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런트 이슈'에 해당되는 글 33건

  1.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2.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게 좋아
  3. 성룡과 블랙리스트
  4. 사이다는 없다
  5. 전인권과 지미 헨드릭스
  6. 대통령이 악당이라면?
  7. 지금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8. 디캐(카)프리오의 길
  9. 사회 없는 예술은 가능한가
  10. 가디언의 김영삼 오비추어리
  11. 조성진의 음악은 조성진의 것
  12. 세계의 문학과 대학가요제
  13. 불안과 호기심
  14. '우국'과 '인사이드 아웃'
  15. 왕좌의 게임과 메르스, 새로운 중세의 시작
  16. 창비와 박근혜, 훈계와 사과
  17. 요괴워치가 가르쳐준 것
  18. 유체이탈 화법에 대해
  19. 우석훈, "2017 대선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
  20. 어느 판사의 품격
  21. 모험은 무엇이든 좋다
  22. 아빠 김근태, 딸 김병민 (4)
  23. 도서정가제보다 중요한 것
  24. 마을은 뜨는데 주민은 떠난다, 젠트리피케이션
  25. 안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것, 부산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2)
  26. 보비 샌즈와 김영오
  27. 박근혜가 누구예요
  28. 박지성의 무릎 (2)
  29. 슬픔의 100가지 방식
  30. 함께 울어야 할 시간




아이가 'DOC와 춤을' 노래하는 것 듣고 쓴 칼럼. 그나저나 김대중 후보의 'DJ와 춤을' 뮤직비디오 찾아보다가 김종필, 박태준도 나와서 깜놀. 김대중이 집권하기 위해선 그 정도로 상상치 못할 '대연정'이 필요했던 것. 


언젠가부터 초등학생인 아이가 ‘DOC와 춤을’이란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십수년 전의 노래다. 어쩐 일인가 살펴보니 학교에서 이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한 모양이다. 1990년대 그룹인 DJ DOC의 경쾌하고 흥겨운 멜로디가 요즘 초등학생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무심코 노래를 듣다 가사를 깨닫고 멍해졌다. 몇 구절 인용해보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요요요.”


DOC와 춤을’이 나온 건 1997년 4월, 외환위기 이전이었다. 그때 한국은 번영의 약속을 믿는 나라였다. 경제만이 아니다. 군사정권의 권위주의는 물러나고,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었다. 많은 예술가와 활동가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표현의 자유가 조금 더 확보됐다.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이 데뷔했고, 서태지가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꿨다. 이 시대에 20대를 보낸 1970년대생, 이른바 ‘엑스세대’는 풍요로운 물질과 문화의 수혜자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남았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내놓은 ‘한국의 사회동향’을 보면, 1970년대생은 앞선 세대는 물론 1980년대 이후 세대보다도 진보적이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이 강했고, 외환위기를 초래한 기성세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들은 젓가락질 이상하다고 나무라는 옆집 아저씨에게 반박하는 세대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라고 상상하는 세대다.

“옆집 아저씨 반짝 대머리 옆 머리로 속알머리 감추려고 애써요. 억지로 빗어넘긴 머리 약한 모습이에요. 감추지 마요 빡빡 밀어 요요요.”

모든 권위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의 획일적 기준 같은 것, 서울 지하철 압구정역 성형광고판의 똑같은 얼굴 같은 것.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취재한 1994년도 방송 뉴스가 지난해 소셜미디어에서 별안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신촌, 강남 등지를 오가는 젊은이들은 미니스커트에 군화를 신거나, 모자를 거꾸로 쓰거나, 자동차 열쇠를 목에 걸고 다녔다. 어딘지 이상해 보이지만, 정작 이런 차림을 한 사람들은 즐거운 것 같다.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이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입고 싶은 대로 입어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답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인터뷰이의 말을 따서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라는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헬조선’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암울한 사회 속 주눅든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1990년대 사람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충격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는 대머리를 감추려고 애쓸 바에는 아예 삭발을 하는 것이 어떤가. “뒤통수가 안 예뻐도 빡빡 밀어요”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준 같은 것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DJ DOC의 노래에 녹아 있었다.

물론 DJ DOC가 노래한 세상은 1990년대에도 실현되지 않은 꿈이었지만 곧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올해 경향신문 ‘민주주의는 목소리다’ 기획팀은 다양한 세대·지역의 시민 1000명을 만났다. 이들에게 평소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지 물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질문할 때 눈치를 본다”, “윗사람이 나의 평소 생각과 다른 말을 할 경우 일단 내가 틀렸는지부터 살펴본다”는 답변이 60%를 상회했다. 지금 한국은 교수가 강의시간에 질문한 학생에게 “독해능력이 떨어진다”고, 디자인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말한 신입사원에게 “어려서 뭘 모른다”고 면박주는 사회다. 회식을 앞두고 ‘삼겹살 아니라 돈가스 먹고 싶다’고 속으로만 삼켜야 하는 사회다.

한 달 뒤면 새 대통령이 뽑힌다. 새 대통령은 새 세상을 열 수 있을까. 캐서린 문 미국 웰즐리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공권력 남용에 저항하는 공적 시위에는 능하지만 여전히 직장, 학교, 가정 등에서의 극단적인 위계를 통한 가혹 행위나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누구인가는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진 않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의 다양성이 주는 긴장을 즐기고,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민주주의에서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마음의 습관’이 없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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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기괴한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상을 받은 올해 아카데미가 '스포트라이트'와 '레버넌트'가 상 받은 지난해보단 재밌었던 것 같다. 



워런 비티가 더듬거리며 봉투를 만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티는 또 다른 쪽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봉투를 한 번 더 살펴봤는데, 그때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 순간 올해 80대가 된 비티의 총기를 염려했을 것이다.


지난주 아카데미 시상식은 89회 역사상 가장 황당한 촌극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직전 시상된 여우주연상(<라라랜드>의 에마 스톤) 봉투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라라랜드> 제작진이 감격에 겨운 수상소감을 말하는 사이, 무대 뒤에선 난리가 났다. 결국 수상작은 <문라이트>로 정정됐고, 두 영화 관계자들, 객석의 스타들,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당황스럽고 어색한 전개를 거치긴 했지만, 결말은 결국 해피엔딩이었다. 작품상을 놓친 <라라랜드>조차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를 거머쥐었다. 고수는 고수끼리 통한다. 발표 번복 이후 <라라랜드> 제작진의 반응은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수상소감을 마친 뒤 시상식 스태프로부터 발표가 잘못됐다는 말을 들은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위츠는 동료들을 진정시켰고 곧 <문라이트>가 수상작이라고 직접 정정했다. 호로위츠는 어리둥절한 <문라이트> 제작진에게 트로피를 건네주고 서둘러 무대를 내려갔다.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위로부터)



엇갈린 운명만큼 두 영화의 모양새는 다르다. <문라이트>는 근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가장 비주류적인 색채의 작품이었다. 세 명의 배우가 소년, 청소년, 성인 시절을 각각 연기한 주인공은 빈민이자 흑인이며 성소수자다. 마약중독자인 홀어머니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년은 자상한 마약상을 멘토로 삼아 학교와 거리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친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단돈’ 17억원.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최저 제작비이자, 아카데미 시상식에 삽입된 30초 광고 비용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문라이트>는 흑인 감독·작가 최초의 작품상,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상식 사회자 지미 키멜의 농담처럼, <라라랜드>는 “백인이 재즈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화려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꿈을 찾는 배우 지망생과 재즈 연주자의 사랑이야기다. 스타 배우 라이언 고슬링, 에마 스톤이 춤과 노래로 절정의 매력을 뽐낸다. 두 남녀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전망, 희미해지는 사랑의 감정에 지쳐가는 과정이 나오기도 하지만, <라라랜드>의 주된 정조는 결국 낭만과 긍정이다. 흑인 감독, 배우가 만든 <문라이트>가 현실의 질곡에 발 딛고 있다면, 백인 감독, 배우가 만든 <라라랜드>는 찬란한 꿈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영화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감독은 같은 세대와 경력의 영화인 무리에 속해 있다.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는 올해 38세로, 이번 작품을 포함해 2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은 32세이며, 3편의 장편 연출 경력이 있다. 지난해 최고의 미국영화를 만든 둘은 미국 내 시상식과 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마주쳤고, 서로의 작품을 관람했다.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젠킨스는 “<라라랜드>를 본 순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고 했고, 셔젤 역시 젠킨스의 데뷔작까지 챙겨본 팬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아름답다. <문라이트>는 마약과 가난에 찌든 흑인 빈민층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소년이 달빛에 물든 해변에서 하나뿐인 친구와 이야기할 때, 십수년이 흘러 근육질의 마약상이 된 소년이 친구의 조촐한 식당을 찾아와 그간의 회한을 털어놓을 때, 그 고요와 서정은 보는 이의 숨을 앗아간다. <라라랜드> 첫 장면,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운전자들이 갑자기 자동차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대목은 인간의 움직임과 이를 다듬는 연출력이 얼마나 큰 경탄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3월이 되었지만 아침 나절의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날은 춥고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생떼를 쓰고 독기를 품은 사람들이 곳곳에 도사렸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냐 묻는다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워야 한다고 답하겠다. 예술은 때로 정치적이지만 정치 그 자체일 수는 없으며, 때로 폭탄처럼 강력한 충격을 안기지만, 폭탄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정치가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사이, 예술은 과정의 완결성에 눈돌린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처절한 복수를 꿈꾸는 금자는 과한 장식으로 꾸며진 총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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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 담당이었던 본사 베이징 특파원의 칼럼에 영감 받아 씀. 


