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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현인의 말들, '보르헤스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여든 즈음에 한 인터뷰들을 엮은 '보르헤스의 말'(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마음산책)을 읽다. 책 속에 주요 인터뷰어로 등장하며 책을 편집하기도 한 인디애나대 비교문학 교수 윌리스 반스톤은 부처, 예수, 디오게네스, 소크라테스 등 "오로지 말로만 가르침을 전하는 현자의 오래된 전통"을 언급하며 그 끝자락에 보르헤스를 위치시킨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보르헤스는 중년을 즈음해 시력을 잃었고 이후 구술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다수의 청중 앞에서 행해진 이 인터뷰들은 그래서인지 매우 훌륭하다. 심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알쏭달쏭하면서도 명쾌하고, 무엇보다 우아하고 박식하다. 인상적인 대목을 옮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고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난 지옥을 상태라고 생각해요. 


최후의 심판은 마지막에 오는 어떤 것이 아니에요. 늘 진행되는 것이지요.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나는 죽음을 희망으로, 완전히 소멸되고 지워지는 희망으로 생각하는데, 그 점이 의지가 되는 거예요. 내세는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두려워할 이유도 희망을 가질 이유도 없지요. 


나는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필요한 환상이지요. 


시를 읽을 때, 이 점은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도 해당되는데, 만약 소리 내어 읽는 게 더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면 그 글에는 뭔가 잘못된 게 있는 거예요.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하지요.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쓸 거야. 그리고 나서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너무 시시해. 좀 치장을 해야겠어. 그래서 바로크적으로 치장을 하는 거예요. 부끄러움의 한 형태인 거죠. 공격적인 부끄러움이라고 할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작가는 같은 책을 되풀이하여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모든 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이미 썼던 것을 아주 약간 변형하여 다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누구든 혼자 힘으로 많은 걸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언어는 전통이기 때문이에요. 


단편소설의 경우, 플롯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나 장편소설의 경우 플롯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정말 중요한 건 인물이죠. 


나는 인물을 창조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나 자신에 관해 글을 쓴답니다. 나는 내가 아는 한 인물을 한 사람도 창조하지 않았어요. 내 소설에서는 나 자신이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아주 적은 수의 비유만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비유를 만들어낸다는 발상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에겐 시간과 강, 삶과 꿈, 잠과 죽음, 눈과 별이 있어요. 그거면 충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