어를 알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특히 뿌연 유리벽에 먹물을 원형으로 뿌린 듯한 헵타포드의 문자 언어는 요령부득이다. 헵타포드의 문자가 단지 이상한 모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헵타포드의 낯선 사유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외국어에 몰입하면 사고의 방식도 그 언어를 따라 바뀐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은 영화 후반부 중요한 반전을 예비한다. 




그러나 지성만으로 영화를 만들 순 없다. <컨택트>의 장점은 영화의 지적 논리들로 결국 감성을 자극한다는데 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 언어의 비밀을 알아낸 후 큰 혼란에 빠진다. 이 언어는 인류의 사유 체계는 물론, 루이스의 삶조차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루이스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전통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파악하면, 이는 커다란 행운일수도 불행일수도 있다. 루이스는 이 모든 감정과 사건들을 받아들인다. 그걸 ‘운명’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유와 논리의 도래 앞에서 ‘운명’이란 전통적인 어휘는 어딘지 낯설다. 그저 기존의 루이스가 파괴되고 새로운 루이스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광폭한 맹수나 자연 재해 아래 살아남으려 애쓰던 선사시대부터 그랬다. 새 사유 체계의 도래 앞에서 어떤 인간들은 어리석은 짓을 한다. 극중 중국 정부는 가장 먼저 외계인에 대한 공격을 결정한다. <컨택트> 후반부는 이 어리석은 결정을 막아내기 위한 루이스의 노력을 따라간다. 익숙하지만 낡은 사유를 고집할 것인가, 낯설지만 새로운 사유를 받아들일 것인가. <컨택트>는 그런 선택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사유 체계의 가능성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컨택트>는 가족애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감정을 그린 <인터스텔라>보다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그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닮았다. 

에이미 아담스가 루이스 역을 맡아 거대한 경이를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 제레미 레너가 그를 돕는 물리학자 이안 역을 맡았다. <그을린 사랑>(2010),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2015)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했다. 빌뇌브는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중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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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시사 끝나자마자 극장 아래 스타벅스에 가서 후다닥 쓴 리뷰. 사실 이 리뷰 이후에도 '더 킹'에 대해 언급한 기획 기사를 몇 번 썼다.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예전에 자주 쓰던 말로) '징후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태수(조인성)는 목포의 시시한 건달의 아들이다. 양아치로 고교 시절을 보내던 태수는 아버지가 검사 앞에 굽실대는 모습을 본 뒤,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태수는 ‘서울 법대 입학→시위에 휘말려 군입대→사법시험 합격→검사 임명→마담뚜 소개로 부유한 집안의 아나운서 임상희(김아중)와 결혼’의 코스를 밟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하루 30건씩 시시한 범죄를 처리한다. 지역 유지의 아들을 성폭행범으로 잡아넣으려던 태수는 대학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의 제안을 받는다. 사건을 덮으면 검찰 핵심 부서로 끌어주겠다는 것이다. 그 부서에는 굵직한 사건만을 맡아 처리하며 나라를 쥐고 흔드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이 있었다. 태수는 양심에 눈감고 강식의 수하가 된다. 아울러 고향 친구이자 ‘들개파’ 2인자인 조폭 최두일(류준열)과도 친분을 쌓아간다.

설날 전주인 18일 개봉하는 <더 킹>(감독 한재림)은 검사가 주인공이자 악당인 영화다. ‘조폭 같은 검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 킹>은 <내부자들>(2015), <검사외전>(2015) 같은 흥행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범죄영화의 주인공이 경찰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점은 최근 한국영화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는 한국의 영화 창작자들이 비대한 검찰 권력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줄거리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듯, 영화는 줄곧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어조를 유지한다. 영화 도입부에서 태수, 강식, 동철은 안동 하회탈이 대마초에 취해 웃고 있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차를 타고 가다가 큰 교통사고가 난다. 세 배우의 얼굴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와중에도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심각한 사회비판 드라마보다는, 좀 더 코믹하고 대중적인 해학극의 위치를 점유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최고 수준의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조인성, 정우성 두 배우는 늘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일한다. 두 배우는 일부 관객이 불편을 느낄 법한 욕설, 폭력을 직접 보이지도 않는다. 조인성이 간혹 내뱉는 욕설조차 살기가 있다기보다는 귀엽게 들린다. <아수라>의 일그러진 정우성이나, <내부자들>의 성적 묘사가 못마땅했던 관객이라면 안심해도 좋다. <더 킹>은 15세 관람가다.

‘진짜 힘’을 갖고 싶었던 태수는 강식을 자신의 멘토로 삼는다. 아직 일말의 양심을 버리지 못해 쭈뼛거리는 태수의 뺨을 후려치며 강식은 말한다.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역사 앞에서 인상 쓰지마.” 이에 대한 태수의 답, “부장님, 씨X. … 러브샷 한잔 하겠습니다!”는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는 명대사 후보다.

<더 킹>은 조폭, 언론과 유착한다든지,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든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과 정보를 거래한다든지 하는 검찰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재현한다. 검찰 개혁을 화두로 내세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게 굿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있다. 물론 영화는 이렇게 타락한 검찰이 ‘1%’라고 강조하긴 하지만, 여느 평범한 검찰 관계자가 이 영화를 본다면 말문이 막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총제작비 134억원대의 상업영화가 이런 내용을 당당하게 담고 있다는 건 검찰에 대해 가진 대중의 인상을 보여줄 뿐이다.



한재림 감독(42)의 <더 킹> 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평소 늦게 잠드는 습관이 있는 그는 아침 일찍 전해진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비몽사몽간에 전해 들으며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하루 종일 소파에 파묻혀 울었고, 이후 1주일간 우울의 늪에 빠졌다. “속 시원하게 정의를 이야기한 사람이 그들(주류 기득권층) 권력의 단단함 앞에 패배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영화 속 잘나가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의 말이 ‘그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역사 앞에서 인상 쓰지 마.”

<더 킹>은 설날 연휴를 앞두고 개봉해 <공조>와 함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개봉 13일 만에 426만 관객을 모으며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한 순진한 검사가 권력의 단맛에 빠져 ‘왕’이 되려다가 좌절하는 이야기인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을 만났다. 

- <더 킹>은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다.

“기존 한국영화들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피해자 입장에서 봤다. 답답하고 힘들고, 영화가 끝나도 감정적 해소가 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무너지지 않는 권력의 성벽이 궁금해졌다. 노무현 당선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사건이었을까.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시스템을 이해하자’고 생각했다. 분노가 아니라 이성으로 그들의 시스템에 대응하자는 생각이었다.”

- 수양대군과 김종서 이야기를 다룬 전작 <관상>도 그렇고, 권력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조선시대부터 권력을 숭상하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 그런 것들이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낳고 있다. 반면 그런 인식을 비트는 쾌감도 있다. 대단하면서도 하찮은 권력의 양면성에 관심이 있다.” 

- 권력을 이야기하려면 재벌, 대통령도 있을 텐데 왜 검사였나. 

“관객이 스스로 권력에 다가서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 했다. 검사는 사법고시라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순식간에 권력에 들어간다. 반면 평범한 관객이 재벌,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더 킹>의 핵심 장면은 펜트하우스에서의 파티다. 초임 검사 박태수(조인성)는 한강식이 주관하는 이 화려한 파티에서 초심을 버리고 권력에 투항한다. 아름다운 여자들과 잘 차려입은 남자들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태도로 순간을 즐긴다. 파티가 끝날 무렵엔 어디선가 불어온 깃털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 영화 분위기는 의외로 무겁다기보다는 코믹하다. 

“펜트하우스냐 룸살롱이냐 선택해야 했다. 후자는 혐오스럽고 거리감이 느껴지니, 전자로 가서 재미있고 경쾌하게 만들려 했다. 깃털처럼 화려하지만 금세 가라앉고 이후엔 쓰레기가 되는 권력을 보여주려 했다.”

- 정우성, 조인성이 검사라니, 외모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조인성에게 역할을 제안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어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흔쾌히 응했다. 박태수는 한강식처럼 되고 싶어 한다. 한강식은 누가 봐도 ‘폼’이 나야 했다. 이런 사람이 노래하고 춤추며 천박하게 놀 때 그 아이러니가 더 크게 느껴진다. 정우성이 ‘딱’이었다.”

- 박태수의 삶은 노무현과 겹친다. 별 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한때 권력의 맛을 본다. 그러다깨달은 바 있어 정치에 투신한다. 노무현이 서거한 날 박태수가 무너지고, 노무현 지역구였던 종로에 박태수도 출마한다. 

“노무현을 생각하면서 박태수 캐릭터를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자유다.”

-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끝나는 결말이 ‘낯간지럽다’는 말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바로 ‘우리한테 힘이 있다’는 그 말이다. ‘닭살’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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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영화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난 이 영화가 좋았다. 



새해 벽두부터 <여교사>를 본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할 만하다. 건조하고 단순한 영화 제목은 격렬하고 음험한 감정, 사건을 숨기고 있다.

효주(김하늘)는 사립고등학교의 계약직 과학 교사다. 불안정한 일자리, 무능하고 뻔뻔한 남자친구(이희준) 때문에 효주는 늘 피로하고 짜증이 난 상태다. 어느 날 이사장의 딸인 혜영(유인영)이 과학 정교사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다. 효주는 학교 후배였다면서 살갑게 구는 혜영이 못마땅해 쌀쌀맞게 대한다. 효주는 임시 담임을 맡은 반의 무용 특기생 재하(이원근)와 혜영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를 빌미로 효주는 혜영을 위협한다. 효주 역시 재하에게 조금씩 끌린다.


