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5)와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71)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의 거인이다. 30여년전 미국에서 처음 만나 오랜 친분을 맺어온 두 사상가가 ‘2013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는 도쿄 빅사이트에서 3일 다시 만났다.  


가라타니는 이날 대담을 앞두고 김우창 교수에게 미리 서한을 보냈다. 한국은 통일신라, 일본은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각자 중국화를 진행했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한국이 ‘민심은 천명’이라는 맹자의 왕도사상을 받아들인 반면 일본에서는 민심을 챙긴다든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관습이 없었다. 이런 전통은 한국에서 시위가 자주 일어나지만, 일본에서는 시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논의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답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가라타니 센세(왼쪽)와 김 선생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

김우창=일본의 근대란 일본과 서양의 관계가 주된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근대에는 한국, 일본, 서양이라는 세 개의 축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근대화에 대해 일본에 비해 복잡한 생각을 했다. 근대화는 일본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또 일본이 아니라 서양으로부터 배워야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서양에 대해 주체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서양의 근대화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근대의 극복에 대한 논의에서도 일본보다는 한국이 복잡하다. 


또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전통문화가 훨씬 많이 파괴됐다. 식민지 시절, 한국전쟁, 군사정부 독재, 민주화 운동을 거치는 과정에서였다. 전통문화는 파괴됐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수용은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가 발전했지만, 민주주의를 좀 더 내면화하고 내실화하는 과제는 남아있다. 민주주의와 더불어 자본주의도 성황을 이루었는데,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지자 사회정의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은 정치적으로 복지사회, 민주사회주의의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또한 전통에도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한국의 왕정체제는 적어도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민본주의를 주장했다. 사회복지,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있지만, 사회 전체는 하나의 자본주의적 체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문학이 그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가라타니 선생이 지적했듯이 일본문학은 개인적인 체험을 많이 이야기했다. 사소설이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사소설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최근까지도 주류를 이루는 것은 사회적인 관심을 가진 문학작품이었다. 그게 지금 거의 끝장이 난 것 같다. 개인적인 체험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것보다는 시장을 의식하는 문학작품이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시장문학의 시대가 된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민의’의 의미에 대해

가라타니=김우창 선생을 마지막 만난 것은 2005년 고려대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였다. 그때 나는 ‘역사의 반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 청일전쟁과 같은 상태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실현됐다. 그때 김우창 선생은 유교가 갖는 현대적 의미를 도쿠가와 시대 초기 에피소드를 들어 말씀하셨다. 조선통신사 사람들이 한반도로 돌아와 1630년 남긴 소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괜찮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전쟁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유교를 공부하고 있다.” 유교가 평화사상을 갖고 있고, 무나 군이 아니라 문에 의한 치세가 한국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난 상당히 감명받았다. 같은 시기 난 칸트에 대해 생각했다. 칸트의 평화가 갖는 의미를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칸트의 평화를 처음 소개한 이는 기타무라 도코쿠인데 그는 25살에 자살했다. 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평화운동을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자살 이후 3개월 뒤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중국과 서양을 의식해왔다. 그러나 나는 일본과 중국, 일본과 서양을 비교해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오히려 한국과 비교를 하면 차이가 더 잘 보인다고 지난 15년 동안 생각해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 대한 반성의 동기가 됐다. 한국 사극을 보면 왕 앞에서 관료들이 토론을 한다. 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쫓겨나거나 왕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론은 없다. 주군이 하라고 하면 ‘네’라고 말하고 끝난다.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전 작업으로 조율한다. 지금도 조직 안에서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사전 작업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상처를 준다. 


맹자가 강조한 것은 천명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은 곧 민심이었다. 왕조는 천명에 의해 존재한다. 민심이 없어지면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유교의 근본 사상이다. 이 사상은 한국에 유입돼 뿌리가 깊어졌다. 고려왕조 이후는 이 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일본에서 하늘은 천황이었다. 천황의 생물학적 생명이 하늘이었다. 천명은 없고 민심도 없다. 천황을 모시는 것이 곧 옳은 일이었다. 가마쿠라 막부에도, 에도 막부에도 정의 같은 것은 없었다. 현재의 사회운동의 형태를 보면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난다. 


김우창=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논쟁이 많았다. 중국보다도 심했다. 이데올로기가 강해지고 그것이 갈등을 만들었다. 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민의를 존중하고 천명에 따르는 것에 보편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보편성은 서양하고 대조해 이야기할 수 있다. 서양의 전통은 군사적이고 동양의 전통은 평화적이다. 중국의 <시경>에는 보통 사람의 삶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서양 문학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모두 군사에 관한 것이다. 가라타니 선생의 보편성, 민본주의, 민주주의에 평화까지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가라나티=유교의 왕도는 무력에 의한 침략 지배를 말하지 않는다. 최근 쑨원에 대해 공부했다. 쑨원도 왕도를 이야기한다. 중화혁명은 마오쩌둥을 포함해서 모두 유교전통에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최근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것만 갖고서는 그토록 큰 민족을 유지할 수 없다. 


