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뉴 파워라이터 20'이란 걸 선정해보았다. 출판 관계자 32명의 추천에 여러 가지 기준을 더했다. 20명을 차례로 인터뷰할 예정인데, 첫 주자는 문화학자 엄기호다. 아래에 명단, 엄기호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차례로 옮긴다. 


뉴 파워라이터 20(가나다 순)

고병권 사회학자

김원 정치학자

김종대 국방평론가

박천홍 역사저술가

박해천 디자인연구자

신형철 문학평론가

엄기호 문화학자

이강영 물리학자

이원재 경제평론가

이주은 미술사학자

이현우 서평가

임승수 저술가

장대익 과학철학자

전중환 진화심리학자

정여울 문학평론가

정혜윤 라디오 프로듀서

정희진 여성학자

진태원 철학자

하지현 정신과전문의

한윤형 칼럼니스트



도움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기인선 이매진 편집장·김미정 책세상 인문팀장·김미정 푸른숲 편집장·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김수영 로도스 대표·김수현 현실문화 편집팀장·김유정 자음과모음 인문팀장·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장·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박종만 까치 대표·박현경 동아시아 주간·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박희진 한길사 교양팀장·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소은주 돌베개 인문사회팀장·안희곤 사월의책 대표·유문숙 보리 편집장·윤양미 산처럼 대표·이갑수 궁리 대표·이권우 도서평론가·이승우 길 기획실장·이재민 너머북스 대표·장은수 민음사 대표·정종주 뿌리와이파리 대표·조건형 사계절 인문팀장·최세정 휴머니스트 역사출판부문 편집장·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한예원 교양인 대표·황혜숙 창비 인문사회팀장



문화학자 엄기호/ 김정근 기자




엄기호(42)는 ‘곁’을 중시한다. 글 쓸 때의 원칙도 두 가지다. 누구의 곁에서 쓰고 있는가. 누구의 곁에서 들려주는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아래서 올려다보며 굽신대지 않는 그의 글은 그렇게 독자의 공감을 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폭력적이고 부패한 교사를 만난 뒤 학교 교육의 부조리함을 감지한 그는 이후에도 줄곧 교육이라는 주제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국제단체의 활동가로 일했으며 문화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교육, 좀 더 추상적으로는 성장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다. 그렇게 내놓은 단독 저서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2009·낮은산),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2010·푸른숲) 등과 신작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2013·따비)까지 6권이다. 그중에서도 저술가로서 엄기호의 이름을 알린 책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였다. 엄기호가 강의하던 대학교 학생들의 교육, 민주주의, 돈, 사랑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전한 이 책은 지금까지 2만3000여부가 팔려나갔다. 엄기호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다독이거나, “88만원 세대여, 짱돌을 던져라”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기성세대의 눈엔 찌질하고, 무기력하고, 탈정치적이고,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오늘날 청춘의 육성을 엄기호의 담담한 전언으로 듣다보면, 어느새 그들을 이해하고, 나를 반성하고, 세계를 둘러본다.  


-외부의 시선으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내부 사정을 들려주며 공감을 얻는다. 이건 삶의 태도이자 서술의 방식으로 보인다. 

“글을 쓰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은 ‘너희가 모르는 걸 내가 알려주마’라는 것이다. 내 글쓰기는 말걸기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걸 같이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잊히거나 억압됐던 것들이 되살아난다. 독자의 반응도 내 책 자체보다는 내 책을 보며 떠올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글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한 욕심은 없는가. 

“없다. 예전에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누군가 그랬다. ‘누가 감히 당대를 넘어설 생각을 하느냐’고. 내 책이 시대를 이겨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 글이 나를 쓴다. 내가 작정한대로 글이 흘러가는 경우는 없다. 결국 아는 것을 쓰는게 아니라 모르는 것을 쓰는 셈이다.”





그의 글은 담담하지만 냉정하다. 섣부르게 희망을 말하거나 혁명을 선동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에 포착된 한국의 교육, 나아가 사회는 이미 ‘망했다’. 그는 이것을 ‘공동의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인문사회학은 이미 파국을 말하고 있다. 나는 망했다. 너도 망했냐. 그런데 걔도 곧 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너, 나, 걔가 모두 망했다면 이것은 ‘공동의 운명’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미 망했으니까 격하기보단 담담할 수 있다.”


