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도 늙었다. 벌써 50대 중반이다. 하긴 우린 뭐 아닌가.

해군 시절 취사병 경력을 살려 동네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 톰 행크스.

톰 행크스(55)는 미국식 낙천주의의 화신입니다. 파산하거나 사람이 죽거나 나라가 망해도 톰 행크스가 있는 한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그가 <댓 씽 유 두>(1996)에 이어 두번째로 연출한 영화 <로맨틱 크라운>(원제 래리 크라운)이 18일 개봉합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주연도 겸했습니다.


대형 마트의 직원 래리 크라운은 근무시간중 상사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습니다. 성실하고 유쾌한 태도로 ‘이달의 직원’으로만 여덟번 선정된 크라운이었기에,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인 그는 세간살이를 내다파는 동시, 학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 전문대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됩니다. 크라운은 인생의 새 막을 엽니다.  


영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몰락한 미국 중산층 백인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을 잃고 가족은 해체됩니다. 여느 영화인이 연출하고 출연했다면 지독한 비관, 절망, 한탄, 분노의 드라마가 나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뼈속까지 낙천적일 듯한 행크스였습니다. 그는 에이즈에 걸리거나(필라델피아) 지능이 떨어져도(포레스트 검프), 우주에서 미아가 돼도(아폴로 13), 중과부적의 적과 맞서 목숨을 잃어도(라이언 일병 구하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로맨틱 크라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크라운이 곤경에 빠지는 과정은 초반부에 잠시 묘사될 뿐입니다. 영화는 곧바로 중년 남성이 딸뻘의 생기발랄한 여대생의 도움을 받아 까탈스럽지만 지적인 여교수와 사랑에 빠지는 상황으로 달려갑니다.


로버트 저멕키스, 톰 행크스 콤비의 <포레스트 검프>와 <캐스트 어웨이>. 후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난 사람이 혼자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얼마전 본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에는 행크스가 배구공 윌슨과 눈물겨운 이별을 하는 <캐스트 어웨이>의 한 장면이 인용됐다.


그것을 ‘아메리칸 드림’과 이를 대중문화 컨텐츠에 그럴듯하게 녹여넣을 줄 아는 할리우드의 힘이라고 봐야 할까요. 미국의 평자들조차 행크스의 분식(粉飾)이 낯간지럽다고 느낀 모양입니다. “<로맨틱 크라운>은 안과 바깥이 뒤집힌 영화다. 주변은 그럴싸한데 핵심은 놀랄 정도로 텅 비었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로맨틱 크라운>은 톰 행크스, 줄리아 로버츠, 좋은 원안, 다채로운 조연 등을 갖춘 영화다. 그러나 존재의 이유는 없는 영화다”(로저 에버트) 등의 평이 나왔습니다.

비관과 부정은 파괴합니다. 낙천과 긍정은 건설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세계를 유지하는 건 대체로 낙천과 긍정입니다.


그러나 토대 없는 건물은 허약할 뿐입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4년이 흘렀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제어되지 않은 탐욕에 침식된 구조를 바꾸는 대신, 땜질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위기가 지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사라질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긍정입니까, 부정입니까. 행크스의 낙천은 천성입니까, 상황 파악이 안된 무지입니까, 아니면 대중을 기쁘게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의지입니까.


90년대를 주름잡은 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톰 행크스. 그런데 이상하게 둘은 전성기에 같이 연기한 적이 없다. 2007년작 <찰리 윌슨의 전쟁>이 첫번째, 이번의 <로맨틱 크라운>이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