10년을 넘게 썼지만 ‘청룽’(成龍)이란 표기는 여전히 낯설다. 우리에게 청룽은 언제나 ‘성룡’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앞 세대인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속 청춘들은 비장한 리샤오룽의 시대에서 코믹한 청룽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성장했다. 아마 그 시대 청룽의 대표작은 <취권>이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무술 동작은 영화 속 적과 관객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내게 청룽의 대표작은 <폴리스 스토리>다. 이 영화에서 청룽은 마약왕을 잡으려는 홍콩 경찰이었다. 가끔 실수를 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무리한 수사도 벌이지만, 그래도 청룽은 좋은 경찰이었다. 악을 응징하겠다는 정의감, 약자를 돕겠다는 의협심,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승진이나 출세에 목을 매지 않으며, 강자에게 아부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국가라는 초거대 기구의 치안을 맡아 공인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지만, 그 시절 청룽에게서 ‘국가’의 위압감을 느끼긴 어려웠다. 청룽은 누가 봐도 나쁜 녀석을 혼내주는 듬직한 동네 형 같은 남자였다.

지난해 개봉작 <스킵 트레이스: 합동수사>에서도 청룽은 경찰이었다. 청룽은 언제나 그랬듯 100% 직접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올 때 다치고 넘어지고 대사가 꼬여 엔지가 난 장면을 모아 보여주는 팬서비스도 여전했다. 영화 속 청룽은 러시아 마피아에게 잡혀간 사기꾼을 구출해 홍콩으로 데려온다. 마피아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청룽은 고물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가로지른다. 청룽은 고비사막에선 모래언덕을 넘고, 황하에선 급류를 탄다. 내몽골 전사와 씨름 대결을 하고, 광시성의 소수민족 동족(동族) 여성과 춤을 춘다.

영화는 코믹하고 무해하지만, 결국엔 공허했다. 청룽이 60대에 이르러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킵 트레이스: 합동수사>는 마치 중국의 유명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듯한 영화였다. 특히 중국 소수민족 전통에 대한 묘사는 얄팍했다. 이 영화 속 소수민족은 관광 엽서처럼 박제된 전통을 전시하고 있었고, 청룽은 이들을 중국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청룽의 ‘친중국’ 행보는 유명하다. 올해도 청룽은 춘제(설) 전날 저녁 방송되는 유명 프로그램인 CCTV <춘완>에 출연했다. 전통의상을 입은 청룽은 소수민족 대학생 대표들과 함께 ‘국가’라는 노래를 불렀다. 무대 뒤 배경에는 오성홍기와 만리장성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누가 착한 애고 나쁜 앤지 아는 산타 할아버지처럼, 관객도 용하게 알아챈다. 청룽은 ‘국가대표 연예인’이 됐지만, 잃은 건 대중의 사랑이었다. <스킵 트레이스: 합동수사>의 국내 관객수는 2만2000여명. 한때 ‘명절엔 성룡’이란 극장가 법칙이 무색한 흥행성적이었다. <춘완> 역시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화제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무국적 예술가’는 없다. 국가가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예술가는 법적·도적적 의무가 있다. 예술가도 때로 국가와 협력한다. 이름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한 할리우드의 마스터 앨프리드 히치콕은 2차대전 당시 정부 지원으로 홍보 영화를 찍었다. 장이머우는 베이징 올림픽, 대니 보일은 런던 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아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탁월한 기예를 가진 예술가가 국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의 성장 기반이 된 공동체를 위해 재능을 펼친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술가가 국가 권위에 포박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가 예술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국가는 강하지만, 한 예술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소유할 만큼 강해서는 안된다. 가장 예민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를 쥐고 흔드는 정부는 그 어떤 시민도 통제할 수 있다. 예술에는 국가 아니라 그 어떤 강력한 권위에도 복속되지 않을 자율적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의 조건이다.

정부를 비판하고 국가 권위를 조롱하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국가는 직접 나서 작품을 단죄할 수 없다. 대통령을 쥐에 비유한 그래피티도, 누드화에 합성한 회화도 작품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별다른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그 비판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몫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국가가 직접 나서 예술가를 통제하려 한 사건이다. 돈에 꼬리표를 붙여 지원받은 예술가를 제 맘대로 부리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지원을 끊은 비열한 행태였다. 단지 돈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등 뒤에 시커먼 딱지를 붙여놓고, “저 사람을 괴롭히라”고 정부 조직 사람들을 윽박지른 사건이다. 그 돈이 대통령 돈인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어디 갔나. 이 정부가 내건 ‘문화융성’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예술을 뭘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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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도로'란 문패를 걸고 쓴 첫 칼럼. '우회도로'란 문화의 속성을 은유한다. 첫회부터 제목과 비슷한 소재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MBC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거나, 편향적인 보도와 인사에 항의하거나, 그도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이후 7년간 겪었던 일들을 다뤘다. 해직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두 달 후면 복직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1심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끈질기게 소송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복직된 이도 있지만, 몇몇은 끝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거대 언론사들은 기나긴 송사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해직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7년 세월 동안 언론사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다. 초기엔 해직 언론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던 여론도 조금씩 식어갔다. 심지어 해직 언론인들이 모두 복직된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잊혀진다는 건 힘들고 서글픈 일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파괴된다. 평소 온화한 가장이었던 조승호 YTN 기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한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용마 MBC 기자는 암과 싸우고 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조승호 기자는 무박 2일로 100㎞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박성제 MBC 기자는 취미였던 스피커 제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해결된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아닌 문제들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탄핵 정국은 저널리즘의 승리라는 분석이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대통령과 측근, 비선 인사들의 비리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단독’이란 말머리를 붙인 기사들이 각 언론사에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저널리즘에 대한 최근의 상찬이 “불편하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앞서 권력을 비판했던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되지 않았고, 이들을 거리로 내쫓은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아직 ‘사이다’는 돌아가지 않았다.




어지러운 판국일수록 쾌도난마의 언변, 일도양단의 해결책이 환호를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도 그런 정치인, 논객이 인기를 끈다. 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사이다’의 원조였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을 담아냈다. 당시 유세 장면을 보면 노무현은 근래 보기 드문 탁월한 대중연설가였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군중 앞에서도, 골목길의 소규모 유세에서도 그는 두루 강점을 보였다. 그의 말은 논리와 감정을 동시에 자극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담아냈다.

그런 노무현조차 집권 이후엔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혀 뜻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서거 5개월 전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와 가진 마지막 인터뷰가 최근 뒤늦게 공개됐다. 자신의 임기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그는 “(역사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확고한 비전과 추진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조차 개혁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영화다. 현실의 조희팔은 수조원의 피해액을 남긴 채 죽었지만(혹은 사라졌지만), 영화 속 진현필(이병헌)은 시원하게 응징당한다. 진현필의 정·관계 로비 장부를 입수한 강직한 경찰 김재명(강동원)은 대규모 수사팀을 이끌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한다. 개봉 이후 3주 만에 650만 관객이 이 속 시원한 엔딩에 박수를 보냈다. 현실이 <마스터> 같다면 좋겠지만, 실제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 가까울 것이다. 지루하고 지지부진하고 답답하다.

개혁이란 살림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 안 하기 시작하면 집안꼴이 엉망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지겨운 살림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제 지겨운 일을 꾸준히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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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주도 감동적일 수 있을까. 어떤 음악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인권의 공연은 11·19 촛불집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이날의 선곡이 매우 정교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첫 곡 ‘상록수’는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가사로 끝난다. 이어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에는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날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에 모인 100만 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였다. 

세번째 곡이 ‘애국가’였다. 그간 애국가는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부정하려 해도 애국가에는 보수가 강조하는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날 대담하게 애국가를 불렀다. 분노한 야수와 같은 특유의 창법으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애국가를 노래했다. 

전인권의 애국가는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시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툭하면 “그렇게 대한민국이 싫으면 북한으로 가라”고 윽박지르는 극우에 대한 반격이었다. 이 나라는 1% 정치·경제 권력자의 것이 아닌, 99% 시민의 나라임을 주장하는 노래였다. 이날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이 ‘애국’이고, 청와대 안에 숨은 사람들은 ‘매국’임을 말하고 있었다.
 


비슷한 일이 47년전 미국에서도 있었다.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었던 1969년 8월 18일. 젊은 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무대에 올랐다. 그가 연주한 곡은 미국의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였다. 술과 마약과 꽃을 가진 히피들 사이에서 듣기엔 낯선 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헨드릭스의 연주는 상궤를 벗어났다. 비교적 평범하게 시작한 연주는 헨드릭스 특유의 뒤틀리고 늘어지는 주법으로 이어졌다. 곡 중간쯤에 이르러서는 왜곡이 너무나 심해 원곡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원곡에 흡사하게 돌아왔다가 다시 왜곡된 소리를 들겨주길 반복했다. 보통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는데에는 2분 남짓 걸린다. 그러나 이날 연주는 그 2배인 4분 정도였다. 

