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영화는 묻는다'에 해당되는 글 57건

  1. 크리스마스가 다 무슨 소용인겨. <아더 크리스마스> (1)
  2. 말 안들어주면 귀신나온다, <헬프>
  3. 지금 누구와 음악을 듣습니까. <뮤직 네버 스탑>
  4. 로봇은 인간을 얼마나 닮아야 하는가, <리얼 스틸>
  5. 아버지의 그림자, <코쿠리코 언덕에서>
  6. 나고 자라고 낳고 죽는다는 것. 오즈 야스지로와 <도쿄 이야기> (2)
  7. 오늘 벌어진 일은 옛날에도 벌어졌다-사라의 열쇠
  8. 히피 군인에 대해-초(민망한)능력자들
  9. 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한가-일루셔니스트
  10. 니체, 허무의 품격. <토리노의 말>
  11.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제인 에어>
  12.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 윤성현 vs 조성희
  13. 죽도록 일하는 여자, <굿모닝 에브리원>
  14. 사랑은 운명이 아니다. <컨트롤러>와 <타이머>
  15.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이윤기 감독 (1)
  16. 누가 함께 싸울 것인가. <언노운>
  17. 인생 포맷이냐, 환생이냐.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 (2)
  18. 적대적 공존에 대해, '메가마인드'를 보고.
  19.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어린이 관람불가?
  20. 연애대행업의 시대 <시라노 연애조작단>+<김종욱 찾기>
  21. <사랑하고 싶은 시간>
  22.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23. 김곡+김선=방독피
  24. ‘대부2’ 세상에 ‘믿을 놈’이 핏줄뿐입니까
  25. 부산영상위원회 떠나는 박광수 위원장
  26. 사랑하게 되면 ‘사랑’에만 몰두하세요
  27. <테이킹 우드스탁>
  28. <영도다리>, <레퓨지>
  29. 원본 없는 패러디에 만족하십니까
  30. 저 달이 차기 전에 (2)
구상과 재료가 맞지 않아 쓰기 힘들 때가 있다. 이 글이 그랬다. 처음엔 그나마 윤곽이 있었는데 생각을 할수록 그 윤곽이 희미해졌다. 그러던차에 시와의 새 음반을 먼저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란 노래가 글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 그때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이 글은 어떻게 끝났을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이 결정해주는 것 같다. 그 우연이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1만5000 엘프와 어수룩한 아더. 나도 저런 스웨터를 입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데, 12월 25일 이후에는 입기 힘들까봐 차마 못사겠다.


어떤 이에게 크리스마스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25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를 믿겠다는 아이의 동심에 병주고 약줍니다. “산타클로스는 있다”고 말해 아이를 웃게 만들더니, “그 산타클로스는 망나니다”라고 말해 아이를 당황케 합니다.

이 영화에는 북극 어딘가에 있는 산타클로스의 비밀기지가 등장합니다. 산타 가문은 대를 이어가며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20대 산타는 70년간 배달을 해온 할아버지입니다. 현대적 장비와 사고체계를 갖춘 그의 장남 스티브는 아버지가 은퇴하고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할 날만 기다리지만, 아버지는 좀체 은퇴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차남 아더는 좀 모자라 보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큽니다. 은퇴한 19대 산타는 독설에 가득 찬 술고래로, 여전히 일할 수 있는 자신이 반강제로 은퇴당했다는 점에 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 구석이 없는 어른들입니다. 궁중 사극의 주인공처럼 권력욕에 가득 찬 장남, 무기력한 아버지, 노욕에 불타는 할아버지 등 가관의 산타 3대입니다. 아더 역시 크리스마스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무능력자입니다. 물론 이 영화를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는 아이와 어른 모두 거부하기 힘든 궁극의 행복한 결말을 준비하지만, 온전히 정을 주기 힘든 캐릭터가 득실댄다는 점에서는 영국 특유의 냉소적이고 짓궂은 유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같으면 책상 정리를 저렇게 하지는 않는다.

<아더 크리스마스>식 냉소를 영화에 되돌려줘 봅시다. 아이를 ‘순수의 표상’으로 만드는 건 어른의 희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이며 산타클로스가 누구인지 알 만한 아이는 이미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회의에 가득 차 있을 겁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는 아이들이 믿기(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행세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순진함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기 위해(물론 선물을 받기 위해서도) 믿는 척한다”고 말했습니다.

따져보면 연말에 벌어지는 많은 일이 그렇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은 항상 가면을 쓴 역할놀이를 하지만, 연말이면 그 놀이의 판이 커집니다. 송년회를 하면 친분이 돈독해진다고 믿는 척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면 연인의 사랑이 돈독해진다고 믿는 척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면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척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건 그 마음이 더 잘 알 텐데 말이죠.

사실 모두들 ‘그런 척’할 때 함께 그런 척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긴 합니다. 그것이 삶의 흐름을 구획짓는 이런저런 기념일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전 곧 발매될 포크 가수 시와의 신보에 실린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라는 노래가 자꾸 떠오릅니다. 시와는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은 가기 싫어/아무 일 없다는 듯 가면을 쓴 것처럼/…/거기 말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그냥 나와 못다한 얘기나 할까”라고 노래합니다. 연말에 만나 못다한 얘기할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의 2011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노욕의 산타 클로스. 이렇게 아드만 스튜디오 캐릭터의 특징은 하나같이 못생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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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정식 요리가 맛있어 보이는 영화.

아이스티 맛있겠다. 머리 세팅하기 힘들겠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부지런할 것 같음.

할 말은 있는데 말할 방법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일 개봉하는 <헬프> 속 흑인 가사도우미들이 그런 처지였습니다. 배경은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소도시 잭슨. 미국에선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보수적인 잭슨시엔 실질적으로 인종차별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상류층 백인 여성들이 미용과 사교와 머나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행사를 여는 사이, 흑인 가사도우미들은 음식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빨래를 했습니다. 이 시기, 이 동네에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가사도우미가 된다는 걸 뜻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가사도우미였기 때문입니다. 흑인 가사도우미는 백인 안주인과 화장실을 공유하지 못했고, 버스에서도 유색인종 전용좌석에 따로 앉아야 했습니다.

백인 중산층 가정의 딸이자 작가 지망생인 스키터는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삶에 다가가려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백인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말하는 방법을 모르고 용기가 없었습니다. 결국 굳센 흑인 가사도우미들과 당찬 백인 아가씨는 주류 백인 사회의 위선과 편견에 똥칠을 할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나 집필중'이라는 표정. 안쓰던 안경은 왜 쓸까.

영화에서 스키터는 구술사 채록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이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 민중의 목소리를 인터뷰를 통해 담아내는 일입니다. 미국에선 남북전쟁 이전부터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적어 출판한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1970년대 경제 발전기를 떠올려 봅시다. 국가는 대기업에 온갖 특혜를 제공했고, 대기업은 이에 화답하듯 ‘수출보국’의 깃발을 내걸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국가는 다시 산업훈장 같은 것으로 기업인들을 치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인이 자신들의 편의를 봐준 국가 지도자에게 비공식적인 답례를 했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입니다. 언론은 국가와 기업의 찰떡궁합을 윤색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업과 국가의 기층에 자리한 노동자는 어땠습니까. 국가와 기업의 요란한 자화자찬 속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20대 남성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말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큰 '변'을 당하는 백인 안주인.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걸까요. 똑같은 일이 2011년에 일어났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요란하고 수상쩍은 상표가 붙은 세상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 노동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85m 고공 크레인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300일, 이제야 그의 말소리를 듣겠다는 사람이 조금 늘어났지만 그가 크레인 아래로 내려올 만큼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민담에 나오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이 한 예입니다. 처녀귀신이 갓 부임한 사또를 한밤에 찾아오는 이유는, 그들을 놀라게 해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 말 좀 들읍시다.

위는 <헬프>, 아래는 <트리 오브 라이프>. 둘 다 제시카 차스테인. 사전 정보 없이 두 영화 보고 같은 배우인줄 알아챘다면 그 안목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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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영원한 '오늘'을 산다. 아름다운 여인을 매일 새로 만나서 좋고, 거짓말쟁이 대통령이 결국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어서 좋다. 그러나 친구가 베트남에서 죽었고, 옛 연인은 결혼해 애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매일 들어서 슬프다. 기쁜 소식을 들을 날을 매번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수명도 조금은 길어질까.

저런 셔츠를 입어도 되는 시절이 좋았다.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옆에 있습니까.

27일 개봉하는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은 너무 극적이라 믿기 힘든 실화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조용한 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20년 전 가출한 노부부의 아들 게이브릴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노숙생활을 한 게이브릴은 뇌종양이 있어 부모조차 알아보지 못합니다. 종양과 함께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게이브릴은 15년 전쯤의 기억에 멈춰 있을 뿐, 새로운 정보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체념하던 노부부는 게이브릴이 밴드 활동을 하던 1960년대 록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노부부와 음악치료사는 비틀스, 밥 딜런, 롤링스톤스, 그레이트풀 데드 등 게이브릴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려주면서 음악치료를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캐릭터는 새로 창조됐지만, 이 같은 환자의 사례는 한국에도 번역된 뉴욕대 의대 교수 올리버 색스의 책 <화성의 인류학자> 중 ‘마지막 히피’에 나와 있습니다.

게이브릴이 ‘그 시절 그 음악’을 듣는 순간의 표정이 기막힙니다. 태엽 풀린 자동인형같이 멍하게 앉아 있던 게이브릴은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밥 딜런의 ‘데솔레이션 로드’가 나오는 순간, 감격스러워하며 추억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20년 전 헤어진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운 표정을 짓고, 그 노래를 듣던 당시의 시대상황, 가족관계까지 이야기합니다.

음악치료중.

세상 모든 사람들이 10대 중·후반 시절만큼 음악을 들으면 음악 산업은 나날이 번창하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취향과 달리, 음악 취향은 10대 시절에 고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아직도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본 조비의 ‘리빙 온 어 프레이어’를 들으면 첫 워크맨을 가졌던 중학 시절로 돌아갑니다. 고교 시절엔 황혼기에 접어들었던 LP를 모았는데, 레드 제플린의 ‘신스 아이브 빈 러빙 유(Since I’ve been loving you)’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하루에 단 한 번만 들었습니다. 두 번 들으면 질릴 것 같아 아껴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같은 노래, 가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음악 공동체’는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배척할 정도로 결속력이 강했습니다. 이후 좋아하는 음악은 조금씩 변했지만, 그 어떤 음악도 중·고교 시절만큼 열심히 듣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의 세포는 죽고 머리카락은 빠집니다. 생물학적으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만물의 유전과 함께 나날이 변화하는 인간관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말일 겁니다.

그러나 20년 전 좋아하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우리는 20년 전의 우리와 정확히 같은 사람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마들렌 빵을 먹는 순간, 그 빵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서 기나긴 회상을 시작합니다. 우리도 옛날에 좋아하던 노래를 이야기한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겁니다.

노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이자, 타인과의 연결 고리입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이던 아버지는 게이블린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들은 뒤에야 비로소 아들과 공감합니다. 지하철에서 하나의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나눠 듣는 여학생들은 음악으로 맺어진 샴쌍둥이입니다. 20년 후,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어른이 된 그 학생이 잠시 떠올리고 미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그레이드풀 데드를 듣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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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로봇 노이지 보이에게 전술을 지시하는 찰리.




