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애국영화의 품격. 


“애국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새뮤얼 존슨)라 했다. 애국을 위해 자유, 평등과 같은 그 모든 여느 소중한 가치를 깔아뭉개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애국이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망이라면 누가 시비할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드문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86)의 신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28일 개봉)은 애국의 한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설리>는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실화에 기반을 둔다. 이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소속 1549편 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잃었다. 회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착수시켰다. 기장의 재빠른 판단과 구조대원·해안경비대의 신속한 대응으로 승객 150명, 승무원 5명이 전원 생존했다.

여느 영화였다면 탑승객들이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가족과 구조센터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으로 끝맺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는 다른 길을 택한다. <설리>는 영웅이 된 설리(톰 행크스)가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조사를 앞두고 끔찍한 악몽을 꾸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악몽 속에서 비행기는 맨해튼의 마천루를 부수는 대재난을 일으킨다. 영화가 중간쯤에 이르면 설리와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에런 에크하트)는 안전위원회의 혹독한 조사를 받는다. 안전위원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며, 비행기가 인근 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었다고 압박한다. 설리의 선택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뻔했다는 것이다. 설리는 208초 사이에 내린 선택의 무게를 다시 돌아본다.

<설리>는 9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를 보면, <설리>는 60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미국 내에서만 이미 9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주인공 설리처럼, 할 일을 한 영화”(워싱턴포스트)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행크스는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설리는 사건 이듬해 은퇴할 때까지 2만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는 숱한 경험에서 나온 담대함과 침착함으로 대참사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잘못은 없었는지 수차례 돌아본다. 순식간에 사회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설리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평을 인용하면, <설리>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다.


심지어 <설리>는 설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국가운수안전위원회조차 합리적인 미국식 시스템의 하나로 여긴다. 여느 영화에서였다면 이들은 주인공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악당으로 묘사됐겠지만, 이스트우드는 다르게 그린다. 안전위원회는 여론의 영웅 만들기에 섣불리 동조하는 대신, 더 안전한 방법은 없었는지 조사한다. 그 과정에서 ‘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이 역시 합리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후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뉴욕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극중 항공사 동료는 설리에게 “뉴욕에 이런 좋은 소식은 오랜만이야. 특히 비행기 관련해서는”이라고 말한다. 이는 <설리>가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미국의 핵심인 뉴욕의 위상을 고취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분명 ‘애국’이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애국을 위해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들지도, 반대 진영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선택의 무게를 짊어지며, 그 선택이 올바른지 끝없이 회의하는 한 평범한 인물을 조명할 뿐이다. 지난여름 개봉한 한국의 ‘애국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공산주의자를 패륜적 악당으로, 맥아더를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리>의 태도는 더욱 빛난다. 그런 점에서 <설리>는 진짜 보수주의자가 그리는 ‘애국의 격조’를 드러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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