베트남전이 한창이었다. 그에 맞선 반전운동, 흑인민권운동도 절정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국가 연주로 꼽히는 이날 헨드릭스의 퍼포먼스에서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의 비명과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읽었다.


이들의 국가 연주는 나라에 대한 맹목적 충성 맹세가 아니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나라에 대한 경고이자, 나라를 이루는 대다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였다. 1969년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2016년 전인권은 국가 연주의 새로운 방법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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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도 그렇지만 대통령이 악당인 영화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늘은 대담한 상상을 하고 싶다. 한국영화에서 대통령이 악당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의 풍경 속에서 경제권력의 정점인 재벌은 이미 강력한 악의 축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베테랑>은 그 대표적 사례다. <베테랑>에 등장하는 젊은 재벌 2세 조태오는 천하의 악당이다. 마약을 하고, 술자리에서 기괴한 풍경을 연출하고, 체불 임금을 달라는 노동자를 두드려 패게 하고, 살인을 사주하고, 범죄 증거를 인멸한다. 전국 1300만명의 관객이 정의로운 형사에게 응징당하는 젊은 재벌을 보며 환호했다. 

최근 개봉한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도 만악의 끝에는 재벌이 있다. 이른바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거대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인 ‘여사님’을 악당으로 등장시킨다. 우아한 자태의 여사님은 지역 사회를 위한 자선활동에 열심이지만, 속은 ‘없는 것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가득 차 있다. 여사님은 자신의 수족들에게 각종 범죄를 지시하고, 간혹 범행에 직접 가담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 '특별수사'


대중문화 속 재벌 이미지가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다. 한국의 주말 드라마 속 재벌은 부도덕하거나 비인간적일지언정, 극악한 범죄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악덕이라고는 재벌 2세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을 방해하거나, 그룹 경영권을 위해 형제끼리 모략을 꾸미는 정도였다. 때로 재벌 2세는 아버지의 기업에서 일했는데, ‘실장님’이라 불리곤 했던 그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현빈이 이탈리아산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은 백화점 사장으로 나온 드라마 <시크릿 가든>은 불과 5년 전 작품이다. 


2016년의 드라마에서 재벌 2세를 멋진 왕자처럼 묘사한다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의 시청률은 바닥을 길 것이다. 멜로드라마 속 연모의 대상이었던 재벌 2세가 어쩌다 범죄영화 속 악당으로 전락했을까. 단순하다. 대중이 이런 설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인 대통령에 대한 시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별별 이야기를 다 만드는 미국 사례부터 보자.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화씨 9/11>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유치원 수업을 참관한 채 아무 일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보여주며 조롱했다. <킹스맨>에선 버락 오바마를 연상시키는 미국 대통령이 괴짜 IT 거물의 대학살 계획에 동조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24>에는 공포 정치를 위해 테러를 묵인하는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많지 않다. 한국영화에서는 더욱 드물다. <그때 그 사람들>은 10·26 사건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렸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로부터 송사를 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대단한 악당이라기보다는 주책스러운 노인으로 그려졌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세 명의 대통령이 나오는데, 인간적인 결점은 있을지언정 역시 악당은 아니다. 

대통령을 악당으로 그리면 큰일이 나는 걸까. 아마 그런 영화가 나오면 ‘국격 훼손’ 운운하는 사람부터 있을 것 같다.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했을 때도 보수진영은 격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일 뿐이다. 국가 이미지의 유일한 체현도, ‘반인반신’도 아니다. 그래도 대통령을 못나게 그리면 국격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황우석 사건’을 취재한 <PD수첩> 제작진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그들은 ‘진실’과 ‘국익’ 중 전자를 택했다. 만일 ‘예술’과 ‘국격’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예술가가 있다면, 선택지는 분명하다. 관건은 두 가지다. 대통령이 악당인 영화에 수십억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영화를 관객이 박수치며 즐길 것인가. 요즘 같으면 후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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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때늦은 업데이트.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갈등이 봉합됐다. 영화계 내 일부 강경세력은 여전히 불만을 표한다. 이후 전개 양상을 두고볼 일이다. 


<다이빙벨>은 영화사에 남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거칠고 엉성하고 자기과시적이다. 영화의 목적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함인지, 큰 차원에서의 국가 개혁을 위함인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 감독의 말마따나 “어쭙잖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작은 <다이빙벨>이었다. 20년 역사를 지닌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 부산을 넘어선 한국문화계의 소중한 자산, 세계의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아시아 영화의 창구, 무엇보다 세계의 그 어느 영화제도 넘볼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가진 행사가 좌초 위기를 맞은 건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으려 한 때부터였다. 

정치인이자 관료인 서 시장으로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다이빙벨>은 참사 직후의 울분에 가득 찬 영화다. 합리적인 해결책이나 이성적인 대응방식은 찾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목마른 사람조차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이빙벨>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300여편의 영화 중 하나였을 뿐이다. 영화제에는 <다이빙벨>보다 더 큰 논란을 부를 만한 영화도, <다이빙벨>보다 못 만든 영화도 많다. 심의 당국이 인상을 찌푸릴 영화도, 무심코 입장권을 산 관객이 거세게 항의할 영화도 있다. <다이빙벨>은 그런 수많은 영화들 중 한 편이었고, 그렇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상영됐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골라 상영해왔던 영화제 집행위가 선택한 이상 조직위는 그 안목을 믿어야 했다. 심지어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을 요청했을 당시 서 시장은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이빙벨




서 시장은 영화제가 완전히 검증된 영화만 상영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합리적이고, 따뜻하고, 성숙한, 그래서 누구라도 만족시키는 영화만이 상영되길 원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예술은 종종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수만번의 헛발질을 한다. 목불인견의 작품이 대다수다. 그렇게 수많은 졸작 중에 단 한 편의 걸작이 불현듯 탄생한다. <다이빙벨> 이후 한국 영화인들은 여러 편의 세월호 관련 작품을 내놨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언젠가 세월호를 다룬 위대한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다이빙벨>은 그 초석이었을 뿐이다. 

부산시는 내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다이빙벨> 문제가 불거진 건 2014년이었고, 지난해엔 별 갈등 없이 영화제를 치렀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이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진 ‘탄압의 프레임’이 이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좌우했다. 예산, 조직, 인력 등을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제 간 갈등이 모두 이 프레임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압의 프레임’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서 시장 자신이었다. 

얼마전 부산시는 평소 접촉이 없던 서울 지역 영화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했다. 김규옥 경제부시장이 나와 그간의 사태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을 밝혔다. 김 부시장은 부산시와 영화제를 언론사의 발행인과 편집국의 관계에 비유했다. 발행인은 편집국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행정·예산의 측면에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부산시 역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되, 잘못된 행정·예산의 운용 관행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비유를 고스란히 이용하자면, <다이빙벨> 사태는 발행인이 편집국장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를 빼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그것도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한바탕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발행인이 기자들에게 사과하고 남을 사안이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은 <다이빙벨> 사태에 대해 사과는커녕 그 흔한 유감 표명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누굴 바보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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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는 디캐(카)프리오 덕분에 이런저런 쓸 거리가 많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례 없이 정치·사회 이슈가 넘쳤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촉발된 논란은 흑인 사회자의 아시아인 비하 농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성추행, 인종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역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 해야겠다. 디캐프리오는 22년의 기다림, 4번의 수상 실패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아카데미의 역사를 살피면 디캐프리오보다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알 파치노는 8번의 후보 지명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피터 오툴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8번 올랐으나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디캐프리오의 수상 혹은 수상 실패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그가 엄청난 스타이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는 타고난 듯 스타가 됐다. 19살에 찍은 <길버트 그레이프>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더니, 22살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전 세계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덤의 정점은 역시 <타이타닉>(1997)이었다.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작품으로 디캐프리오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근래 고생이 많았던 디캐프리오. <레버넌트>와 <블러드 다이아몬드>



“스타덤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타이타닉> 이후의 디캐프리오는 블록버스터 대신,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들과의 작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디 앨런,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스코세이지는 한때의 단짝 로버트 드니로 대신 디캐프리오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타고난 스타성과 배우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던 199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준다.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을 의식한 연기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디캐프리오는 개의치 않았다. 최고의 미녀들과 잇달아 연애를 즐기는 할리우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직접 제작했다.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22년간 준비하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배우들이 ‘디캐프리오의 길’을 걷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귀족적인 뱀파이어와 남성미 넘치는 늑대인간이 평범한 인간 소녀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5년만 지나도 잊혀질, 굳이 찾아볼 영화는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뱀파이어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 소녀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후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틴슨은 자본주의의 기괴함을 그린 <코스모폴리스>나 할리우드의 이면을 그린 <맵 투 더 스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스튜어트는 예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존재의 허무에 사로잡힌 대학원생을 연기한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등을 골랐다. 두 배우가 <트와일라잇> 이후 출연한 영화들의 관객을 모두 합해도 <트와일라잇> 한 편의 관객에 못 미칠 텐데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영화 매체의 속성상, 영화배우는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영화 자체의 논리에 복무하는 아티스트다. 두 역할을 균형있게 잘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20대 초반에 스타가 된 디캐프리오, 패틴슨, 스튜어트는 이후 스타덤을 뒤로하고 미지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이런 선택을 ‘허영’이라고 부르겠지만, 때론 그런 허영이 우리의 삶에 작은 품위를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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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고 칼럼 차례 바꿔달랄 수도 없고, 미리 써놓고 갈 수도 없고. 




