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쓰지는 않았지만,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영화 줄거리나 디테일에 대한 지엽적인 질문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가 그렇겠지만, 이 영화도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계산 아래 만들어졌음을 알았다. 따지자면 난 <추격자>보다는 <황해>를 선호한다.

하정우는 올해의 고생상을 받아 마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선 젊은 연인들이 <황해>를 보면서 느낀 건 끝 모를 광기와 절망이었을 터다. 영화판에서는 한없이 늘어난 촬영기간과 그에 따라 치솟은 제작비, 감독의 열정 혹은 집착을 둘러싼 온갖 루머도 나돌았다.

아무튼 <황해>는 세간의 소문, 논란, 호평, 악평을 뒤로 하고 개봉 첫 주 100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하고 있다. 역시 숱한 화제를 만든 <추격자>로 데뷔해 두 번째 작품 <황해>를 갓 선보인 나홍진 감독을 28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순수’라는 어휘를 많이 사용했다.

“제가 너무 정직하게 간 것 아닌가 걱정했어요. 너무 순수했던 것도 같고요. 사건을 순수하게 표현하려 했거든요. 저는 만족했지만, 그 순수함을 관객에게 보여드리려 하니 슬슬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 야생의 사내들이 인천공항에 나타나는 순간, 영화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손도끼, 쇠뼈다귀 등을 이용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는 면가(김윤석) 역시 감독의 해석으로는 ‘순수한 남자’다. “너무나 순수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고 나 감독은 말했다.

<추격자>는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를 상상하며 구상한 작품이었다. <황해> 역시 감독을 따라다닌 한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추격자> 프리프러덕션 과정이었는데, 분식집에 떡볶이를 먹으러 갔어요. 거기서 추레한 작업복 차림의 10살가량 되는 아랍계 아이가 덮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맛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내 몸을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마음만 있는 것 같았어요. 무서웠어요.”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는 소년의 이미지가 영화 속 구남(하정우)으로 연결됐다. 한 치의 희망도 없이 비정한 세상은 감독의 세계관일까.

“마지막 컷에서는 영화마저 주인공을 버립니다. 시종일관 그를 쫓아가던 카메라마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몇몇 관객은 이 남자의 운명을 느낄 것 같아요. 냉정하고 꼿꼿하게, 흔들림과 치우침 없이 담아내려 했어요. 살려고 충돌하고 발악하던 사람들이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이후의 이야기, 그 어두운 면을 담으려 했습니다.”

<황해>를 좋지 않게 본 이들도 이 영화 속 자동차 추격 장면의 박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 감독은 자동차 하나하나에 ‘인격’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 차는 구남처럼 보여야 하고, 저 차는 면가처럼 보여야 했다. 또 텅 빈 도로에서 ‘그림’을 만드는 게 싫어서 컷마다 보조출연 차량으로 틈을 채워나갔다. 나 감독은 “유상섭 무술감독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극중 김태원(조성하)이 살인을 교사한 진짜 이유는 영화 막판의 반전에 가깝다. 나 감독은 “무시무시하고 지저분한 사건의 원인이 다시는 쳐다보기 싫을 만큼 천박하고 사소한 이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에서 캐스팅된 듯한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황해>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영화인들의 화제였다. 감독이 완벽주의를 고수하느라 수많은 스태프와 마찰을 일으켰으며, 그 와중에 스태프들이 떠나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 감독은 “<황해>가 안주가 됐다”며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스태프들이 대거 교체된 이유에 대해선 “많은 스태프의 계약 기간이 4개월이었다. 촬영기간이 여느 영화의 2배가 넘는 11개월이다 보니 다음 영화를 위해 그만둬야 하는 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황해>의 기나긴 촬영기간을 견디며 어느 순간 ‘지옥’을 맛봤다. 그러나 영화는 그 어느 분야보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 성향이 강하다. 100억원대의 순제작비가 투입된 <황해>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 지옥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갓 지옥에서 빠져나온 나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