김우창=그런 부분은 북한에도 남아있다. 남아있다고 할 수도 있고, 왜곡돼서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치와 도덕, 문학에 대해

가라타니=처음엔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받았다. 그때는 거절했다. 그러면 그 외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오늘의 테마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내게 문학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내가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날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내가 문학평론가였다는 점을 모르기도 한다. 서양의 삶 속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진, 선, 미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감정(미)은 가장 밑이었다. 그것을 긍정하기 시작한 것이 낭만주의다. 낭만주의 직전의 사람이 칸트인데, 칸트는 도덕성에 상상력을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 상상력은 인간의 지적 능력 중에서도 가장 밑이라고 간주됐다. 칸트는 감정 또는 창조력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였다. 진과 선을 연결해주는 것으로서의 창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서양에서 문학 혹은 창조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지위를 얻게 된 것은 불과 200년 전부터였다. 문학이자 창조력은 진, 선하고는 다른 영역이다. 도덕성이 강할 때 그에 대항하는 형태로 문학이 나타난다. 지금 도덕이란 말을 쓰지만, 그것은 곧 정치이기도 하다. 정치란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일본에서 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것, 도덕적인 것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문학의 지위도 내려갔다. 문학은 정치로부터 해방돼야 한다고 했고 실제로 해방됐지만, 이후엔 아무 것도 없어졌다. 21세기 이후 일본문학은 그렇다. 사소설은 ‘나’다. 나 이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문학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 한국에서도 그런(없어질) 상황에 놓인 것 같다. 


김우창=가라타니 선생이 말씀하신대로 한국에서도 문학은 끝났다. 한국에선 도덕이 지나칠 정도로 중요했다. 특히 소설은 ‘작을 소’를 쓰는데서 보듯 낮은 지위에 있었다. 유학자들도 소설을 보긴 했지만, 책상 밑에 감춰놓고 봤다. 이제 도덕은 끝났고 문학도 끝났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봐서, 정치, 도덕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갈등에 대해 

가라타니=그것이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이다. 한국의 현대정치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일본은 80년대까지 그랬다. 한국은 군사정권이던 시절이다. 당시 일본은 자민당 독재 체제였다고 기억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당시의 사회당은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자민당과 사회당은 대립하면서도 뒤에서는 긴밀히 연결됐다. 자민당의 리버럴과 사회당의 우파는 거의 생각이 같았다. 왜 그런 형태를 취했을까.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도 의외로 사회복지를 추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련에는 실업자가 없는데, 미국에는 실업자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강해졌다. 노동운동은 사실상 형식만 남았고 힘을 잃었다. 그렇게 현재까지 이어졌다. 동아시아 내 중국, 북한, 한국과의 문제가 논의된 것도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문제들이 해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 문제는 실질적인 보상 직전까지 갔지만 90년대 이후 뒤집혔다. 정부 차원에서 정해진 것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상횡이 됐다. 그것이 지금의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정부가) 대립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것은 미국이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국가중추의 전략을 꿰뚫어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못해 지고 있는 셈이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 민주당 정권이 있었다. 너무나 오래돼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때 민주당 정권이 할만한 일을 모두 두려워했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의 미군을 쫓아내는 문제나 관료 개혁 문제다. 지난해부터 민주당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 민심의 변화가 일어났다. 국회 주변에 20만명이 모인 데모도 있었다. 일본에서 사는 동안 예가 없었던 일이다. 이를 센카쿠 열도 문제가 한 방에 누르고 여론을 바꾸었다. 여기에 대해 화가 나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일 생각하고 있다. 


김우창=한·일, 중·일 관계가 긴장 상태에 들어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가라타니 선생께 우리 동아시아도 EU(유럽연합)처럼 우호관계가 발전하는 지역이 돼야한다고 제안했다. 정치도 중요하지만, 정치만 믿을 수는 없다. 정치를 줄이면서 우호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가라타니=동아시아가 EU처럼 될 수 있을까. 십 수 년 전에는 동아시아경제공동체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했다. 옛 자민당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그것이 실현되면 가장 난처해지는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거기 못을 박으려했다. 전쟁까지 가면 곤란하지만, 적어도 대치하는 상황은 만들어야 했다. 동아시아에 EU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고, 일본의 국가중추도 그에 동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대항해야 한다. 방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난 미국 친구가 많지만 미국이라는 국가는 싫어한다. 사실 모든 국가를 싫어한다. 국가가 하는 짓이라고는 거의 똑같다. 좋은 국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민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늘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할까. 영화든, 티비든, 여행이든 좋다. 사고방식은 변한다. 일본에서 한류 붐이 있은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 바뀌었다. 물론 질투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것이 인터넷 우익이다. “나는 인기 없는데 너는 왜 인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사람에 대해 알게되면 인상이 바뀔 것이다. 작년에 중국에 갔었는데, 필담을 하다보니 “배우 다카쿠라 켄을 참 좋아한다”는 식의 말이 나왔다. 중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영화,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그것이 의사소통의 한 가지 방법이다. 지식인들이 회의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웃음), 


김우창=말씀하신대로 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기관에도 동아시아 내의 회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걸 공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EU에는 사회헌장이 있다. 강제력은 없지만, 여러 나라의 정책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정부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지수를 발표한다든가 하면 정부에 압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