영화 대부분은 사립고등학교라는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공간에서 진행된다. 효주는 학생들에게 위압적으로 구는 교사지만, 임신·출산을 하거나 교장·교감의 지시에 싫은 기색을 보이면 언제라도 교사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는 처지다. 그런 효주에게 정교사 자리는 삶의 불안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그 자리는 혜영에게 간단히 돌아간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고 어딘가 화난 표정의 효주는 애초 젊고 예쁘고 상냥하고 부유한 혜영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마 혜영은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은 사람이 아니겠지만, 효주에겐 혜영의 존재 자체가 악의다. 세상이,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반영한 <여교사>가 잔인한 이유는 효주가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과 질투심에 잠겨드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효주가 마음을 다스려 조직과 자신 중 누구도 다치지 않는 결과를 이끌어낸다거나, 불평등한 사회에 통쾌하게 복수하거나, 그도 아니면 숭고하게 희생해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다면 차라리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교사>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여교사>는 매우 극적이되 많은 관객이 기대하거나 원치도 않은 방식의 파국을 연출한다. 마치 ‘이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인물의 감정과 사건을 그곳으로 몰고 간다. 

김태용 감독은 2014년 <거인>으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한 신예다. <여교사>는 인간의 감정을 탐구할 때, 여느 창작자라면 멈출 법한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영화다. 이는 즐겁지만 또 괴로운 일이기에, <여교사>를 기꺼운 마음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하늘은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달콤 쌉싸래한 멜로 주인공으로서의 강점을 보여온 배우지만, <여교사>에선 이전에 본 적 없는 서늘하고 냉소적인 표정을 보여준다. 김하늘 이미지의 대비가 <여교사>를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든다. <베테랑> <부당거래> 등 대규모 흥행작을 만들어온 강혜정·류승완 부부의 제작사 외유내강이 제작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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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방한한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는 지브리 같은 대형 스튜디오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작업해온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 가깝다고 함.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기대는 꾸준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도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의 어느 한 측면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이며 후보군에서 탈락하곤 했다. 

신카이 마코토(43)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과 이를 감싸는 서정성으로 인정받아왔다.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등은 각종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며 신카이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진 못한 상태였다. 

최근작 <너의 이름은.>은 다르다. 일본에서 지난 8월 개봉해 지난주까지 관객 1640만명, 흥행수익 213억엔(약 2189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은 역대 일본 영화 흥행 2위 기록이다. 

미츠하는 카페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의 여고생이다. 따분한 마을 분위기, 일본 전통의 신사 의식을 치러야 하는 가업 때문에 늘 답답한 상태다. 어느 날 미츠하는 도쿄의 남고생 다키가 된 꿈을 꾼다. 다키 역시 난생처음 본 시골 마을의 여고생 미츠하가 된 꿈을 꾼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둘은 이것이 꿈이 아니라 일주일에 2~3일 정도 몸이 뒤바뀌는 현상임을 알게 된다. 둘은 스마트폰의 일기를 통해 서로에게 전할 말들을 남긴다. 1000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혜성이 점차 지구로 다가오고, 몸이 뒤바뀌는 현상은 갑자기 멈춘다. 다키는 미츠하를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너의 이름은.>의 초반부는 전형적인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띤다. 밝고 명랑하고 코믹하다. 그러면서도 전통의 무게에 짓눌린 청춘, 자유로워 보이지만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청춘의 고민도 살핀다. 미츠하의 몸에 들어온 다키는 활발한 체육 활동을 통해 남성성을 드러내고, 또래 아이들은 이에 반한다. 다키의 몸에 들어간 미츠하는 함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상대의 환심을 산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로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러한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드러낸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너의 이름은.>은 급격히 얼굴을 바꾼다. 예기치 못한 설정상의 반전이 일어나고, 분위기는 어둡고 급박해진다. 임박한 재난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에선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읽힌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겪은 한국 관객들도 <너의 이름은.>의 후반부 전개에 무감할 수 없다. 

<너의 이름은.>은 대중성에 더해, 그 안에 담긴 생각의 깊이와 상상력, 표현력 역시 만만치 않다. 신카이 마코토는 “지금까지의 작품은 제 생각을 어떻게든 성립시키기 바빴다”며 “(<너의 이름은.>은) 우선은 ‘재미’를 위해 여러 요소를 쌓아 올리고 겹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랜 수련 끝에 세상에 나온 고수를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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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0분을 그냥 멍하니 쳐다봄. 


때론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다. 위대한 전통을 가진 문화권은 그래서 강하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통은 할리우드에 있다. 할리우드는 때로 지지부진하거나 비틀거리지만, 금세 기력을 회복해 새로운 영화들을 쏟아낸다. <라라 랜드>는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21세기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매혹시킨다. ‘황홀하다’ ‘마법 같다’는 표현은 이런 영화를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로스앤젤레스.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스튜디오 내의 카페에서 일하며 수시로 오디션을 보지만 매번 낙담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시류에 맞지 않는 1950~1960년대풍 프리 재즈를 좋아하는 탓에 별 볼 일 없는 연주 경력을 이어간다. 

우연히 만난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 미아는 그저 그런 오디션에 응하기를 그만두고 스스로 대본을 쓴 1인극 무대를 준비한다. 생계를 고민하던 세바스찬은 학창 시절 라이벌이자 대중적인 재즈 음악을 추구하는 키이스(존 레전드)의 밴드에 들어간다.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줄거리인데다가 별다른 반전도 없다. 이렇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활용된 뮤지컬 테크닉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다. <라라 랜드>는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차량 속 승객들이 갑작스럽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5분간의 롱테이크 오프닝부터 관객의 혼을 뺀다. 이 한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3개월을 리허설했고, 실제 고속도로에서 단 한 차례의 촬영으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주연 배우들은 실제로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전문 가수처럼 뛰어나진 않지만 인물의 감성을 전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 석양 무렵의 로스앤젤레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두 남녀가 함께 추는 탭댄스 역시 6분간의 롱테이크로 완성됐다. 빼어난 피아니스트가 돼야 했던 라이언 고슬링은 몇 달간의 혹독한 연습 끝에 모든 연주를 실제로 해냈다. 눈을 현혹하는 현란한 편집 기술 대신, 오직 다채롭게 몸을 쓸 줄 아는 배우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할 말을 다한다.






<라라 랜드>에서 사용된 테크닉은 매우 고전적이다. 2.55:1이라는 화면 비율은 텔레비전에 대응하기 위한 1950년대 할리우드 기술 혁신의 산물이다.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두 남녀 배우는 와이어에 매달려 별을 배경으로 날아오른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유치하고 촌스럽기는커녕 최면에 걸린 듯 아름답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대안적 연애담을 상상하는 종반부의 한 장면은 시간을 자유롭게 응축하거나 확장하는 영화 매체 고유의 장점을 영리하게 사용한 대목이다. <이유 없는 반항> <사랑은 비를 타고> <쉘부르의 우산> 같은 고전의 영향력도 확인할 수 있다.

눈과 귀가 행복해지는 영화지만,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는 영화는 아니다. 거대한 벽처럼 가로막힌 현실 앞의 절망, 인생의 다음 단계로 발을 디딜 때 필요한 용기와 지혜, 아름답지만 쓸쓸한 젊은 날 사랑의 추억은 많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모티브들이다. 

이렇게 감정과 기술을 능숙하게 다룬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올해 불과 31세다. 전작 <위플래쉬>로 주목받은 그는 <라라 랜드>를 통해 미래의 할리우드를 이끌 만한 확실한 재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라 랜드>의 제작비는 2000만달러로 추정되는데, 이는 <위플래쉬> 제작비의 10배다. <라라 랜드>는 일찌감치 내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라라 랜드>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엠마 스톤은 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7일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며, 아이맥스 버전으로도 볼 수 있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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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보니, 감독은 이 영화의 전형성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아무튼 그 목적은 일정 부분 달성됐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으니까. 



재난영화인 줄 알았는데 공포영화다. 어쩌면 ‘한국의 원자력발전 정책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의 프로파간다 영화다.

총제작비 150억원대가 투입된 한국 영화 <판도라>가 29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경남 어느 지역을 연상시키는 40년 된 원전 소재지가 배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원전이 가져다 준 얼마간의 일거리에 반색하면서도, 노후한 원전의 안전성이 늘 불안하다. 원전 노동자들은 출근할 때마다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힘겹게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날 이 지역에 예기치 못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원전이 극도로 불안해진다. 원전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전이 폭발해 방사능이 누출된다. 주변 주민은 물론 전국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 역시 거대한 재난 앞에 무기력할 뿐이다.

<판도라>가 마스크 쓴 살인마, 좀비, 유령이 출몰하는 공포영화보다 공포스러운 이유는,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지는 않겠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박정우 감독은 시사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배경은 90%가 현실적이고, 사고 이후 벌어지는 상황, 양태는 최대한 과학적·논리적 틀 안에서 구현했다”고 말했다.






지진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면, 원전 재앙을 키우는 것은 인간이다. 정부는 전문성이 전혀 없는 ‘낙하산’ 인사를 소장으로 앉히고, ‘예스맨’들을 간부로 기용한다. 오히려 원전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한직으로 발령낸다. 사고 수습도 엉망이다. 

대통령은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세 국무총리는 “국가 경제”라는 명목으로 사고를 덮으려고만 든다. 주민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거나, 사건을 보도하려는 언론을 ‘유언비어’ 운운하며 통제하려는 건 최근 한국 재난영화 속에서 자주 묘사된 정부의 모습 그대로다. 

<해운대> <터널> 같은 재난영화와 달리, <판도라>에는 유머가 거의 없다. 지진이 일어나는 20여분쯤부터 끝날 때까지 원전 사고와 그에 이어지는 전국적인 패닉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상영시간 136분의 상업영화로서는 모험적인 일이지만, 제작진은 무능한 정부 대신 직접 원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뛰어든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묘사로 영화에 온기를 남기려 한다. 가족애라는 감정으로 끈끈함을 더하는 건 대부분의 한국형 재난영화가 취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판도라>에 새로운 건 ‘원전 재난’이라는 소재뿐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컨트롤타워,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소시민 영웅들, 그들의 친구와 가족이 보여주는 우정과 사랑 등은 모두 익숙한 요소들이다. 길고 감상적인 음악과 함께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는 방식 역시 새롭지 않다. 말하자면 <판도라>는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가 끝나면 “한국은 원전 밀집도 1위 국가”라는 내용의 자막이 흘러나온다. 한국이 원전을 폐쇄하기는커녕 신규 원전을 짓고 있다는 사실도 친절히 알려준다. 극중 인물들도 원전의 위험성을 어색할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다. 제작진은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안전한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클리셰와 설명은 감수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김남길, 정진영이 원전 직원을 연기하고, 김명민이 대통령 역으로 특별출연한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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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감독, 가끔 제작자 인터뷰를 하지만 그외 영화인 인터뷰를 할 일은 많지 않다. 포스터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책도 그렇고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한 편의 영화를 가장 먼저 세상에 소개하는 이미지는 뭘까. 영화 속 영상의 일부도, 배우의 스틸 사진도 아닌 영화 포스터다. 많은 경우 포스터 디자이너는 영화가 전혀 촬영되지 않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구상한다. 포스터는 영화와 대중을 최전선에서 연결하는 이미지다.미지 원본보기
이관용 스푸트닉 대표(44)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에서 시작해 <범죄와의 전쟁> <명량> <터널> 등 300여편의 포스터를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터 아트디렉터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포스터 51컷과 그 뒷얘기를 소개한 <디스 이즈 필름 포스터>(리더스북)를 최근 펴냈다. 책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 포스터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것들을 알아봤다.