때로 예술은 썩은 연못에 피어난 연꽃처럼 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예술의 감동은 삿된 세상에 찌든 영육을 고양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결한 연꽃조차 썩어들어가는 진흙 속에서 양분을 퍼올리고 있으니, 예술도 다를 바 없다. 예술은 속세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이를 모르는 예술가는 무지하거나 어리석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감독과 대표의 동반 사퇴를 불러온 서울시향 사태의 발단은 박현정 전 대표의 폭압적 경영방식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나왔다시피 박 전 대표는 “방만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았고, 박 전 대표 취임 2년 만에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 절반이 퇴사했다.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드러난 사실만으로 박 전 대표는 경영인으로서 실격이다.

박 전 대표가 분란만 일으키고 떠났다면, 정명훈 전 예술감독은 서울시향의 존재 가치를 고양시켰다. 그가 포디엄에 선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이 음악적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나 서울시향의 음악적 성과가 정 전 감독을 둘러싼 불투명한 예산 집행 의혹까지 가릴 수는 없다. 세계적 지휘자를 클래식 변방의 단체로 끌어오기 위해선 고액 연봉과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이상, 예산의 집행 방식은 투명해야 한다. 게다가 일정 수준에서 공공의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시립 예술단체의 리더는 음악 너머의 세상에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정 전 감독은 “난 음악밖에 모른다”고 뒷짐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음악 바깥 사회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 기울였어야 했다.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 사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쯔위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제작진이 준비해준 청천백일기를 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는 일각에서 대만의 분리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징이다.

물론 데뷔한 지 4개월 된 16세의 쯔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말, 행동, 표정, 옷차림까지 기획사, 제작진의 주도로 연출된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책임은 청천백일기가 내포한 의미를 모른 채 쯔위에게 들게 한 MBC, 초췌한 모습의 쯔위를 카메라 앞에 세워 중국팬을 향해 과도한 사과문을 읽게 한 기획사 JYP에 있다. 특히 JYP의 박진영 대표는 “쯔위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반성했다, (…)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1차적인 잘못은 쯔위에게 돌린 뒤, 자신과 회사는 그를 통제하지 못한 2차적이고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 대신’이라는 어른으로도, 대형 연예기획사의 대표로도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 마에 사진보다는 쯔위 사진이 짤방으로 낫겠지. 


더 놀라운 건 중국 시장을 대상으로 활동하겠다는 연예사업가들이 중국 문화와 정서에 거의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중을 상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정서를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의 본령은 춤, 노래, 연기 등 예능에 대한 소질이겠지만, 아무리 빼어난 예능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시장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기도 얻을 수 없다.

지휘자에게 사회의 공기가 돼 달란 말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이 아시아 역사를 숙지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일은 모른 채 마음껏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조금 바꿔보자. 예술 없는 사회는 공허하고, 사회 없는 예술은 맹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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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랜만에 가디언 오비추어리에 한국인이 올라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가디언 오비추어리는 냉정하고 정확하기로 정평났다. 오랜만에 모르는거 건너뛰면서 대충 번역해봤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시류에 휩쓸린거 같다. 원문은 여기. 



대담한 양 김씨(이 성은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다)는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남한을 지배한 군부 독재자에 맞선 투쟁에 앞장섰다. 더 유명한 김대중은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의 첫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연 뒤인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을 건국한 독재자 김일성이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그 상은 87세로 사망한 김영삼에게 돌아갔을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칭하는바를 따르자면, YS는 DJ같은 국제적 유명세는 없었지만 1993년 대통령에 선출됐다. 두 김씨가 협력했다면, 그들이 용감히 쟁취하려했던 민주주의는 좀 더 빨리 다가왔을 것이다. 둘은 DJ가 병상에 있던 2009년에야 화해했다. 


김영삼은 부유한 어부 김홍조와 그의 아내 박부련의 사이에서 6남매의 맏이로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졸업 직후 정계에 투신했다. 그는 1954년 2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이는 최연소 기록이었다.그는 9번이나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급진적이진 않았지만 확고한 자세로 민주주의에 투신한 그는 이승만(1960년까지 재임), 박정희(1961~79), 전두환(1980~88) 등 세 대통령의 독재적 움직임에 단호히 대항했다. 이들 중 둘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1960년 무장공비가 김영삼의 모친을 살해했다. 누구도 김대중에게 한 것처럼, 김영삼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었다. 김대중의 지역적 기반은 정치적으로 소외된 남서부의 전라도였고, 김영삼은 정치군인들의 고향이기도 한 부유하고 인구 많은 경상도 출생이다. 이들은 호적수가 됐다. 1979년 박정희는 김영삼이 가발공장에서 해고된 후 경찰에게 구타당한 노동자들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했다. 폭동이 일어났고, 권력집단 내부에서도 경고음이 울렸다. 박정희의 정보부장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박정희를 쏘아 죽였다. 또다른 쿠데타가 일어나 전두환이 권력을 잡았다. 1983년, 김영삼은 26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면서 격렬히 저항했고, 끝내 강제 급식을 당하기도 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26일 김수환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마친 뒤 분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전두환은 1987년 타월을 던졌다. 하지만 양 김씨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둘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이, 승리는 전두환의 동료이자 장군에서 민주주의자로 변신한 노태우에게 돌아갔다. 1990년 김영삼은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며 노태우의 집단에 합류했고, 이로서 보수층과 경상도의 표를 모아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의 5년 재임기는 복합적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벌이라 불리는 가족 경영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검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된 뒤 쿠데타에 대한 처벌까지 받았다. 그들이 수의를 입은 채 풀죽은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줬다. 또 김영삼은 의심스러운 장교들의 모임을 해체시켰고, 이로 인해 남한은 군인들이 자연스럽게 막사로 돌아가 군부 독재 이후 아시아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가 됐다. 더 이상의 쿠데타는 불가능했다. 


변경의 1994년은 중요한 한해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이 이는 가운데, 빌 클린턴은 영변 원전 지역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꺼내들었다. 김영삼은 자서전에서 클린턴을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지미 카터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 뒤 위기는 사라졌다. 마침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고, 김영삼은 군대에 최고 경계령을 내렸다. 비판자들은 김영삼이 조의를 표하거나 장례식에 참석했다면 남북 관계는 후진이 아니라 전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영삼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였다. 그는 1993년 가명으로 된 은행계좌를 금지하는 극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이런 계좌는 검은돈을 가능케한 주원인이었다.1996년 OECD 가입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다만 '요새 한국'은 부자 나라들의 클럽은 특권 뿐 아니라 시장 개방과 같은 의무도 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1년 뒤, 김영삼은 아시아 금융 위기가 깊어감에 따라 몰려오는 빚더미와 위기 국면을 막기는커녕 이해하지도 못했다. 결국 1997년 12월 당시까지 IMF 최대의 구제금융으로 인해 간신히 국가 부도를 면하는 상황을 맞았다. 같은 달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김대중은 과격한 구조조정으로 뒷수습을 해야했다.


김영삼의 또다른 오명은 그의 아들중 하나가 뇌물수수죄로 교도소에 갔다는 점이다. 나중에 김대중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로널드 레이건처럼, 양 김씨의 회색 머리는 집권 이후엔 눈에 띠게 검어졌다. 한국의 코미디언들은 대통령직에 회춘의 힘이 있다고 언급했다. 


퇴임 이후 김영삼은 별 관심을 받지 못했고, 건강도 나빴다. 유족으로는 1951년 결혼한 아내 손명순과 다섯 명의 자녀, 5명의 여동생이 있다. 


정치인 김영삼, 1927년 12월 20일 태어나 2015년 11월 22일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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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집에 와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음반을 들었다. 전주곡이 좋았고, 소나타는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칼럼을 썼다. 




조성진의 제17회 쇼팽 피아노콩쿠르 우승 실황 음반을 들었다. 24곡의 전주곡을 차례로 연주한 뒤 녹턴, 소나타, 폴로네즈 등을 조금씩 들려줬다. 콩쿠르는 세계의 젊은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짧은 시간에 실력을 뽐내는 대회다. 대회 특성상 열정적이고 다소 과시적인 연주가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다. 예상과 달랐다. 순진한 표정의 21세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차갑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줬다. 


