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은 책. 장구한 역사를 잘 요약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봐도 손색이 없는지는 봐야겠지만.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조현욱 옮김/김영사/636쪽/2만2000원


셰퍼드, 요크셔 테리어, 시추 등 다양한 종류의 개가 있듯이, 200만~1만년 전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살았다. 인간 종들은 모두 250만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했고,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 등 각기 다른 장소로 퍼져나가 환경에 맞게 적응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기자나 읽는 독자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촌이라 할 수 있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멸종했다. 7만년전쯤 동아프리카를 벗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유라시아, 아메리카로 뻗어나가면서 부터다.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미 해당 지역에 살던 네안데르탈인 등을 멸종시켰다는 ‘교체이론’,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교배해 한 집단이 됐다는 ‘교배이론’이다. 지난 몇 십 년간 교체이론이 상식이었지만, 2010년 현대인의 DNA 중 1~4%가 네안데르탈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교체이론이 대체로는 옳지만, 일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관계는 말과 당나귀처럼 다른 종, 블도그와 스패니얼처럼 같은 종의 경계에 있었다. 교배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못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젊은 역사학자가 쓴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처음에는 다른 인간 종을 물리쳤고, 이후엔 동물, 식물을 지배했다. 저자가 그리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은 좀 으스스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 자신을 멸종시킬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는 세 번의 혁명이 있었다.




▲인지혁명

7만년 전쯤 호모 사피엔스는 무리를 지어 아프리카를 벗어나 선주민들을 멸종시키기 시작했다. 7만~3만년전 사이에 배, 기름 등잔, 활과 화살, 장신구, 종교, 상업, 사회 계층화가 나타났다. 저자는 이 시기의 호모 사피엔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인지 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호모 사피엔스 뇌의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인지혁명의 핵심은 언어다. 특히 “저기 사자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는 허구를 전하는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


허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동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의 침팬지 무리는 20~50마리 정도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결속할 수 있는 규모는 150명 선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공통의 신화는 수억 명의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카톨릭 신자가 이교도를 처단하기 위해 뭉치고, 서로 본 적도 없는 두 변호사가 한 사람의 인권 수호를 위해 함께 변론한다. 종교나 인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이것들을 믿음으로써 집단을 이뤄 힘을 키웠다.


▲농업혁명

1만2000년 전쯤 호모 사피엔스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몇몇 동물과 식물의 삶을 조작하는데 바치기 시작했다. 수렵채집인으로 떠돌며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기로 한 것이다. 밀, 완두콩, 올리브나무, 포도를 재배했고, 염소, 말을 기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류가 먹고 사는 칼로리의 90% 이상이 밀, 쌀, 옥수수, 감자 등 우리 선조가 기원전 9500~기원전 3500년 사이 작물화한 식물이다.


농부는 수렵채집인에 비해 행복해진 걸까.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수렵채집인은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도 적었다. 하지만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도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식량생산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남은 식량은 폭증한 인구와 소수의 엘리트를 부양하는데 바쳐졌다. ‘번성’이라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다 수천년만에 전세계로 퍼져나간 밀이야말로 승자다. 호모 사피엔스가 밀을 재배한게 아니라, 밀이 호모 사피엔스를 이용했다.


▲과학혁명

지난 500년간 호모 사피엔스의 힘은 유례없이 커졌다. 인구는 5억명에서 70억명으로,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13조 칼로리에서 1500조 칼로리로 늘었다. 현대의 전함 한 대만 있으면 500년 전 열강의 모든 군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 현대의 대형 은행 한 곳이 보유한 돈은 중세의 모든 왕국이 가진 돈을 합친 돈보다 많을 것이다.


과학혁명의 핵심은 ‘무지의 인정’이었다. 500년전까지의 호모 사피엔스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었고, 세상은 퇴화 혹은 정체한다고 생각했다. 자연 현상은 모두 신의 섭리로 해석할 수 있기에, 인간은 더 많이 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호모 사피엔스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문제를 풀어나갔고, 문제를 풀면 진보가 가능하다고 짐작했다. 물론 무지를 인정한 과학자 홀로 과학혁명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제국의 군대, 자본주의의 교리 없이 과학은 스스로 번성할 수 없었다.


변화의 속도는 아찔하다. 오늘날은 모든 해에 혁명이 벌어진다고 해도 좋다. 오늘날의 30대가 10대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라고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인터넷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종말의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학적, 기계적 방법으로 스스로의 모습에 변형을 가하고 있다. 기계를 몸에 이식하고, 유전자를 조작해 생물을 만든다. ‘지적설계’란 진화론에 대응하기 위한 기독교도들의 조어지만, 사실 지금 호모 사피엔스가 하고 있는 일이 지적설계다.


<사피엔스>는 지적으로 짜릿한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출발부터 언젠가 닥칠 종말까지의 모습을 쉽고 재치있게 그려낸다.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 생물학, 고고학, 경제학의 성과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 하지만 ‘쉽다’는 것은 ‘단순화했다’는 말과도 통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본다면, 불만스러운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