■왜 영화의 공식 포스터는 티저·해외용 포스터보다 촌스러운가지 원본보기
“당연하다. 티저 포스터(공식 포스터에 앞서 만드는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충실히 담기보다는 시각적인 충격을 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다. 해외용 포스터 역시 상업적인 기능보다는 디자인 요소를 강조한다. 해외용 포스터에는 한국 배우의 사진을 잘 담아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어차피 한국 배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보다는 스토리, 장르 같은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게 만든다. 포스터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배우의 얼굴이 없으니 공간에 여백이 생기고 화면 구성을 세련되게 할 수 있다. 다만 배우 사진을 이용한 포스터에도 굉장한 디자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우 사진을 크게 쓰는 할리우드 포스터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요즘엔 조금 달라졌다. 그때보다 할리우드 영화가 발전하면서 포스터도 세련돼졌다. 영화의 정보를 충실히 전달하는 데에는 할리우드 포스터만 한 것이 없다. 요즘엔 한국 포스터들도 정보와 디자인적 감각을 접목한 할리우드 포스터를 따라하는 추세다.”


■어떻게 영화를 찍기도 전에 포스터를 만드나

"포스터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와 내용을 정하는 ‘아이데이션’이다. 아무리 훌륭한 표현 기법과 형식을 갖췄더라도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없는 포스터는 좋은 포스터가 될 수 없다. 시나리오에서 인상 깊었던 지문과 대사를 뽑아내 거기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우연히 발견한 사진으로 단초를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차>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작나비를 씨앗 삼아 이미지를 연상했다. <화이>는 화분 속에 감춰져 납치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소년의 다리에 식물 뿌리를 합친 시나리오 표지를 디자인했다. 디자이너로서 문학적 메타포에서 출발하는 포스터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의 포스터를 참고하는 게 위험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했다가는 바로 악플이 달린다. ‘인류의 미술문화유산을 활용하자’는 편이다. 렘브란트, 카라바조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참조한다.”






■포스터 만들기 좋은 장르가 따로 있나

“가장 실험적인 영화 포스터가 만들어지는 장르는 공포 영화다. 공포 영화의 경우 영화적 상징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포스터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때는 연무로 가득한 강의실 칠판 위에 형광등 두 개를 조명 삼아 찍었다. 화면은 거칠고 배우들의 얼굴도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배우의 얼굴보다는 포스터 전체의 분위기와 디자이너가 뽑은 의미심장한 상징이 도드라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어둠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건 포스터 디자이너들에게는 대단한 자유다.”



■관객, 제작자, 투자자의 요구가 모두 다를 때 어떻게 조율하나

“포스터가 공개되면 영화 사이트에선 이런저런 댓글이 달리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일반 관객과 영화팬의 취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기준이 되는 건 일단 일반 관객이다. 분명한 건 포스터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구현하는 ‘클라이언트 잡’이라는 점이다. 요즘엔 디자이너들도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며 현대미술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스터를 만들 때는 사회적 요구, 개인적 욕구를 제쳐두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디자이너의 사명이다. 내 생각에 더 좋은 시안이 있다 하더라도, 채택되지 않으면 그럴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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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가 향후 먹거리를 장만한듯. 에디 레드메인의 오타쿠스러운 해석이 흥미로웠다. 


외로운 고아 소년이 선량하고 강인한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소설, 영화로 나오며 지난 20년간 가장 사랑받은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소년·소녀들은 해리 포터의 성장담에서 어떻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지, 두려움과 악을 이기는 용기는 어떻게 얻는지, 꿈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것이기에, 많은 성인 독자와 관객도 당당하게 해리 포터의 팬을 자처했다.

해리 포터가 강력한 악당 볼드모트를 무찌르면서 장대한 소설과 영화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해리 포터 세계관의 매력은 빛바래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영화판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는 이 영화의 스핀 오프 시리즈를 기획했다. 소설 원작자인 J K 롤링도 흔쾌히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사용된 한 교과서에서 제목을 따왔다. 롤링은 팬들을 위한 보너스 형식으로 실제 이런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책은 말 그대로 신비한 동물을 항목별로 정리한 사전 형식이었다. 그러므로 <신비한 동물사전>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되, 줄거리는 영화를 위해 완전히 새로 창작된 셈이다.

1926년, 악한 마법사 그린델왈드가 유럽에서 큰 테러를 저지른 뒤 종적을 감춘다. 미국의 마법 세계는 테러의 공포, 인간들에게 발각될 위험에 크게 긴장한 상태다. 영국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가 의문의 가방을 든 채 뉴욕에 도착한다. 뉴트는 세계를 여행하며 신비한 동물을 구조해 가방 속에서 보살피고 있다. 동물 몇 마리가 가방 속에서 탈출해 뉴욕은 더욱 큰 혼란에 빠진다. 미국 마법 의회의 안보 책임자인 그레이브스(콜린 파렐)는 허가 없이 동물을 들여온 뉴트를 체포한다. 뉴트는 영문을 모르는 인간 제이콥, 마법사 자매인 티나와 퀴니의 도움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남은 해리 포터 팬들의 푼돈을 긁어모으기 위한 억지 프로젝트는 아닐까. 의구심은 초반 10분 만에 사라진다. 오프닝에서는 ‘예언자 일보’가 마법 세계에 드리운 테러의 공포를 전한다. 인간은 인간대로 낯선 자들을 경계한다. 영화 배경은 1920년대지만, 서구 세계의 테러리즘 공포, 무슬림 등 낯선 자들에 대한 배척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현실의 어두움을 환기시키자마자 재빨리 아기자기한 마법 세계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뉴트의 가방 속에서 도망친 신비한 동물들이 뉴욕에서 펼치는 소동이 그 핵심이다. 오리너구리를 닮은 ‘니플러’는 보석이나 동전같이 반짝이는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장난꾸러기다. 작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보우트러클’은 뉴트의 옷깃 속에 숨어있다가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다. 날개 달린 뱀처럼 생긴 ‘오캐미’의 알은 은으로 돼 인기가 많다. 신화적 상상력과 대중문화적 재미를 갖춘 동물들이 스크린을 마음껏 활보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장점은 정의. 우정, 박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원대하면서 흥미로운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데 있었다. <신비한 동물사전>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세계 사회에서 관용, 공존 같은 가치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이지만, 때마침 나온 <신비한 동물사전>은 이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반격처럼 느껴진다. 어떤 가치는 너무나 깨지기 쉬워 때론 지키기 힘들지만,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음을 <신비한 동물사전>은 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인 덤블도어, 레스트랭 같은 이름을 언급하면서 향후 시리즈 전개에 대한 ‘떡밥’을 던진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영국 출신 명우들의 향연과 같았는데, <신비한 동물사전>도 비슷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에디 레드메인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콜린 파렐 정도를 제외하면 캐서린 워터슨, 앨리슨 수돌, 댄 포글러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지만, 캐릭터 구현 능력에 있어서는 흠잡을 데 없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2> 등 마지막 4편의 ‘해리 포터’를 연출한 데이비드 예이츠가 감독했다. 워너 브러더스는 앞으로 2년에 한 편씩, 총 5편의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먹고살 양식을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창기부터 마법같이 대중을 홀리는 볼거리였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아름다운 극장 안 마법 세계와 어두운 극장 밖 현실 세계를 매혹적으로 뒤섞는 데 성공했다.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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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2집 같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그저 무언가 타고나야 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96년 8월 10, 11일 영국 넵워스에서는 2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 예매를 시도한 사람만 260만명이었다. 공연의 주인공은 1990년대 영국 최고의 밴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정식 데뷔 싱글 ‘슈퍼소닉’을 발매한 건 1994년 4월이었다. 오아시스가 영국을 넘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밴드로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에 불과했던 셈이다.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슈퍼소닉>(감독 맷 화이트크로스)은 오아시스가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을 치르기까지 겪었던 짧지만 격렬했던 사건들을 그렸다. 

영화 시작부터 ‘f’로 시작되는 욕설이 섞인 대화들이 들려온다. 오아시스의 핵심인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노엘 갤러거와 그의 5살 연하 동생인 보컬리스트 리암 갤러거의 말들이다. 갤러거 형제는 오아시스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맨체스터의 중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는 밴드를 결성해 지역의 소규모 클럽들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같은 연습실을 사용하던 밴드를 따라 글래스고에서 열린 페스티벌 무대에 어부지리로 오르게 됐고, 공연 이후 음반사 관계자의 눈에 들어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갤러거 형제는 오만한 언변으로 유명하다. <슈퍼소닉>을 보면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엘은 어느날 집에서 홀로 곡을 써 다음날 밴드 멤버에게 들려줬는데, “니가 쓴 거 아니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무명 밴드의 작곡가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나 좋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 곡이 ‘리브 포에버’였다. 녹음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은 어느 새벽에 멤버들은 야식이나 먹자며 중국음식을 사왔다. 노엘은 그 짧은 틈을 타 곡을 썼는데, 그 노래가 ‘슈퍼소닉’이었다. 데뷔 음반인 ‘데피니틀리 메이비’ 녹음 과정에서도 멤버들은 매일 술을 마시고 마약에 취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였는데, 그러면서도 매일 1곡씩 녹음을 마쳤다. 때로 그들에겐 음악보다 축구 경기 관람이 더 중요한 일과처럼 비춰질 정도였다. 노엘은 쟁여두기라도 한듯 곡을 내놨고, 리암은 어렵지 않게 노래했다. 

