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가. 한 번은 미국에서, 한 번은 한국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모델로 사회를 뜯어고치고 있는 한국에서라면 낯선 일도 아니지만, <인사이드 잡>을 보고 나면 ‘반면교사’란 사자성어를 되새겨볼 때도 된 것 같다. 감세 정책을 둘러싼 논쟁,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의 ‘상부상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사이드 잡>은 2008년 전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미국발 금융위기의 막전막후를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MIT 정치학 박사 출신 감독 찰스 퍼거슨의 두번째 작품이다. 미국의 문제점을 미국 내에서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은 미국 영화계 최대 축제인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은 이 영화를 두고 “미국은 이제 학계가 아니라 할리우드가 지킨다는 세간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단 인터뷰이들이 화려하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회장,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 총재부터 프랑스 재무장관, 싱가포르 총리까지 2008년 금융위기를 안팎에서 목격한 이들이 카메라 앞 증언대에 올랐다.



영화는 북유럽의 소국 아이슬란드를 먼저 찾아간다. 자족적이고 민주적으로 살아가던 이 나라는 어찌하여 2008년 금융위기의 출발점이 됐는가. 신자유주의를 추종했던 정부는 온갖 규제를 완화했다. 아이슬란드 바깥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은행들이 빚을 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당연하다는 듯 ‘AAA’ 등급을 매겼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퇴직 후 자신의 감독 기관이었던 은행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글로벌 금융 사기극’이다. 자족적인 영업에 만족했던 은행들은 레이건 시대의 규제 완화와 함께 고객 돈으로 엉뚱한 곳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이 상품이 망하면 돈을 받는 보험을 가입했다. 앨런 그린스펀은 레이건·조지 H 부시·클린턴·조지 W 부시 시대를 거치며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남자들이 물건 자랑하듯” 규모를 키우는 은행들을 방조했다. 누군가 ‘규제’의 필요성을 말하면, “금융업은 전문분야라 규제가 필요없다”고 되받았다.

흥청망청하는 시절이었다. 리먼 브라더스 사장에겐 헬리콥터 1대를 포함해 7대의 자가용 비행기가 있었다. 누군가는 회사 돈으로 매매춘을 하고 마약을 샀다. 보너스에 보너스가 얹혔다.

그리고 거품이 터졌다. 국민의 세금이 망해가는 금융사들을 구하는 데 사용됐다. 잘못은 부자가 저질렀는데, 피해는 빈자에게 돌아갔다.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기고 텐트촌으로 나앉았다. 그래도 월스트리트 사람들을 위한 보너스는 변함없이 지급됐다.

카메라 뒤의 감독은 위기의 주범들을 하나씩 심문한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학자는 규제 완화를 건의하고 경제 구조가 튼튼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 물론 돈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AAA’를 남발한 신용평가기관은 그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었다고 발을 뺐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감옥에 간 사람도, 번 돈을 토해낸 사람도 없다.



금융위기 이후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비난하고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난을 일으킨 이들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 “저러다 말겠지” 정서가 팽배하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맷 데이먼은 이 기막힌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마이클 무어만큼 통렬하고, 마이클 무어보다 냉정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였지만, 정작 정식 시사회는 없이 19일 CGV 대학로·강변·오리,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곧장 개봉한다. 이 지적이고 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적극적으로 알릴 마케팅 비용이 한국 배급사에는 한 푼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