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날 와서 지금까지 4일째. 모레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한다.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영화를 하루에 4편씩 보기에는 힘이 부치는 듯 하기도 하고. 그래도 보려면 보지만 굳이 그렇게 보려고 들지 않는다.

<산사나무 아래>는 '<황후화>에 대한 반성문'과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폐와 향락과 질투와 모반과 불륜과 골육상쟁이 난무했던 <황후화>에 대해선 중국 공산당마저 비판한 적이 있다.
아무리 '국책예술가'의 반열에 든 장이머우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 '퇴폐'를 받아들이기엔 중국 사회주의의 도덕성이 지극히 올곧았나보다. 그래도 난 <황후화>가 <연인>이나 <영웅>보다는 차라리 좋았다.




솔직히 이라크 전 직후 개봉한 <영웅>을 보고 난 장이머우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산사나무 아래>는 고전적인 멜로드라마이며, 원숙한 감독의 터치가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영웅>에 나타난 패권주의, 중화주의는 여전히 목 안의 가시처럼 남는다. 그 이전과 이후 어떤 영화를 찍었다 해도 상관없다.


미이케 다카시의 <13인의 자객>.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대사에선 적이 200명쯤 된다고 했는데,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죽어나가는 사람이 200명은 확실히 넘는 것 같다. 하도 많이 죽이니 나중에는 <레지던트 이블>을 연상케 했다. 그래도 즐길만한 상업영화긴 한데, 일본 특유의 사무라이 정신, 희생 등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조금 오금이 저렸다.


<티켓>은 재미있다. 임권택 감독이 훗날 <노는 계집 창>에서 찍었던 것과 비슷한 장면도 있다. 가장 깜짝 놀란 장면은 김지미의 누드 장면이다. 김지미가 애인 박근형의 영감을 위해 나신으로 베란다에 나가 섰다가 살짝 도는 모습이 있다. 그래도 86년작인데, 그 정도의 노출이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오다가다 만난 김지미는 꼿꼿하고 정정했다. 배우답게 늙어가는 것 같았다.

<방독피>는 김곡, 김선 감독의 신작이다. 베니스에서 먼저 상영했다. 중반부까지는 관람이 쉽지 않은데, 종반부 강력한 펀치가 숨어있다. 엄청나게 힘이 넘치는 장면들이 잇달아 나온다. 서울을 그렇게 묵시록적으로 그린 이미지의 한국영화는 지금가지 없었던 것 같다.
상영후 GV가 있었고 김선 감독과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곡 감독은 <화이트> 촬영이 있어 오지 못했고, 김선 감독도 다음날 새벽차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듣던 대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바람과 모래>는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왕빙의 첫 극영화다. 부산에서 지금까지 본 영화중 <바람과 모래>는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결론적으로 난 이 영화가 좋지 않았다.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힘은 대단했으나, 후반부부터 미심쩍어지기 시작했다.
우익인사, 자본주의자로 몰려 '재교육'을 받고 있는 중국인들이 주인공인데, 이들의 처참한 삶을 매우 정직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죽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울부짖는 아내의 울음을 거의 40분 정도 들려준다.

물론 계속 우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울지만, 난 이 울음을 참기 어려웠다. 인물의 고통을 관객에게 전이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런 식의 전이가 옳은 방법인가, 영화에서 정직과 직설은 반드시 좋은 것인가. 너무 노골적인 것은 아닌가, 그래서 선정적인 창작 태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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