조성진의 연주는 차분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초도 발매된 음반 5만장은 1주일 만에 매진됐다. 발매 당일에는 새벽부터 음반 매장에 줄을 선 이들도 있었다. 통상 클래식 음반은 많이 팔려봐야 2000~3000장이지만, 음반사는 조성진 음반의 판매량을 10만장까지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어떤 신문은 한창 뜨거웠던 국정 교과서 공방을 제쳐두고 우승 소식을 1면 톱기사로 전했다. 콩쿠르 우승을 올림픽 금메달에 견주기도 했다. KBS는 조성진의 우승자 갈라 콘서트와 본선 연주를 이틀에 걸쳐 방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전을 보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특별상을 수여했다. 1974년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한 뒤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인 것에 비견되는 열기다. 





조성진 열풍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부조니 콩쿠르 우승 때의 차분했던 분위기와 비교된다. 둘 다 올해의 일이고, 한국인 최초였다. 특히 조성진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문지영은 올해 부조니와 쇼팽 콩쿠르를 모두 준비하다가 부조니에서 우승한 뒤 쇼팽을 포기했다. 부조니의 권위가 쇼팽 못지않다는 뜻이다.


2000년 제14회 쇼팽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윤디 리는 지난달 내한공연 중 대형 사고를 쳤다.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다가 박자를 놓치는 등 실수를 연발한 끝에 연주를 일시 중단한 것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윤디 리에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수천번 쳐봤을 레퍼토리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다. 윤디 리는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그날 밤 핼러윈 분장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번 쇼팽 콩쿠르 심사 중에는 며칠간 자리를 비운 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친구 연예인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랑랑과 함께 중국의 슈퍼스타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가 쇼팽 콩쿠르 우승 15년 만에 실력과 정신력 면에서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15년 뒤의 조성진은 어떨까. 물론 예술가가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바흐와 모차르트는 종교의 광휘, 귀족의 희열을 위해 곡을 썼다. 자유분방한 시민 작곡가로 여겨지는 베토벤도 사교계 귀족의 후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오늘날의 클래식 음악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많은 연주자들이 현대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인)의 후원에 기대 음악 활동을 펼친다. 언론의 조명, 대중의 반짝이는 눈빛은 덤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궁극적으로는 혼자다. 내면의 심연에 침잠한 뒤에야 사회와 연결된 길을 찾을 수 있다. 조성진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유명인이 되기보단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난 그가 자신의 말을 지켰으면 한다. 조성진이 국가의 영광을 위해 피아노치지 않길 바란다. 대중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길 바란다. 


조성진의 음악은 조성진의 것이다. 피아노 연주는 손가락 훈련을 넘은 마음의 도야이기에, 그 자신만을 위한 오롯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성진을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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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쓰는 칼럼은 날짜를 선택할 수 없기에 더 힘들다. 언론 속성상 '시의성'이란 것이 중요한데,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쓸 날짜가 아니고 쓸 날짜가 다가오면 이렇다할 소재가 없게 마련이다. 이번 칼럼의 소재도 '고종석의 엠마 왓슨 편지 사태'로 시작해 '김훈의 라면 냄비 사은품 사태'로 넘어갔다가 결국 가장 최신의 사건인 '세계의 문학 발행 중단 사태'를 썼다. 




모든 오래된 것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남긴다. 추억에 취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이 시대의 특징이다.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이 2015년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을 중단한다. 이 잡지를 발행해온 민음사는 ‘폐간’이란 말을 쓰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폐간한 모든 잡지는 일단 ‘발행 중단’한다. 


수많은 잡지들이 발간과 폐간을 반복했지만, ‘세계의 문학’의 발행 중단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잡지의 역사가 40년에 이르는 데다가, 굴지의 출판사인 민음사의 대표 문예지이기 때문이다. 김우창, 유종호 등 명망있는 평론가들이 초대 편집위원을 맡았고,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등의 개념이 이 잡지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세계의 문학’이 수행해온 역할을 생각하면 ‘문학의 죽음’을 언급하며 탄식을 쏟아야 할 듯하다. 하지만 최근 ‘세계의 문학’은 사정이 심각했다. 매번 1500부씩을 찍었지만, 정기구독자수는 30~100명 수준이었다. 문예지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발간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식사회 내 영향력이 컸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의 문학’에 실린 글을 언급하는 이는 적었다. 지난 여름호에선 ‘극혐의 시대’ 같이 재기발랄한 기획을 하기는 했지만, 배는 이미 침몰중이었다. 문학평론가 이강진씨는 “늘 그렇듯이 ‘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내용에는 언제나 과도한 비장함이 감도는 수사로 채워져 있다”며 “대형출판사의 자본을 얻은 잡지조차 콘텐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옛 명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 문학’ 발행 중단이 “뻔히 예견됐던 결과”라고 평했다. 





대학가요제 역시 ‘세계의 문학’과 같이 소중한 역할을 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선취하지 못한 채 폐지된 사례다. 1977년 처음 개최된 대학가요제는 창의적인 대중음악의 창구로 오랜 시간 각광받아왔다. 대학가요제의 전성기는 대학생이 가정과 사회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일정 수준의 지적·문화적 자율성을 누리던 시기와 맞물린다. 참가 대학생들은 기성 프로 음악인들의 매끈하지만 양식화된 음악과는 다른 참신한 음악을 선보여 청중의 귀를 자극했다. 고 신해철(무한궤도), 김동률(전람회) 등은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인재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학가요제 참가자들의 음악은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들어주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청률도 바닥이었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음악도, 배출한 음악인도 없었다. 오히려 참가자보다 초대가수가 주목받는 민망한 상황이 10여년 지속됐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짐에 따라 ‘대학’이라는 간판에 특권을 부여하는 대학가요제라는 형식 역시 구시대적인 느낌이었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이 페지를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대학가요제는 2012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대학가요제가 없어도 대중음악은 멀쩡하다. 음악에 관심있는 이라면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사, 여의치 않다면 홍익대 앞 인디신을 통해 음악을 시작할 수 있다. 오히려 대학가요제라는 낡은 형식의 대회는 경력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문학’은 없지만, 또다른 형식의 문예지들이 나타났다. ‘악스트’는 기존 문예지가 지향했던 거대 담론 대신 소설과 소설평에 집중했다. 2900원이라는 가격, 패션지를 연상케하는 작가 사진도 파격이다. ‘미스테리아’는 기존 문단이 외면했던 미스터리 장르를 다뤘다. 문단이 아닌 독자를 먼저 보는 잡지다. 반대로 ‘쓺’은 독자에게 외면당하더라도 진지하게 삶과 세계를 탐구하는 예술로서의 문학을 다룬다. 시대에 역행함으로써 시대를 앞서는 전략이다.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려난다. 추억에 빠져 있는 시간은 하루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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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썼다. '불안과 호기심'이라고 붙여준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느 꿉꿉했던 날의 일이다. 한밤에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는데 아파트 아랫집 주민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랫집 다용도실 쪽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했다. 당장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세탁기의 전원을 꺼야했다.


한창 하던 빨래가 문제였다. 세탁기가 ‘헹굼’ 상태였기에 빨래는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빨래를 꺼내 욕실로 옮긴 뒤 일일이 헹궜다. 다 헹군 다음엔 있는 힘을 다해 빨래를 짜 건조대에 널었다. 다 짜고 보니 손바닥이 까져 있었다. 탈수기를 썼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물기를 짜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집안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쉰내가 가득차 있었다. 덜 마른 빨래가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그렇게나 힘들여 빨래를 짰는데도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엔 그보다 더한 더위, 습도를 기록한 날도 많았지만, 그날만큼 지독하게 빨래 냄새가 난 적은 없었다. 세탁기로 탈수한 빨래들은 섬유유연제 향기를 살짝 풍기며 뽀송하게 말라있곤 했다. 손으로 짠 빨래는 어림 없었다. 천하장사가 와서 빨래를 짠다 해도, 한국의 여름 습기를 이길 방법은 없어 보였다.


새삼 세탁기의 위력을 느꼈다. 따져보면 여름뿐만이 아니다. 한겨울에 살얼음을 깨고 냇가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해야했던 선조들은 더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세탁기는 빨래라는 중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고마운 기계다. 현대의 가정엔 그렇게 훌륭한 기계들이 많다. 냉장고 없이 밑반찬을 보관하는 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전기 매트 없이 보내는 겨울밤이 얼마나 추울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의지하는 기계의 종류가 갈수록 많아지고 기능이 세밀해진다는 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제는 냉장고로 충분하지 않아 김치냉장고 정도는 따로 들여놓는 집이 많다. 전기 매트에서는 전자파가 나올 것 같아 온수 매트를 다시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겨울에 가습기를 쓰는 일에는 일찌감치 익숙했으나, 이젠 여름에 제습기도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기계는 스마트폰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대의 삶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버스 시간은 어떻게 알고 정류장에 나갈까. 무지갯빛 케이크 사진은 무엇으로 찍을까. 처음 가본 동네에서 길은 어떻게 찾을까.


오랜 논란 끝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는다고 한다. 반대자들은 케이블카가 이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조금 다른 관점으로 케이블카를 바라보고 싶다. 케이블카가 놓일 오색약수터 부근과 끝청봉 부근의 3.5㎞ 구간은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험해 등산인들이 즐겨찾는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면 등산인들이 땀을 훔치며 오를 정도로 험한 구간을 딱딱한 구두 신고도 갈 수 있다. 케이블카에 올라 내려다보는 설악산 풍경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적 쾌감을 전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케이블카가 놓인다니 그 풍경이 궁금하긴 하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계획도


광폭한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면서 ‘개발’은 어딘지 나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됐다. 하지만 무정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모두 개발이었다. 그렇다면 설악산 케이블카는 개발일까, 난개발일까.