로봇은 사람을 닮아야 할까요.


별 볼일 없던 복서가 낡은 체육관에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체육관은 수입이 없어 문을 닫을 처지입니다. 복서는 특유의 인간적인 스타일과 유머로 관중의 인기를 끕니다. 초보 복서는 겁도 없이 세계 챔피언에게 공개 도전장을 냅니다. 챔피언은 도전을 받아들이고, 언론과 관중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주목합니다.

왜 <록키>의 줄거리를 다시 이야기하는지 묻지 마세요. 위 줄거리의 ‘복서’ 자리에 로봇 ‘아톰’을 넣으면 12일 개봉한 <리얼 스틸>의 줄거리가 됩니다. 물론 몇 가지 설정이 추가됐습니다. 2020년, 인간이 아닌 로봇이 링 위에 올라 복싱을 합니다. 인간들은 로봇에 돈을 걸고, 경기를 중계하기도 합니다. 은퇴한 복서 찰리(휴 잭맨)는 로봇을 조련해 링 위에 올리는 프로모터입니다. 오래전 헤어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맥스는 존재조차 모르던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를 임시로 맡습니다. 부자는 한 팀이 돼 버려진 로봇 아톰을 발굴하고 훈련시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종반부, 도전자 아톰과 챔피언 제우스의 격투는 영화 <록키>에서 록키와 챔피언 아폴로의 경기를 빼닮았습니다. 전력에서 열세인 도전자는 간신히 초·중반부를 버티다가 종반부에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심지어 경기 결과마저 같습니다.

그런데 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구조가 한정된 것인지, 이 이야기가 통합니다. 한국보다 한 주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 <리얼 스틸>은 2위 작품을 세 배 가까운 차이로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로봇 록키’가 성공했으니 앞으로 인기있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주인공만 로봇으로 바꾼 ‘로봇 사운드 오브 뮤직’ ‘로봇 닥터 지바고’ ‘로봇 빠삐용’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겠습니다.

권투 영화이자 가족 영화임을 보여주는 장면.



눈여겨볼 점은 <리얼 스틸>의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받거나 동작을 따라하는 데 만족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에는 대기실에 홀로 남겨진 아톰이 문득 거울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로봇에게도 자의식이 있음을 표현하는 듯하던 이 의미심장한 장면은 그러나 이후 그 아이디어를 전개시키지 못한 채 영화 전체의 ‘잉여’로 기능합니다.


이전 할리우드의 로봇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1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는 인간 우주비행사를 제거하고 자신만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원안을 발전시켜 연출한 <에이 아이>(2001)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로봇 소년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바이센테니얼 맨>(1999)은 로봇으로 태어났으나 200년의 세월을 살면서 조금씩 인간의 특성을 획득한 뒤 결국 인간으로 죽는 남자가 나왔습니다.

복싱 훈련중.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을 알고 욕심을 내고 늙고 결국 죽었던 로봇들이 <리얼 스틸>에서는 인간의 동작을 따라하기만 하는 기계덩어리가 됐습니다. 이렇게 영화 속 로봇을 ‘퇴보’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로봇을 인간보다 힘세고 멋있게 만들 기술이 눈앞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로봇을 인간과 너무 닮게 만들면 사용자인 인간이 불편함과 섬뜩함을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과 구별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얼 스틸>의 로봇이 오히려 과거 할리우드 영화의 로봇들보다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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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아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을까.

고로케를 나눠먹는 우미와 슌


아버지란 이름은 얼마나 무겁습니까.

솔직히 모든 아버지가 존경받아 마땅한 건 아닙니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심지어 학대하는 아버지도 종종 있습니다. 유전자의 일부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버지를 공경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0)라면 어떨까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내놓은 애니메이션 거장 말입니다. 그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44)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첫번째 작품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2006)은 대실패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궈놓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성에 못미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비난은 아들을 넘어 그런 아들에게 감독직을 ‘세습’시킨 아버지에게까지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29일 개봉하는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미야자키 고로의 두번째 연출작입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1960년대 초반의 일본. 바다가 보이는 코쿠리코 언덕에 사는 열여섯살 소녀 우미가 주인공입니다.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전쟁 중 실종됐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봉합하고 새 나라를 만들던 일본 사회엔 ‘낡은 것을 부수고 새 것을 짓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우미의 학교에서도 오래된 동아리 건물을 부술 것인지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 격렬한 토론이 오갑니다. 열입곱 소년 슌은 우미와 함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건물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이 낡은 동아리 건물을 청소하는 장면은 꽤 스펙터클하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복고, 아날로그 분위기를 살리면서, 소년·소녀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동아리 건물을 청소하고 정리해 멋지게 재탄생시키는 대목은 꽤 스펙터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시각적 효과보다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들의 성격이었습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우미와 슌은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 속 그 어떤 아이들보다 부모를 그리워하고 의지합니다. 우미는 아버지가 돌아오길 그리면서 아침마다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립니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이 의식을 반복합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나머지 꿈 속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의붓부모 아래서 자란 슌은 친부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합니다.

미성년이 부재하는 부모를 찾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전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홀로 남겨졌을지언정 부모를 찾는 대신 새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아이들이 사귄 새 친구는 또래의 이성이거나 숲 속의 정령이거나 대자연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년·소녀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대신 씩씩하게 세상에 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가장 불만스러웠던 점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가정의 영역을 넘어 사회로까지 드리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미와 슌을 비롯한 학생들은 동아리 건물을 보존하기로 하지만, 학교 이사장은 학생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건물을 철거하려고 합니다. 우미와 슌은 학생 대표로 이사장을 만나 그의 결정을 돌리려 합니다. 이때 우미와 슌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학생이 학교의 한 주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모두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미와 슌의 모습에 미야자키 하야오에 억눌린 미야자키 고로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라는 질문에 미야자키 고로는 “사춘기 때는 정말 싫었다. 요즘엔 이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의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후계자’가 되기엔 패기가 부족한 발언이 아닐까 합니다.

전교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연애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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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일본영화 고전 황금기의 3대 거장을 꼽으면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를 드는데, 난 단지 <부운> 때문에 여기 들지 않는 나루세 미키오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이 미조구치 겐지, 그 다음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동률이었다. 오즈나 구로사와의 영화가 나쁘다기 보다는, 그저 마음에 온전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변하면 감상과 논리가 달라지는지, 연휴 기간 중 짬을 내 다시 본 <도쿄 이야기>는 무척 좋았다. 시간을 두고 다시 봤을 때 새롭지 않다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다다미 샷.   


세월은 얼마나 힘이 셉니까.  

일본을 넘어서 세계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는 1903년 12월 12일 도쿄에서 태어나 자신의 환갑날인 1963년 12월 12일 사망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한 해 전 별세한 어머니의 옆에 묻혔습니다. 검은 대리석으로 된 오즈의 묘표에는 ‘무(無)’라는 한 글자만 적혔습니다.


이 단정하면서도 기묘한 영화감독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의 대표작인 <도쿄 이야기>(1953)를 보면서 전 의문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시골에 살던 노부부가 도쿄의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합니다. 장남은 실력있는 의사고, 장녀는 미용실 원장입니다. 자식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을 반깁니다. 하지만 일에 바쁘기 때문인지 도쿄 구경 한번 제대로 시켜드리지 못하고 나중엔 부모님이 머무시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노부부를 진심으로 대하는 이는 전쟁중 사망한 차남의 아내, 즉 며느리입니다. 노부부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신세를 지다가 결국 시골로 내려가고, 그 직후 평소 건강하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위독해집니다.


착한 며느리 하라 세츠코.

부모를 박대하는 자식들을 비난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오즈는 상황을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나이든 부모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 보일지언정, ‘패륜’으로 비난 받을만큼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응급 환자가 찾아오거나, 집에서 회의가 열려 부모님을 편히 모시기 힘들 뿐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악당이 아니라 바쁜 사람입니다. 패전의 상처를 간신히 봉합하고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던 당시 평범한 일본인의 표상입니다. 

며느리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남편이 죽은 지도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부모를 진심으로 모십니다. 시부모는 재가하라고 권하지만 며느리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도 젊은 시누이에겐 숨겨뒀던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그이를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날도 많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도 차츰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때 폭풍 같던 감정이 오늘은 미풍입니다. 죽을 것 같은 세월을 보내고 나니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도쿄 이야기>의 자식들은 “무덤에 이불 덮어드릴 수 없지 않느냐”며 뒤늦게 불효를 후회하고 통곡하지만,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밤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할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오즈에겐 가족 윤리를 해하는 현대 사회를 비난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영원히 머물 것 같던 무더위가 결국은 가고야 말 듯, 어떤 일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굴곡진 삶, 감정, 경험을 남김 없이 쓸어가는 세월은 잔인하고, 세월이 지나간 뒤의 풍경은 쓸쓸합니다. 자식들도 돌아가고, 아내의 상을 치른 뒤 홀로 남은 노인은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합니다. 노인에겐 오즈의 묘표에 새겨진 한 글자, ‘무’가 떠올랐을까요.


<도쿄 이야기>를 포함한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14편이 상영되는 회고전이 15일~10월 2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립니다. <도쿄 이야기>, <태어나기는 했지만>, <부초> 등 6편은 입장료가 없다고 합니다. 나고 자라 출산하고 출가시킨 뒤 홀로 남아 결국 돌아가는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즈 야스지로(1903~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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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사라의 열쇠>


케케묵은 지난 일을 왜 기억해야 합니까.

1942년 7월 프랑스는 나치에게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나치의 하수인이 된 프랑스 정부는 아돌프 히틀러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1만명 이상의 유대계 프랑스인을 체포해 벨디브 경륜장에 수용했다가 차례로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나치 점령기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프랑스인의 손으로 직접 저질러진 이 끔찍한 사건은 프랑스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훗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사건에 프랑스 경찰과 공무원이 개입된 것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11일 개봉하는 <사라의 열쇠>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10살 소녀 사라는 남동생을 벽장에 숨기고 문을 잠근 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벨디브로 끌려갑니다. 사라는 동생을 꺼내주겠다는 일념으로 가까스로 임시 수용소를 탈출합니다. 세월이 흘러 2009년 프랑스의 어느 잡지사. ‘벨디브 사건’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 줄리아는 남편과 함께 이사들어가려던 집에서 사라의 자취를 발견합니다.


미국의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사람들은 역사에 붙들려 있고, 역사는 사람에 붙들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라의 열쇠>는 이 인용구의 뜻을 뛰어나게 시각화합니다. 사라와 줄리아 사이에는 57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혀 있지만, 둘의 삶은 서로에게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흔적 위에 발딛고 서있습니다.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덮는다 해도,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는 경륜장, 수용소를 거치며 부모와 헤어졌지만 벽장 열쇠만은 꿋꿋이 간직합니다. 체포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파리로 돌아오지만 시간은 조금 늦은 듯 합니다. 사라는 벽장에 열쇠를 꽂아 돌린 뒤 역사와 삶의 비극을 직시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보다 용기가 없습니다. 줄리아의 남편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사라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자신의 가문을 취재하는 아내에게 “그 잘난 진실이 무얼 가져다줬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두뇌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망각이라고 합니다.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를 죄다 기억한다면 인간은 제정신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단도 때로 개인과 비슷해서, 불편한 진실은 잊은 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촌스러운 옛사진이라도 되는양 벽장 안에 넣어둔 채 열쇠를 잠그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한 기억일수록 햇빛 아래 또렷이 드러내야 합니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시간의 파괴력, 망각의 힘에 끝까지 저항해야 합니다. 오늘 일어난 나쁜 일은 대개 옛날에도 한 번은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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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민망한)능력자들>의 케빈 스페이시(좌)와 조지 클루니.


