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민음사)를 읽다. 1970~80년대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을 배경으로,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캐시와 그의 친구 토미, 루스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영국의 기숙학교, '3인조'라는 점에서는 '해리 포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폐쇄적인 공간, 엄격한 학교 규율 아래서 그들만의 스릴과 자유를 추구하는 청소년들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다르다. 


'해리 포터'가 비록 서양 전래의 괴담이나 전설에서 많은 소재를 따왔고, 영국 기숙학교라는 공간 역시 청소년 소설의 전형적 배경이라 할 수 있지만, '해리 포터'는 회고에 빠진 적이 없다. 오히려 미래에 펼쳐질 볼드모트와의 결전을 예비하는 것이 시리즈의 주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는 회고한다. 예정된 비극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는 주인공들은 기숙학교의 불안하면서도 잔재미가 있던 나날을 자꾸만 돌아본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회고뿐이라는 듯이. 




'나를 보내지 마'의 '회고'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소설이 SF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005년 나온 이 책에는 복제인간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즉, 캐시, 토미, 루스는 복제인간이고, 궁극적으로는 다른 인간에게 장기를 기증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양된 존재들이다. '아일랜드' 같은 영화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깨달은 복제인간이 반란 같은 것을 일으켰지만,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반란은커녕 불만의 계기조차 없다. 모든 복제인간들은 그저 주어진 운명을 따르고, '기증일'을 몇 년이나마 뒤로 늦출 수 있다는 뜬소문에 조금 들뜰 뿐이다. 아무리 봐도 복제인간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복제인간은 어딘지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캐시, 토미, 루스를 젊은 나이에 장기를 기증하고 죽어나갈 복제인간이라 봐도 좋지만, 결국 작가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쓸쓸한 말로를 말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책 뒤 표지에는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문제작"이라는 평이 실려 있지만,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복제인간이 아니라도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보내지 마'의 탁월한 점은 인물들의 대면, 대화를 구성하는 능력에 있다. 작가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경제적인 문장들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을 때 발생하는 호의, 질시, 애정, 적의의 묘한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그려낸다. 헤일셤 학생들 뿐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딱히 폭력을 쓰거나, 욕을 하거나, 호들갑 떨거나, 광기어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지만, 점잖고 때로 생략된 말과 행동을 통해 그런 감정이 전해진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에 바탕한 영화 '남아있는 나날'은 생각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영국 집사들이 주인공인데, 그 점잖은 태도 아래 숨겨진 격렬한 감정들이 이야기의 동력이었다. 작가의 특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이전에 캐리 멀리건, 키이라 나이틀리,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영화 '네버 렛 미 고'로 미리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먼저 보면 원작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될 때가 많다. 자꾸 배우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앤드류 가필드의 정말 아픈듯 구부정한 포즈, 캐리 멀리건의 멀뚱하게 슬픈 얼굴, 키이라 나이틀리의 발랄한 척 하는 말소리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영화가 담아낸 가을, 겨울 무렵 영국의 스산한 전원 이미지는 소설에 빠져드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하겠다. 



영화 '네버 렛 미 고'. 잘난 배우들은 아무리 황량한 배경에 있어도, 아무리 후줄근한 옷을 입어도 어쩔 수 없이 멋있다. 그건 그냥 타고 내어난 거다. 오히려 '무심한 듯 쉬크하게' 멋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