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2집 같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그저 무언가 타고나야 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96년 8월 10, 11일 영국 넵워스에서는 2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 예매를 시도한 사람만 260만명이었다. 공연의 주인공은 1990년대 영국 최고의 밴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정식 데뷔 싱글 ‘슈퍼소닉’을 발매한 건 1994년 4월이었다. 오아시스가 영국을 넘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밴드로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에 불과했던 셈이다.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슈퍼소닉>(감독 맷 화이트크로스)은 오아시스가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을 치르기까지 겪었던 짧지만 격렬했던 사건들을 그렸다. 

영화 시작부터 ‘f’로 시작되는 욕설이 섞인 대화들이 들려온다. 오아시스의 핵심인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노엘 갤러거와 그의 5살 연하 동생인 보컬리스트 리암 갤러거의 말들이다. 갤러거 형제는 오아시스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맨체스터의 중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는 밴드를 결성해 지역의 소규모 클럽들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같은 연습실을 사용하던 밴드를 따라 글래스고에서 열린 페스티벌 무대에 어부지리로 오르게 됐고, 공연 이후 음반사 관계자의 눈에 들어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갤러거 형제는 오만한 언변으로 유명하다. <슈퍼소닉>을 보면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엘은 어느날 집에서 홀로 곡을 써 다음날 밴드 멤버에게 들려줬는데, “니가 쓴 거 아니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무명 밴드의 작곡가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나 좋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 곡이 ‘리브 포에버’였다. 녹음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은 어느 새벽에 멤버들은 야식이나 먹자며 중국음식을 사왔다. 노엘은 그 짧은 틈을 타 곡을 썼는데, 그 노래가 ‘슈퍼소닉’이었다. 데뷔 음반인 ‘데피니틀리 메이비’ 녹음 과정에서도 멤버들은 매일 술을 마시고 마약에 취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였는데, 그러면서도 매일 1곡씩 녹음을 마쳤다. 때로 그들에겐 음악보다 축구 경기 관람이 더 중요한 일과처럼 비춰질 정도였다. 노엘은 쟁여두기라도 한듯 곡을 내놨고, 리암은 어렵지 않게 노래했다. 

음반이 나온 뒤 모든 것이 변했다. 언론에선 중산층 출신의 밴드 블러와 오아시스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중적 영향력 면에선 누구도 오아시스를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은 씁쓸했다. 갤러거 형제의 불화는 늘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형제간의 소소한 다툼 정도가 아니라, 밴드 유지가 위태로울 정도의 싸움이었다. 밴드 내부의 갈등과 갑작스러운 성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다른 멤버들은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공연 직전 갑자기 밴드를 그만두겠다며 나가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리암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말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몇 번 동생을 대신해 노래하던 노엘은 아예 보컬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사이가 나빴던 형제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영광의 기간은 짧았다. 오아시스는 94, 95년의 1, 2집 이후 이처럼 좋은 음반을 내지 못했다. 노엘의 창작력이 쇠한 것인지, 밴드 내부의 갈등이 심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린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같은 말들을 하던 형제는 근근히 오아시스의 명맥을 이어가다가 2009년 공식 해체했다. 

<슈퍼소닉>은 한 영국 밴드가 누린 영광을 그리지만, 감상의 느낌은 쓸쓸하다. 인생에서 반짝이는 순간은 매우 짧으며, 여생은 그 순간을 되새기며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