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비극의 탄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순수이성비판>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 고전의 오래된 정의다. 




21세기 한국의 베스트셀러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위)와 이마누엘 칸트. 무덤에서 소식 듣고 놀라실듯. 


전날까지 반값 또는 그 이하로 할인 판매된 책들이 21일부터는 정가를 회복했다. 신간, 구간, 실용서, 참고서 등 예외가 없다. 가격, 쿠폰, 마일리지를 합해도 할인율은 15% 이내로 제한됐다. 이제 서점은 태풍이 쓸고간 뒤처럼 조용하다. 모두들 숨죽인 채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향후 6개월 정도는 책 판매량이 뚝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할인 경쟁 속에 모두들 지쳐있었다. 작은 반칙은 큰 반칙을 불렀다. 모두 힘을 합해 자정했으면 좋았겠지만, 21세기의 혼탁한 시장에서 점잖은 선비님 말씀은 듣기 힘들었다. 이럴 때는 법, 제도 정비가 우선이다. 


도서정가제의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짚어야할 대목이 있다. 우선 도서정가제는 인터넷 서점과 할인 경쟁을 할 수 없었던 동네서점을 살릴까. 그렇지 않다. 십 수 년 전 인터넷 서점이 등장한 이래 동네서점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동네엔 동네서점이 없고, 있다 해도 학생 참고서를 판매할 뿐이다. 독자의 책 소비 패턴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 혹은 인터넷 서점으로 양분됐다. 동네서점을 이용하면 골목상권을 살리고 이웃도 도울 수 있겠지만, 소비자는 윤리가 아니라 편익을 따라 움직인다. 같은 가격이라도 독자는 수만 종의 책을 세련되게 진열한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나, 택배 기사가 책을 손에 쥐어주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이다. 이제 동네서점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엔 없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손님과의 스킨십, 주인의 독특한 취향 표출, 머물기 편안한 분위기 등 무엇이든 좋다. 


다음으로, 도서정가제는 ‘제2의 단통법’일까. 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분석 결과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 가격은 평균 220원 상승한다. 220원 더 쓰기 싫어서 사고 싶었던 책을 안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할인율이 컸던 구간이나 실용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겠지만, 지금까지 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책정했던 출판사들이 앞으로는 정가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책값이 낮아지면 책을 사서 읽을 것인가. ‘싼 맛에 책 읽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장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관찰해봤다. 같은 칸에 탄 40여명 중 신문 읽는 사람이 5명 정도,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거나 멍하니 있었다. 종이책 읽는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변하고 있다. 문명과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옛 습관을 회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흘러간 강물을 되돌리려는 시도와 같다. 책은 인류 지식문화의 보고다. 책에는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잔재주를 넘어, 문명의 전환에 대한 근본적 성찰, 구태를 일거에 무너뜨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출판인들은 그 길을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