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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글, <모든 것은 빛난다>

정보를 주는 글은 많겠지만, 삶을 바꾸는 글은 많지 않다. 일 때문에 한 주에도 많은 책을 훑어보고 또 그 중 한 두 권을 자세히 읽는 처지이지만, 사실 책을 덮고 그에 대한 글을 쓴 뒤에도 오래 기억할만한 책은 드물다. 미국의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함께 지은 <모든 것은 빛난다>(원제 All Thins Shining)은 일 때문에 읽은 책은 아니지만, 일 때문에 읽은 어떤 책보다 훌륭했다.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 삶의 지향에 영향을 미친다. 나 자신이 대단한 독서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주중에는 일을 위한 책을 읽고 나머지 시간엔 개인의 취향에 따른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그 '나머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 책은 증명한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난 서슴 없이 이 책의 제목을 댔다. 사실 추천이라는 것이 그의 취향을 제대로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난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번역본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원저의 부제를 조금 상세히 서술했는데,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서양 고전'이라든가 '삶의 의미'라는 말이 좀 흔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 책을 설명하는 더 나은 부제를 찾기는 어렵다. 만에 하나, 너무나 흔하게 들려 역으로 찾기 힘든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독서가 어디있겠나. 


책은 '자유롭기에 불행한' 현대인의 조건을 말한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 떄문인지 아닌지, 현대인은 "한 사람의 인생을 합당하게 이끌어주는 의심할 바 없는 단일한 덕목 체계"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저자들은 이것이 인간 영혼에 과중한 책임을 지우는 일이라고 본다. 


풍문으로 들었던 고대 그리스의 미녀 헬레네의 이야기는 쇼킹하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는 트로이의 미남 왕자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고, 이로 인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헬레네를 사이에 둔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트로이를 이겼다.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쟁 이후 헬레네가 원래의 남편 곁으로 돌아오고 남편 역시 헬레네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의아하다. 더 의아한 점은 헬레네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한때 버림받았던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조차 그녀를 이해한다. 말하자면 이웃집 미남 청년과 바람난 아내 때문에 남편과 청년 사이에 큰 다툼이 벌어졌고, 남편이 청년을 개패듯 팬 뒤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 아내는 청년과의 로맨스가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남편 역시 아내를 이해하는 상황이다. 


저자들은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열린 마음으로 대했다"고 설명한다. 현대인들은 내적인 자기응시에만 익숙해 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정조(moods)의 무거움을 이해했다. "호메로스 시대의 탁월성이란 결정적으로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바람난 헬레네는 파리스를 본 순간 '금빛의 아프로디테'에게 호응한 것 뿐이다. 삶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경외감. 그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대단하지만 사실 별 것 아니다. 이 책은 그 점을 계속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루터, 데카르트, 칸트를 경유해 멜빌의 <모비딕> 분석으로 인간의 자율성이 갖는 매력과 위험을 함께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칸트의 입장을 해석하면서는 "우리 행동을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짐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들이 오로지 우리의 손에만 맡겨진다는" 위험성을 강조한다. 인간이 의미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의미는 제작자를 넘어서는 권위를 갖지 못한다."


"나 자신이 내 행동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앞으로의 삶은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으리라. 책에 대해 조금 더 말하자면, 신형철의 지적대로 마지막 장이 전반부처럼 가슴을 치며 와닿지는 않는다. 아마 저자들이 마지막 장에서 제시한 상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도약'이 필요하리라. 끝내 이성의 동앗줄을 붙잡고 있는 이는, 거기서 도약하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