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CIA에서 일한 제이슨 매튜스의 데뷔작 <레드 스패로우>(오픈 하우스)는 흥미진진한 스파이 소설이다. 출판사는 '존 르 카레의 계보"를 잇는다고 홍보하고 있는데, 턱없는 과장은 아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치열한 정보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스파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상대를 포섭하고, 그런 상황을 역이용하고, 때론 상대를 이기기 위해 잔인한 무력에 호소하고, 거대한 정보조직에는 다른 모든 관료 조직과 같이 비효율적이고 때론 음험함 음모가 판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솜씨가 근사하고 박진감 있다.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다가 동료의 음모로 부상을 당한 뒤 무대를 떠나고 여러가지 우연으로 러시아의 스파이가 되는 도미니카, 안정적이고 부유한 가문을 벗어나 위험과 모험으로 가득찬 CIA 요원으로 일하는 네이트가 주인공이다. 네이트는 러시아의 이중첩자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 정보조직의 거두이지만, 조직의 무정함과 빛바랜 대의에 회의를 품은 뒤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 후에 네이트와 도미니카는 서로를 포섭하라는 조직의 명령을 받고 접근한다. 그외 미국과 러시아 정보 조직 내, 정치계 내의 다양한 인물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그 행동에도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대중소설에서 그런 일관성이 '단순함'으로 비치진 않는다. 


하지만 날렵한 스파이 소설이 될 뻔 했던 <레드 스패로우>는 몇 가지 자극적인 양념을 첨가함으로써 스스로 격을 떨어뜨린다. 도미니카가 상대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스패로우 학교에 들어간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 내 교육에 대한 묘사가 피상적인데다가 군더더기가 많다. 게다가 쓸모없이 성적으로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스패로우 학교의 잔인함을 폭로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묘사를 하는데, 그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 교육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낭비됐다. 





네이트와 도미니카의 로맨스 묘사 역시 과하다. 날카로운 첩보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그저그런 에로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작가는 작품에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첨가하려 그랬겠지만, 잘 모르는데다 잘 하지도 못하는 일은 안하는게 낫다는 교훈을 준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작가의 이력이 그렇기 때문인지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과 미국 정보 조직에 대한 애정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제이슨 매튜스가 존 르 카레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은 여기다. 존 르 카레는 스파이 활동 자체에 대한 낭만, 애정을 품고 있을지언정, 그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국가, 조직, 정치 논리에 대해선 냉정한 시선을 견지한다. <레드 스패로우>의 타겟 독자층이 애국심 넘치는 미국인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국의 독자까지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차가워지는것이 낫겠다. 영화화 이야기도 있던데, 당연히 세계시장을 염두에둔 할리우드 사람들이 알아서 다듬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