히피족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있습니까.

이번주 개봉하는 영화 <초(민망한)능력자들>에는 그런 군인이 나옵니다. 원제는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The men who stare at goats)로 영국의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쓴 논픽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실존했다는 미 육군 산하 특수부대의 이야기입니다. 30여년전에 설립된 이 부대의 주특기는 원격투시, 주파수공격, 벽 통과하기, 노려봄으로서 죽이기 등입니다. 한마디로 초능력자 부대입니다.


특종을 찾아 헤매던 영화 속 기자 밥 월튼(이완 맥그리거)은 묘한 분위기의 남자 캐서디(조지 클루니)를 만나 신기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캐서디는 자신이 미 육군의 초능력자 부대 소속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합니다. 밥은 호기심에 캐서디를 따라 이라크에 갔다가 온갖 온갖 고생을 합니다.


캐서디가 속한 ‘신지구군’(New Earth Army)는 베트남 참전 군인인 빌 장고(제프 브리지스)에 의해 창설됐습니다. 장고는 전장의 전우들이 적들을 정조준하지 않고 일부러 빗나가게 쏘는 모습을 목격한 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인을 원치 않는다”고 결론내립니다. 부상을 당해 전장을 벗어난 그는 당대를 휩쓸던 뉴에이지 운동, 즉 히피즘에 6년간 빠져 지내다가 군대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수도승의 정신을 겸비한 전사’가 되자는 깃발을 내걸고 상부로부터 신지구군 창설을 허가 받습니다. 세계의 분쟁 해결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반짝 눈 기술’을 써서 적을 제압하고, 분쟁 지역에 식물 혹은 동물을 가져가고, 토착 음악을 듣고, 평화의 말을 건넵니다. 물론 군 상부에선 소련이 초능력자 부대를 만들었다는 정보에 허겁지겁 부대 창설을 허가했을 뿐, 애초에 평화 따위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신지구군은 그 이전이나 이후의 어느 군인과도 다릅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총 대신 눈빛을 쏘고, 육체보다는 정신을 단련하고, 전쟁보다 평화를 외칩니다. 영화는 이들의 황당한 훈련 과정에서 웃음을 끌어냅니다. 하지만 그 웃음의 바탕에는 철없는 바보에 대한 조롱 대신 실패한 이상주의자에 연민이 깔려 있습니다. 비록 소련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들 신지구군은 ‘군인’에 대한 현재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고자 했습니다.


신지구군은 전혀 군인답지 않지만, 과연 군인다운 것이란 무엇입니까. 민주화 시위를 하던 민간인에게 발포한 공수부대는 군인다웠습니까. 민간 정부를 뒤엎고 스스로 대통령이 된 군인은 어떻습니까. 독립운동을 하던 동족의 목을 밴 조선인 출신 간도특설대는 ‘전쟁영웅’으로 미화할만 합니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속성을 하나로 묶어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토건족, 이익을 공유하는 자본가, 공명심이 없는 정치인. 지금은 상상 뿐이지만, 상상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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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할까요.


참 이상합니다. 2년 전 아껴 입던 그 옷을 올해 꺼내 입으려니 참 민망합니다. 지난해 여름 질리도록 들었던 그 노래는 참 촌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피곤합니다. 여름철의 생선회보다 변하기 쉬운 대중의 취향 때문입니다. 어제의 흥행 감독이 오늘은 흥행에 참패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잘 팔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제비 새끼가 먹이 달라며 입 벌릴 때보다 더 열렬히 새것을 구하는 이들이 바로 대중입니다.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는 ‘시대착오적 예술가’를 다룹니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렸던 영화감독 자크 타티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1950년대쯤으로 추정되는 시대, 일루셔니스트는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빈 와인잔을 채우는 등의 마술을 선보이는 방랑 마술사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록밴드가 나왔습니다. 관객은 늙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철 지난 마술을 하는 일루셔니스트를 외면합니다.

마술사는 시대를 따라잡을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영화 내내 거의 대사가 없는 마술사는 관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공연을 합니다. 그도 어느 순간 공연계에서 영원히 도태되고 말겠지요.

단조롭던 마술사의 삶에 하나의 활력소가 생깁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선술집 공연에서 만난 소녀 앨리스. 순진한 그녀는 귀 뒤에서 동전을 만들어내고 모자에서 꽃을 꺼내는 마술이 진짜인 줄 알고 그를 따라나섭니다. 한물 간 예술가에게 진정한 팬이 생긴 겁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팬의 존재를 의식하진 않을 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그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들겠습니까. 어느 소설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자를 생각하며 쓰느냐고. 그는 말했습니다. 첫번째 독자, 즉 나 자신만 생각한다고. 자기 자신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면 외로울 겁니다. 아무리 고고한 은둔 예술가라 할지라도 자기 외에 한 사람은 더 필요합니다.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수는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막스 브로트가 없었다면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은 노동자재해보험국의 공무원으로만 기록됐을지 모릅니다.

예술가의 첫번째 팬은 그 자신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응원하지 못하는 예술가를 받아줄 만큼 품이 넓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팬의 존재만으로 예술가는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큰 힘을 얻습니다. 철 지난 마술이든, 시든, 노래든, 세월에 어긋난 그 무엇을 하든 말입니다. 어디 예술가만 그렇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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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의 말

허무의 밑바닥엔 무엇이 있습니까.

6일 끝나는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국제 영화제에서 유명하지만 국내 관객에겐 매우 낯선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을 먼저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56세의 타르는 <토리노의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영화는 조만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5년에 한 번 꼴로 기나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내놓곤 했던 그가 이 은퇴작에서 전한 메시지는 ‘허무’였습니다. 영화는 ‘허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시작합니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머물던 니체는 마부가 고집센 말에게 마구 채찍질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니체는 사건 한복판에 뛰어들어 말의 목덜미를 감싸안고 흐느낍니다. 숙소로 돌아온 니체는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남긴 뒤 10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세상을 뜹니다. 


토리노의 말

<토리노의 말>의 주요 등장 인물은 아버지, 딸, 그리고 말입니다. 146분의 상영시간 동안 부녀는 몇 마디 말을 나누지 않습니다. 거센 폭풍이 한시도 쉬지 않고 불어닥치는 황무지의 오두막, 옷을 입고 물을 긷고 감자 한 알로 식사를 대신하는 이들의 6일간의 모습이 이 흑백영화의 전부입니다.

물론 6일 사이에는 작은 변주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말은 차츰 병들어 갑니다. 술을 빌리러 온 이웃 남자는 세상과 인간의 근본에 대한 비관적인 말을 늘어놓습니다. 인근을 지나던 떠돌이 집시들은 부녀를 위협합니다. 결국 힘겹게 길어 올리던 우물물이 마릅니다. 부녀는 손수레에 간단한 가재도구를 싣고 집을 떠나려 하지만 곧 돌아옵니다. 집안을 희미하게 비추던 불빛마저 조금씩 사그러듭니다. <토리노의 말>은 압도적인 절망과 허무의 분위기에 차츰 잠식돼 갑니다. 인간과 동물은 힘겹게 지상의 삶을 이어왔지만, 이 삶이 계속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의 구체적인 재난이나 위협 때문이 아닙니다. <토리노의 말>이 보여주는 절망과 허무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조건에 맞닿아 있기에 더욱 뿌리가 깊습니다.


다시 니체를 떠올려 봅니다. 니체는 피안에 가치를 둔 플라톤주의를 망치로 깨 부쉈습니다. 그 결과 광막한 허무에 노출된 차안의 나대지가 나타났습니다. 니체는 “다 부질없다” 식의 피상적 허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가치로 촘촘히 구축된 건물을 허물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하길 원했습니다.


이 허무에는 품격이 있습니다. 정신의 도저한 힘을 길러,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치열하게 맞서싸운 자만이 허무를 말할 자격을 갖춥니다. 허무의 나대지에 새 싹이 자랄까요. 니체도, 타르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파괴할 것도, 내려갈 곳도 없다는 사실은 의지의 반석이 될 것입니다. 

벨라 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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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 발음하기에 익숙해져야 할 이름.

제인 에어를 사랑하시겠습니까.


가진 돈이 없습니다. 고아입니다. 양육을 맡은 외숙모는 그녀의 성격이 “엉큼하고 반항적”이라고 평합니다. 학교 이사장은 “불길과 유황이 타고 있는 구렁 속”에 떨어질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외모도 평범합니다. 심지어 그녀의 연인과 친구들조차 그녀의 외모에서 아무런 매력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관객은 제인 에어가 계속 보고 싶은가봅니다. 20일 개봉한 <제인 에어>는 샬럿 브론테 원작의 22번째 영화입니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을 맡았던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제인 에어, 마이클 파스밴더가 로체스터 역을 맡았습니다. 신예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영화는 에어가 문을 힘껏 열고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어둡고 답답한 집 안에서 밝고 넓은 바깥으로, 에어는 달려갑니다. 무엇엔가 쫓기듯 숨차게 달려가던 에어는 조그마한 집 앞에서 쓰러지듯 몸을 기댑니다. 선한 이웃이 이 익명의 방랑자를 도와줍니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이 장면이 어느 대목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체스터와의 결혼에 실패한 에어가 상처와 추억을 동시에 준 손필드 저택을 나가 새 삶을 시작하려는 부분입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즐거웠던 한 때

<제인 에어>가 처음 출간된 것은 1847년,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남편, 친구의 도움 없이 여자 혼자 삶을 살아나가기란 지독히 어려웠을 겁니다. 영화판 <제인 에어>가 소설 중·후반부에 놓인 이 장면을 도입부로 설정한 건, 에어의 굳센 성격과 홀로 서기가 160여년간 사랑받은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겁니다.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로맨스 소설의 경향일진데, <제인 에어>처럼 두 주인공이 못생겼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 소설도 드물 겁니다. 로체스터를 두고서는 대놓고 ‘추남’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물론 영화에선 그럴듯한 외모의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여느 영화에 비해선 평범한 편입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어도 에어는 굴하지 않습니다. 없는 재산이나 외모를 아쉬워하지도,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습니다. 터무니 없는 자신감에 넘치거나 체념이 빨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에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에어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성을 사귈 때 ‘이상형’이라는 걸 묻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상형은 현실에 없기 때문에 이상형입니다. 사랑은 연역이 아니라 귀납이며,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시작합니다. 로체스터는 왜 에어를 사랑합니까. 원작을 아무리 읽어봐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에어를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가 로체스터를 총체적으로 매혹시켰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매혹의 임계점을 넘으면 사소한 결점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하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제인 에어>의 계속된 리메이크는 대중이 이것을 얼마나 원하며 또 역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안개 속의 제인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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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왼쪽)과 조성희. 권호욱 기자


1990년대 한국영화의 산업적, 미학적 중흥기가 박찬욱·봉준호을 배출했다면, 2000년대 한국영화는 누가 책임을 질까. 젊은 감독들이 백가쟁명하고 있지만 뚜렷한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앞으로 윤성현(29)과 조성희(32)란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이들은 3월 개봉한 <파수꾼>과 <짐승의 끝>의 연출자이며, 2009년 졸업한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 연출전공 동기다. <파수꾼>은 개봉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독립영화 흥행의 기준점인 1만명 관객을 넘어섰고,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세밀하고 날카로운 연출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짐승의 끝>은 최근 독일에 수출됐고,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이보다 더 잘 만든 영화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았다. 조 감독의 전작인 단편 <남매의 집>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7년 만에 대상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의 일환으로 제작된 <파수꾼>과 <짐승의 끝>의 제작비는 5000만원 안팎. 배우와 스태프들의 희생이 뒷받침됐다고는 하지만, 역시 영화는 돈이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임을 두 영화는 입증한다.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인 두 감독을 만났다.

