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늦게 올리는 <터널> 리뷰. 지난 여름 한국영화 중 막바지로 개봉해 좋은 흥행 성적을 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 그 자체와 싸운다. 한국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뿐 아니라 재난을 둘러싼 사회와도 싸운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터널>은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로 이어지는 2016년 여름 성수기 한국영화 신작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끝까지 간다>(2013)로 ‘장르 비틀기’에 일가견을 보인 김성훈 감독의 작품으로, 쇼박스가 투자·배급했다.

자동차 딜러 정수(하정우)는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차로 귀가하던 중이다. 기름을 3만원어치만 넣으려다가 가는귀먹은 노인 주유원의 실수로 가득 채운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인다. 마침 뜸을 들이던 판매 계약이 성사돼 기분도 좋다. 하지만 개통된 지 얼마 안된 터널이 갑자기 붕괴한다. 정수는 순식간에 거대한 돌더미에 깔리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다. 차 안에는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2통, 생일 케이크,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전화뿐이다. 

붕괴된 터널 주변으로 구조대와 언론이 몰려든다. 정수는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아내 세현(배두나)과 정해진 시간에만 통화하며 구조에 대한 희망을 이어간다. 하지만 사건 초기 정수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민들의 반응도 구조작업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달라진다. 구조 과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인명 사고, 인근 터널의 공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 등도 여론이 바뀌는 데 영향을 미친다. 정수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세상은 그를 죽은 사람 취급하려 든다.






여름 성수기용 상업영화에도 사회적 맥락을 새겨넣는 건 한국영화의 힘이다. <터널> 역시 ‘사회적 재난영화’라 할 만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정수를 짓누르는 건 자동차를 뒤덮은 돌덩이만이 아니다. 이렇다 할 매뉴얼이 없어 구조작업은 우왕좌왕이다. 터널 공사는 총체적 부실이었다. 현장을 방문한 관료들은 경각에 달린 정수의 생명보다는 정수 아내와 사진을 찍거나,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키는 데 더욱 신경을 쓴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무너졌습니다”라고 요란하게 보도하던 언론들은 사실 정수가 ‘생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이 있다. 한국의 수많은 대형 참사를 통해 익숙한, 그러나 매번 반복되는 풍경이다. 대형 재난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양상들을 <터널>은 큰 과장 없이 스케치한다.

그러나 <터널>은 진지한 사회 비판 드라마만을 지향하진 않는다. 영화의 70%는 어둠 속에 갇힌 정수의 생존투쟁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이는 정수는 어느덧 찌그러진 자동차를 ‘집’처럼 여긴다. 차량 안에 있는 이런저런 물건들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터널 안에서 마주친 새로운 상황을 이용해 외로움을 잊기도 한다. 언제 또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어두컴컴한 터널 안이지만, 정수에겐 새로운 우주가 된다. 

가슴이 꽉 막히는 갑갑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하정우의 힘이다. 40대의 송강호가 그렇듯, 하정우도 30대의 대체할 수 없는 배우가 됐다. ‘하정우풍’의 말투와 표정으로 구조대장과 통화하는 대목, 혼자 노는 대목에서는 별일 아닌데도 웃음이 터진다. <터널> 포스터 속 하정우는 얼굴에 흙먼지를 가득 묻힌 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예기치 않은 ‘힐링 체험’이 될 수도 있겠다.

총제작비 100억원대가 투입됐다. 초반부의 터널 붕괴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스펙터클’이라 할 만한 대목인데, 짧지만 인상적으로 재난 당시의 공포를 드러냈다.

‘재난영화’에서 ‘재난의 스펙터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생생함, 스펙터클이 놓이는 영화적·사회적 맥락임을 <터널>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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