-그대로 당신의 책을 읽다보면 너무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론으로든, 정책으로든 무언가 돌파구를 제시할 생각은 없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폐허를 응시할 용기 뿐이다. 용기가 있으면 극복은 그 다음이다. 응시할 용기도 없이 희망을 말하는 건 비겁이고, 대안을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곳이 폐허라고 해도 중요한 건 ‘삶은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학교가 망했다고 하지만 그 안에 교사, 학생이 있다. 살아있는 한 무언가 할 수 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보면, “요즘 애들은 게으르다”고 말하는 보수진영은 물론 “요즘 애들은 탈정치적이다”라고 말하는 진보진영까지 모두 비판한다. 

“누구의 곁에서 세상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있지만, 송전탑 설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밀양 주민의 곁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 내란 상태다. 한국의 많은 진보, 좌파 지식인들은 ‘판관의 글’을 쓴다. 물론 판관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다.”


그의 글에는 현장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사례와 말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때로 ‘엄기호’란 이름은 세상을 향한 그들의 매개자, 대표 필자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통일된 글로 묶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책에 인용된 사례를 ‘증언’이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이 쓴 보고서, 인터뷰는 다른 학자들이 보기엔 로 데이터(원자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들의 말 속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 자체가 나와의 만남의 결과이다. 나 따로, 그들 따로가 아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나. 

“머리 속으로 앞에 한 사람을 앉혀두고 쓴다. 대학생이든 교사든 그와 대화한다. ‘내가 누구의 곁에서 쓰는가’ 못지 않게 ‘누구의 곁에서 들려주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은 절대 혼자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쓴 뒤에는 연관된 사람에게 보내 감수를 받는다. 신문 칼럼은 두 가지를 써놓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결정할 때도 있다. 내 머리로는 논리적으로 썼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선 지그재그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제일 경계하는 건 ‘안다는 착각’이다.”


그는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로 재직중이지만, “교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교수가 되려면 논문을 써야 하는데, 그는 단 하나의 학회에 가입하지도 논문을 쓴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금처럼 현장과 세상을 잇는 글쓰기를 하는 편에 마음이 끌린다. 준비중인 두 권의 책 주제는 ‘고통은 말할 수 있는가’와 ‘우리 사회의 지나친 동일성 과잉’이다. 이 책들을 위해 그는 지금도 누군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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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유홍준, 정재승 등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 없는 파워라이터다. 독자는 그 이름만으로 책을 집어들고, 출판사는 앞다퉈 필자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들이 명성을 얻은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미학 오디세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과학콘서트>는 모두 10~20년된 책들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진중권, 포스트 유홍준, 포스트 정재승은 누구인가. 경향신문의 ‘○○○ 파워라이터 20’ 기획은 이런 의문에서 나왔다. 


명단을 추리기 위해 32명의 출판사 관계자, 출판전문가에게 ‘앞으로 주목할만한 파워라이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출판사의 성향, 답변자의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름이 나왔다. 경향신문 출판팀은 이 명단에 언급된 이름을 우선 고려하되, 몇 가지 기준을 더해 20명의 파워라이터를 꼽았다. 


전제돼야할 점은 전공 분야에서의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쓴 글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문성만큼 중요한 기준은 일반 독자와의 친화 가능성이었다. 정형화된 논문식 글쓰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법론, 개성을 담아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쓰는 저자라야만 출판계의 ‘파워라이터’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야별 안배도 고려했다.


20명의 명단 중에는 이미 파워라이터라 해도 될만한 저자도 있고, 대중에겐 낯선 저자도 있다. 후자의 경우, 전공에 대한 지식이 확고하고 시각이 참신해 앞으로 우수한 저서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이였다.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이름은 엄기호 덕성여대 겸임교수였다. “교육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 청춘 세대가 느끼는 소외와 상실의 문제를 매우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글쓰기”를 보여준다는 평이 있었다.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미디어스 기자로 일하고 있는 한윤형은 30세로 20명 중 최연소자였다. 그는 엄기호 다음으로 많이 추천받았다. 경향신문은 앞으로 20명의 인터뷰를 차례로 게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