<파수꾼>의 무시무시한 교실.

- 서로의 작품에 대해 평가한다면.

“<파수꾼>을 보고 굉장히 충격받았다. 보면서 ‘다음에 내가 써먹어야지’ 하는 부분도 있었다.(웃음) 제작 사정을 뻔히 아는데 그 집념이 보였다. ‘얼굴에 철판 깔고 못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조성희)

“성희형한테 장난 많이 치고 괴롭히지만 시실 굉장한 리스펙트(존경)를 갖고 있다. 둘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누가 잘되든 (잘되는 쪽에) 묻어가자’고. 솔직히 말하자면 <남매의 집>이나 <짐승의 끝>은 성희형이 가진 반의 반도 못보여줬다. 아직은 그의 예고편이다. 언젠가 믿을 수 없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윤성현)

- 첫 장편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5000만원으로 찍으면 배우,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게 거의 없다. 물질이 다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 아닌가. 돈도 못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사람을 더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케이’ 하면 다들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하면 좋은 작품은 만들 수 없다.”(윤성현)

“43분짜리 단편을 찍어봤으니 그 두 배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일은 10배였다. 호흡이나 체력 조절 같은 부분이 어려웠다.”(조성희)

윤 감독은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드는 것이 사진, 그림, 문학일 수도 있지만, 그에겐 영화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19살 때부터 한겨레영화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했다. 조 감독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들어갔다. 매일 모니터만 보다 어느날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찍어봤는데, “햇빛, 바람 맞으면서 일하니 살아있는 것 같아서” 이후로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 영화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언제인가.

“구상할 때만 즐겁다. 나머지는 다 고생이다.”(조성희)

“작업을 시작하면 자기 에너지를 다 쏟는다. 한번에 불사르고 죽는 거다. 그걸 즐겁다고 표현하긴 힘들다. 살아있다는 생각은 하겠지만.”(윤성현)

두 감독은 이미 유력 상업영화사와 차기작 준비에 들어갔다. 조 감독은 SF를 준비 중이고, 윤 감독은 “입체적인 남자 캐릭터가 등장해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 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욕망이 있나.

“있다. 한국의 창작자나 관람자에겐 ‘귀족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께 <남매의 집>을 보여드렸더니 조셨다. 가족들이 좋아할 영화를 만들고 싶다.”(조성희)

“관객 없이 영화는 없다. 혼자 할 거면 영화 안한다. 민폐는 민폐대로 끼치면서 나 혼자 즐겁자는 감독은 기본이 안된 거다. 난 <과속스캔들>을 재미있게 봤고, 강형철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게 옳은지는 고민이다.”(윤성현)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은 ‘테리블’하지 않았다. 이들은 건방지기보다는 겸손했고, 떠들썩하기보다는 조용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니 뒤늦게 한마디가 기억났다. “기존에 한국에서 보여지지 않은 영화를 만들 겁니다. 우리 기수는 전설이 되고 싶습니다.”(윤성현)

<짐승의 끝>의 그녀와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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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선 해리슨 포드가 꽤 근사하다. 그의 벌레씹은 듯한 표정과 말하기 싫다는 듯한 말투가 재미있다.


여자는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일해야 합니까.

성공하기 위해선 누구나 죽도록 일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가끔 삼신 할머니가 돈 많고 권세 있는 가문에 점지해줘서 노력 없이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 여성이 성공하기는 남성에 비해서도 훨씬 힘듭니다. 2009년 중앙행정기관 41곳의 고위공무원 1428명중 여성은 40명이었고,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1%대입니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베키(레이챌 맥아담스)는 지역 방송사의 모닝쇼 프로듀서입니다. 인력 감축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다가 뉴욕의 중앙 방송사에 어렵사리 취직합니다. 그러나 베키가 맡은 프로그램은 경쟁사 프로그램들에 완전히 밀려 최악의 시청률 기록을 세우고 있는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입니다. 의욕이 넘치는 베키는 전설적인 앵커 마이크 포메로이(해리슨 포드)를 영입해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강직하지만 고지식한 언론인 포메로이는 모닝쇼의 말랑말랑한 아이템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베키는 취직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한다”고 소개합니다. 퇴근한 뒤에도 핸드폰과 노트북 컴퓨터를 내려놓지 않고 일합니다. 그렇게 해서 연애가 될리 없습니다. 소개팅을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영화와 드라마 속 남성들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노력과 집념으로 직장에서 성공한 뒤 행복한 가정도 꾸린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남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런 작품을 만든다면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사랑을 버리고 야망만 추구하는 남자 주인공의 끝은 결국 파멸입니다. 직장에서 경쟁자에게 제거되거나, 가난한 시절 버린 연인에게 복수당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인 <굿모닝 에브리원>의 엔딩이야 다들 짐작하는 대로죠.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선 ‘일벌레’ 혹은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긍정하고 심지어 분홍빛으로 치장하는데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와 시나리오 작가를 공유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역시 악마같이 일하는 패션잡지 여성 편집장을 영웅처럼 그려냈습니다. 


100만 관객을 동원한 <블랙 스완>의 흥행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발레리나 니나는 꿈에 그리던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발탁되지만,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성공에 대한 갈망과 실패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니나의 모습에 많은 젊은 여성 관객이 쉽게 동일시한다는 얘깁니다.


악마, 벌레, 마녀가 아닌 멀쩡한 여성도 성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중독과 성실, 착취와 경쟁을 혼동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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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운명이 아닙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물론 많은 멜로영화들은 사랑이 운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주말 오후의 데이트에 멜로영화를 본 젊은 남녀들은 영화의 주장을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운명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렸습니다. 치솟는 이혼율, 부부나 연인의 끝없는 다툼, 숱한 불륜은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랑이 운명이라 하더라도 운명의 상대를 만날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세계 인구가 60억명입니다. 운명의 상대를 어떻게 만나고, 만난다 해도 그가 맞는지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번주 개봉작 <타이머>는 말도 안되는 기계장치를 소개합니다. 제목 그대로 ‘타이머’란 이름의 이 장치는 손목에 이식돼 운명의 짝을 만날 날까지 남은 시간을 디지털 숫자로 표시합니다. 물론 상대방도 타이머를 이식해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합니다. 운명의 짝을 만날 날이 되면 타이머의 남은 숫자는 0이 되고, 상대를 만나는 순간 신호음이 울립니다. 타이머를 이식하는 회사에서는 이 장치를 통해 만난 커플의 만족도가 98%에 달한다고 소개합니다. 연애를 하면서 이 사람이 운명의 짝인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죠.

타이머


영화는 운명의 짝이 아닌 네 남녀의 사랑을 그립니다. 타이머는 운명이 아니라고 하는데, 주인공들은 눈앞의 그 사람이 좋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좋은 감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운명을 극복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했던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결말을 제시합니다.

지난주 개봉작 <컨트롤러>는 반대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 영화엔 심지어 신과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운명의 궤도를 정해놓고, 인간이 그 궤도를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칙칙한 색깔의 양복을 입은 천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맷 데이먼은 끝내 운명이 아닌 사랑을 쟁취하려 듭니다.

컨트롤러

한 편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고, 다른 한 편은 거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운명이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잘 압니다. 죽고 못살듯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가 알고보면 1년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모두를 침울하게 할 겁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운명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관계는 원활하게 지속되기 힘듭니다. 물론 운명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생을 계산대로, 필요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될지 가만히 지켜봐 줍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우주는 확률이 아니라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후 물리학의 성과는 확률적 우주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해도 신이 아닌 인간은 결코 그 운명을 모릅니다. 사랑 역시 운명이 아닌 확률이지만,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률은 노력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농구선수가 마이클 조던이 될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자유투 성공확률 정도는 높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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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전작 <멋진 하루>는 내 2000년대 한국영화 페이버릿 중 하나다. 그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에는 공교롭게 <밤과 낮>이 있어, 2008년의 개인적인 리스트에서 <멋진 하루>는 2위였다. 난 여전히 그 영화가 좋다. 이번에 이윤기 감독을 만나서도 <멋진 하루>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는 <멋진 하루> 이후 하정우, 수애를 주연으로 찍다가 제작도중 촬영이 중단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멋진 하루>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잘못 알고 와서 보다가는 화를 내는 관객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석우 기자

현빈과 임수정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성에 혹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러가려는 팬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겠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함께 살던 부부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그 집 안에서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의 일이 이 영화의 전부다. 두 배우는 크게 웃거나 울거나 싸우지 않는다.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찻잔을 정리하고, 요리책을 넘기고, 잠시 텔레비전을 보고, 외식 계획을 포기한 대신 저녁을 준비한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는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종일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이윤기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여자, 정혜>에서 시작해 <멋진 하루>까지 이어지는 이윤기 영화의 궤적을 따라온 관객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새로 유입될 관객에게는 낯선 영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 며칠 ‘잠적’했다가 나타난 그를 2월 28일 만났다.

“대중이 현빈, 임수정의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판단할 수 있나요. 배우들은 여러 모습을 갖고 있는데, 전 그 중 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들(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그는 “우리 나라는 배우 퀄러티가 제일 좋다. 제작자, 감독, 투자자, 기자보다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들의 능력치를 모두 보여주기엔 한국영화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규모가 작았지만, 전도연, 하정우, 한효주, 김지수 등 스타 배우들이 잇달아 출연했다. 이번 영화에도 현빈, 임수정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에 갈증을 가진 배우들이 이 감독의 “무모한 시도에 서슴없이 동참”해준다는 설명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이은 ‘현빈 쓰나미’에 휩싸인 상황이 기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현빈이 있어서 주목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티켓 파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며 “영화에 대한 논쟁은 환영이다. 하지만 ‘현빈 효과 없었다’는 식의 실패작으로 만들게 뻔해 미리 짜증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쓰나미의 주범. 이 영화를 찍은건 <시크릿 가든>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는데, <시크릿 가든>에서 머리를 어떤 컨셉으로 갈지 정해지지가 않아 일단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머리를 하고 <사랑한다...>를 찍었다.

