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또다른 소설 <미친 사랑>(시공사)도 읽었다. 이 소설은 다니자키의 초기 문학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고 하며, 서구에 일본 문학이 알려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일본문학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다니자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아니라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지만, 


솔직히 <미친 사랑>은 꽤 통속적이라서 <열쇠>의 정밀한 심리적 속임수나, <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의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엔 미치지 못한다. 절반쯤 읽다가 "연구자도 아닌 내가 왜 1920년대 일본 풍속 소설을 읽어야 하나"는 생각이 들어 덮으려던 중 힘을 내 마저 읽었는데, 


막상 읽고나니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신문 연재 도중 "신문사의 형편에 따라"(아마도 검열 당국의 개입에 따라) 연재를 중단했다가 더 마이너한 잡지로 옮겨 연재를 재개해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얻은 사정이 짐작된다. (당시 일본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나오미즘'이란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주인공 가와이 조지는 시골 부농의 아들로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며 겉보기엔 성실한, 마음은 불성실한 삶을 사는 인간인데 어느날 15세의 카페 여급 나오미를 만나 그를 자신의 취향대로 멋진 여자로 키워 같이 살겠다는 꿈을 꾼다. 처음엔 남자의 뜻대로 잘 커나가던 나오미는 그러나 금세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사치하고 방탕하며 문란하며 기만적인 생활로 남편을 곤궁에 빠트린다. 남편은 달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급기야 나오미를 쫓아내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에 대한 매혹을 이기지 못해 나오미의 뜻대로 완전히 굴복해 버린다는 이야기다. 





나오미는 그 이름의 느낌대로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여자다. <미친 사랑>에는 서양, 근대, 백인에 대한 주인공(혹은 작가 혹은 일본인)의 매혹이 드러난다. 가와이 조지는 나오미의 곧은 다리, 하얀 살결에 매혹됐다가, 그녀의 댄스 교사라는 몰락한 러시아 귀족 여성을 만나서는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른다. 이런 식이다. 


내가 서양 여자와 악수하는 '영광'을 누린 것은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슈렘스카야 부인이 그 '하얀 손'을 나에게 내밀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려, 그 손을 잡아도 되는지 어떤지 잠시 망설였을 정도였습니다. (...) 악수하는 것조차 미안하게 생각되었는데, 그 부드럽고 얇은 옷자락을 한 겹 사이에 두고 그녀의 가슴에 안겨버렸으니, 나는 정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같았고, 내 입김에서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땀이 나서 끈적거리는 이 손이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까, 그런 것만 마음에 걸렸고, (...)



그래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어린 아내 나오미에 대해 가와이 조지는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흔히 배가 고프다거나 할 때는 맛없는 음식을 정신없이 우적우적 먹어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츰 배가 불러오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 배 속에 채워 넣은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를 갑자기 깨닫자마자 단번에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처럼 되는-말하자면 그것과 비슷한 심정이겠지만, 오늘 밤에도 여전히 이(나오미의) 코를 상대로 얼굴을 맞대고 자야 할 것을 상상하면, '이제 이 음식은 질렸다'고 말하고 싶은, 뭔가 체한 것처럼 속이 거북하고 나른하게 맥이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남자는 곧 나오미의 매력에 다시 빠져들지만, 서양 여성의 아름다움에 한때 압도됐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작가의 태도는 자신이 매혹된 상태를 숨김 없이 드러내는 동시, 이를 비웃을 사람은 노골적으로 비웃어달라는 자기 풍자의 태도이기도 하다. 스스로 당당하면서 또 조롱감이 되는 그 이중적 태도를 보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역시 범상한 정신 상태의 소유자는 아닐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