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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남자의 사랑

그날 난 분명히 들었다. <쿠바의 연인> 시사회. 정호현 감독의 자전적인 쿠바 혹은 쿠바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 침대 위에서 함께 보낸 다음날 아침 상황인 듯,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남자는 맞은편으로 팔꿈치를 괴고 누웠다. (한국에 살 수 있겠어?) "너와 함께라면." (내가 없으면?) 남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리고선 하얀 시트 바깥으로 삐져나온 여자의 엄지 발가락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이게 뭐지?" 그리고 거기 키스한다. (아니 빨았나?) 순간 난 분명히 들었다. 어느 여자 관객의 탄성. "어우~~~"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청객들이 자주 내는 탄성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들릴락말락한 탄성. 그러므로 이 탄성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생리적인 것이라 봐야 한다. 그 쿠바 남자의 귀여움과 에로틱함에, 감독의 시점 카메라에 저도 모르게 동화돼, 폐부 아래에서부터 나온 탄성. 

오리엘비스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감독보다 10년 연하다. 몸이 마르고 탄탄하다. 춤을 잘춘다. 음악도 만든다. <쿠바의 연인>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그림도 그린다. 보도자료에는 쿠바 디자인대학 3학년이라고 돼있다. 그가 한국에 와 감독의 친척들과 함께한 장면이 압권이다. 남자들은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다. 안경을 쓰고, 밋밋한 셔츠를 입었고, 단정하게 가르마를 넘겼다. 이 자리에 나타난 오리엘비스는 정말 폭탄같은 남자다. 며칠전 정호현 감독과 통화한 내용.

-이국의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는데 거부감이나 장벽은 없었나?
"그러기엔 너무 잘생겼다! 오로(오리엘비스의 애칭)는 그쪽에선 미남 축에도 못낀다. 프라이버시 강조하는 캐나다에 있다가 쿠바에 가니 너무나 큰 환대를 받았다. 여성 입장에서는 확 끌렸다."

-일기식으로 기록하다가 작품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가.
"비디오 다이어리처럼 소소하게 일상을 기록했다. 초기에 쿠바에 도착해서는 <쿠바에 미친 여자>라는 가제 하에 만들려고 했는데, 연애를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안 보던 것도 보이고, 안 들리던 것도 들렸다. 쿠바하면 춤, 음악, 낭만일텐데,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적어도 현지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담아야 했다. 실상을 다 아는데 춤, 음악, 낭만만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겠다 싶었다한국 관객에게 쿠바가 이런 모습이 있다고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작품은.
"쿠바 얘기를 두 세 번 더 하고 싶다. 거기서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 매체들은 3주 정도 비자 받아 갔다 온다. 난  더 깊게 들어가는 이야기를 할 거다.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끝나면 어떻게 보내주나를 그리고 싶다. 그들은 13~14세면 첫 섹스하고,. 17~18세 되면 동거 시작한다. 동거는 3~4년 가는데, 그 관계에서 어떻게 동거 생활 시작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아래는 1월 6일자 관련 기사. <심장이 뛴다>와 묶어 썼다.

연초 두 편의 한국영화가 선을 보인다. 극영화 <심장이 뛴다>와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이다. 두 영화의 겉모습은 매우 다르다. <심장이 뛴다>는 톱스타 김윤진·박해일이 출연한 상업영화이고, <쿠바의 연인>은 정호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이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들이 가진 정서와 삶의 방식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이 뛴다>는 여자 주인공, <쿠바의 연인>은 여자 주인공의 가족이 기독교인이다.



왜 당신은 다른 이의 삶이 안중에 없는가

◇ <심장이 뛴다> 속 이기적인 종교 = <심장이 뛴다>는 가족을 살리려는 두 남녀의 대결을 그린다. 남편과 사별했지만 서울 강남에서 영어유치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연희(김윤진)에겐 큰 걱정이 있다. 어린 딸 예은이는 심장이 약해 빨리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마침 예은과 혈액형이 같은 뇌사 직전의 환자가 응급실에 나타나자 연희는 환자 보호자에게 거액을 준 뒤 심장 이식 동의를 받는다.