<사랑한다…>는 섬세하고 느린 영화다. 드라마적 효과를 위한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들리는 음향은 빗소리 뿐이다. 지하에서 3층까지 빗소리를 모두 다르게 설계해 녹음했고,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서도 다르게 들리도록 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는 일반적 관점에서는 둘에 대한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겠지만, 애초 그걸 다루려고 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그린 것은 둘의 ‘마음 상태’다. 영화 시작부터 이어진 12분간의 롱테이크(길게 찍기)는 영화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눠 찍으면 인위적으로 강조하게 되니까. 중요한 건 대화 자체보다 말의 뉘앙스, 표정, 시선이었습니다.”

여자가 바람 나서 집을 나가겠다는데 현빈처럼 묵묵히 반응하는 남자가 있을까. 이 감독은 현빈 캐릭터를 “감정 표현에 미숙한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그 안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속 임수정도 비슷한 사람이어서 둘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터뜨려 해결하기보다는 안으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지만 속으론 곪아들어간 사람. 이별조차 시원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한다…>의 주인공들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5편의 작품 중 4편이 여성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번 영화의 원작은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아레노의 단편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이다. 그는 “원할 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건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도 관심이 많으며, 모두 놀랄만한 대단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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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엄 니슨 넘 멋져. 베를린도 멋져. 어떤 배우는 나이가 들면서 별 연기 안해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데, 브루노 간츠가 프랭크 란젤라에게 쓰러지는 모습에선 어휴... 오늘 어느 분이 문자로 "뼈속까지 스며드는 싸~한 베를린의 겨울"을 얘기하시던데. 그나저나 현빈은 좋겠다. 이 겨울에 베를린에 가서 맥주도 먹고 슈납스도 먹고.



막강한 적이 눈앞에 있습니다. 힘을 합쳐 싸울 이들은 누구입니까.


<언노운>은 신분을 빼앗긴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인 마틴 해리스 박사(리엄 니슨)는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학술회의 참석차 독일 베를린에 옵니다. 호텔에 도착한 순간 공항에 가방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해리스는 아내를 남겨둔 채 택시를 타고 돌아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72시간 만에 깨어난 해리스는 만류하는 의사를 뿌리치고 호텔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을 못 알아봅니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낯선 남자가 마틴 해리스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하는 해리스는 사고차량을 운전한 택시 기사(다이앤 크루거)를 찾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해리스의 정체성을 빼앗은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건 이런 종류의 액션 스릴러를 자주 봤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사에서 ‘오인된 남자’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즐겨 다룬 테마이기도 했습니다. 결말에 대한 내용이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음모 세력의 정체가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는 건 영화의 한 단점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적에 대항해 뭉치는 세력은 신선합니다. 먼저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알린 상징적인 장소 베를린이 배경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리스가 처음 도움을 청하는 이는 구 동독 비밀경찰 출신의 노인입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의 주연이자 이제 70대에 이른 독일의 명우 브루노 간츠가 연기한 이 노인은 늘 기침을 달고 살며 틈만 나면 술잔을 채우는 모습이 알코올 중독을 의심케 합니다. 사무실에는 옛 제복을 입은 흑백사진들을 세워 놓았는데, 방문객이 물으면 늘 “좋았던 옛 시절”을 언급할 만큼 사회주의 동독과 자신의 직무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가 가득합니다. 그는 비밀경찰로서의 오랜 경험, 인맥, 직관을 통해 해리스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칩니다.

해리스의 또다른 조력자는 택시 기사 지나입니다. 보스니아 출신 불법이민자인 그녀는 사고를 당한 뒤 목숨을 걸고 손님을 살려냈지만, 감사를 받기는커녕 경찰이 오자 몸을 피해야할 처지입니다. 그녀의 친구인 또다른 택시 기사는 아프리카에 있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만 악당의 손에 죽음을 당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전이었다면 동독 비밀경찰과 보스니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같은 편이 되는 영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첩보영화에서 비밀경찰은 언제나 악당이었고, 보스니아 출신 이주노동자는 영화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종 승리’를 선언한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신자유주의가 지구를 장악하고, “다문화정책은 실패했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최근의 서유럽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한 편에 섭니다. 물론 둘의 속내는 다릅니다. 비밀경찰은 순전히 직업적 호기심에서, 택시 기사는 영주권을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적의 실체에 다가섭니다. 그러나 적의 힘이 너무나 세기에, 이들은 힘을 모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화를 겪었습니다. 탈북자,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조선족 이모’, 베트남 신부가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을지 10년 전만 해도 누가 알았겠습니까. 10년 뒤 통일이라도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때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경찰은 누구와 손잡고 무얼 하겠습니까. 한국영화의 풍경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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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이번에 개봉을 앞두고 다시 봤다. 자막을 읽으면서 보니 처음볼 때보다 훨씬 우울한 영화였다....

아무튼 이 영화의 원제는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점쟁이가 별 의미없이 하는 말인 것 같다.  전작  'Vicky Cristina Barcelona'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개봉했다. 원제를 그대로 쓰기 힘든 마케터들의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가능한 많은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고민은 이해하면서도, 좀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헬레나(오른쪽)는 오컬트 서점의 주인장(가운데)과 사랑에 빠진다. 얼마전 상처한 주인장은 죽은 아내에게 새 사랑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물어본다.

환생을 믿으십니까.


명장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원제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앨런의 영화가 종종 그렇듯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내레이터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생은 분노와 헛소리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 흥겨운 빅밴드 음악이 분위기를 중화시키지만, <환상의 그대>는 앨런의 최근 어느 영화보다 염세적입니다.


코미디의 외피를 쓴 앨런의 영화는 대체로 비관적이었습니다. 앨런은 그렇게 40편의 장편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극중 인물을 닮았다면 온갖 히스테리와 자격지심과 건강염려증을 겪은 그가 어느덧 80을 바라보면서도 거의 매년 영화를 내놓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입니다.

청춘을 되찾고 싶은 알피(안소니 홉킨스)는 조강지처 헬레나(젬마 존스)와 이혼한 뒤 콜걸과 재혼합니다. 알피와 헬레나의 딸 샐리(나오미 와츠)는 뛰어난 데뷔작을 발표한 뒤 두번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작가 로이(조쉬 브롤린)와 아슬아슬한 부부 관계를 유지합니다. 샐리는 매력있는 직장 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원고를 보낸 뒤 출판사의 반응을 기다리는 로이는 옆집의 아름다운 여인(프리다 핀토)에게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샐리는 직장 상사 그렉에게 호감을 품는다. 물론 그건 그렉이 어떤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함께 오페라를 보자는 식으로.

그러고 보면 이 사람들은 참 한심하고 가련합니다. 저마다 자신이 원하던 일과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헬레나는 척 봐도 사기꾼인 점쟁이에 의지합니다. 사위는 점쟁이를 비난하지만, 장모가 돈도 못벌고 까칠한 사위보단 듣기 좋은 말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점쟁이를 믿는 건 당연하겠죠. 


헬레나의 마음은 결국 ‘환생’ 개념에 끌립니다. 헬레나는 이승에서의 삶이 엉망일지라도, 다시 태어나면 지금보다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억겁의 세월에서 스쳐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니, 안달할 것도 탄식할 것도 없습니다. 이 겉만 달콤하고 속은 쓰디쓴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결국 헬레나입니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길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끝없이 돌아보고 고민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걸 느낄 때, 인생을 ‘포맷’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 분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가장 늦었다는게 문제입니다. 무작정 포맷하기에 우리 삶에는 이미 너무 많은 자료가 축적돼있고, 프로그램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과감하게 포맷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성인(聖人)이나 영웅으로 존경하는 이들은 대개 파란만장하고 방탕한 삶을 한 차례 포맷한 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우리는 성인도, 영웅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편의 사랑만 믿던 헬레나도 그랬습니다. 그녀가 환생을 믿듯이, 우디 앨런도 환생을 믿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재치 있는 영화감독도 자신의 이번 삶에 불만을 느끼고 있을까요.

슬럼프에 빠진 작가 로이가 반한 옆집 여자. 프리다 핀토라는 이름의 이 배우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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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메가마인드>는 드림웍스의 범작이다. <몬스터 VS 에일리언>이다 <슈퍼배드>보다는 재밌는거 같지만, <쿵푸팬더>나 <드래곤 길들이기>에는 못미친다. 물론 드림웍스의 범작은 다른 스튜디오의 수작이 될 때가 많다.

악당 메가마인드. 원래는 악당이 아닌 것 같다.


적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까.

‘적대적 공존’이란 표현처럼 모순적이면서도 우리의 현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 친구 혹은 같은 민족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 순식간에 적으로 규정됐습니다.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내부 결속력은 강화되기 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라디오 연설에서 안보 위기 앞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3일 개봉하는 <메가마인드>는 적대적 공존의 양상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영화지만, 정치적 함의도 찾을 수 있습니다.

멸망 위기에 처한 우주의 행성에서 구명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 아기 외계인들이 지구에 도착합니다. 한 아기는 부잣집, 다른 아기는 교도소 앞마당에 착륙합니다. 외계인답게 지구인들을 능가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각각 슈퍼히어로 메트로맨과 악당 메가마인드로 성장합니다. 둘은 도시의 주도권을 놓고 매번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입니다.

어느날 메가마인드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자, 메트로맨은 그대로 사라집니다. 제 세상을 만난 악당은 마음껏 나쁜 짓을 하려고 마음먹지만 곧 시들해집니다. 자신을 방해할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메가마인드는 라이벌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합니다.

슈퍼히어로 메트로맨. 표정에서 보이듯 좀 재수가 없다.

사실 메가마인드는 진정한 악당이라기보다는 놀아줄 친구가 필요한 어린아이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머리, 푸르스름한 피부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단으로 따돌림당한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과의 대결을 준비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습니다. 따져보면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은 서로에게 강력한 적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셈이죠.

대표적인 첩보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드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미치광이, 전직 KGB 요원, 러시아 마피아, 미디어 재벌, 초국적 투기자본가를 적으로 삼아 싸워 물리쳤습니다. 악당이 강할수록 본드의 활약상은 더욱 빛났습니다.

문제는 <메가마인드>나 <007> 같은 액션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상황이 현실에서도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만 해도 적과 끝없이 싸워왔습니다. 소련, 베트남, 이란, 북한에 이어 최근엔 중국과도 심심치 않은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 일만도 아닙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엔 여당 사람이 북한 관계자를 만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이른바 ‘총풍 사건’이 있었습니다.

라이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강한 상대방을 넘어서려는 도전욕구는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지 않고는 체제의 정당성을 가질 수도, 체제를 유지할 수도 없는 취약한 권력체계에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함을 믿지 못해 불안한 자들일수록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합니다.

자막판에서는 (한국에선 별 인기 없지만 사실 엄청나게 웃긴) 윌 페럴이 메가마인드, 브래드 피트가 메트로맨 목소리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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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무서운 영화다. 이걸 애들 보라고 만들었다니. '세상은 이렇게 끔찍하단다'라고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나. 조앤 롤링, 나빠요!




