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336쪽/1만6000원


몇 달 전의 경험이다. 퇴근을 위해 2호선 지하철을 잡아탔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지하철 한 칸의 내부가 어느 스포츠 의류의 광고로 도배돼 있었다. 벽면 광고판은 물론, 지하철 천정과 바닥까지 모두 다 같은 회사의 광고였다. 지하철이 아니라 의류 회사의 홍보 차량에 오른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프로 농구가 중계되고 있었다. 경기 막바지에 접어들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상박이 카메라에 잡혔다. 민소매 운동복 아래로 드러난 어깨 부분에 해당 팀을 후원하는 기업의 로고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물론 지울 수 있는 문신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지하철에는 언제나 광고가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선 승객의 눈 바로 앞에 위치한 광고판은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이제 광고의 영역이 조금 더 확장된 것 뿐이다. 농구 선수의 몸에 새겨진 기업 로고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선수들의 운동복을 보면 후원 기업이 어디인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축구팀 FC 바르셀로나는 광고 없는 유니폼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내세웠지만, 지난해부터는 스폰서의 이름을 유니폼 앞에 새겼다. 


그러나 그날 지하철과 농구 경기장의 모습은 거북하고 불쾌했다. 왜 그랬을까. 마이클 샌델 식으로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시민의 발’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 지하철은 시민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다. 지하철 역을 약속 장소로 삼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지리를 파악하고, 지하철 역에서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집값이 달라진다. 지하철은 공공의 정신적·물질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인 것이다. 서울시 지하철 9호선에 민간 자본이 투입됐다고 해서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농구 선수의 경우는 어떤가. 농구 선수의 몸은 공공의 재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거기 새겨진 기업 로고가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이같은 문신 광고가 인간의 육체에 노골적인 가격을 매기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운동 선수의 몸을 이용한 광고가 허용된다고 가정해보자. 매경기 20점 이상을 넣는 에이스 선수의 어깨 광고는 1경기당 1000만원, 실력은 부족하지만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은 선수의 복근 광고는 1경기당 800만원, 식스맨의 종아리 광고는 덤으로 끼워파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공공의 공간, 인간의 육체 등 이전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팔려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왕이면 벤츠, 루이뷔통, 불가리 같은 광고 따서 멋진 문신 만들어 주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원제 What Money Can‘t Buy)은 2010년 한국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신작이다. 지난 24일 한국, 미국, 영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초판 인쇄부수는 인문서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10만부다. 샌델은 하버드 2012년 봄학기부터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철학 강의 ’시장과 도덕‘(Markets & Morals)을 개설했다.


제목이 책의 내용을 함축한다.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시장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 신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들은 여전히 재기를 꿈꾸고 있다. 샌델은 교육, 환경, 건강, 정치 등 시장과 무관하게 여겨졌던 가치들이 시장에 끌려나오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시장이 도덕을 규정하거나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장이 도덕 영역을 침범하는 여러 현상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내놓는다. 


샌델은 특유의 명쾌한 논리, 풍부한 사례로 글을 써나간다. 서두에 언급한 한국 사례는 샌델이 드는 미국 사례에 비하면 약과다. 지금 미국에선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일부 도시의 교도소에서는 1박에 82달러를 내면 깨끗하고 조용한 개인 감방으로 업그레이드해준다.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50만 달러를 투자해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드는 외국인은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개인 진료를 해주는 의사는 연 1500달러를 내면 자신의 직통 번호를 알려준다. “지난 30여년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탐욕의 증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한 것이다.” 우리는 도구로서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방식인 ‘시장사회’로 이동했다. 


샌델은 몇 가지 논점을 검토한다. 우선 ‘새치기’ 문제다. 할리우드의 갱스터 영화를 보면, 평소 잘 아는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의 주머니에 지폐를 찔러 넣어준 뒤 뒷문을 통해 좋은 자리를 안내받는 마피아의 모습이 나오곤 한다. 지금 미국에선 이같은 새치기 권리를 공공연히 팔고 있다. 추가 비용을 내면 공항 보안검색대를 우선 통과하게 해주고, 일반 입장료의 두 배를 내면 테마파크 놀이기구의 맨 앞줄에 설 수 있다. 아예 ‘라인 스탠더’라는 직업까지 등장했다. 이는 무료 야외공연이나 의회 공청회 등 참가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수용 공간은 한정된 행사를 위해 일정액을 받고 미리 줄을 서주는 사람을 말한다. 로비스트는 라인스탠더 대행사에 1000달러 가량을 내고 방청권을 산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 사람들은 로비스트에게 밀려 공청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새치기 시장’을 옹호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는 자유시장주의자,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모두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허용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자의 입장이다.


