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배경, 성향, 생각, 세대가 다른 두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행운이다. 특히 중장년층 남성 정치인, 지식인 중에서 라 교수를 부러워하고 이런 파트너를 구해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가 많을 것 같다. 



70대의 남자와 30대의 여자가 우정을 나눈다. 남자는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이자 현실 정치권의 실세였으며, 여자는 백수다. 남자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창피하다”는 사람이고, 여자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알코올의존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남자는 차가운 현실주의자지만, 여자는 뜨거운 이상주의자다. 


어느날 여자는 남자에게 ‘연애편지’를 주고받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네 계절 동안 32통의 이메일이 오갔다. 온갖 흉사로 피 흘리던 여자는 “왜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남자는 “아무 걱정 하지 마라”고 답했다. 


<가장 사소한 구원>(알마)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주영대사·주일대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양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라종일(75)과 칼럼니스트 김현진(34)의 이메일을 엮은 책이다. 어울리기는커녕 한 자리에서 만나기도 힘들 것 같은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삶, 사회, 역사에 대해 발랄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최근 대학로 벙커원에서 만나 나눈 둘의 이야기를 책 내용과 함께 재구성했다.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와 김현진 작가. 두 분 다 사진 촬영에 의외로 능숙했다. /김기남 기자


▲그 남자의 말

“2009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그래도 언니가 간다> 서평을 보고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작가를 만나고 싶어졌어요. 20대 중반에 그런 책을 쓰다니 놀라웠습니다. 제가 글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못했거든요. 제가 쓴 동화를 보고 딸이 하는 말이 ‘신문 사설’ 같다고…. 우석대 총장으로 있을 때 김 작가를 몇 차례 초청해 강연을 부탁했는데, 장관이나 총리가 왔을 때보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김 작가는 다른 사람이 뇌운동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물론 재능이 있다고 훌륭한 업적을 내는 건 아니에요. 관리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부르주아들에게 배울 것이 두 가지 있어요. 자기 건강, 그리고 돈 관리하는 능력. 


저와 김 작가는 상담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다보면 결국 서로 자기 얘기를 하게 되지요. 전 그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나눴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에 몸담고 있을 때도 상대당에 대해 두 가지 표현만은 하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상대를 ‘미친놈’이라고, 혹은 ‘반통일분자’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상대도 나름의 방식으로 통일하려고 하거든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김 작가가 저를 자꾸 ‘남자 친구’라고 표현하지만, 전 그렇게 ‘파토스 투성이’인 사람하고는 좀 힘들어요. 감당을 못하죠. 전 질투, 증오 같은 격렬한 감정을 ‘천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수양해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용과 오셀로를 비교해 봅시다. 질투에 눈먼 오셀로는 신통치 않은 악당이 쳐놓은 함정에 빠져 비극을 일으키지만, 간통 현장을 목격한 뒤 춤추고 노래한 처용은 벽사진경의 상징이 됩니다. 


물론 이런 감정이 큰 흐름의 동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증오는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큰 의미로 포장된 증오여야 합니다. 순 임금은 살면서 딱 한 번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때 천하가 평정됐다고 하죠. 


해외에서 대사할 때 효(孝)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세계 어디서든 퍼져 살고, 돈 많이 벌고, 아이들 교육 잘 시키지만 내세울 수 있는 가치가 없거든요. 효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큰 긍정입니다. 현세에서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효도의 근본입니다. 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효처럼 높은 차원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짐승들도 제 새끼는 챙기지만, 사람은 그 마음을 보편화시킬 수 있습니다.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이야기했죠. 독신이었던 칸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이런 생각에 도달했지만, 전 아이를 품에 안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김 작가가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기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전 사람과 사람은 수천 년이 떨어져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넘을 수 없는 장벽은 없습니다. 지금 <삼국지연의>나 <일리아드>를 읽어도 공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요즘 세상에 소통이 안된다고 하지만, 해방 전후를 몰라서 하는 이야깁니다. 그때는 상대를 죽였습니다. 죽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시 선거기획위원을 했습니다. 그때 김 대통령이 점심을 먹다가 ‘내가 이회창 후보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동수 득표면 나이 많은 사람이 되니까 이긴다’고 하셨어요. 모두들 웃었지만, 전 우리나라가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개표하다가 당선권에 들어가니까 이회창씨가 실제로 꽃다발을 보내 왔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전 일제 말기, 해방 직후, 한국전쟁, 권위주의 정부시대를 겪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습니다. 고통을 겪고 한이 많은 민족은 이를 인류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소설 <전쟁과 평화>가 그렇지 않습니까. 사회 갈등, 남북 문제 모두 정치보다는 함께 감동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전 김 작가가 이런 일을 해줬으면 합니다.” 