음반이 나온 뒤 모든 것이 변했다. 언론에선 중산층 출신의 밴드 블러와 오아시스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중적 영향력 면에선 누구도 오아시스를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은 씁쓸했다. 갤러거 형제의 불화는 늘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형제간의 소소한 다툼 정도가 아니라, 밴드 유지가 위태로울 정도의 싸움이었다. 밴드 내부의 갈등과 갑작스러운 성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다른 멤버들은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공연 직전 갑자기 밴드를 그만두겠다며 나가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리암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말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몇 번 동생을 대신해 노래하던 노엘은 아예 보컬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사이가 나빴던 형제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영광의 기간은 짧았다. 오아시스는 94, 95년의 1, 2집 이후 이처럼 좋은 음반을 내지 못했다. 노엘의 창작력이 쇠한 것인지, 밴드 내부의 갈등이 심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린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같은 말들을 하던 형제는 근근히 오아시스의 명맥을 이어가다가 2009년 공식 해체했다. 

<슈퍼소닉>은 한 영국 밴드가 누린 영광을 그리지만, 감상의 느낌은 쓸쓸하다. 인생에서 반짝이는 순간은 매우 짧으며, 여생은 그 순간을 되새기며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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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흥행 실패와 함께 '강동원'이 장르가 됐다는 주장은 사라지게 됐다. 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지만, 관객이 강동원의 존재에도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조금은 짐작된다. 그거 나중에. 


엄마를 사고로 잃은 수린(신은수)은 새아빠(김희원)를 따라 화노도로 이사온다. 외로운 수린은 유체이탈, 귀신소환 같은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있다. 고아 소년 성민(이효제)은 수린에게 조금씩 다가서고, 외로웠던 소녀와 소년은 곧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성민과 또래 친구들은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겠다고 나서고, 이를 발견한 수린도 소년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발견한 의문의 동굴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돌을 줍는다. 수린이 동굴에 떨어뜨린 머리핀을 주우러 갔다 돌아온 사이, 소년들은 모두 사라진다. 경찰은 유괴 등의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나선다. 

며칠 뒤, 홀로 돌아온 수린 앞에 자신이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성인 남자(강동원)가 나타난다. 남자는 수린에게 자신이 ‘가려진 시간’에 갇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한다.

<가려진 시간>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태연하게 풀어내는 영화다. 아이들이 ‘요괴알’을 깨트렸다가 시간의 간극 사이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 영화 속에서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믿지 않는다. 

혹시 이 모든 이야기는 소아성애 성향이 있는 유괴범이 꾸며낸 거짓말이고,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한 외로운 소녀는 그 거짓말을 쉽게 받아들인 것 아닐까. 




영화는 청소년정신과 의사가 수린을 상담하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가려진 시간’ 이야기에서 살짝 거리를 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이다. 수린은 어머니를 잃었고, 새아빠와는 친해지지도 못했고,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도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다. 그렇게 홀로 남은 수린이 ‘여기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성민은 수린에게 먼저 다가온 단 한 명의 타인이었다. 얼핏 티없이 자란 듯 보이지만, 성민 역시 다섯 살에 친부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였다. 넓은 세상에서 고립된 소녀와 소년은 둘만의 암호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간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아도, 두 아이는 ‘가려진 시간’의 진실을 믿는다. 소수의 진실이라도 진실일 수 있음을, 그 진실을 공유할 수 있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충분하다고 <가려진 시간>은 말한다. 

<가려진 시간>으로 상업영화계에 데뷔한 엄태화 감독은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세련된 감각으로 풀어냈다. 신인답게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를, 신인이 아닌 듯 능숙하게 소화했다. 

강동원은 영화가 3분의 1쯤 지난 시점에서 후드티로 산발을 감춘 채 등장한다. <검사외전>의 코믹함을 버린 채, 겁먹고 순수한 소년 연기를 한다.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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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창작자들에게 웨스턴은 영원한 영감의 원천인 것 같다. 한국 창작자들에게 조선 후기나 구한말이 그런 것처럼. 


가본 적도 없는 낯선 곳에 순식간에 다녀온 듯한 경험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를 보는 관객은 103분 동안 황량하고 건조한 미국 텍사스를 헤매고 온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입 안에서 버석버석한 흙먼지가 씹히는 느낌이다. 

빚더미에 앉은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범죄 이력이 많은 형 태너(벤 포스터)와 함께 텍사스의 작은 은행들을 돌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이 은행에 차압당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파트너 질베르토(길 버밍햄)는 형제 강도단의 뒤를 좇는다. 

메마르고 뜨겁고 누르스름한 대지 위의 범죄자들은 병맥주를 물처럼 들이마신 뒤 운전하고 은행을 털고 도주한다. 경찰들도 ‘과학수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강도들이 들이닥칠 것 같은 은행 앞의 오래된 바에 앉아 마냥 기다릴 뿐이다. 이곳엔 시민들도 범상치 않다. 총기 소지의 자유를 사랑하는 텍사스 남자들은 범죄자가 들이닥치자 숨기는커녕 저마다 바지춤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들고 저항한다. 카메라는 거대한 땅덩이 위 드문드문 점처럼 늘어선 건물들과 사람들, 그들의 행동을 무심하게 잡아낸다.




미국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한 서부극은 미국 건국사를 영화적으로 다시 쓰려는 욕망의 일환이었다. 현대적 서부극이라 할 수 있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오늘날 미국의 상황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화들이 자주 표현하듯, 은행은 날강도로 변해 서민의 재산을 강탈하려 든다. 여느 텍사스 남자들이 총을 들고 스스로를 지키듯, 형제의 강도 행각도 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구행위에 가깝다. 옛날의 서부극에서도 한줌의 의무감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외로운 보안관이 있었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도 그렇다. 딱히 정의롭거나 명민하지 않아 보이는 경찰들이지만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해내기 위해 묵묵히 범죄자들을 좇는다.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이던 경찰들은 범죄의 냄새가 가까워지면 맹수처럼 재빠르게 달려든다. 미국 건국 초기의 서부가 그러하듯, 21세기의 텍사스도 각자도생의 세상인 것 같다. 

<영 아담>, <할람 포>의 데이비드 맥켄지가 연출했다.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썼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진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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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슈퍼히어로에 조금 싫증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로 약간 생명 연장한 것 같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적 돌연변이(엑스맨),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갑부(아이언맨, 배트맨), 외계인(슈퍼맨), 신(토르)에 좀도둑(앤트맨)까지 나왔으니, 더 나올 것이 있나 싶다. 그렇게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이, 관객들이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결과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는 조금씩 시드는 조짐이 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향후 나올 또 다른 <어벤져스>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도 확보했다.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다소 오만한 인물이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채 고급 자동차를 운전하던 그는 운전 부주의로 큰 사고를 당한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위험하고 정밀한 수술을 거침없이 해내던 손은 망가져버렸다. 스트레인지는 재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네팔의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서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턴)을 만난 스트레인지는 특별한 능력을 전해받는다. 스트레인지는 스승을 도와 세상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당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를 막아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미국 현지에서 예고편 개봉 시점부터 논란이 있었다. 1960년대 원작 만화에선 아시아계로 설정된 에인션트 원을 영화 속에선 영국 출신 백인 여배우 틸다 스윈턴이 맡았기 때문이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 배역을 줄이는 표백(화이트워싱) 문제와 맞물려 반발을 샀다. 공개된 영화는 ‘동양의 신비’에 대한 서양식 고정관념에 적절히 기대면서도, 이에 매몰되지는 않는 영리한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식 의학기술, 이성, 물질주의의 신봉자인 스트레인지는 삶의 막바지에 몰린 끝에 동양의 대안적 가치를 찾아나서지만, 이를 선뜻 받아들이진 못한다. 에인션트 원이 내미는 동양의학 서적은 선물가게의 기념품 취급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경험은 환각물질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에인션트 원의 압도적인 능력 앞에 결국 무릎 꿇은 스트레인지는 제자가 되길 자처한다. 




그렇다고 스트레인지가 갑자기 교주 행세를 하는 건 아니다. 이성과 추론을 통한 서구식 회의주의를 간직한 그는 카마르 타지의 오랜 규율을 가볍게 어기는가 하면, 스승의 무오류, 절대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근대 아시아 개화파 지식인들의 사상이 ‘동도서기(東道西器)’였다면, 스트레인지는 ‘서도동기’를 따른다. 

영화의 분위기도 이 같은 방법론을 뒷받침한다. 고대의 엄숙하고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선 적재적소의 서구식 유머가 터진다. 예고편에서도 공개된 ‘와이파이 유머’가 대표적이다. 에인션트 원의 또 다른 제자 모르도가 스트레인지에게 기괴한 문자 쪽지를 전해준다. 스트레인지가 마법 주문이냐고 묻자, 모르도는 “와이파이 비번이야”라고 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본분에 걸맞게 탁월한 시각적 쾌감도 제공한다. 뉴욕, 런던, 홍콩의 혼잡한 도심 속 거리, 마천루들이 수직, 수평으로 쪼개지고 생성되는 모습은 이전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보지 못한 풍경이다. 배트맨, 아이언맨, 헐크가 제아무리 장쾌한 액션을 선보였다 한들, 이 액션은 단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과 공간을 재치있게 뒤섞음으로써 슈퍼히어로 영화 액션의 범위를 한 뼘 넓혔다. 

제아무리 기묘한 시각효과를 쓴다 해도, 영화의 중심엔 스타로서의 광휘를 뽐내는 배우가 있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자(컴버배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미켈슨),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스윈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레이첼 맥애덤스)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두루 갖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특히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으로 공전의 인기를 얻은 컴버배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첫 주연을 맡아 연착륙에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2018년 공개 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합류할 예정이다. 컴버배치의 개성있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또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어떤 화학작용을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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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식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꽤 있었다. '네온 데몬'도 그 중 하나다. 난 이 영화가 다소 공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의견도 많은 모양이다. 