샌델은 반박한다. ‘새치기 시장’이 활성화 되면 공공의 축제여야 할 행사가 사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샌델은 이를 ‘부패’라고 표현한다. 여기서의 부패란 뇌물, 불법 거래 등의 좁은 뜻을 넘어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의 평판을 깎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게 만드는 일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공청회의 라인 스탠더들은 의회를 공익 실현의 도구가 아닌 개인적 이윤추구의 원천으로 다룸으로써 의회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인센티브’도 논쟁 대상이다. 미국에선 매년 수십만명에 이르는 마약중독자 여성이 아기를 낳는다. 아기 역시 마약에 중독된 채 태어나거나, 태어나도 올바른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한 자선단체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시장에 기반한 해결책을 마련했다. 마약중독 여성이 불임시술을 받거나 장기간 피임하면 3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시장 거래의 관점에서 보면 이같은 계획은 마약중독 여성과 자선단체 모두에게 이득을 안겨주므로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강압적인데다가 뇌물 거래를 수반하므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물론 마약중독 여성은 자발적으로 자선단체의 제안에 응했겠지만, 이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므로 애초에 300달러가 걸린 제안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즉 온전히 자발적인 결정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불임시술의 대가로 현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은 마약중독 여성을 ‘돈만 내면 스위치를 끌 수 있는 고장난 아기제조 기계’쯤으로 대우하므로 ‘부패’한 사고 방식에서 나왔다. 


인센티브 논란은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 미국 어느 도시에선 학력 부진 학생들의 독서 능력 향상을 위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2달러를 주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효과가 있었다 해도, 독서를 내적인 만족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격하시켰기 때문에 ‘부패’에 해당한다. ‘한 자녀 낳기’ 운동을 전개해온 중국 정부는 둘째 아기를 낳으면 20만 위안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어느 부유한 부부는 산아제한 사무실에 의기양양하게 들어와 “여기 20만 위안이에요”라고 돈을 집어던지고 나갔다고 한다. 도덕적 비난이 따르는 ‘벌금’에 시장 기능이 개입하면서 가치 판단이 배제된 ‘요금’으로 바뀐 셈이다. 


‘삶과 죽음의 시장’을 다룰 때 샌델의 어조는 특히 격해진다. 월마트, 월트디즈니, AT&T 등 미국의 유명 대기업들은 직원의 동의 없이 그들의 생명보험을 들었다. 이 보험은 그들끼리 용어로 ‘청소부 보험’이라 불린다. 직원이 사망하면 회사는 그에 해당하는 거액의 보험금을 받는다. 물론 유족에겐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회사가 직원의 목숨에 가격을 매겨둔 셈이다. 물론 직원이 살아있었다면 청소부 보험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고, 회사가 직원의 죽음을 일부러 재촉한다는 증거도 없다. 직원의 주머니에선 한 푼의 돈도 나가지 않기 때문에 직원에게는 금전적인 손해도 없다. 그러나 청소부 보험은 “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이 장에서 샌델은 ’병적인‘, ’파렴치한‘, ’섬뜩한‘, ’불건전한‘, ’천박한‘ 등의 형용사를 사용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투명하다고 말한다. 재화가 거래되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각자 이득을 남겨 사회 전체의 만족도가 증가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주의자들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얼마죠?”일 뿐이다. 그러나 샌델은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소설 속의 간접광고는 작품의 품위를 변질시키고 저자와 독자의 관계를 타락시킨다. 신체의 문신 광고는 사람을 사물화한다. 독서에 대한 인센티브는 교육적 목적을 훼손한다.


지난 30년간 시민들은 공적 담론의 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확신에 대해 논쟁을 꺼려왔고, 그 사이 시장이 공적 담론의 공백을 채웠다. 흔히 ‘공동체주의자’라 불리는 샌델은 공공의 장에서 도덕적·정신적 논쟁을 전개하자고 주문한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샌델의 입장은 여전히 기세등등한 시장지상주의에 대한 최후방어선과 같다. 레이건, 대처의 집권 이후 이 방어선은 곳곳에서 무너진 상태지만, 샌델은 이제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남겨두자고 제안한다. 샌델의 이론은 기업 임원이나 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보고, 똑같이 줄을 서 핫도그를 사먹고, 비가 오면 모두가 함께 젖는 어린 시절의 야구장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에 기반한다. 지금 메이저리그 구장에는 외야석 가격의 20배가 넘는 스카이박스석이 들어서 있다. 이 책의 인세로 스카이박스석 티켓을 살 수 있을법한 샌델도 이런 소리를 한다. 99%의 사람들은 스카이박스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우리 삶에서 최소한의 존엄을 회복하자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