지금은 ‘어둠의 시기’입니까.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 도입부의 마법부 장관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역을 맡은 빌 나이히는 <러브 액츄얼리> 속 한물간 로커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웃음기를 잃어버린 건 이 영화 속 모든 인물이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이미 <마법사의 돌>이나 <비밀의 방> 시절의 귀엽고 똘망똘망한 해리 포터를 기대하진 않습니다. 4편 <불의 잔>을 즈음해서 해리 포터의 세계는 차츰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야 워낙 광폭하거나 우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리즈 마지막 편인 <죽음의 성물>에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입니다. 전편인 <혼혈 왕자>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지키던 덤블도어 교장이 사망한 후, 세상은 사악한 볼드모트 일당에게 지배당합니다. 볼드모트 일당은 호그와트와 마법부를 장악하고, 머글(인간)을 살해하고, 머글과 마법사 사이의 ‘잡종’을 내쫓습니다. 약자, 소수자, 이방인을 배척한 채 ‘순수한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볼드모트의 이념적 성향은 ‘파시즘’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볼드모트의 정책은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들을 내쫓거나 죽인 나치들을 연상시킵니다. 2차대전이 끝난 지도 65년이 지났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여전히 파시즘을 경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판타지는 환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제작된 좋은 판타지는 언제나 지상에 한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한가한 시간을 앗아가는 킬링 타임 판타지쯤으로 여겨졌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어느덧 자기 나름의 진지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조앤 롤링의 원작을 별다른 축약 없이 풀어낸 <죽음의 성물1>은 시리즈 중 가장 어둡습니다. 해리, 헤르미온, 론은 시시각각 추격의 고삐를 죄어오는 볼드모트 일당에게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곳곳을 떠돕니다. 이들에겐 볼드모트에게 대항할 힘도, 도와줄 어른도 없습니다. 1부는 그렇게 암울하게 끝납니다. 영화는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한 조각 희망도 없는 암울함 때문에 어린이 관객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성물2>는 내년 여름에 개봉합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권력을 등에 업은 개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2부에서 해리는 볼드모트를 이길 수 있을까요. 소설 원작의 결말을 얼핏 들은 바로는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판타지 바깥 세상에서도 같은 결말이 맺어질지는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희망은 의지이지만, 의지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면, 그냥 해리 포터의 세계로 도망가고픈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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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들 제라르 드파르듀가 나온 <시라노>를 본 것 같다. 그 느낌을 되살려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흥행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오랜만에 흥행한 로맨틱 코미디다. 스릴러도 좋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나오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지겨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 글의 결론은 아래 사진처럼 앉아있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것!



 
시라노는 필요합니까.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열어야 했습니까.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김종욱 찾기>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일종의 ‘연애 대행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가을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19세기 프랑스 희곡에 느슨하게 기반을 두었습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갈 자신감이 없는 시라노는 잘생긴 부하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발산합니다. 영화에는 마음에 둔 여자에게 다가갈 용기와 방법이 없는 남자에게 연애기술을 전수해주는 대행소가 등장합니다. 소형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프로페셔널들의 조언에 따라 의뢰인은 여자를 사로잡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합니다.

<김종욱 찾기>의 주인공 한기준은 많은 이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 속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냅니다. 의뢰인들은 첫사랑의 행방을 알지 못해 사무소를 찾지만, 아마 안다 해도 직접 다가가기가 어려워 대행소를 거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잇달아 나온 이런 영화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경을 징후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황당하다고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유명 결혼정보업체의 이벤트 현장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말쑥한 차림의 선남선녀들이 모여 사회자의 재치있는 진행에 따라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로맨틱한 분위기에 의지해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는 점에서 결혼정보업체야말로 ‘연애 대행업’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 목수정은 최근작 <야성의 사랑학>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작정 여자에게 다가가 차 한 잔 하자고,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국 남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서 책의 문제의식이 시작됩니다. 목수정은 사랑이라는 돌발적 충동을 이성으로 간신히 억누른 채 ‘스펙 쌓기’와 상대에 대한 저울질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시대의 불안과 삶의 무게가 사랑을 방해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를 수백번 반복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강백호가 ‘빨간 원숭이’라 불릴 만큼 야성이 넘치는 남자이기 때문이죠. 현대 한국 사회 대부분의 남자에겐 그런 야성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상처에도 크게 앓을 만큼 면역력이 약해져 있습니다.

‘밀당’(밀고 당기기)이라는 연애 용어도 있던데, 지금으로선 미는 순간 튕겨져 나가는 남자가 대다수입니다. 이 약한 남자들에게 내성이 생기기를, 그들의 낯이 좀 더 두꺼워지기를 기다려봅시다. ‘대행업’을 통해서라도 연애를 하려 한다는 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대행업마저 없어진다면? 연애 불모지에 어떤 생명인들 살아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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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토양에서 일탈의 나무는 자랍니다. 그 나무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탈리아 영화 <사랑하고 싶은 시간>(영어 제목 What more do I want)은 흔한 소재인 ‘불륜’을 다룹니다. 각자 가정이 있는 남성과 여성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사랑하기를 반복합니다. 이들이 맺은 육체와 감정의 끈은 매우 질깁니다.

여자의 삶은 안정적입니다. 직장은 번듯하고 남편은 자상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 한구석엔 그늘이 드리워 있습니다. 지나치게 평안한 삶 속에서 권태를 느끼는 걸까요. 누군가는 행복에 겨운 투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삶은 힘겨워 보입니다. 두 명의 아이는 온 집구석을 어지르고, 육아와 가사에 지친 아내는 늘 돈이 부족하다며 짜증을 냅니다. 외식업체에서 일하는 남자가 일주일 가운데 유일하게 해방을 맛보는 순간은 수요일 퇴근 후의 수영시간입니다.

계급과 성향이 다르지만 일상에 지쳤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남녀가 그렇게 만납니다. 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튑니다. 그러나 낭만의 이탈리아에서 사랑을 나누기는 왜 그리 힘든지, 크고 작은 온갖 장애물이 불안한 연인의 발목을 잡습니다. 한밤에 회사로 들어갔더니 동료가 오고, 으슥한 곳에 들어갔더니 관광객이 나타납니다.

둘은 영화가 상영된 지 1시간쯤 지나서야 첫 육체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쾌락은 허무할 정도로 금세 지나갑니다. 다시 둘을 찾아온 건 배우자에 대한 죄책감과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일상입니다.

여기 꿈같은 사랑은 없습니다. 때늦은 낭만도 없습니다. 짧은 쾌락이 지나가면 둘은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합니다. 한 푼이 아쉬운 남자는 데이트 중에도 경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둘은 일주일에 한 번의 일탈을 즐기지만, 그 일탈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일상에만 머물자니 숨막혀 죽겠고, 일탈하자니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먹는 순간 일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감추어 두었던 사직서를 꺼내들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럴 마음을 먹고 행동한다는 건 영웅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대개 영웅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은 시간>의 두 남녀는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결말을 맞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지만, 혹시라도 그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접지 못합니다. 이 사랑 때문에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누군가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상처입은 사람은 간신히 견디며 살아가겠죠. 이 사람들은 처연합니다. 영화 속 여자도, 그 여자의 감정에 동화된 관객도 모두 가련합니다.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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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어느 영화사가 회집에서 연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 많은 회를 두고 풀만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는 잘 마셨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이렇다. 된장찌개인지 무엇인지를 끓여먹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바지락을 한가득 사왔다. 그것을 마루에 두고 잠시 잊었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살아있는 바지락이 껍질을 열고닫으며 바스락대고 있었다. 차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던 바지락이 살겠다고 꼬물락거리는 모양이라니. 그는 이후 바지락은 물론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이고, 절을 찾아가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올린다. 그의 전작은 <날아라 펭귄>, 막 개봉하는 영화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다음 작품은 옴니버스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다. 물론 앞의 2편에서 동물은 직접적 소재라기보다는 은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다.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를 옮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지난 사랑의 잔여물을 되새기는 멜로드라마이자, 인간본성을 찾아나서는 불교 구도극이고,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누비는 로드무비다. 소외된 이웃들의 비루한 삶을 정직하게 응시해왔던 임순례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는 김도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임 감독이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이제 기존의 것과 조금은 다른 걸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4일 5번째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개봉에 맞춰 임 감독을 최근 만났다. 


-김영필, 공효진이 ‘인간 주인공’이지만, ‘먹보’란 이름의 소가 눈에 띈다. 

“시나리오에선 암소라고 설정돼 있었는데, 황소 먹보를 보는 순간 비주얼에 흡입력을 느꼈다. 암소보다 출연료도 비쌌다. 트럭에 타고 내리는 정도는 먹보 혼자 연기했다. 다만 앉히는 게 힘들었다. 소가 잘 때 빼고는 잘 앉지 않는다. 1~2시간 산보를 시켜 피곤하게 한 뒤 앉히는 연기를 시키곤 했다. 촬영 중에 구제역이 발생해 도시 간 이동을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에 관심이 많았나.

“평소 소에 대해선 눈이 착하다는 생각 정도였다. 두달 촬영하면서 저와 스태프 모두 소에 대해 많은 걸 얻고 느꼈다. ‘소가 이 정도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었구나’ 하는 것. ‘쫑파티’ 할 때 스태프들이 그랬다. 소를 고기로만 생각했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조감독 2명이 소시장 헌팅 다니다가 팔려가면서 눈물 흘리는 소를 봤다더라. 그 뒤로 쇠고기를 못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영화 하면 (가난해서) 어차피 못먹을 텐데 그렇게 깨달음 얻고 안 먹는 게 낫겠다’고 했다.(웃음)”

임 감독은 동물에 관심이 많다. 현재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유기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한 개 워리의 앞날이 불투명하자 직접 사서 안전한 집으로 분양했다. 차기작은 옴니버스 영화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중 길고양이를 다룬 <고양이 키스>다. 그는 “소에게 연기를 시켰다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존중하고 잘 대해줬다. 힘들거나 피로해하면 쉬게 하고 배려했다”고 전했다. 개든 소든 좋은 마음을 주면 좋은 마음과 연기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공효진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쿨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여자 캐릭터가 필요했다. 시나리오상에는 30대 후반 여자였는데, 공효진은 나이만 빼놓고는 잘 어울렸다. 게다가 공효진에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떨 때는 발랄한 20대 같고, 어떤 때는 30대 중반 같다.”



임순례 감독


-김영필은 스크린에선 얼굴이 낯설다. 스스로도 ‘박해일 형’이라고 소개할 만큼 그와 느낌이 유사하다. 임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박해일 느낌을 좋아하는 건가.


“박해일은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을 보고 캐스팅했다. 김영필도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다. 어떻게 보면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셈이다.(웃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후반부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임 감독의 영화에선 낯선 분위기다.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 그렇지 않은 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전하는 이 가르침이 영화 주제와 연결된다. 일부러 색다른 걸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판타지를 구사했지만, 다른 감독과는 다르게 현실과 차별되지 않게 했다.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관객들이 헷갈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만 보면 애잔한 멜로영화 같다. 영화의 의도와 마케팅이 어긋나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스님이나 (극중 등장하는 절인) 맙소사, 연꽃을 마케팅할 수도 없고…. 멜로영화 보러와서 구도영화를 본다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덜 감각적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이게 뭐야’ 하기보다는 ‘예상과 다른 걸 봤지만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관객들이 임순례에게 무슨 멜로를 기대하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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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은 확신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오만하다거나 경박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방독피>는 중간까지는 미심쩍다. 솔직히 미리 잡아둔 인터뷰를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취소시킬 수 있을까 궁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힘이 가득하다. 종반부에는 서울 거리에 엄청난 묵시록적 풍경이 나온다. 김선이 인용한 오시마 나기사의 말은 매우 멋지다.