<네온 데몬>은 혀로 핥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동시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영화다. 여기서 ‘구역질’이란 은유가 아니다. 영화 종반부엔 정말 일부 관객의 구토를 유발할 만한 장면이 나온다. 

소도시 출신의 순진한 16세 소녀 제시(엘르 패닝)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혼자 살며 톱모델의 꿈을 꾼다. 갈고 닦아 아름다워진 미녀들 사이에서 타고난 미의 기운을 발산하는 제시는 ‘유리 속의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눈에 띈다. 톱모델들은 제시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를 더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한 줄거리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시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남자친구와 풋사랑을 하고, 폭력적인 모텔 주인의 횡포도 겪는다. 하지만 제시의 주된 고난은 아주 조금 더 나이 들고 업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곧 정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톱모델들과의 갈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제시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테러가 영화 후반부의 핵심이다. 테러의 핵심은 글로 묘사하기 어렵다. 


엘르 패닝(왼쪽)과 니콜라스 윈딩 레픈.







'네온 데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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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가 진입하려는 모델 세계는 현대적인 아름다움의 최정점에 접한다. 눈가의 잔주름 하나에 “늙었다”고 평하며 내치는 대중들, 그보다 조금 더 빨리 싫증내는 사진작가, 디자이너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모델들은 아등바등한다. 한번 정상에서 내쳐지면 다시 오르기는커녕 경력 자체가 끝장날지도 모르는 처지이기에, 모델들은 필사적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개의 음경을 먹으면 물개처럼 많은 암컷을 거느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현대의 애니미즘인데, 현대를 넘어 초현대적인 로스앤젤레스 모델 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애니미즘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드라이브>(2011)로 잘 알려진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가 다루는 세계에 대한 레픈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레픈은 표면의 덧없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속물들을 냉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그 역시 매혹되지 않았으면 취할 수 없는 태도다. 지금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깔과 음악들이 <네온 데몬>을 장식한다. <드라이브>에서 음울하고 몽환적인 전자음악을 선보였던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네온 데몬>에서도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음악을 창조했다. 


“미모는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 유일하게 중요한 가치야.” 제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무대에 세운 디자이너가 말한다. 이 영화에서 ‘내면의 아름다움’ 같은 말은 구두선일 뿐이다. 그래서 <네온 데몬>은 뜯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와 같다. 레픈은 포장의 달인이다. 물론 오랜 망설임 끝에 포장지를 푼 뒤 그 공허한 내용물에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레픈은 포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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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 인터뷰. 윤여정의 캐릭터를 영화 캐릭터에 잘 녹여냈다. 윤계상이 이런 영화에 꾸준히 나오는 것 같아 좋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죽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고 운명이다. 두 가지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사이거나 성인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6일 개봉)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주로 탑골공원을 무대로 일하는 소영(윤여정)은 65세의 ‘박카스 아줌마’다. 노인들 사이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인기가 많다. 어느날 소영은 우연히 재회한 옛 ‘고객’ 재우(전무송)로부터 또 다른 고객들의 근황을 전해듣는다. 맞춤양복 아니면 입지 않는 깔끔한 신사였으나 이제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스스로 용변조차 볼 수 없는 노인, 쪽방촌에 살며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 등이다. 소영은 노인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을 진짜 죽여주기로 한다.

이재용 감독(51)은 장편 데뷔작 <정사>(1998)에서 시작해 <순애보>(2000),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같이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성의 상업영화로 이름이 높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세포소녀>(2006), <여배우들>(2010),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3) 같은 실험적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죽여주는 여자>로 도착한 곳은 우리 사회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세계다. 성매매 할머니, 쪽방촌 할아버지, 트랜스젠더 가수, 장애인, 코피노 소년 등이 <죽여주는 여자> 속 세상의 구성원이다.본보기

“지금은 연로하신 부모님들께도 빛나는 시절,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겠죠. 언젠가 함께 여행을 하던 어머니가 아이브로우를 사려다가 멈칫 하시더라고요, ‘세 개가 한꺼번에 들었네. 어차피 다 못 쓸 텐데….’ 그 말에 확 꽂혔어요.”

이재용 감독은 노인이 아니지만, <죽여주는 여자>가 그리는 노인들의 마음 풍경은 대단히 그럴싸하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때, 기억을 잃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졌을 때, 노인은 어떤 생각을 품을까. 이런 노인들에게 빈곤이 겹쳤을 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이재용은 ‘박카스 아줌마’를 만나거나, 빈곤층 노인에 대해 따로 시간을 들여 취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나 시사 다큐멘터리를 몇 편 본 것이 전부였다. 다만 지금까지 축적된 영화, 책 등을 통한 간접경험에 더해, 자신의 처지를 노인에 대입해 생각한 후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6·25 겪어봐야 전쟁영화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왼쪽)과 배우 윤여정. 


영화 <죽여주는 여자>




극중 소영은 1950년 6월19일생으로 설정됐다. 전쟁 직전 태어나 전쟁고아가 됐고, 식모살이를 하다가 ‘양공주’로 변신했다. 미군과 동거해 아이를 낳았으나, 얼마 후 헤어진 뒤 아이는 곧바로 입양보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영은 아이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이재용은 소영에 대해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생명력 있는 여자,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은 자존감 있는 여자, 오갈 데 없는 코피노 어린이나 길고양이를 본능처럼 끌어안는 여자, 죽음을 부탁하는 무책임한 남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강인한 여자”로 표현했다. 전무송은 대본을 읽은 즉시 “이 여자 천사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영은 예기치 않게 생긴 돈을 들고 조계사로 가 대부분을 불전함에 넣는다. 조계사 정문에는 당시 이곳으로 대피해 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응원하는 손팻말 시위가 열리고 있다. 소영은 또 트랜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아이로 구성된 ‘유사 가족’을 임진각 부근으로 데려가 근사한 식사를 대접한다. 이때 텔레비전 뉴스에는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재용은 “조계사 촬영을 갔는데 마침 한상균 위원장이 그곳에 있었고, 촬영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 역시 백남기 농민의 부상이었다”며 “일부러 찍은 건 아니지만, 영화는 드라마를 넘어 당대 역사의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화면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는 이재용이 평소 자주 하는 말이 소영의 대사를 통해 나온다. 돈 때문에 노인을 살해한 범인을 좇고 있다는 뉴스에 사람들이 혀를 찬다. 그러자 소영은 혼잣말처럼 말한다.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거죽만 보고 떠들어대는 것뿐이야. 아무도 속은 모르는 거거든.”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는 지금 아이가 아플지도 모른다. 진상을 떠는 아줌마는 방금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죽여주는 여자>가 그리는 세상은 음울하고 쓸쓸하지만, 이재용은 어떻게든 그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내자고 제안한다. 마치 소수자들이 모여사는 이태원의 낡은 집 마당에 늘 햇빛이 드는 것처럼. “비루하고 남루해도 살아야죠. 유머도 온기도 없다면 너무 힘들잖아요. 세상을 일부러 비참하게 그리고 싶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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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애국영화의 품격. 


“애국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새뮤얼 존슨)라 했다. 애국을 위해 자유, 평등과 같은 그 모든 여느 소중한 가치를 깔아뭉개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애국이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망이라면 누가 시비할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드문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86)의 신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28일 개봉)은 애국의 한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설리>는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실화에 기반을 둔다. 이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소속 1549편 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잃었다. 회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착수시켰다. 기장의 재빠른 판단과 구조대원·해안경비대의 신속한 대응으로 승객 150명, 승무원 5명이 전원 생존했다.

여느 영화였다면 탑승객들이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가족과 구조센터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으로 끝맺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는 다른 길을 택한다. <설리>는 영웅이 된 설리(톰 행크스)가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조사를 앞두고 끔찍한 악몽을 꾸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악몽 속에서 비행기는 맨해튼의 마천루를 부수는 대재난을 일으킨다. 영화가 중간쯤에 이르면 설리와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에런 에크하트)는 안전위원회의 혹독한 조사를 받는다. 안전위원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며, 비행기가 인근 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었다고 압박한다. 설리의 선택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뻔했다는 것이다. 설리는 208초 사이에 내린 선택의 무게를 다시 돌아본다.

<설리>는 9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를 보면, <설리>는 60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미국 내에서만 이미 9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주인공 설리처럼, 할 일을 한 영화”(워싱턴포스트)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행크스는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설리는 사건 이듬해 은퇴할 때까지 2만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는 숱한 경험에서 나온 담대함과 침착함으로 대참사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잘못은 없었는지 수차례 돌아본다. 순식간에 사회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설리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평을 인용하면, <설리>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다.


심지어 <설리>는 설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국가운수안전위원회조차 합리적인 미국식 시스템의 하나로 여긴다. 여느 영화에서였다면 이들은 주인공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악당으로 묘사됐겠지만, 이스트우드는 다르게 그린다. 안전위원회는 여론의 영웅 만들기에 섣불리 동조하는 대신, 더 안전한 방법은 없었는지 조사한다. 그 과정에서 ‘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이 역시 합리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후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뉴욕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극중 항공사 동료는 설리에게 “뉴욕에 이런 좋은 소식은 오랜만이야. 특히 비행기 관련해서는”이라고 말한다. 이는 <설리>가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미국의 핵심인 뉴욕의 위상을 고취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분명 ‘애국’이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애국을 위해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들지도, 반대 진영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선택의 무게를 짊어지며, 그 선택이 올바른지 끝없이 회의하는 한 평범한 인물을 조명할 뿐이다. 지난여름 개봉한 한국의 ‘애국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공산주의자를 패륜적 악당으로, 맥아더를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리>의 태도는 더욱 빛난다. 그런 점에서 <설리>는 진짜 보수주의자가 그리는 ‘애국의 격조’를 드러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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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 주 200만에 못미칠 듯. 손익분기점은 350만 가량. 


조각 같은 외모의 정우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극장문을 나설 수도 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아수라>(연출 김성수) 상영시간 내내 정우성의 얼굴은 갖가지 방식으로 상해 있다. 눈빛은 때로 미친 것처럼 희번덕거린다. 그가 내뱉은 대사의 절반엔 욕설이 섞여 있다. 

