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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마스터, <런어웨이>




장르 단편 모음집인 <안 그러면 아비규환>에서 시작해 조이스 캐럴 오츠, 레이먼드 카버까지 영미권 작가들의 단편집들을 잇달아 읽다보니 어느덧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앨리스 먼로에 이르렀다. 국내에 몇 권의 작품집이 소개돼 있는데 난 얼마전 가디언이 '최고의 단편선 10권' 중 하나로 뽑은 <런어웨이>(2004)를 골랐다. 가디언은 이 작품집에 대해 "<런어웨이>는 먼로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며, 그가 가진 최고의 기술들, 즉 때로 수십년에 이르는 시간의 매끄러운 이동, 몇 페이지로 전 생애를 전개하는 능력, 단순한 언어를 통한 복잡한 진실의 탐구 등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나를 사로잡은 건 가디언이 첫번째로 꼽은 기술이다. <런어웨이>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표제작 '런어웨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수십 페이지로 수십 년의 세월을 농축하는 테크닉을 보여준다. 수십 년의 시간을 조금씩 쪼개 몇 페이씩 나눠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대의 사건을 정밀하게 보여준 뒤 나머지 세월을 후루룩 훑는다. 마치 절반쯤 남은 책을 넘기듯이.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한 느낌으로 독서를 멈추면 어느덧 독자는 방금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온전히 체험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느낀다.




1968년의 앨리스 먼로와 최근의 먼로


<런어웨이>의 절창은 '우연' '머지않아' '침묵'으로 이어지는 '3부작'이다. 이 작품들을 내가 마음대로 '3부작'으로 묶은 이유는 이야기들에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소심한 모범생 타입의 여성 줄리엣이 기차 여행중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와 함께 아이까지 낳으며 살되 결혼은 하지 않는다. 줄리엣은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독립해 성공적으로 살아가지만 아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길을 걸어간다. 줄리엣은 그저 세월이 흘러가게 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그 사이 줄리엣의 많은 주변 인물들이 죽는다. 친정 부모님, 한때 남편의 여자친구였으나 이후 줄리엣의 절친한 친구가 된 크리스타 등. 이들은 작품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으나 죽음은 한 두 줄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이런 식. "크리스타는 나날이 야위어갔고 점점 우울해했다. 그러다 갑자기, 1월의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타의 투병, 장례, 줄리엣과의 관계 등을 상세히 묘사하겠다는 유혹을 뿌리친 작가는 이렇게 느닷없는 죽음의 선고로 작품에 강한 인장을 찍는다. 영화에 비유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에서 주인공 남자가 갑자기 영정 사진으로 등장하는 기법 같다. (<이키루>를 본 사람은 모두 이 장면을 기억한다. 허진호 감독도 기억했는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써먹었다.)


작중 화자는 대개 여성이지만, 먼로의 작풍을 '여성적'이라는 수식어로 한정하는 건 부당하다. 섬세하고 때로 느닷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럴듯한 감정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먼로의 주인공들이 변덕쟁이란 뜻은 아니다. 겉에서 보면 변덕일지 모르겠지만, 독자는 그 행동의 종잡을 수 없는 논리를 완벽히 이해한다. 설령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주인공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행동할 독자라도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기차에서 만난 배우자 있는 이성에게 끌려 아무런 확신 없이 머나먼 곳의 그를 찾아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 만난 연인의 형제 혹은 자매와 갑자기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동을 벌인 <런어웨이> 속 사람들을 이해한다. 


이 책을 펴냈을 때 먼로는 73세였다. 그렇게 많은 날을 살아야만, 세월의 유장한 흐름을 직접 몸으로 겪어낸 사람만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견뎌온 사람이 느끼는 작은 기쁨과 큰 슬픔은 무엇인지, 수십년 전의 작은 충동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먼로는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