그러나 환자의 아들 희도(박해일)가 나타나 이식을 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평소 어머니와 의절하다시피 살아온 희도이지만, 삶의 막바지에 몰린 어머니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희도는 어머니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연희는 그 심장을 빼앗아 딸에게 이식시키기 위해 대결한다.

영화 초반부 연희는 선인, 희도는 악당처럼 보인다. 연희의 원장실 책상에는 해외봉사에 다녀온 듯 외국 어린이들과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연희는 이주노동자의 심장을 사서 이식하자는 불법 장기 브로커의 제안도 거절한다. 반면 희도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건달이다. 부모에 대한 천륜, 친구에 대한 우정도 없다. 입만 열면 육두문자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 선인과 악당의 위치가 바뀐다. 평소 착하게 보이던 연희는 딸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이웃에 대한 배려를 멈춘다. 아직 죽지 않은 환자를 보호자 동의 없이 빼돌리기까지 한다. 영화는 중간중간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연희의 모습을 강조한다. 연희는 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기도할 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안중에도 없다. 희도는 “사람 목숨 다 똑같은 거 아니냐?”라고 항변하지만, 연희의 재력에 동원된 폭력배들 앞에선 무력하다. 딸 예은은 엄마를 ‘천사’라 여기지만, 타인에겐 목숨을 빼앗는 ‘악마’나 다름없다.

이 영화로 데뷔한 신인 윤재근 감독은 “한국이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구조적인 대결, 갈등의 문화가 조장됐다”며 “한국의 강남, 영어교육, 교회로 상징되는 계층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당신은 다른 이의 믿음이 틀렸다 하는가

◇ <쿠바의 연인> 속 배타적 종교인 =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정호현 감독은 캐나다 유학중 10일간 쿠바 여행을 떠났다. 그때의 감흥을 잊지 못해 이듬해 다시 쿠바를 찾아 4개월간 머물렀다. 처음엔 쿠바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인 춤, 사랑, 낭만 등을 다루려 했으나,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하고, 사람들은 일하는 척한다”는 쿠바 사람들의 마음속 말을 들으면서 작품 방향이 달라졌다. 더욱 결정적인 계기는 10살 연하의 쿠바 남성 오리엘비스와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쿠바의 연인>은 한국 여성과 쿠바 남성이 사랑을 시작하면서 겪는 문화적 차이를 다룬다.

영화는 오리엘비스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오리엘비스는 뭐든 복잡한 한국에 질린다. 특히 낯선 건 한국의 기독교 문화다. 감독의 어머니는 검은 피부의 사위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애쓴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교회 집사까지 동원한다. 심지어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한 할머니는 오리엘비스의 ‘폭탄머리’가 사탄처럼 보인다며 기독교식 말세의 징조라고까지 말한다.

정 감독은 전작 <엄마를 찾아서>에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사연을 담았다. 정 감독은 “어머니는 왜 맹신도 혹은 독실한 신앙인이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려 했다”며 “불교를 믿는 8남매집 맏며느리로 들어가 원래 갖고 있던 종교를 버려야 했던 어머니에게 교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본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라는 한 한국인의 질문에 오리엘비스는 “어느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저 한 사람일 뿐, 이념의 틀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리엘비스는 자신을 전도하려는 장모를 이해하려 한다. “나를 새 가족으로 받아주셨으니,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려 하시는 것 같아. 그게 바로 구원이겠지. 그러나 이것 아니면 다 틀렸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는 쿠바식 사회주의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들 스스로 자신이 유일한 진리임을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기주의(심장이 뛴다), 배타주의(쿠바의 연인)가 연초 두 편의 한국영화가 보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인 셈이다. 정 감독은 “문화로서의 종교는 좋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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