정우성뿐 아니다.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 주요 배역은 물론, 김원해, 김종수, 김해곤, 윤제문 등 조연까지도, 이 영화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 법도 없고 의리도 없고 윤리도 없다. 선한 사람은 없다. 악당과 더 나쁜 악당이 있을 뿐이다. 아니, 애초에 이 영화 속 사람들에게 선악 개념을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수라>의 등장인물들은 문화와 양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악다구니 쓰는 동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축생계와 인간계 사이의 중생을 일컫는 ‘아수라(阿修羅)’를 제목으로 삼았을 때부터 짐작한 분위기였다.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부패한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수하 노릇을 하며 온갖 지저분한 뒷일을 처리한다. 한도경에겐 말기암으로 투병하는 아내가 있고, 박성배는 한도경에게 두둑한 뒷돈을 준다.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한도경의 약점을 잡은 뒤, 박성배를 체포할 증거를 가져오라고 독촉한다. 한도경은 양측을 오가며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한다. 

<아수라>에서 가장 악질적인 인간은 인구 48만명의 가상도시인 안남시 시장 박성배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을 가로채 가까스로 당선무효형을 면한 그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라기보다는 조직폭력배에 가깝다. 박성배는 재개발을 통한 이익을 독차지하려 들고, 이를 가로막는 누구든 제거한다. 현대의 정치인에게 허용된 토론, 공청회, 여론조성 등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폭력이나 어처구니없는 여론조작을 통해서다. 박성배는 은근히 폭력을 사주하는 선을 넘어 대규모 마약거래까지 알선한다. 

<아수라> 속 안남시는 한국이 아니라 마약왕이 장악한 멕시코나 콜롬비아의 어느 도시 같다. 그를 잡아넣으려는 검사 김차인도 다를 바 없다. 김차인은 ‘정의’를 말하지만, 이를 위한 수단은 극히 폭력적이다. 협박과 공갈을 일삼고, 피의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이렇듯 <아수라>를 지배하는 정서는 ‘과잉’이다. 이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2012), <신세계>(2013), <내부자들>(2015) 같은 한국형 누아르 영화의 계보를 잇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폭력의 수위가 높다. 단지 피가 많이 흐르거나, 죽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 내내 유머나 로맨스는 끼어들 틈이 없다. 배우들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살기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대사는 욕이거나 협박이거나 비아냥이다. 배우들은 물지 않으면 물리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수완 좋게 체현한다. 

<아수라>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다.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박진감 있는 차량 추격 장면은 ‘제이슨 본’ 시리즈가 부럽지 않다. 

촬영, 미술, 무술 등 각 분야의 유기적 협력이 빛난다. 배우들의 볼만한 연기와 스태프의 탁월한 기술력으로 132분의 상영시간이 꽉 차 있다. 

이제 기술적 성취가 뒷받침하는 철학을 물을 차례다. <아수라>는 지옥 같은 세상을 지옥 같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자비를 빌거나 법을 찾지 말라고 충고한다. 김성수 감독은 “일반적인 액션영화에서의 선악 구도나 정의가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의 먹이사슬로 이루어진 악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수라>는 우울한 세상에 우울한 전망 하나를 보탠다. 마치 먹물에 검은 잉크를 한 방울 떨어트린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지옥이니까 지옥이다” “끔찍하니까 끔찍하다”는 말같이 동어반복 아닐까. 상업영화에 세상에 대한 전망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순 없다. 그러나 <아수라> 속 폭력의 향연의 의미는 때로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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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이면 필드에선 커리어의 절정 아닌가. 게다가 '최고의 PD'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해도 되는 걸까. 


낙천적이고 사랑스러운 브리짓 존스가 12년만에 돌아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2004)으로 많은 여성관객을 사로잡은 캐릭터다. 여성 원작자(헬렌 필딩), 여성 감독(샤론 맥과이어), 여성 주연(르제 젤위거)이 뭉쳤다. 하지만 28일 개봉하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를 ‘여성영화’라고 부르기엔 주저된다. 극중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때문이다. 

줄거리는 전편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43세의 브리짓 존스는 시청률 1위 뉴스쇼의 프로듀서로 성공한 직업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싱글인데다, 이젠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도 걱정하고 있다. 록페스티벌에 간 존스는 우연히 연애정보회사 CEO인 잭 퀀트(패트릭 뎀시)와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때마침 옛 연인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도 우연히 만나 사랑을 확인한다. 얼마 뒤 임신 사실을 알게된 존스는 퀸트와 다시 중 누가 아이의 아빠인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임신 소식을 전해들은 두 남자는 자신이 아빠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른 채 마냥 기뻐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변화한 사회상과 가족 개념을 반영한다. 브리짓 존스는 독신이라는 사실에 외로워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집착하지는 않는듯 보인다. 존스가 두 남자와 함께 임신부 교실을 찾자 강사는 자연스럽게 게이 커플과 대리모라고 생각하며 환영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하는 상업영화지만, 동성 커플 가족에 대해 어떤 위화감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직업관은 구시대적이다. 브리짓 존스는 기자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직업에서 실수를 연발한다. 예를 들어 영국 외교부 장관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아프리카 어느 국가 독재자의 사망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대목이 있다. PD인 존스는 생방송중인 앵커에게 “내가 묻는 질문을 그대로 던지라”고 지시한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리고 존스는 태연히 전화를 받는다. 앵커는 존스의 통화 내용을 질문으로 오해해 외교부 장관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선 이런 직업적 실수가 여러번 나온다. 이는 분명 관객에게 큰 웃음을 제공하는 대목이지만, 존스가 ‘성공한 직업인’이라는 설정과는 모순이다. 존스의 ‘실수’가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는 해당 방송사의 사회적 위상을 걱정할 정도의 심각한 방송사고일 것이다. 

하지만 극중 누구도 존스의 직업적 실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존스가 사람 좋고 유쾌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존스의 실수를 지적하고 압박하는 구조조정팀장이 오히려 악당으로 묘사된다. 이런 묘사가 문제인 이유는 존스의 성(性)을 바꿔 생각할 때 쉽게 알 수 있다. 경력의 절정에 오른 40대 남성 직업인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한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을 그린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라 우울한 사회 드라마가 될 것이다. 

브리짓 존스는 실수를 하고, 누구나 일하면서 실수를 한다. 하지만 최고의 경력을 가진 남성 직장인이 이처럼 황당한 실수를 많이 하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혹시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창작자들은 여성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닐까. 여성에게 일이란 그저 부차적일 뿐이므로,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해도 코미디로 간주해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치있는 대본, 배우들의 적절한 이미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 대한 시선이 미심쩍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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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수작. 새로 내놓은 티비 시리즈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언젠가부터 우디 앨런(81)은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 수작과 범작을 번갈아가며 매년 1편씩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7월 개봉한 <이레셔널 맨>이 범작이라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카페 소사이어티>(14일 개봉)는 수작이다. 인생의 아이러니, 사랑의 씁쓸한 뒷맛, 호사스런 삶에 대한 동경과 경멸 등 앨런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드러난 주제들이 능란하게 제시돼있다. 

1930년대 미국. 뉴욕 출신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건너가 유능한 에이전시 대표인 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간다. 필은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바비의 길 안내를 부탁한다. 바비는 첫눈에 보니에게 빠지지만, 보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보니의 숨은 남자친구는 다름 아닌 필. 바비는 이를 모른 채 계속 보니의 환심을 사려 노력한다. 마침내 필은 보니와 헤어지고, 바비와 보니는 연인이 된다. 바비는 보니에게 속물스러운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바비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유대인 가정 출신의 야심찬 청년이다. 그는 낯선 할리우드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들어 구애한다. 끈질기지만 거칠지는 않은 바비의 구애는 결실을 맺는 듯 하지만, 세상 많은 일이 그렇듯이 문제는 타이밍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다. 그걸 ‘운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당사자에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관객에게는 코미디다. 물론 그 코미디는 영화 속 대사대로 “가학적인 작가가 쓴 대본”을 따른다. 

가학적인 코미디 같은 인생에서 누군가는 사랑하지만 또 누군가는 죽는다. 앨런의 영화 속에선 죽음의 무게조차 깃털처럼 가볍기에, 영화 속 시신들은 짐짝처럼 취급된다. 앨런이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 그런 건 아니다. 앨런은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어처구니 없이도 쉽게 죽어나가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앨런은 관객 모두 운명의 장난에 휘둘릴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카페 소사이어티> 속 인물들은 노예다. 이들은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가 되어 무기력하게 흔들린다. 이런 사실을 우리의 모든 부도덕과 범죄와 변절의 면죄부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디 앨런의 주인공처럼 나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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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친 남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영화감독이었고, 한 명은 정치인이었다. 둘의 만남은 악연에 가까웠지만,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통하는 점도 없지 않았다. 

2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연출 로버트 캐넌·로스 아담)는 영화감독 신상옥(1926~2006)과 배우 최은희(90) 부부의 납북과 탈출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78년 1월 홍콩으로 투자자를 만나러 갔던 최은희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8일간의 선박 여행 끝에 도착한 북한 남포항에는 김정일이 마중나와 있었다. 6개월 뒤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으로 갔던 신상옥 역시 납치돼 북한으로 향했다. 제공된 주택에 머물며 김정일과 함께 공연을 볼 정도로 비교적 편한 생활을 했던 최은희와 달리, 신상옥은 수용소에 감금돼 사상교육을 받아야 했다.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던 최은희와 신상옥은 1983년 김정일이 주최한 파티장에서 재회했고, 이후 김정일의 파격적인 지원 아래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1986년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북한 감시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에 진입했다. 

