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클레멘트의 1954년작 '중력의 임무'는 하드SF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교과서'란 표현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학계 다수로부터 인정받은 주류 이론을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비관보다는 낙관에, 감성보다는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소 지루하다. 

적도 지름 7만7000km, 극 지름 3만km의 찌그러진 팬케이크 모양 외계 행성 메스클린이 배경이다. 자전 속도가 매우 빨라, 지구 시간으로 18분이면 하루가 지난다. 메스클린이 지구와 가장 다른 점은 중력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다. 이 행성의 중력은 적도에서는 지구의 3배, 극지방에서는 지구의 700배에 달한다. 메스클린 행성의 엄청난 중력이 이 하드SF가 보여주는 트릭의 원천이다. 

이 행성에는 납작한 애벌레 모양의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 중력이 너무 강해 인간처럼 직립한 생명체가 진화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메스클린인들이 이 행성 탐사에 나선 지구인(그들에게는 외계인)과 조우한다. 지구인은 반중력장치 개발을 위한 연구 도중 로켓을 메스클린의 극지방에서 잃어버렸다. 지구인은 메스클린인에게 로켓을 회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몇 가지 반대 급부를 약속한다. 지구로 치면 15세기 수준의 문명을 가진 메스클린인 탐험대와 문명이 앞선 지구인과의 교감이 소설의 핵심이다. 

워낙 중력이 강한 행성이기에, 메스클린인의 가장 큰 공포는 높이다. 비행은 상상할 수 없고, 무언가를 던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불과 몇 cm에서만 떨어져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에 조금만 높은 곳에도 올라갈 수 없다. 메스클린인들은 머리 위에 무언가 있는데 대해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낀다. 사실상 세계를 2차원으로 해석하던 메스클린인들이 지구인의 도움을 받아 3차원 세계에 적응해나간다. 물론 지구인은 선의가 아니라, 로켓 회수라는 큰 목적을 위해 메스클린인을 돕는다. 

작가 클레멘트는 공군 조종사로 2차대전에 복무했다. 퇴역한 뒤에는 대학 전공을 살려 메사추세츠주 작은 도시의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교사로 일했다는 배경을 들으니 정말 책이 교과서 같다) 책 뒤편의 저자 후기에는 클레멘트가 메스클린 행성을 설계해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실제로 관측된 백조자리 61 쌍성의 데이터를 근거로, 행성의 밀도, 중력, 질량, 자전속도 등을 설계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성에서 존재할만한 물질과 생명체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마치 건축가가 마천루를 설계하듯, 클레멘트는 천문학 데이터와 물리학 법칙을 근거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행성을 창조한 것이다. 클레멘트는 독자들에게 '게임의 규칙'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면 찾아보라고 제안한다. (난 물론 그걸 찾을 능력이 없다)

작품이 탈고된 1954년 미국의 상황을 생각해본다. 2차대전의 승리로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소련과의 냉전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물질문명, 소비문명은 나날이 풍요를 구가한다. 과학은 한계없이 발전할 것처럼 보인다. 클레멘트는 세계의 과학적 원리에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 발전하고 싶어하는 메스클린 선장 발리넌의 캐릭터 구축에 가장 집중한다. 발리넌은 로켓을 회수한 직후 대담하게도 지구인에게 새로운 계약 조건을 내민다. 지구의 과학 문명을 전수해달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로켓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 지구인은 '쿨'하게 응한다. 매우 삐딱하게 생각하면, 아마존의 원주민에게 수학이나 철자법을 가르치려는 선교사의 겉으로는 너그러운 사실은 오만한 자세처럼 보인다. 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소설에서 지구인은 결코 악당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신들보다 낮은 수준의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을 내리깔아 보지도 않지만, 과연 물질문명의 최강대국 미국의 작가가 아니라면 이런 시선의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작가의 그러한 태도가 은연중 비친다고 해서, '중력의 임무'를 나쁘게 평하고 싶지는 않다. 이 시선은 64년전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