개발은 끝이 없고, 테크놀로지는 영원히 발전한다. 그것은 마치 질주하는 대형견같다. 목줄을 쥔 주인이 끌려가는지 끌고가는지 알 수가 없다. 달리던 개가 멈춘 뒤 주인이 정신을 차릴 그곳은 어디일까. 무당처럼 신기가 넘쳤던 예술가들은 종종 테크놀로지가 극도로 발전한 미래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그려내곤 했다. 테크놀로지가 안내할 세상에 대해 막연한 불안과 작은 호기심이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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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최근 접한 소설, 영화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한 차례 지나감. 



싫지만 재밌는 작품이 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 작품 ‘우국’이 그렇다. ‘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1961년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절반은 섹스 묘사고 나머지 절반은 죽음 묘사인데,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심오한 소재를 솜씨 있게 다룬다면 작품에 대한 호오와 상관 없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결과로 태어나고 또 언젠가 죽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듯 혹은 영원히 죽지 않을 듯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소설가는 그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36년 2월26일 천황 중심의 강력한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우국’의 배경이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동료들의 쿠데타에 끼지 못한 다케야마 중위는 다음날이면 동료들을 진압하러 나가야 한다. 친구들을 쏠 수 없다고 생각한 다케야마는 죽음을 다짐한다. 젊은 아내 레이코 역시 남편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미시마 유키오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아베하고 한 통속이었다면 작가로서의 아우라 따위는 없는 볼썽스러운 꼴이었을듯. 


부부는 죽음을 결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동침한다. 미시마는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남녀의 섹스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중위의 눈이 본 그대로를 입술이 충실히 다시 그렸다” 같은 문장에는 탄식이 나온다. 젊은 신혼부부의 정사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던 이유는 곧이어 다가올 죽음 때문이다. 중위는 군복 상의의 단추를 푼 뒤 날카로운 칼 위로 잘 단련된 상체를 엎는다. 내장이 바깥으로 쏟아지며 내는 비린내와 날카로운 칼이 피부를 가르며 유발하는 찌릿한 고통이 글자 너머로 전해진다. 부부의 건강한 쾌락과 피·고통·죽음의 축제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서로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궁극의 파멸로 향하는 이같은 대비는 매력적일지언정 건강하지 않다. 


성인 관객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전체관람가 영화인 <인사이드 아웃>을 잔인하고 에로틱한 ‘우국’과 비교하는건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역시 정반대 속성을 가진 것들이 어울릴 때 내는 삶의 효과를 보여준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감정이 의인화된 형태로 등장한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의 감정은 머릿 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사춘기에 접어들기 직전의 소녀 라일리를 움직인다. 다섯 감정 중에서도 주인공은 기쁨이다. 라일리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기쁨은 라일리가 지나온 유년기의 많은 시간동안 본부의 움직임을 주도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딸 라일리는 대체로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나날들 속에 성장한다. 


나머지 감정들도 역할이 있다. 예를 들어 소심은 라일리가 전깃줄 너머로 세차게 달려나가려는 순간 버튼을 누름으로써, 라일리가 속력을 줄이고 넘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기쁨은 의문을 품는다. “슬픔은 무슨 일을 하지?” 손대는 기억 구슬마다 우울한 푸른색으로 변하게 하는 슬픔을 나머지 감정들은 경계한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영화는 우리의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모두 필요하다는 결말로 향한다. 슬픔은 몸과 마음을 물에 젖은 솜처럼 처지게 하지만, 그러한 영육의 상태를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감정의 공동체를 이룬다. “결혼식엔 안가도 장례식엔 가라”는 말이 있다. 기쁨을 나눌 때보단 슬픔을 나눌 때 더 큰 힘이 된다는 경험을 함축한 말일 것이다. 


‘우국’의 섹스와 죽음은 서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생을 찢어놓고,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과 슬픔은 서로 어울리며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같은 궤도를 반복해 돌지만, 때로 양극의 경험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마음의 탄력성을 발휘해 극단의 체험을 극복하고 통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인간이 될 것이다. 무더위 뒤 찾아온 한줄기 서늘한 바람에 지복을 느끼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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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쓸 차례가 다가오는 칼럼의 문제점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데 있다. 시의성을 중시하는 언론 속성 상, 쓰고 싶은 이슈가 있으면 내 차례가 아니고 내 차례가 오면 쓸만한 이슈가 지나간 상태일 때가 많다. 그래서 칼럼을 쓸 시기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는 일정 수준 운에 달려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다섯 번째 시즌이 종영한 <왕좌의 게임>과 메르스를 엮어보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중이었는데, 마감 직전 신경숙 표절건이 터져서 조금 고민했다.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받겠지만, 차분하게 세계관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데 좀 더 끌리는 편이라 원안을 고수했다.  


덧) 그리고 지면에서의 제목은 '중세로 돌아간 한국'으로 돼 있는데, 내 생각은 '세계는 언제나 중세'에 가깝다. 이 글에서 메르스 사태를 초래한 누군가를 비판할 의도는 없으며(그런 건 다른 분들이 다들 잘 하신다), 그저 우리의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삶의 조건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면 고통과 우울이 동반된다. 얼마전 종영한 다섯 번째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사이, 시청자들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비감한 첼로 선율로 편곡된 타이틀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수선한 마음은 내년 여섯 번째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이어질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선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다. 믿음직한 아버지가 죽고, 무고한 소녀가 죽는다. 불굴의 장군이 죽고, 탁월한 지도자가 죽는다. 물론 시청자들이 바라는대로 악당도 죽는다. 그러나 악당이 죽을 때조차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하다. 한밤중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아들이 쏜 석궁에 맞아 죽는다면, 그런 죽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다. 


여름 극장가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죽음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죽는다 해도 단역, 조연, 악당이다. 간혹 주인공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때는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식의 메시지를 덧붙여 관객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 어느 때에도 아이들이 죽지 않는다는 건 불문율에 가깝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아이들도 명분 없이 죽어나간다. 북쪽에서 온 좀비들에게 물어뜯기거나, 포악한 군인의 칼에 죽는다. 심지어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한다. 


가상의 대륙에 자리한 7개 국가를 배경으로 한 <왕좌의 게임>은 용과 마법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판타지지만, 인물들의 복식, 행동양식, 세계관 등은 서양의 중세에서 따왔다. 원작자 조지 R R 마틴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내 책이 역사에 근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와 낭만적 사랑을 나누는 ‘디즈니랜드식 중세’는 없다. 



"존 스노우, 넌 아무 것도 몰라"


중세는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무척이나 집착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호이징가는 저서 <중세의 가을>에서 그 풍경을 묘사한다. 당시 <귀족들의 생활 방식>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침대에 누울 때는 늘 이것을 생각하라. 잠자리에 들듯이, 그대는 곧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덤에 들게 될 것이다.” 수도원은 창자가 벌레들에게 뜯어먹히는 여성들의 그림으로 장식됐다. 


반면 현대는 평평하다. 역병이 퍼지거나, 메뚜기떼가 창궐하거나, 마녀사냥이 벌어지거나, 귀족들의 자존심 싸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다. 조금 아프더라도 최신 의료 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에 가면 노련한 의사들이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인터넷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정보와 여론이 있는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소통 수단을 가졌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축복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예측가능하고 안전한 궤도를 지난다고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메르스 이후’다. 정부와 의료계는 메르스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만 위험하고, 병원 안에서만 감염된다고 했다. 그런 줄 알고 안심했다. 그런데 공식 발표를 의심케하는 일들이 자꾸 벌어졌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당당히 임했던 젊은 의사가 며칠 사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병원 바깥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들이 자꾸 나왔다. 1차 감염자, 2차 감염자, 3차 감염자에 이어 4차 감염자까지 나왔다. “이번 주말이 고비”라는 말이 몇 주 째다. 정말 메르스가 병원 바깥에서도 감염된다면, 감염을 막을 길은 없다고 봐야한다. 중세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목숨은 운에 맡겨야 한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쓰여진 문구를 패러디하면 이렇다. “죽음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의 경구를 차용하면 ‘메멘토 모리’다. 이렇게 우리는 중세로 돌아왔다. 아니 우리는 언제나 극단적이고 잔혹한 중세적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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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출판사 창비는 한국 사회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둘의 행동양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서로에게 모욕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둘은 비슷하니까. 


