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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자, 살아서 말하자, '눈먼 암살자'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2000년작 '눈먼 암살자'(민음사)를 읽다. 작가가 61세에 집필한 작품이다. 한국 번역본으로 두 권, 900쪽에 육박하는 묵직한 분량이다. (덕분에 추석 연휴 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읽었다) 분량만으로만 봐도 작가 후반부의 역량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여겨진다.  


액자 안 액자 소설 구조다. 82세의 아이리스 체이스 그리픈이 말한다. 아이리스는 유복한 단추공장 사장의 손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참전군인이었던 아버지대에 이르러 사업은 조금씩 쇠락기에 접어든다. 아이리스는 결국 10대 후반의 나이에 신흥 사업가인 리처드와 일종의 정략 결혼을 했다. 부와 함께 명예를 중시하던 아버지와 달리, 리처드와 그의 여동생 위니프리드는 속물적인 졸부였다. (애트우드는 이 남매의 한심한 행각을 신나게 놀린다) 타협적인 아이리스와 달리, 동생 로라는 리처드의 속물성에 반항한다. 스페인 내전, 2차대전 등을 거치며 사업은 부침을 겪고, 아이리스와 로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정 안팎의 파고에 맞서 나간다. 이 이야기 안에는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요절한 로라가 남긴 소설 '눈먼 암살자'가 포함돼 있다. 로라는 이 소설 한 편으로 당대에는 논란이 됐고, 후대에는 불멸의 작가가 됐다. '눈먼 암살자'는 부유층 여성이 노동운동가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내용이다. 노동운동가는 여성에게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SF를 들려준다. 여성은 때로 이 SF의 이야기를 이어 자신만의 이야기로 꾸며낸다. 이것이 액자 안 액자 소설이다. 





마거릿 애트우드(1939~)



이 복잡한 구조는 매우 지적이고 정교하다. 액자와 액자의 이음새가 잘 보이지 않고, 간혹 삽입되는 가상의 신문 기사는 사건의 전후맥락을 건조하게 안내한다. 신흥부자이자 속물적 허영을 가진 남편과 전통부자이자 귀족적 정신을 가진 아내의 불화로 가득찬 결혼생활 묘사는 익숙해서 새롭지는 않다. '눈먼 암살자'가 나온지 17년밖에 안된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액자 가장 바깥의 이야기는 상당히 고풍스럽게 읽힌다. 


20대에 요절한 로라는 물론, 숙적 같던 리처드와 위니프리드가 모두 죽은 뒤, 노년의 아이리스는 차분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제 리처드와 위니프리드에겐 입이 없기에, 역사의 주도권은 아이리스에게 있다. 소설은 노년의 아이리스가 걷거나 먹거나 하는 일상생활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몇 차례나 묘사하지만, 기억하고 말하는 능력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하다. 일생을 힘겹게 살아왔을지언정, 적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아이리스는 승자다.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권력이나 돈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아이리스의 특권이기에, 아이리스는 그것을 마음껏 누린다. 


물론 특권은 남용되선 안된다. 그리고 내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끝없이 하는, 그러면서 그 말에 과도한 확신을 담은 노인들이 자꾸 떠오른다. '눈먼 암살자'도 그런 소설일까. 아이리스는 불특정다수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종반부에 가면 청자가 특정돼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눈먼 암살자'의 이야기는 한껏 부풀었다가 겸손하게 수그러든다. 난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청자, 넓게는 후속세대에 대한 아래와 같은 나지막한 조언도 좋다. 


부자, 가난뱅이, 거지, 성자, 수십 개의 출신 국가, 수십 개의 취소된 지도, 수백 개의 파괴된 마을들, 네 마음대로 고르렴. 그로부터 네가 물려받은 유산은 무한한 추론의 영역이다. 너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