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야심차게 콜렉션을 내놓은, 하지만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다는 풍문을 전해들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유문화사)을 읽다. 볼라뇨는 "스탈린과 딜런 토머스가 죽은 해"인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났고 2003년 대작 '2666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1996년 발간됐는데, 비평계에서는 찬사를, 독자로부터는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일 때문에 접촉한 모 소설가의 추천으로 손에 들게 되었다. 그 소설가는 연재를 타진하기 위해 샘플 원고를 보내왔고 나는 그 원고가 좋았으나, 여러가지 사정상 게재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매체에서라도 소설가의 후속 작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북미, 남미에서 20세기 이후 활동했던 극우 작가의 인명 사전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물론 이 작가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 인물이지만, 이들의 삶과 문학은 실제의 역사, 문학과 교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볼라뇨는 '극우'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사용한다. 한국적 관점에서 '극우'라 보기 어려운 이들도 이 사전에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1894~1993)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류사회의 귀부인으로 목가적이며 종교적인 시와 에세이를 쓰는 이였다. 그는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글을 쓴 적은 드물었으나 오히려 정치적으로 공허하고 무뇌의 글을 썼다는 점에서 영예의 극우 문학인 사전에 등재된다. 이탈로 스키피아노와 아르헨티노 스키피아노 형제는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의 극렬한 서포터였는데, 평생 축구장과 관련한 폭력, 그리고 이를 선동하는 글을 발표하며 살고 죽어 이 기묘한 사전에 올랐다. 


전체적으로는 풍자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서술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엉뚱하고 통렬하다. 예를 들어 '작가는 평생을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으나 돌아온 반응은 거의 없었고, 그의 수천페이지짜리 소설은 결국 허풍이거나 허섭쓰레기였다'는 투의 서술이다. 어처구니 없는 작가들의 삶이 간략하게 나열돼 있지만, 바로 그 어처구니 없음의 스케일 때문에 키득거리며 읽게 되는 것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