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토양에서 일탈의 나무는 자랍니다. 그 나무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탈리아 영화 <사랑하고 싶은 시간>(영어 제목 What more do I want)은 흔한 소재인 ‘불륜’을 다룹니다. 각자 가정이 있는 남성과 여성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사랑하기를 반복합니다. 이들이 맺은 육체와 감정의 끈은 매우 질깁니다.

여자의 삶은 안정적입니다. 직장은 번듯하고 남편은 자상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 한구석엔 그늘이 드리워 있습니다. 지나치게 평안한 삶 속에서 권태를 느끼는 걸까요. 누군가는 행복에 겨운 투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삶은 힘겨워 보입니다. 두 명의 아이는 온 집구석을 어지르고, 육아와 가사에 지친 아내는 늘 돈이 부족하다며 짜증을 냅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남자가 일주일 가운데 유일하게 해방을 맛보는 순간은 수요일 퇴근 후의 수영시간입니다.

계급과 성향이 다르지만 일상에 지쳤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남녀가 그렇게 만납니다. 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튑니다. 그러나 낭만의 이탈리아에서 사랑을 나누기는 왜 그리 힘든지, 크고 작은 온갖 장애물이 불안한 연인의 발목을 잡습니다. 한밤에 회사로 들어갔더니 동료가 오고, 으슥한 곳에 들어갔더니 관광객이 나타납니다.

둘은 영화가 상영된 지 1시간쯤 지나서야 첫 육체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쾌락은 허무할 정도로 금세 지나갑니다. 다시 둘을 찾아온 건 배우자에 대한 죄책감과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일상입니다.

여기 꿈같은 사랑은 없습니다. 때늦은 낭만도 없습니다. 짧은 쾌락이 지나가면 둘은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합니다. 한 푼이 아쉬운 남자는 데이트 중에도 경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둘은 일주일에 한 번의 일탈을 즐기지만, 그 일탈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일상에만 머물자니 숨막혀 죽겠고, 일탈하자니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먹는 순간 일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감추어 두었던 사직서를 꺼내들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럴 마음을 먹고 행동한다는 건 영웅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대개 영웅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은 시간>의 두 남녀는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결말을 맞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지만, 혹시라도 그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접지 못합니다. 이 사랑 때문에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누군가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상처입은 사람은 간신히 견디며 살아가겠죠. 이 사람들은 처연합니다. 영화 속 여자도, 그 여자의 감정에 동화된 관객도 모두 가련합니다.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