둘은 모두 사과해야 할 때 훈계한다. 사과의 정도에 따라 죄를 더 캐물을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되려 들려오는 훈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메르스가 한참 퍼져 통제가 어려워진 뒤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고 부산했다. 동대문 시장 상인, 초등학생, 의사를 만나 연출된 것이 티나는 사진을 찍었다. '메르스 어떻게 하냐'는 질문엔 "손 깨끗이 씻으라"고 답했다.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사과를 받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잘한 것은 없지만, 민간 병원장이 대통령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지금 대통령은 "짐은 곧 국가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국민을 대표해 메르스에 대처하지 못한 병원의 대표에게 사과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통령이 끝내 하지 않은 사과는 취임한 지 이틀된 국무총리가 대신 했다. 국무총리가 사과했다면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일텐데,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건 그렇게 힘든 걸까. 대통령은 '무오류'의 존재이기에, 계도하고 계몽할지언정 사과를 할만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를 둘러싸고 창비가 '문학편집부' 이름으로 낸 입장은 가관이었다. 표절을 표절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면, 작가의 입장을 건조하게 전하거나, 침묵하거나, 더 논의한 뒤에 입장을 밝히겠다며 시간을 벌었으면 영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창비는 박근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사과해야할 때 훈계했다. 창비 문학편집부는 신경숙과 그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 세계를 비교하는 '오버'를 떨었다. 아마 '내가 말하면 옳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창비는 두 작품의 내용과 문제가 된 문장들의 맥락을 언급한 뒤,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같은 난해한 용어로 독자를 혼란시켰고, 결국 "어디 일본의 극우작가를 우리 신경숙 선생과 비교하려 드느냐"고 훈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훈계를 순순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사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커졌다. 창비는 다음날 '내부 조율' 없이 나간 입장에 유감을 표하고,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일견 타당하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냈다. 아마 여론의 역풍에 깜짝 놀라 서둘러 수습하려 한 것 같다. 그래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보다 낫다'고 단언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입장문이 내부 조율 없이 나왔다는 걸까. 지금까지도 한국 지성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 대형 출판사는 일개 부서장이 대표나 발행인의 승락도 없이 공식 입장을 발표해도 되는 '자율적'인 조직이라는 걸까. 내가 '문학편집부' 소속의 사람이었다면, 이 조직의 생리에 큰 슬픔을 느꼈을 것 같다. 


이념적 성향이 문제가 아니다. 태도가 문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와 창비의 경우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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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뻥튀기해 칼럼으로 재활용.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인기 있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그걸 운이나 마케팅이나 알 수 없는 유행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나태하다.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해 완구업계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이날을 위해 대량 생산체제를 가동시켰다가 악성재고로 남는 장난감이 있는가 하면, 부모들이 마트 개장 시간에 맞춰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장난감도 있다. 어린이들은 또래 집단의 취향에 민감하고 싫증을 잘 내기에, 장난감도 유행이 빠르다.

몇 년 전에는 덴마크 블록회사 레고의 ‘닌자고’ 시리즈가 파천황의 인기를 누리더니, 국산 애니메이션인 자동차 변신 로봇 ‘또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겨울왕국>의 엘사와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의 공룡 로봇들이 여아와 남아의 시선을 각각 사로잡았다. 

올해는 ‘요괴워치’가 독주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애니메이션이 방영돼 인기를 끌었고, 장난감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현지에선 다마고치 이후 최고의 히트 장난감이라는 평까지 나왔다고 한다. 

<요괴워치>의 내용은 이렇다. 평범한 초등학생 민호는 어느 여름날 수다스러운 요괴 ‘위스퍼’를 만난다. 위스퍼는 민호에게 요괴워치를 건네고, 민호는 이 요괴워치를 통해 세상 속의 요괴를 본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은 모두 요괴의 장난이었으니, 민호는 요괴를 설득하거나 다른 요괴와 대결시켜 사태를 바로잡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민호와 친구가 된 요괴는 자신을 상징하는 메달을 주고 사라진다. 이 메달을 요괴워치에 넣으면 언제라도 그 요괴를 소환할 수 있다. 

‘이상한 일’의 범주는 장난스러운 것에서부터 다소 심각한 것까지 다양하다.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는 자꾸만 음식을 집어먹는데, 이는 요괴 ‘자꾸손’이 꾸민 일이다. 민호는 자기 바로 앞에서 먹고 싶던 멜론빵이 다 팔리거나 막 먹으려던 아이스크림이 난데없이 땅에 떨어지는 불운을 잇달아 겪는다. 이는 무엇이든 실패하게 만드는 ‘슬피우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틀어박쥐’는 현대인이 특히 경계해야 하는 요괴다. 틀어박쥐에 빙의되면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 방에 틀어박힌다. 





위로부터 집사를 자처하는 수다스러운 위스퍼, 불운을 부르는 슬피우새(물론 자신도 불운해 침울한 표정이다), 버블경제기의 욕망이 탄생시킨 막써조개. 




계획대로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으며, 인간의 의지란 것도 그다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그렇게 여겼다. 미국의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는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이런 고대 그리스인들의 태도를 칭송한다. <오디세이아>의 페넬로페는 전쟁에 나가 생사조차 불분명한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운다. 그때 아테네는 그녀의 눈꺼풀 위로 달콤한 잠을 내려준다. 신이 인간에게 잠을 허락한다고 믿는 현대인은 많지 않겠지만, 호메로스의 인간관에는 주목할 만하다. 호메로스는 인간이 “자기 실존의 핵심을 통제하기에 불충분한 존재”라고 여겼다. 

니체의 선언처럼, 근대 세계는 신을 죽였다. 세상의 이면을 가정하지 않았고, 인간을 자기 행동의 온전한 주인으로 여겼다. 그 결과 근대 이후의 인간은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짐을 홀로 짊어져야 했다. 선택의 자유는 현대의 삶이 선사한 기쁨이겠으나, 문제는 선택에 확실한 동기가 없다는 점이다. 아메리카노인지 카페라테인지,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얼 해도 상관없고 어떤 일도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 현대인은 너무나 자유롭기에 불행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스스로를 의미의 생산자로 보지 말고, 세상이 던져주는 의미의 발견자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내 뜻대로 이루어진 일들은 얼마나 됐을지 생각한다. 늦은 밤 라면을 끓인 건 ‘공복영감’ 때문일까, 여름 티셔츠를 서둘러 장만한 건 ‘막써조개’ 때문일까. 하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인간은 약하고 늘 흔들린다. 그 사실을 인정한 뒤에야 작은 의지가 생기고, 타인을 이해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요괴워치>의 의뭉스러운 세계관을 슬쩍 껴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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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옛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배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동료 출연자들은 놀리듯 웃는다. 제작진은 그 영화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전설의 영화’라고 조롱한다.


혹자는 이런 말에서 ‘예능감’을 느낀다지만, 이런 행동은 차라리 ‘무례’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 웃음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 영화의 관계자들이 봤다면 인상을 펴지 못했을 듯하다.


영화는 대규모 공동작업의 결과다. 수십~수백 명의 주·조연,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고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스태프도 그만큼 많다. 투자자, 기획자, 배급관계자, 극장주, 마케터들도 영화의 성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다.


그런데 딴 사람도 아니라 영화의 간판인 주연 배우가 텔레비전에 나와 해당 영화를 폄하한다. 실제 영화의 작업 과정이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애초에 출연을 원치 않았으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주연을 맡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작비만 수십 억원에 이르는 상업영화의 주연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화를 내야 하는 이들은 이 배우의 이름값을 믿고 영화표를 산 관객일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출판 편집자도 거들었다. “영화를 책으로 바꿔도 100% 공감합니다.”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책 역시 공동작업이다. 글을 쓰는 건 저자지만, 책을 만드는 건 편집자다. 그러나 어떤 저자들은 책이 성공하면 공을 갖고, 실패하면 “편집이 엉망이었다”고 잘못을 떠넘긴다.


자신이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분노하거나 조롱하는 일. 언젠가부터 세간에선 이런 태도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불렀다.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제3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듯, 자신이 관련됐던 일을 남의 일처럼 평가하는 태도다.



위키피디아의 유체이탈 설명 이미지. 이걸 찾은게 아닌데....


유체이탈자들을 문화계에서만 찾을 건 아니다. 이 분야의 대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의 난맥상이 노출될 때마다 ‘격노’했다. 대통령이 야당 당수나 정치평론가라도 된듯이 국정을 비판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하다. 지난 정권의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댓글 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오불관언의 자세를 유지한다.


유체이탈 화법은 일부 진보진영 사람들에게도 애용된다.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문제 등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싹이 트거나 악화됐고 현재까지 서민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모든 경제 문제에 대해 “이게 다 이명박(혹은 박근혜) 탓이다”라는 말로 선을 긋는다.


현대사회는 워낙 복잡해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는 일이 거의 없다. 선거든, 사업이든, 예술이든 결과를 낳기 위해선 수많은 조력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일이 잘되면 공을 나누겠지만, 잘못되면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럴 때 유체이탈 화법은 큰 유혹이 된다.


하지만 유체이탈 화법은 비겁하다. 자신이 관여했던 일에서 이름을 지운 뒤, 상대를 비판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또 유체이탈 화법은 무례하기도 하다. 자신을 믿고 함께 일한 사람들을 순식간에 바보로 만든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거니와, 잘못이 훗날의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경쟁상대에게 작은 흠결이라도 보이면 그대로 몰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한다. 이럴 때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사회적 인간의 본능 같기도 하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멋있다.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는 사람과 순결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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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선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으로 보지 않지만, 우석훈의 신작은 역시 술술 읽힌다. <잡놈들 전성시대>는 전반부엔 개인적 감상, 타령이 많아 보여 읽기가 좀 힘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재미가 있었다. 특히 제1야당의 자중지란 대목이 그랬다.(싸움구경, 불구경은 원래 재밌는 법) "정당이 튼튼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 



경제학자 우석훈(47)은 지난해 10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치연구원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3년 이후 10여년만의 출근이다.