다큐멘터리는 최은희와 그의 자녀들, 전직 미국 정보 장교, 홍콩 경찰, 영화평론가 등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당시에는 ‘자진월북설’도 돌았으나, 영화는 이들이 납북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신상옥이 김정일과 대화할 때 목숨을 걸고 몰래 녹음한 육성 테이프에 그 전모가 담겼다. “(신 감독이) 자기 발로 자기 뜻대로 뜻을 가지고 (북으로) 오는 방법이 없나. 신 감독을 유인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고 공작원들에게 말했다).” 김정일 스스로 신상옥의 납북을 지시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연인과 독재자>는 북한의 독재나 개인 우상화 작업을 고발하는 데 전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생 영화에 빠져 살았던 신상옥과 김정일의 캐릭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 사후 발간된 신상옥 자서전 <난, 영화였다>에서 극작가 한운사는 신상옥을 “영화에 미친 놈”이라고 평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식사시간을 잊은 채 촬영하기 일쑤였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연출을 넘어 제작에까지 손을 댄 신상옥은 “너무 많이 만들다보니 우리 회사(신필림) 작품도 내 눈으로 다 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납북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상옥은 수용소를 몇 차례나 탈출했다. 영화 속에서 본 탈옥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붙잡혀 갇힌 뒤에는 그동안 만들었던 영화들을 상상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몇 달의 시간을 보냈다. 

김정일도 그에 못지않았다. <연인과 독재자> 속 김정일은 거대한 궁전 속에서 수많은 장난감에 둘러싸여 친구도 없이 성장한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 김일성처럼 정치인으로서 내뿜는 카리스마가 없었던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겼다. 그가 특히 사랑한 예술은 영화였다. 김정일은 <영화예술론>이라는 책을 썼고, 전 세계 1만5000여편의 영화를 모았다. 그중에는 한국에서는 필름이 유실돼 볼 수 없는 이만희 감독의 걸작 <만추>도 있다. 

영화에 대한 김정일의 애정은 신상옥·최은희 납치에서 절정에 달했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영화인을 납치한다는 발상부터가 황당하다. 김정일은 북한의 반복적, 도식적인 영화에 염증을 느꼈다. 김정일은 신상옥 앞에서 북한 영화가 ‘상갓집’처럼 울기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북한 영화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 의욕이 없다고 비판했다. “예술대회(국제영화제)에 나갈 만한 작품이 없단 말입니다. (…) 그쪽(남한)은 대학생 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이다.” 

김정일은 신상옥의 영화 제작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어떠한 이념이나 체제 홍보도 강요하지 않았다. 동양 최대인 연건평 2만평 규모의 신필림 촬영소를 지어줬다.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과의 갈등, 신필림 경영난 때문에 수년간 영화를 찍지 못했던 신상옥은 북에 가서 날개를 달았다. 신상옥이 북한에서 영화를 찍은 기간은 2년여에 불과했지만, 그사이 하루 2~3시간씩 자며 <소금> <불가사리> 등 7편을 연출했다. 북한 영화 최초의 해외 로케이션, 최초의 키스신도 신상옥의 영화였다.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대사도 전무하던 곳에서 춘향전을 뮤지컬로 각색한 <사랑 사랑 내 사랑>을 찍었다. 이 영화가 더욱 파격인 이유는 1960년대 중반 김일성이 “춘향전은 계급 간의 남녀 사랑을 취급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도움이 안되는 작품”이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탈출기> 촬영 때는 기차 폭파 장면을 찍겠다고 하니, 진짜 기차를 내줘 폭파하게 했다. 

신필림 촬영소는 신상옥·최은희의 탈출 이후 완공돼 정작 이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 김정일은 이후에도 북한영화 발전을 위해 지원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신상옥은 북한 시절에 대해 “다 싫은데 돈 걱정 안 하고 영화해서 좋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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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게 봤지만 흥행은 잘 되지 않은 <범죄의 여왕>. 역시 상업영화에는 '스타발'이 중요하다.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defective detective’란 말뜻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이는 ‘결함 있는 탐정’이란 의미인데, 범죄의 추리에는 능숙하지만 다른 면모는 어딘가 부족한 탐정을 말한다. 이런 탐정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돼 있거나, 몸이나 마음에 장애가 있을 때도 있다. 인기 TV 시리즈 <몽크>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몽크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어 타인과의 악수조차 꺼린다. 이렇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탐정들이 극악한 범죄자들의 교묘한 범행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독자들은 재미와 흥분을 느낀다.

25일 개봉하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 속 탐정 역시 전형적인 수사관은 아니다. 이 영화 속 탐정은 ‘오지랖 넓은 아줌마’ 양미경이다. 강인한 생활력과 남다른 ‘촉’을 갖고 있지만, 때론 앞뒤 재지 않는 저돌성이 누군가에게는 무례로 느껴질 수 있는 인물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동네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시술을 하며 살아가는 미용실 원장 양미경(박지영)은 서울에 사는 고시생 아들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는다. 수도요금이 120만원 나왔으니 돈을 추가로 부쳐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들은 2차 사법시험준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돈을 달라고 하지만, 미경은 이토록 의문스러운 일을 참고 넘기는 성격이 아니다. 부랴부랴 상경한 미경은 불량스러운 인상의 고시원 관리소 직원들, 시험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고시생들을 상대로 과도한 수도요금의 비밀을 밝혀나간다. 그리고 예상 못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어느 모로 봐도 탐정 같지 않은 양미경은 낯이 두껍고, 남의 일에 간섭 잘하고,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서는 ‘한국 아줌마’의 개성을 이용해 범죄의 핵심에 조금씩 다가선다. 이런 ‘한국 아줌마’의 개성은 때로 ‘악덕’으로 여겨지지만, <범죄의 여왕>에선 미덕이 된다. ‘범죄의 여왕’이란 원래 불멸의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별명이다. <범죄의 여왕>은 크리스티 소설 속에서 만날 법한 흥미로운 탐정 캐릭터를 한국 영화 풍경 속으로 소환했다. 능글맞은 경찰, 독종 같은 검사, 그악스러운 조폭 없이도 범죄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범죄의 여왕>은 보여준다.

고시원이라는 장소도 흥미롭다. 고시원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청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미래는 로스쿨 도입과 함께 한층 불투명해졌는데, <범죄의 여왕>은 그 처연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의 순 제작비는 4억원에 불과하지만, 우중충하고 그로테스크한 고시원 분위기를 담아낸 촬영, 미술, 조명이 훌륭하다.

<족구왕>(2013)으로 주목받은 젊은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한 작품이다. 광화문시네마는 김태곤, 이요섭 감독, 김보희 프로듀서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올해엔 김태곤 감독이 쇼박스 투자·배급작인 <굿바이 싱글>을 흥행시키는 등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족구왕>은 안재홍, 황미영, 황승언 등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즐겨 찾을 배우들을 배출한 바 있다. <범죄의 여왕> 역시 조복래, 백수장 등 개성 있는 조연을 적소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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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시시하다고 느끼던 차에 가디언 기사를 읽고 엮어본 기획. 할리우드도 슬슬 대비책을 내놓아야 할 듯. 



때로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들은 주인공보다 더 매력있는 존재였다. 이들 악당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을 넘어, 우리 사회와 삶에 도사린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했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영화가 낳은 불세출의 인기 캐릭터로 남아 있다(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요즘 악당은 어떤가. 3일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아예 슈퍼히어로 영화 속 악당들을 모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할리퀸, 데드샷, 조커 등 배트맨의 숙적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배트맨은 카메오처럼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 달리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다. 한국에서 2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는 등 흥행 수익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평단은 혹평 일색이다. 리뷰들을 모아 점수를 매기는 ‘로튼 토마토’에선 27%의 호감도만을 보이고 있다. “영화가 플롯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이 영화엔 잃어버릴 플롯조차 없다”(뉴요커), “악당 올스타 팀을 모아놓고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평가가 나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디언은 ‘할리우드 악당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최근 기사에서 ‘악당의 인간화’를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악당의 악행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고 영웅과 악당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기존 악당이 가지고 있던 ‘악마적 위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위로부터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타트렉 비욘드> <제이슨 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한 사례다. 데드샷(윌 스미스)은 백발백중의 살인 청부업자지만, 딸 앞에선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딸바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인 할리퀸(마고 로비)은 예측 불가능한 광인이지만, 연인 조커(자레드 레토)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을 맹세한다. 심지어 이들이 팀을 이루는 이유조차 모호하다. 미국 비밀정보기관의 아만다 월러 국장은 초인적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선 또 다른 초인적 악당을 기용해야 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월러가 말하는 초인적 악당은 정보기관의 잘못된 판단이 초래한 결과였다. 존재하지 않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조직하고, 조직 과정에서 적이 생성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악당으로 구성된 팀’이라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적의 존재를 쥐어짜낸 셈이다.

악당들의 악의가 구태의연하다는 점도 문제다. 18일 개봉하는 <스타트렉 비욘드>와 지난달 개봉한 <제이슨 본>이 대표적이다. 거대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함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미지의 적의 공격을 받아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다. 엔터프라이즈호를 공격한 악당은 우주의 문명들이 서로 어울려 누리는 평화 상태를 종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는 “갈등이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1990년대 소비에트의 해체와 냉전 종식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 군인의 논리를 연상케 해, 2016년의 스크린에 구현되기엔 구시대적으로 보인다.

<제이슨 본>은 <본 얼티메이텀>(2007)으로 완결된 줄 알았던 ‘제이슨 본’ 시리즈의 재개를 알린 작품이다. 이번에도 제이슨 본은 자신을 훈련시켰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음모에 맞서는 동시에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002~2007년 3편의 ‘제이슨 본’ 시리즈와 똑같은 적, 똑같은 동기다. CIA가 정보통신(IT) 거물과 손잡고 새 사생활 감시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도 영화 소재로선 낯설지 않다. IT기술과 결합한 정보기관의 사생활 감시 문제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부터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4)까지 숱하게 다뤄졌다.

악당이 시시하니, 영웅의 투쟁도 시시해졌다. 결국 목적 없는 전투의 스펙터클만이 스크린을 채울 뿐이다. 가디언은 IS 같은 극단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같은 선동가, 인터넷의 악플러 등 새로운 악당의 유형을 제시한 뒤, “현대 세계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공포를 제공하고 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완곡한 허구의 세계에 숨어 있을 수 없다”며 “이런 이유로 영화는 악당의 존재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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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늦게 올리는 <터널> 리뷰. 지난 여름 한국영화 중 막바지로 개봉해 좋은 흥행 성적을 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 그 자체와 싸운다. 한국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뿐 아니라 재난을 둘러싼 사회와도 싸운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터널>은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로 이어지는 2016년 여름 성수기 한국영화 신작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끝까지 간다>(2013)로 ‘장르 비틀기’에 일가견을 보인 김성훈 감독의 작품으로, 쇼박스가 투자·배급했다.

