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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과 무대책 사이, <큐레이션의 시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예전 출판 담당일 때 슬쩍 제목만 봤던 <큐레이션의 시대>(사사키 도시나오/민음사)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런 류의 일본 서적이 그러하듯, 이 책도 마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는 큐레이션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특히 인터넷의 시대 이후 도처에 쏟아지는 정보를 적절히 취합한 뒤 추려 내놓는 행위를 통틀어 큐레이션이라고 한다. 예전이야 콘텐츠가 주인이었지만, 이젠 아무리 뛰어난 콘텐츠라 하더라도 수많은 콘텐츠 중의 하나로 묻힐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의 발굴은 창작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논지다. 저자는 이를 위해 큐레이션에 의해 빛을 본 사례들을 언급한다. 아마추어 화가가 소일로 그려 창밖으로 걸어놓은 그림을 본 뒤 그 독특한 세계를 화단에 알린 큐레이터의 사례, 샤갈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덜 알려진 연계점에 주목해 전시회를 연 사례 등이다. 


제일 흥미로웠던 건 책 초반부 소개된 브라질 음악가 에그베르트 지스몬티의 일본 공연 이야기다. 브라질 선주민의 정서를 담은 독특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이 뮤지션은 한때 어느 정도의 명성이 있었으나 이제는 활동이 드물어진 지 오래된 처지였다. 공연기획자 다무라 나오코는 지스몬티의 일본 공연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전략들을 취한다. 먼저 지스몬티의 팬이 소수지만 분명히 남아있다는 점을 파악한 뒤,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을 철저히 연구한다. 사사키는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비오톱'이라고 부른다. 원예 등에서 쓰이는 이 단어는 원래 '생식 공간'이란 뜻으로, 작은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단위를 말한다. 이 책에서 비오톱은 매스미디어가 대규모의 정보를 커다란 통로로 실어나르는 시대가 저물고,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산재하는 시대를 맞이해 정보 전달자가 찾아내야 하는 곳이 된다. 지스몬티 공연의 경우 정보 전달자는 공연기획자가 되겠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면 기존 언론 종사자도 비오톱을 찾아야 할 시대가 왔다고 볼 수 있다.   


흥미를 주었고, 되새길만한 충고가 있었으나, 내가 '기성언론' 종사자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다소 대책없는 낙관이라고 여겨지는 대목도 있었다. 저자는 '보편주의의 종언'을 말하며, 더 이상 문화에 '보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자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여성이 부르카를 착용할 수 없도록 금지한 법안을 비판한다. 그러나 '부르카 논쟁'은 단순히 타문화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유럽중심주의자에 대한 비판으로 축소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프랑스가 부르카 착용에 거부감을 나타낸 것은, 다문화에 대한 무작정의 존중이 자칫 국가가 추구하는 공공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가 극단으로 가면, 국가는 공적 기능을 잃은 채 소수민족 거주지 중심의 지역 연합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지난 세기의 폭압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여전히 공적 가치를 추구할 힘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 이러한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여러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토니 주트의 입장이나 최근 나온 폴 콜리어의 <엑소더스> 참조) 쉽게 말해 사사키는 가치의 다양성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사사키는 아울러 "플랫폼은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1.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고, 2. 사용하게 편한 인터페이스가 있으며, 3. 플랫폼 위 플레이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플랫폼은 문화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사키는 아마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포스퀘어 등 전세계를 장악한 IT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다. 허나 이런 낙관은 이들이 어디까지나 '기업'이며 그들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는 점을 간과했거나 일부러 눈감은 것 아닌가 싶다. IT기업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나 장삿속은 수시로 논란이 되며, 그들의 막강한 수단이 국가권력과 결탁이라도 한다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최근 한국 사법당국의 '사이버 검열 논란'이 앞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