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장이머우 감독의 행보는 ‘물량’과 ‘중화’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영웅>(2002), <연인>(2004), <황후화>(2007) 등 중국의 화려했던 옛 시절을 뽐내는 대작 사극과 초창기의 소박한 리얼리즘 드라마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연출과 함께 장이머우의 경력은 절정에 오른 듯했다.

그러나 장이머우의 행보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았다. 특히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는 당 황실을 배경으로 황제와 황후, 그 자식 간의 암투, 음모, 불륜을 그린 <황후화>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왔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산사나무 아래>는 <황후화>와 대척점에 놓인 작품이다. 마치 <황후화>에 대한 반성문이라도 쓰는 느낌이다. 영화는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출신 성분이 다른 두 젊은 남녀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그린다. 주연을 맡은 여우 저우동위, 남우 두오샤오는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

7일 <산사나무 아래> 언론시사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이머우는 “우연히 감동적인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문화혁명 기간을 배경으로 한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고 어머니마저 투병 중인 징치우(저우동위)는 정식 교사가 돼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있다. 도시 학생들을 농촌에서 의무적으로 교육받도록 하는 제도에 따라 징치우는 농촌에 한동안 체류하는데, 여기서 지질탐험대원으로 내려온 라오산(두오샤오)과 서로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소한 소문에도 흠이 잡혀 출셋길에 발목이 잡힐까봐 전전긍긍하던 시대, 둘의 자유연애는 순조롭지 않다. 징치우와 라오산은 도시로 돌아온 뒤에도 연락을 주고받지만, 라오산의 몸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두 연인은 한 침대에 누워서도 서로의 몸을 지켜줄 만큼 고전적인 사랑을 나눈다. 이야기만 보면 ‘신파’에 가깝지만, 장이머우는 신분 차이, 불치병 등 자극적인 소재를 최대한 담담하게 연출했다. 장이머우는 궁리, 장쯔이 등 훗날의 스타 여배우를 발탁하는 데 탁월한 안목을 발휘해 왔는데, <산사나무 아래>의 저우동위도 향후 중국영화에서 자주 만날 듯한 외모와 연기력을 보인다.

장이머우는 16~26살의 성장기에 문화혁명을 직접 겪었다. 그는 “비극적이고 아픈 기억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문화혁명이라는 소재를 멀리 하고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수천명을 카메라테스트 한 뒤 뽑은 두 젊은 배우에 대해서는 “영화 배경이 두 배우가 살았던 시대가 아니어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연기해달라고 지도했다”고 말했다. 저우동위는 “너무나 유명한 감독님과 작업해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장이머우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며 “감독님은 연기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장이머우의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는 제4회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장이머우로서는 11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은 셈이다. 그는 “당시(1999년) 느낌이 좋아 부산영화제가 더욱 발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예상대로 아시아 최대·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했다”며 “중국 영화팬들도 매우 오고 싶어하는 영화제고,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떠나는 마지막 해에 오게 돼서 큰 영광이고 인연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부산영화제는 이날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영화제는 1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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