전위라고 다 전위가 아니다. 미학의 전위에서 정치적 보수성을 드러내거나 급진적인 정치사상을 고루한 형식에 담아내는 예술가가 부지기수다. 

1978년생 일란성 쌍둥이 형제 김곡·김선은 현재 한국 영화의 최전위에 선 감독들이다. 미학과 정치 양 측면에서 모두 최전위라는 점에서 이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반변증법>(2001), <자본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2003) 등을 내놓으며 주목받았고, 김곡은 <고갈>(2008)을 따로 공개하기도 했다. 

<방독피(Anti Gas Skin)>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됐으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줄거리는 이렇다. 서울시장을 뽑는 투표일, 파란색을 상징으로 쓰는 여당 국회의원 주상근은 아내와 함께 투표소로 향한다. 마침 서울에는 방독면을 쓴 연쇄살인마가 출몰하고 있다. 주상근은 “뽑히면 죽는다”는 협박편지를 받고 불안해한다. 얼굴에 털이 난 늑대소녀는 경찰 간부인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고 믿는다. 
늑대소녀는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하길 원하는 이들을 몰고 다닌다. 주차질서요원 보식은 셔츠 안에 남몰래 슈퍼맨 의상을 입은 뒤 살인범 잡는 날을 꿈꾼다. 한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백인 미군병사 패트릭은 여자친구가 살해당하자 살인범의 자취를 쫓는다. 




정치 비판, 무의식을 파고드는 성폭력, 성장 위주의 한국 기독교, 소시민의 과대망상,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 등 온갖 소재가 한 영화에 녹아 있다. 혼란스럽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일찍이 한국 영화가 목격한 적이 없는 묵시록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김선은 관객과의 대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우병 쇠고기 파동 직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들썩들썩하던 한국의 정치사회, 시민사회에 대해 역사적으로 일갈하고 기록을 남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영감을 얻는 곳은) 세상, 세상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야말로 엄청난 아이디어를 줬어요. 전의를 불태우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할까요. 대단한 세상이에요. 쓰는 데 1주일밖에 안걸렸어요.”

종반부의 편집은 긴박하고 강박적이다. 한 관객은 “너무 강박적이라 지루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선은 “극진한 사랑을 기대하진 않았다. 세상을 잘 재현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지루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래도 쉽게 만들 수 없느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신이 그렇게 시킨다. <방독피>는 이 시대에 한 번은 꼭 나와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고갈> <방독피> 등은 이들의 초기작에 비하면 정연한 내러티브를 갖춘 편이다. 김선은 “내러티브가 영화의 이미지 구축에 해가 되는 영화가 있고 도움을 주는 영화가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영화를 다 한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조만간 대기업이 투자한 상업영화를 내놓을 것이란 점이다. 그룹 티아라의 함은정, 황우슬혜 등이 출연하는 공포영화 <화이트>다. 지금까지 만든 모든 영화의 제작비를 합쳐도 <화이트>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 





촬영 막바지 단계라는 <화이트> 때문에 김곡은 부산에 내려오지 못했다. 김선도 <방독피> 상영 다음날 새벽 기차를 타고 귀경해야 했다. “상업영화라서 다른 건 못느끼겠다. 어떤 영화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영화 작업 자체는 똑같다”고 김선은 말했다. 

김선은 근사한 말들을 많이 했다. 때로 독특하게 높은 톤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극중 주상근 의원이 겪는 불안한 하루를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빗대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집에 가고 싶은 어린애” 같다고 해석했다. 영화 속에는 “세상엔 깨끗한 사람과 지지한(지저분한) 사람 사이의 휴전선이 있다. 투표일은 그 경계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날”이라는 대사가 있다. 

“일본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졸X 맞는 말이죠. 독립영화계는 좀 더 공격적이고 불법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윗분’들이 보면서 ‘이거 불법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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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이 무엇이기에 이 난리랍니까.

한국 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미국 사람도 ‘아들 타령’이군요. 정확하게는 이탈리아계 미국 사람이지만요. 7일 디지털 리마스터링판으로 재개봉하는 <대부2>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영화 <대부2>


<대부2>는 너무나 유명해 새삼 언급하기조차 쑥스러운 작품입니다.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속편’으로도 유명하죠. 로버트 드니로가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 역을, 알 파치노는 그의 아들인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았습니다.


온가족이 시실리 지역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뒤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9살 소년 비토의 모습에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약한 자를 등쳐먹고 사는 악당이 있게 마련이죠. 이국땅에 살아가는 이탈리아 이민자 사이에도 마피아가 있었습니다. 비토는 마피아를 제거한 뒤 스스로 지역을 장악합니다.


처음 사람을 죽이면서도 미동하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고 배짱있던 비토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아들이 아플 때입니다. 간호사와 아이 어머니가 울부짖는 아기를 달래고 있을 때, 비토는 문간을 서성이며 손톱을 물어뜯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픈 아이를 두고 침착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비토의 마음은 그 어느 아버지보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듯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비토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구석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던 비토가 이국에서 홀로 성장해 자리를 잡고 결혼한 뒤 아이를 낳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는 영화에 묘사되지 않아도 짐작이 가죠.
세상이 뒤집혀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해도, 비토가 세상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부모와 형을 모두 잃은 비토가 자식을 통해 새 가족을 꾸려 나간다는 의미는 그만큼 더 각별하겠죠.
비토의 ‘아들 타령’은 대물림됩니다. 조직을 물려받아 보스가 된 막내 아들 마이클이 오랜 시간 사랑했던 아내와 헤어진 계기는 아내의 낙태였습니다. 아내가 “아들이었다”고 말하자, 영화 내내 냉정했던 마이클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집니다.


아이가 어설프게 “아…바”라고 말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이는 저를 부른 것이 아니라 발음이 쉬운 말을 마음대로 연습했겠죠. 하지만 아이가 가장 발음하기 쉬워 처음 내뱉는 단어가 ‘엄마’, ‘아빠’고, 그 단어가 부모를 지칭하는 어휘로 굳어졌다는 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원초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핏줄에 대한 사랑은 더 넓은 사회의 맥락과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습니다. 제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가 타인에겐 아직 사람 구실을 못하는 핏덩이로 비칠 수도 있겠죠. 아기가 재롱을 떨고 있는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곤 하지만, 홈페이지 방문자에게 아기 사진은 다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잘 압니다.


한반도 북쪽에선 ‘아들 타령’을 하느라 오랜 시간 지켜왔던 사회주의 강령조차 내팽개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믿을 놈’이라고는 아들밖에 없다는 심정은 잘 알겠습니다만, 나라를 이끄는 일은 구멍가게를 꾸리는 일보다는 훨씬 복잡하지 않습니까.


<대부2>의 마이클 콜레오네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아내를 차례로 내칩니다. 언젠가 마지막 남은 아들이 자신을 버릴지, 그리고 홀로 남은 자기 자신마저 미워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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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장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

최근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에 대한 지역 언론의 반응은 그의 동상이라도 세워주겠다는 기세다. 부산영상위의 기틀을 잡고 물러나는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칠수와 만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 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로 각광받던 박 감독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으로 영화행정에 발을 내디딘 뒤 99년 부산영상위 출범과 함께 초대 위원장이 됐다. 부산영상위의 주요기능은 촬영지원 및 영화산업 육성이다. 부산영상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269편의 한국 장편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매년 한국영화의 40%가 부산에서 촬영되는 셈이다. 한국영화에 유독 부산 사람이 많이 나오거나 부산이 촬영 배경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다고 느낀다면, 그건 부산영상위의 활약 덕이다. 이후 한국에는 11개, 일본에는 100여개의 지자체가 부산을 따라 영상위를 세웠다.
 
박 감독은 최근 경향신문과 만나 “ ‘문화불모지’라 불렸던 부산이 이제 ‘영화도시’가 됐다는 것이 가장 보람있다”며 “각박하던 시민들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길 막고 촬영하는 데 좋아할 주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건 10년 전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1분 1초를 아껴 쓰는 촬영장 부근에서 소란을 피워 촬영을 방해하는 일이 잦았다. 마약, 조직폭력, 재난 등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 대해선 지역 이미지 나빠질까봐 촬영을 꺼려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부산시와 영상위의 노력이 컸다. 촬영이 끝나고 뒷정리가 되지 않아 민원이 나올까봐 영상위는 아예 용역업체에 촬영장 정리를 맡겼다.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시장은 텔레비전에 나와 홍보했다. 지금 부산은 최적의 촬영지다. 도로를 막고 영화 찍은 것도 부산이 처음이다.

박 감독은 부산영상위의 다음 목표를 대형 스튜디오 건립으로 꼽았다. 최근 정부는 해외 영화의 한국 로케이션을 적극 추진하려는 움직임이지만, 박 감독은 “독립영화라면 몰라도 상업영화는 한국 로케이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한국적 특색이 살아 있는 촬영지가 드물고 날씨도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의 우수한 스태프들을 활용할 수 있는 스튜디오라면 해외 영화인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광안리 뒤쪽에 확보된 제2 스튜디오 부지에 예정대로 3300㎡(1000평)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가 들어선다면, 부산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인들을 위한 촬영지가 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여수 세계엑스포 문화예술준비단장을 맡은 후 올 7월부터는 예술총감독이 됐다. 아울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으로 재직하고 있기도 하다. 부산영상위를 물러난 건 3개 직을 함께할 만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조금만 더”라며 붙잡는 이가 많아 물러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덕분에 차기작은 엑스포가 끝나는 2012년 이후에나 생각할 계획이다. 그는 “시나리오는 있지만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라며 “어떤 영화든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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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압니까.


2일 개봉하는 <페이퍼 하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섞은 영화입니다.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샬린 이와 배우 마이클 세라의 연애 과정은 픽션이고, 샬린 이가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샬린 이는 사랑에 대해 물으면서 스스로 사랑에 빠집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샬린 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로 시작합니다.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다가 마이클 세라와 만나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호의적인 말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가벼운 키스를 합니다.


난관은 두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시작됩니다. 마이클 세라는 개인의 감정과 사생활이 촬영팀에 노출되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운 눈치입니다. 둘은 눈짓으로 신호를 교환한 뒤 카메라를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감독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감독은 ‘사랑의 도시’인 파리에 갈 경비를 제작자로부터 얻어냈다며, 영화 엔딩을 파리에서 찍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끌려 떠난 데이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둘의 관계는 위기에 빠집니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선남선녀 연예인을 짝지어 준 뒤 둘이 사귄다는 가정 아래 진행됩니다. 이번주엔 둘이 포옹을 했다느니,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사건이 프로그램의 동력입니다.
둘은 방송사의 주선과 작가·프로듀서의 연출에 따라 연애 감정을 흉내내고, 대중은 이 연애가 연기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청합니다. 물론 둘 사이에 연기가 아닌 진짜 감정이 싹틀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방송 대본에 없고 연예인의 소속사에서도 원치 않는 일이겠죠.
<페이퍼 하트>는 카메라 앞 연애의 거짓을 폭로하는 지점까지 이르니, <우리 결혼했어요>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은 스스로를 의식하는 순간 허약해집니다. 호흡을 의식하면 호흡이 가빠지고, 물을 의식하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 헤엄치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 <나날의 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역시 불가능한 것 같다.”