▲그 여자의 말

“연세 드신 남자분들이 제게 좋은 감정 갖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먼저 보자고 하시니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나갔죠.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얼마 안된 때였어요. 제가 침울하게 있으니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그분은 고생도 하셨지만 천수 누리고 많은 일을 하셨다. 지나치게 애도하기 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게 좋다.’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로 손 편지를 몇 번 썼어요. 제가 힘들 때 손 편지를 쓰는 분이 두 분 있었는데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과 라종일 선생님이었어요. 


라 선생님은 제 이상형이세요. 지성과 이성이 조합됐다고 할까요. 제가 이렇게 이목구비가 잔잔한 타입을 좋아해요. 뜨개질을 배워서 생일 선물로 벽돌색 목도리를 떠드렸어요. 저보고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손발이 오글오글해요. 자기 관리 하라고 그러셔서 작년에 술, 담배 다 끊었어요. 


이전의 연애는 실패만 거듭했어요. 중독적으로 소비한 알코올이 합쳐져 평탄치 않은 삶을 만들어왔어요. 폭력을 동반한 이별, 가장 사랑했던 친구의 끔찍한 사고사, 실직…. 원래 별로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더욱 신속히 망가졌어요. 마음을 터놓은 몇 사람에게만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선생님은 제 구차한 사정을 들은 뒤 세 가지를 이야기하셨어요. ‘아무 걱정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선생님의 이성을 링거처럼 수혈받고 싶었어요.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한 시절이 었었어요. 굉장히 격한 상태였죠.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살인마 유영철이나 저나 신이 보기엔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문제로부터 거리감, 균형감을 찾기 시작했어요. 문제 해결의 시작이죠.  


‘누구 좋으라고 애 낳느냐’는 말을 자주 했어요.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서 쪽수 모자라니까 낳아달라는 거냐’는 심정이었죠. 나같은 계급의 인간이 애 낳아봤자 밑에 깔아주라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생각이야말로 인간을 인적자원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처음으로 설복됐어요. 


물론 세대 차이가 있죠. 그래도 이 정도밖에 차이가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제가 일베를 욕하고, 새로 결성된 서북청년단을 욕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어린 시절 실제 서북청년단이 집에 찾아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들도 집과 고향을 떠나 생면부지 고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생활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죄는 외로워서 저지르는 것이라고. 얼마전 황산 테러를 벌인 고교생도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뉴스를 봤어요. 전 옛날엔 ‘내가 다 맞아’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좀 지나니까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아요. 


기존에도 ‘멘토’들의 책은 많죠. 그런데 다들 진통제를 주는 정도에요. 약기운 떨어지면 다 헛 거죠. 선생님은 세상일을 쉽게 보지 않으세요. 피가 나고, 쉽게 낫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시죠. 공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입니다. ‘에덴의 낙원 이후에 세상이 자기에게 친절하리라는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구절에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제가 부모님과 관계가 안좋았는데 선생님이 ‘정말 부모님께 받은 게 하나도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어머니가 그 부분 읽어보고 정말 통쾌해 하셨어요. 


몇 년은 잠수 탔는데 이번에 신간도 나왔고 또 소설도 쓰고 있어요. 옛날엔 등단 욕심이 많았어요. 잡글 쓴다고 무시당하니까 쩌렁쩌렁한 상 받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젠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좋아요. 죽고 싶었던 사람이 제 글을 찾는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는 책 쓰면 내주는 데도 있는데 뭘 등단해?’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