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영화 담당을 하니 놓친 영화를 찾아봐야할 일이 생긴다. 이번주 <밀정> 시사를 앞두고 어제 본 <암살>도 그런 경우였다.

일단 안옥윤/미츠코 쌍둥이 설정과 그에 따라 안옥윤이 미츠코의 집에 자연스럽게 잠입한다는 내용, 하와이 피스톨이 가와구치 대위와 우연히 엮여 그의 결혼식장에 경호원으로 들어간다는 설정 등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였다. 그런 장치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도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일본 밀정 염석진 캐릭터다.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입체성을 주기 위해 당대 친일파의 논리를 세심히 살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덕혜옹주>의 밑도 끝도 없는 악당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와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젊은 시절의 염석진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기도하다가 붙잡히는데, 이때 극심한 죽음의 공포를 겪은 뒤 변절한다. 변절을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상황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이후 그 공포를 내면화한 염석진은 본격적인 친일파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이후에도 반민특위의 조사로부터 빠져나간 염석진은 결국 안옥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왜 동료들을 배신했느냐"는 안옥윤의 질문에 염석진은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답한다.

기실 그렇다. 일본이 2차대전을 이겼다면 한반도는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이다. 식민통치는 100년을 이어졌을 것이고, 한반도 거주자들은 지금도 모두 일본어를 쓰고 일본 국적을 가졌을 것이다. 독립에 대한 열망도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마치 IRA와 같은 소수의 과격분자가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그 세력이 강하진 못했을 것 같다. 염석진의 마지막 대답은 변명같지만, 그걸 쉽게 '변명'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식민지배를 겪지 않은 현대인들의 행운이다.




염석진은 또 "물지 못할 거면 짓지도 말아야죠"라고 답한다. 이는 제국의 논리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 친일파 윤치호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도 기실 그럴싸하다. 너무나 그럴싸해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 단지 '일본'이 아니라 국가, 기업 등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앞선 제국주의 국가를 상대로 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강대국 일본에 맞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것은 거의 가망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안옥윤조차 그 사실을 인정한다. 총독과 친일 기업인 둘을 처단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물음에 안옥윤은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요지로 답한다. 역시 오늘날에는 지당한 말로 들리지만, 실천하기엔 쉽지 않다.

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친일파는 <덕혜옹주>의 한택수식으로 그려졌다. 그저 돈과 권력을 탐할 뿐인, 이분법의 저 너머에 있는 악당이다. 악당을 악마화하는 건 쉽고 인기있는 일이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고결함을 증명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그렇게 쉽게 악당을 단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난 자신의 도덕성이나 정의감을 과신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쪽에서 한점의 의심도 없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저쪽으로 투항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오히려 줄곧 흔들리고 여러 가능성을 살피고 여러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끝내 이쪽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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