야구 선수인 동시에 해설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선수는 공을 열심히 치고, 해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둬야 합니다. 연애에 대한 해설일랑 친구나 가족에게 맡겨두고, 당사자는 연애에 몰두하는 편이 좋습니다.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인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인가, 이 감정은 사랑인가, 이 사랑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처음 사랑하는 사람에겐 좋지 않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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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도 여러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음악 페스티벌엔 왜 가는 걸까요.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고, 50만명의 히피 관객이 모인 이 축제는 공연 수준, 관객의 태도, 묘한 시대 분위기가 어울려 이후 모든 음악 축제의 이데아가 됐습니다.


29일 개봉하는 리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엘리엇은 화가를 꿈꾸는 젊은이지만, 부모님이 경영하는 시골 모텔이 파산 직전이라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던 록 페스티벌이 주민의 반대로 취소되자, 엘리엇은 페스티벌을 유치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로 합니다.
농장이 공연장으로, 낡은 모텔은 공식 숙소로 변합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보수적인 지역 주민들은 몰려드는 히피들을 못마땅해합니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의 리안은 인물의 내면과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리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러나 <테이킹 우드스탁>에선 리안의 장점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내 나른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이어져 극적인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몽롱하게 약기운에 취했던 우드스탁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감독의 의도였을까요.


72년작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는 ‘포스트 우드스탁’ 소설이라 할 만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헌터 S 톰슨은 우드스탁을 정점으로 치솟았던 변혁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당시 상황을 드러냅니다. 온갖 술과 환각제에 취해 돌아다니는 소설 속 저널리스트는 히피들의 시대였던 60년대를 회상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어느 시간이든 광기가 넘쳤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늘 옳고 결국에는 승리하리라는, 막연하지만 당연한 느낌이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가파른 언덕에 올라 서쪽을 바라본다. 상황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부서져버린 파도가 한때는 어디까지 높이 치솟았는지 보일 것이다.”


미군의 철수와 함께 월남전은 끝났지만, 히피와 록음악과 사랑과 평화의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우드스탁은 60년대 말 머나먼 미국땅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이벤트였습니다.


지금 젊은 음악팬들이 원하는 건 진흙탕 위의 슬라이딩, 야외의 불편한 잠자리, 환각제, 낯선 이와의 친교가 아닌 깨끗한 화장실, 귀가가 편한 교통편, 좋은 음향, 예쁜 기념품일지도 모릅니다. 21세기의 음악팬이 60년대의 우드스탁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낭만’ 대신 ‘불편’을 말할 겁니다.


대중음악이 한 세대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세대 의식을 대변한 음악인은 서태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도 음악을 듣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아이돌 그룹의 MP3 파일을 ‘소비’할 뿐입니다. <테이킹 우드스탁>에 활력이 없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드스탁이 머나먼 과거에 고립됐고 오늘날의 음악도 마찬가지 처지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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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험하고 슬픈 세상에 새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까.


임신과 출산은 낭만, 감격보다는 당황,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신보다는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깔끔한 거실에서 살아가던 부모는 아기의 울음과 똥과 토사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똥을 피하는 건 거기에 몸을 해치는 병균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기의 똥기저귀를 갈면서 진화의 유구한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셈입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전수일 감독의 <영도다리>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레퓨지>는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 이후의 선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도다리>의 주인공인 19세 소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했으며, 출산 직후 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깁니다. 하지만 배에 난 수술자국, 배어나오는 젖, 우연히 찾은 아기 신발을 본 소녀에겐 자꾸만 아기 생각이 떠오릅니다.



영화 <레퓨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퓨지>엔 실제 임신한 여배우가 출연합니다. 감독은 여배우의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를 카메라로 어루만집니다. 여주인공은 함께 마약을 하던 남자친구가 사망해 홀로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임신 중임을 알게 됩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출산을 원치 않지만, 여자는 홀로 자신만의 피난처를 찾아 아기를 낳기로 합니다. 이 피난처에 죽은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찾아옵니다.


두 영화 속 공간 모두 아기가 태어나 살 곳은 못됩니다.
<영도다리> 속 세상은 폭력과 약탈과 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합니다. 일자리도 찾지 못한 소녀에게 남은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소녀에게 아기는 잃어버린 마지막 희망입니다.
<레퓨지>의 엄마는 아이를 가질 준비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비 엄마는 한때 마약 중독자였으며 옛 상처를 간직해 날카로운 성격을 보입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아기에 대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유사 이래 살기 편한 세상은 잠시도 없었을 겁니다. 새 생명을 키우기 힘든 이유도 수만 개에 달합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자기들끼리 잘 살고 싶은 부부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나와봐야 살기 힘들다는 부모들의 이타적, 예지적 판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아이를 많이 낳는 건 부의 상징이 됐습니다. <하녀>의 재벌집 안주인 서우가 그 예입니다. 그녀는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아 그들 모두가 지금의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누리고 살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도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종교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삶의 목적은 자신의 DNA를 후대에 퍼뜨리는 것이라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신을 닮은 아기가 울고 먹고 똥을 싸다가 마침내 한 번 웃었을 때 부모는 숨겨져 있던 삶의 마지막 조각 하나를 발견합니다. 아기가 주는 기쁨은 종교적 환희와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믿는 사람에겐 있고, 안믿는 사람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를 부모가 가진 삶의 의미 전부로 받아들여선 곤란할 겁니다. 아이는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로봇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기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아니지만, 나 아닌 것도 아닌 그 어떤 존재가 내 삶의 한 부분을 만들어준다는 것.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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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까. 패러디는 오리지널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애니메이션 <슈렉> 창작의 근본 태도는 패러디였습니다. 늪지대의 녹색 괴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점부터가 왕자, 공주 중심이었던 기존 동화의 구도를 뒤집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저주를 받아 괴물로 변했다는 얘기는 같았지만, 이 공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를 구원하려 노력했습니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개구리 왕자 등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는 다른 성격으로 등장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슈렉>은 동화뿐 아니라 20세기 대중문화의 최대 유산인 영화도 패러디했습니다. <매트릭스> <스파이더맨> <미션 임파서블> <반지의 제왕> 등 젊은 관객이 금세 눈치챌 수 있는 영화의 장면이 슈렉과 그 친구들에 의해 다시 연출됐습니다.


<슈렉 포에버>는 네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입니다. 가정을 꾸린 슈렉과 피오나는 세 아이를 낳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슈렉은 무시무시한 괴물 놀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마음껏 진흙 목욕도 즐기던 총각 시절이 그립습니다.
단 하루의 일탈을 꿈꾸던 슈렉은 악당 럼펠의 계략에 속아 자신이 알던 곳과 다른 세상에 떨어집니다. 슈렉에게 행복은 공기와 같았습니다. 잃고 나서야 소중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슈렉 포에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동화나 영화의 패러디 흔적이 없습니다. 대신 <슈렉 포에버>의 패러디는 다른 곳을 향합니다. 바로 <슈렉> 시리즈 그 자신입니다.
쾌걸 조로같이 멋진 검객이었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체중 조절에 실패한 뚱보가 됐습니다. 슈렉의 절친한 친구였던 동키는 슈렉이 자신을 잡아먹을까봐 겁냅니다. 아내 피오나는 슈렉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이전 <슈렉> 시리즈와 달라진 캐릭터가 <슈렉>의 패러디 대상입니다.


2001년 처음 나와 10년간 이어진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는 픽사의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원본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 패러디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앙드레김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앙드레김 성대모사가 재미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드림웍스는 <슈렉>이 관객에게 충분히 익숙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시리즈를 스스로 패러디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겁니다. 말하자면 <슈렉 포에버>는 기존 동화, 영화를 패러디한 <슈렉>을 다시 패러디한 셈입니다.


<슈렉 포에버>의 전략은 성공했을까요. “전작들과 다르게 무덤덤하고 활기찬 에너지도 없다(AP), “이제 슈렉과 피오나도 (영화에 나오지 않고) 행복하게 살 때가 된 것 같다”(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시큰둥한 반응이 많습니다.


물론 지난 100여년은 대중문화의 에너지가 폭발한 시기였습니다. 영화, 음악, 텔레비전 등 각 분야에 숱한 유산이 쌓였습니다. 가수였으며 이제 DJ로 유명한 배철수는 음악을 더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이 나와서 더 이상 쓸 노래가 없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틀스, 아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노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발언입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패러디뿐일까요. 그렇다면 서글픈 일입니다. 오리지널 없는 시대라 하더라도, 오리지널을 향한 노력에 예술의 가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패러디로만 점철된 영화, 표절과 도용 시비로 얼룩진 대중음악, 언젠가 본 듯한 줄거리의 드라마에 정녕 만족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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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노동절 전 전주에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슬프고 갑갑한 영화를 봤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들어본 적도 없으셨을 이 영화의 제목은 <저 달이 차기 전에>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의 분위기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해 수천명의 구사대와 경찰에 맞서 공장을 점거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77일간 싸우다가 결국 공장을 제발로 나왔습니다. 한밤중 공장 옥상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서던 노동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제작진은 출입이 봉쇄된 공장에 잠입해 가족, 사회, 세계로부터 고립된 노동자들의 육성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노동자들과 경찰·구사대의 대립은 말그대로 ‘전쟁’입니다.
경찰의 헬리콥터는 저공을 선회하면서 유독성 액체가 든 봉지를 떨어뜨립니다. 구사대는 거대한 새총으로 볼트, 너트 등의 금속 부품을 쏘아댑니다. 노동자들이 잠을 잘 수 없도록 밤마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대고, 경찰은 일부러 방패 소리를 내 신경을 자극합니다.
의료진의 출입과 식량 공급을 막고, 물과 전기도 끊습니다. 헬리콥터에서 강하한 전투경찰들은 도망치는 노동자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쉽게 ‘사수(死守)’ ‘결사(決死)’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만, 정말 생명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숨은 실제로 위태롭습니다.


노동자들은 외칩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같이 살자”. 그러나 자본과 공권력은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진압해 세상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듯 강경 노선으로 일관합니다. 음식, 물, 약이 떨어진 노동자들의 처지는 백만대군에 포위된 성안의 힘없는 백성과 같습니다.


천안함 참사를 계기로 보수 세력은 우리의 목숨이 언제라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50㎞ 거리에 가장 호전적인 세력의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이들의 주장만은 옳습니다. 그러나 ‘인간 어뢰’에 희생당할 가능성보다는, 경찰의 진압방패에 찍히거나 구사대의 중장비 새총에 맞아 머리가 깨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당장 지난해 초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세상을 뜨지 않았습니까.


중세인들은 흑사병이나 천연두 같은 전염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한 불황, 이에 따른 실직, 해고, 구직난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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