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브룩스의 장편 '세계대전 Z'를 뒤늦게 읽었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6년 출간된 작품인데, 그 사이 브래드 피트의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 제작사가 이 소설의 판권을 산 이유가 궁금해진다. 소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영화와 소설이 너무 달라 굳이 판권을 사지 않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라고 주장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원작과 영화가 공유하는 건 '세계 각국에 좀비가 나타났다'는 설정과 중심 인물의 직업이 유엔 산하 기구의 조사관이라는 점 뿐이다. 


영화에선 유엔 소속 조사관(브래드 피트)이 전세계를 돌며 좀비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해결책을 찾지만, 소설 속 조사관은 여러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르포 형식으로 옮긴다. 그렇게 옮긴 관계자들의 증언 묶음이 바로 이 책이 된다. 영화 속 조사관은 행동하지만 소설 속 조사관은 듣는다. 광범위한 지역, 사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소설 속 조사관은 군인, 의사, 스파이,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모두 '세계대전 Z'라고 칭해지는 좀비와의 대결 이후의 생존자들이며, 새로운 세계를 재건하는 일원이기도 하다.    


영화 <월드워 Z>




각 문화권, 국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병렬되면서 나오는데, 그래서 미증유의 재앙에 대한 각 문화권, 국가의 각기 다른 대응, 생각을 비교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소설의 재미다. 각 문화권, 국가의 특징에 대한 작가(혹은 일반 독자)의 고정관념이 나타나는데, 꽤 그럴싸하다. 고정관념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국제 관계, 각 문화권의 생활양식, 정치경제적 위상 등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지 않았으면 쓰지 못했을 대목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국정원 부원장이 인터뷰이로 나선다. 그는 북한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질 낌새를 채고 바로 남북관계를 전면 단절했다고 증언한다. 증언 시점에서 남북 관계는 여전히 단절돼 있는데, 국정원 부원장은 북한 주민이 거대한 지하 벙커에 숨어 잘 살아 있는지, 아니면 모두 좀비가 돼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일본의 인터뷰이는 2명이다. 하나는 히키코모리, 하나는 2차대전 당시의 피폭자다. 둘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함께 생존을 도모한다. 이스라엘 하면 역시 스파이다. 좀비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가장 처음 알아차린 이가 바로 이스라엘 스파이라는 설정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하면 또 인종차별이 떠오른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좀비가 된 상황에서 국가가 취해야할 잔인한 혹은 실용적인 비상대책의 최초 입안자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인사다. 왠일인지 피델 카스트로가 탁월한 혹은 교활한 정치력을 발휘해 전후 최고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다만 역시 보고서 형식이라는 점은 빠른 독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읽다 보면 조금 지치는 감이 없지 않다. 영화판은 공포영화 중에서도 하위 장르에 속했던 좀비물을 여름용 블록버스터로 끌어올린 공이 있는데, 개봉을 앞둔 '부산행'의 흥행을 보면 좀비물에 대해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