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식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꽤 있었다. '네온 데몬'도 그 중 하나다. 난 이 영화가 다소 공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의견도 많은 모양이다. 


<네온 데몬>은 혀로 핥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동시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영화다. 여기서 ‘구역질’이란 은유가 아니다. 영화 종반부엔 정말 일부 관객의 구토를 유발할 만한 장면이 나온다. 

소도시 출신의 순진한 16세 소녀 제시(엘르 패닝)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혼자 살며 톱모델의 꿈을 꾼다. 갈고 닦아 아름다워진 미녀들 사이에서 타고난 미의 기운을 발산하는 제시는 ‘유리 속의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눈에 띈다. 톱모델들은 제시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를 더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한 줄거리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시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남자친구와 풋사랑을 하고, 폭력적인 모텔 주인의 횡포도 겪는다. 하지만 제시의 주된 고난은 아주 조금 더 나이 들고 업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곧 정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톱모델들과의 갈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제시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테러가 영화 후반부의 핵심이다. 테러의 핵심은 글로 묘사하기 어렵다. 


엘르 패닝(왼쪽)과 니콜라스 윈딩 레픈.







'네온 데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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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가 진입하려는 모델 세계는 현대적인 아름다움의 최정점에 접한다. 눈가의 잔주름 하나에 “늙었다”고 평하며 내치는 대중들, 그보다 조금 더 빨리 싫증내는 사진작가, 디자이너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모델들은 아등바등한다. 한번 정상에서 내쳐지면 다시 오르기는커녕 경력 자체가 끝장날지도 모르는 처지이기에, 모델들은 필사적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개의 음경을 먹으면 물개처럼 많은 암컷을 거느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현대의 애니미즘인데, 현대를 넘어 초현대적인 로스앤젤레스 모델 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애니미즘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드라이브>(2011)로 잘 알려진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가 다루는 세계에 대한 레픈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레픈은 표면의 덧없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속물들을 냉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그 역시 매혹되지 않았으면 취할 수 없는 태도다. 지금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깔과 음악들이 <네온 데몬>을 장식한다. <드라이브>에서 음울하고 몽환적인 전자음악을 선보였던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네온 데몬>에서도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음악을 창조했다. 


“미모는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 유일하게 중요한 가치야.” 제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무대에 세운 디자이너가 말한다. 이 영화에서 ‘내면의 아름다움’ 같은 말은 구두선일 뿐이다. 그래서 <네온 데몬>은 뜯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와 같다. 레픈은 포장의 달인이다. 물론 오랜 망설임 끝에 포장지를 푼 뒤 그 공허한 내용물에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레픈은 포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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