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가 '웰메이드' 영화라는데는 이의가 없지만, 난 이토록 민감한 소재를 영상으로 옮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도가니>에서 인권 센터 간사 역을 맡은 정유미.




미술 교사 인호(공유)가 안개 자욱한 무진시의 청각장애학교인 자애학원에 부임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어린 딸을 노모에게 맡긴 채 자애학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금언처럼 받들어야 할 처지다. 그러나 인호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학생 세 명이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인호는 잠시 주저하지만 곧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중반 이후 <도가니>(사진)는 법정 영화의 모양새를 띤다. 그러나 치열한 법정 공방을 그리기보다는 가난하고, 어리고, 장애까지 가진 삼중의 소수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현실에 놓여 있는지를 고발한다. 인권센터 간사 유진(정유미)이 교육청을 찾지만 공무원은 “방과후 일어난 일이니 교육청이 아니라 시청 소관”이라고 답한다. 평소 자애학원에서 두둑한 돈봉투를 받던 경찰에겐 사건을 수사할 의지가 없다. 피고인들은 부장판사 출신의 거물 변호사를 선임해 ‘전관예우’를 기대한다. 교장이 속한 교파의 종교인들은 법원 앞에서 기도하면서 아이들을 ‘마귀’라고 부르고 저주한다. 이렇게 되면 정의의 여신이 무진에 강림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상식을 가진 관객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작진은 한발 더 나아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직장, 많은 돈, 가난하고 병든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포기하고 정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도가니>는 관객의 양심까지 시험에 들게 함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곳을 고발하는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도가니>에서 양심의 시험을 받는 미술 교사 공유.

생각해볼 문제는 남는다. 일단 영화 <도가니>에는 이중의 각색 작업이 개입됐다. 2000년대 초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공지영 작가가 소설로 옮겼고, 이 소설에 기반해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포스터에는 “나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는 카피가 쓰여 있지만, 실제 사건과 영화 사이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적 장치’가 도입됐다. 인호와 유진이 교장실에 증거물을 찾으러 몰래 들어가는 대목이나, 화장실에 숨은 아이를 교장이 한 칸씩 뒤져가며 찾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스릴러 영화처럼, 후자는 공포 영화처럼 촬영됐다. 이러한 영화적 장치는 관객을 영화에 한 발자국 다가서게 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게 한다.

아동 성폭행 장면의 재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시선이 있을 수 있겠다. 성폭행 장면은 아이들의 증언에 따라 재구성되는데, 정황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끔찍한 상상을 부른다. 여기엔 두 가지 대안이 있을 듯하다. 아예 재연을 하지 않은 채 증언으로만 처리하는 방법 혹은 반대로 모든 상황을 햇빛 아래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지옥에 빠뜨리는 방법. 대기업이 투자·제작한 상업영화 <도가니>는 그 중간의 길을 걷는다. 어느 길이 옳은지 정답을 제시하긴 힘들겠지만, <도가니>의 소재는 충분히 뜨겁기에 조금 더 차갑게 다루었어도 영화의 목적을 달성하기엔 충분했을 듯하다.

절대적 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