자동차 딜러 정수(하정우)는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차로 귀가하던 중이다. 기름을 3만원어치만 넣으려다가 가는귀먹은 노인 주유원의 실수로 가득 채운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인다. 마침 뜸을 들이던 판매 계약이 성사돼 기분도 좋다. 하지만 개통된 지 얼마 안된 터널이 갑자기 붕괴한다. 정수는 순식간에 거대한 돌더미에 깔리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다. 차 안에는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2통, 생일 케이크,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전화뿐이다. 

붕괴된 터널 주변으로 구조대와 언론이 몰려든다. 정수는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아내 세현(배두나)과 정해진 시간에만 통화하며 구조에 대한 희망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건 초기 정수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민들의 반응도 구조작업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달라진다. 구조 과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인명 사고, 인근 터널의 공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 등도 여론이 바뀌는 데 영향을 미친다. 정수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세상은 그를 죽은 사람 취급하려 든다.






여름 성수기용 상업영화에도 사회적 맥락을 새겨넣는 건 한국영화의 힘이다. <터널> 역시 ‘사회적 재난영화’라 할 만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정수를 짓누르는 건 자동차를 뒤덮은 돌덩이만이 아니다. 이렇다 할 매뉴얼이 없어 구조작업은 우왕좌왕이다. 터널 공사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현장을 방문한 관료들은 경각에 달린 정수의 생명보다는 정수 아내와 사진을 찍거나,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키는 데 더욱 신경을 쓴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무너졌습니다”라고 요란하게 보도하던 언론들은 사실 정수가 ‘생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이 있다. 한국의 수많은 대형 참사를 통해 익숙한, 그러나 매번 반복되는 풍경이다. 대형 재난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양상들을 <터널>은 큰 과장 없이 스케치한다.

그러나 <터널>은 진지한 사회 비판 드라마만을 지향하진 않는다. 영화의 70%는 어둠 속에 갇힌 정수의 생존투쟁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이는 정수는 어느덧 찌그러진 자동차를 ‘집’처럼 여긴다. 차량 안에 있는 이런저런 물건들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터널 안에서 마주친 새로운 상황을 이용해 외로움을 잊기도 한다. 언제 또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어두컴컴한 터널 안이지만, 정수에겐 새로운 우주가 된다. 

가슴이 꽉 막히는 갑갑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하정우의 힘이다. 40대의 송강호가 그렇듯, 하정우도 30대의 대체할 수 없는 배우가 됐다. ‘하정우풍’의 말투와 표정으로 구조대장과 통화하는 대목, 혼자 노는 대목에서는 별일 아닌데도 웃음이 터진다. <터널> 포스터 속 하정우는 얼굴에 흙먼지를 가득 묻힌 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예기치 않은 ‘힐링 체험’이 될 수도 있겠다.

총제작비 100억원대가 투입됐다. 초반부의 터널 붕괴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스펙터클’이라 할 만한 대목인데, 짧지만 인상적으로 재난 당시의 공포를 드러냈다.

‘재난영화’에서 ‘재난의 스펙터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생생함, 스펙터클이 놓이는 영화적·사회적 맥락임을 <터널>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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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영화 담당을 하니 놓친 영화를 찾아봐야할 일이 생긴다. 이번주 <밀정> 시사를 앞두고 어제 본 <암살>도 그런 경우였다.

일단 안옥윤/미츠코 쌍둥이 설정과 그에 따라 안옥윤이 미츠코의 집에 자연스럽게 잠입한다는 내용, 하와이 피스톨이 가와구치 대위와 우연히 엮여 그의 결혼식장에 경호원으로 들어간다는 설정 등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였다. 그런 장치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도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일본 밀정 염석진 캐릭터다.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입체성을 주기 위해 당대 친일파의 논리를 세심히 살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덕혜옹주>의 밑도 끝도 없는 악당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와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젊은 시절의 염석진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기도하다가 붙잡히는데, 이때 극심한 죽음의 공포를 겪은 뒤 변절한다. 변절을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상황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이후 그 공포를 내면화한 염석진은 본격적인 친일파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이후에도 반민특위의 조사로부터 빠져나간 염석진은 결국 안옥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왜 동료들을 배신했느냐"는 안옥윤의 질문에 염석진은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답한다.

기실 그렇다. 일본이 2차대전을 이겼다면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이다. 식민통치는 100년을 이어졌을 것이고, 한반도 거주자들은 지금도 모두 일본어를 쓰고 일본 국적을 가졌을 것이다. 독립에 대한 열망도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마치 IRA와 같은 소수의 과격분자가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그 세력이 강하진 못했을 것 같다. 염석진의 마지막 대답은 변명같지만, 그걸 쉽게 '변명'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식민지배를 겪지 않은 현대인들의 행운이다.




염석진은 또 "물지 못할 거면 짓지도 말아야죠"라고 답한다. 이는 제국의 논리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 친일파 윤치호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도 기실 그럴싸하다. 너무나 그럴싸해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 단지 '일본'이 아니라 국가, 기업 등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앞선 제국주의 국가를 상대로 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강대국 일본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것은 거의 가망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안옥윤조차 그 사실을 인정한다. 총독과 친일 기업인 둘을 처단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물음에 안옥윤은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요지로 답한다. 역시 오늘날에는 지당한 말로 들리지만, 실천하기엔 쉽지 않다.

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친일파는 <덕혜옹주>의 한택수식으로 그려졌다. 그저 돈과 권력을 탐할 뿐인, 이분법의 저 너머에 있는 악당이다. 악당을 악마화하는 건 쉽고 인기있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고결함을 증명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그렇게 쉽게 악당을 단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난 자신의 도덕성이나 정의감을 과신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쪽에서 한점의 의심도 없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저쪽으로 투항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오히려 줄곧 흔들리고 여러 가능성을 살피고 여러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끝내 이쪽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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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미진한 컴백처럼 느껴지는 '제이슨 본'. '킹스맨'에서도 그렇고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IT 거물은 공공의 적. 



3부작으로 구성된 ‘제이슨 본’ 시리즈(2002~2007)는 21세기 첩보액션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기억을 잃은 첩보원 제이슨 본은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한 감시체계를 회의했고, 살인에 죄의식을 느꼈으며, 제3세계 여성의 침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비현실적인 특수무기보다는 맨주먹과 고전적인 총기를 사용했으며, 턱시도 대신 허름한 옷으로 정체를 위장했다. 뼈가 부러지고 숨이 끊기는 순간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액션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들의 전범이 됐다. 

맷 데이먼(46)이 9년 만에 제이슨 본으로 돌아왔다.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을 찍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함께다. 데이먼은 <인터스텔라> <마션> 등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았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제이슨 본’ 시리즈는 다시 안 찍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을 간단히 제목으로 삼은 <제이슨 본>이 26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처음 화면에 등장하는 제이슨 본은 놀랍게도 초췌한 모습이다. 본은 제3세계의 흙먼지 나는 거리 위에서 즉흥 격투기 시합으로 푼돈을 번다. 그의 얼굴이 성치 않은 건 누적된 타격이나 피로 때문만은 아닐 성싶다. 위조 여권은 있지만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다른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는 그는 영원한 떠돌이 신세다. 

과거 제이슨 본을 도왔던 전직 CIA 요원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가 CIA의 새로운 비밀 프로그램에 대해 해킹한다. 파슨스는 그 와중에 제이슨 본의 아버지가 연관된 비밀에 대해서도 알아낸다. 파슨스는 숨어 살던 본에게 접근해 정보를 제공한다. 때맞춰 CIA 간부 듀이(토미 리 존스)와 사이버 전문가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도 본을 다시 잡으려 한다. 본에게 원한을 가진 저격수(뱅상 카셀)가 소환된다. 








독자 중 상당수는 지금 이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T) 거물이 악당으로 등장하는 건 최근 액션 영화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제이슨 본>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한 전 세계적인 감시체계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딥 드림’이라는 소셜미디어를 선보인 실리콘 밸리의 스타 애론 칼루어(리즈 아메드)는 개발 초기부터 CIA와 손잡고 일한 것으로 묘사된다. CIA의 도움을 받은 칼루어는 막대한 부를 일궜지만, 그건 ‘악마와의 거래’였다. 

앞선 제이슨 본 시리즈는 요인들에 대한 특수한 감시체계를 언급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IT 기업을 통해 소셜미디어 속 사생활에 대한 접근권만 갖는다면, 훈련받은 요원이 거리를 헤매거나 잠복할 필요도 없다. <제이슨 본>은 그런 위험성을 경고한다. 

권력이 있는 곳엔 저항이 있다. 전직 CIA인 니키 파슨스가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은 국가의 부당한 사찰을 폭로하려는 해커 집단이다. 해커 집단은 CIA라는 공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본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하지만, 본은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반체제 스타라기보다는 다른 의미의 애국자로 묘사된다. 

맷 데이먼, 줄리아 스타일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가 바뀌었다. 소셜미디어라는 감시체계의 가능성도 새롭게 제기됐다. 하지만 나머진 9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몸과 몸이 맞부딪치는 처절한 육박전이라든가, 현장요원의 카메라·폐쇄회로(CC)TV·위성까지 동원한 CIA의 감시망을 피해 나가는 본의 지략을 보는 재미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자동차가 ‘쿠크다스’처럼 부서지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차량 추격전 역시 보기에 시원스럽다. 

시리즈의 장점을 이어나가겠다는 의도가 읽히지만, 그사이 너무 많은 영화들이 ‘제이슨 본’ 시리즈의 스타일을 참고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옛 스타일을 그대로 들고온 <제이슨 본>의 등장은 반가운 동시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제이슨 본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건 느닷없다. 집도 절도 없이 외롭게 세상을 떠도는 본에게, 비인간적인 특수훈련의 고통스러운 기억 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안겨주기 위함일까. 본이 영원히 냉정하고 침착한 ‘외로운 늑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 

북미에선 29일, 한국에선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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