두 아들을 돌보던 ‘전업 아빠’는 출근하면서 10~20대 자신의 무의식을 지배했던 ‘형가의 노래’를 떠올렸다. 형가는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그 자리에서 죽은 자객이다. “바람은 스산한데 역수물은 차구나 /장부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형가처럼 목숨을 바치겠다는 건 아니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그렇게 비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인사 문제,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이 있었지만, 그의 인기는 요지부동이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14.5%였다. 박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던 시절까지 치면 선거에서 25연패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보수는 영구집권할 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려는 그를 말리는 지인들도 많았다.



경제학자 우석훈/ 이상훈 선임기자


우석훈은 신간 <잡놈들 전성시대>(새로운현재), <성숙 자본주의>(레디앙)를 한꺼번에 펴냈다. 전자는 민주정치연구원에 재직하면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쓴 정치 에세이고, 후자는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 서적이다. <잡놈들…>은 현재 한국 정치판, 특히 제1 야당의 허술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를 고쳐나가기 위한 노력을 그렸다. 선거 때만 되면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은 온통 ‘인물’이지만, 우석훈은 ‘정당’의 문제를 제기한다. 박 대통령이 천막 당사 시절에 혁신시킨 새누리당의 구조는 탄탄하다. 당직자는 중립성을 지킬 수 있게 보장돼 있어 누가 대표가 되든 시간이 흐르면 전문가로 성장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선거 때마다 줄을 서는 구조다. 선거 때마다 편이 갈리고 사람이 바뀌니 조직이 허술하다. 오랜 패배는 그들을 좌절과 가난으로 몰아넣었고, 부업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정도다. 야구로 치면 출마자는 야구선수, 당은 프런트다. 프런트가 약한 팀은 한 두 명의 스타 선수에만 의존하기에, 몇 게임은 이길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진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에는 경제전문가가 부족하다. 공공기관, 기업 싱크탱크와의 연계도 약하다. 우석훈은 문재인, 김한길, 안철수, 박지원 등 ‘무서운 당 대표급 인사들’을 모아 경제공부를 하기로 했다. 하나씩 설득해 경제공부모임에 참여시켰다. 지난달 열린 전당대회 2주 전까지 4강을 진행했고, 다음주부터 강의를 재개할 에정이다.






우석훈은 2017년 대선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부른다. 부자와 빈자가 완전히 갈리는 단절형 경제로 가느냐, 아니냐의 기로가 그때 결정된다고 본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사람 준비는 늦어도 되지만, 정권을 받아 통치할 준비는 지금 해도 이르지 않다”며 “선거 캠페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잘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평소에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길 확률이 있을까. 우석훈은 “다섯달 전에는 이길 확률이 0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0은 아니다. 당 지지율도 2배 올랐다”고 전했다. 책 마지막 장에서 우석훈은 노골적으로 당원 모집에 나선다. 새정치연합의 많은 문제는 당비를 내고 의결권을 가진 권리당원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우리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한 달에 1000원(당비)이 없다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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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주제를 생각하다가 마감하는 날 오전 급히 바꿨다. 원래 쓰려고 했던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더 정리해 꼭 쓰고 싶다. 


아이돌도 사람이다. 팬들도 아이돌이 연애하고, 방귀 뀌고, 잘 때 이 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예전의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팬질’을 그만두기도 했다. 아이돌이 “사랑해”라고 노래할 때, 그건 노래를 듣는 모든 팬을 위한 메시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위한 연인이 된 순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부서진다. 어떤 직업군에는 그에 기대되는 환상이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진 밑에 성적 암시가 담긴 글을 남긴 예비 교사에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대중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연예인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 연예인이라고 짜증스럽고 화나는 순간이 없겠냐마는, 만일 진짜 짜증을 내는 모습이 누군가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잡힌다면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판사는 어떨까. 따져보면 판사는 법조문의 이해와 적용에 능숙한 기능인이다. 기자가 사건의 실체를 간결한 글로 전하는 데, 택배기사가 정확한 주소지로 신속하게 물건을 나르는 데, 투수가 공을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던지는 데 능숙한 것과 같다. 판사라고 평균 이상으로 검소하고 선량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악플 판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 중인 이모 부장판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에 5개의 서로 다른 아이디, 닉네임을 이용해 댓글을 달았다. 댓글은 특정 지역을 상습적으로 비하하고,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조롱하고, 동료 법관을 비난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노동조합, 촛불집회 참가자 등에 대해서는 저급한 표현을 사용했다. ‘독재 정권 시대의 물고문, 전기고문이 좋았다’는 말도 있었다. 비유의 수위, 방식, 정서가 정확히 ‘일베’를 가리킨다. 


법원 로고. 안 예쁘다.


법관윤리강령은 판사에게 품위 유지, 공정성,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판사는 댓글에서 신분을 감췄다. 해당 판사의 정치적 편향성, 퇴행적 역사관, 인간에 대한 무례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도 없다. 한마디로 온라인에서 해당 판사가 벌인 활동은 철저히 사적 개인으로서 벌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중, 특히 법정에 선 사람들은 판사에게 법 전문가로서의 기능 이상을 기대한다. 판사도 악플을 달고, 밤에 ‘야동’을 보고, 긴 줄 앞에서 새치기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판사에 대한 환상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전제한다. 판사는 법 전문가임을 넘어, 윤리적으로도 평균 이상 도야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는다. 판사의 한마디에 재판 받는 사람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판결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런데 나보다, 아니 사회 평균보다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에게 받는 판결을 이의 없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간혹 언론에 나오는 판결 기사에는 “재판부는 준엄히 꾸짖었다”는 투의 표현이 나온다.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판사는 양형 기준에 따라 판결하면 될 뿐, 누군가를 꾸짖을 권리는 없다. 꾸짖는 것은 부모, 스승, 사제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사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건, 판사에 대한 윤리적 기대치가 높음을 암시한다. 

군자는 유가가 그리는 이상적 지식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책상, 찻잔같이 한 가지 목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격을 갖춰 두루 신망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 앞에서 정적을 탄핵할 때면, 실제 행위와 함께 인격의 용렬함까지 비판하곤 했다. 글이나 그림에 사용된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비다운 정신이 담겨 있지 않으면 높게 치지 않았다. 

법관에게 군자가 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이 수긍할 만한 ‘한 줌의 도덕’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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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합 8시간에 이르는 <호빗> 3부작, 9시간이 넘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모두 본 관객들은 아마 1시간 이상 이어지는 치열한 전투 장면, 반지가 상징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탐욕에 병든 잔인한 용 스마우그, 엘프들의 아름다운 외모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겐 험난한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호빗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피터 잭슨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듯한 이 결말부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호빗족 빌보 배긴스는 평화로운 샤이어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간다. 푸른 초원 위 아늑한 마을에는 장난끼 있지만 온순한 종족이 모여 산다. 그러나 빌보가 마법사 간달프와 난쟁이족의 모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면서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다. 


뜻밖의 여정을 떠난 빌보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난쟁이처럼 힘이 세거나 마법사처럼 마법을 쓸줄 모르는 연약한 호빗족에게 이 여정은 무척이나 힘겹다. 빌보는 그 과정에서 귀한 반지를 손에 넣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지만, 고향 마을에서의 안락한 삶, 무엇보다 목숨과 비교하면 잠시 모습을 감추게 해주는 반지 따위는 별 거 아니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의 티저 포스터. <반지의 제왕> 때보다 시간적으로 앞섰는데 얼굴은 늙어버린 슬픈 엘프 레골라스(위)와 영국식 썰렁한 유머를 구사하는 호빗 빌보. 




천신만고 끝에 모험을 끝낸 빌보는 1년여만에 고향 샤이어 마을로 돌아온다. 동네에선 빌보를 ‘추정사망자’로 간주해 그의 세간을 경매에 부치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빌보는 자신이 빌보 배긴스임을 증명한 뒤에야 텅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 같을 샤이어 마을의 이웃들에게 1년의 부재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빌보는 백발의 노인이 된다. 그러나 빌보는 왠일인지 심술 궃은 늙은이가 됐다. 늦은 오후의 방문객은 호통을 쳐서 쫓아보낼 정도다. 문을 두드리는 이가 모험길의 동무였던 마법사 간달프라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그를 맞이하게 위해 달려가는 빌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한 번의 모험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빌보는 더 이상 샤이어 마을의 안락함에 만족하지 못하는 호빗이 됐다. 이렇다할 친구도, 가족도 없어 보이는 빌보는 가끔 반지를 꺼내 보거나,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홀로 여생을 보낸다. 다른 호빗들이 쑥덕댈지 모르지만, 빌보는 이웃의 평가 따윈 개의치 않을 것 같다. 빌보에겐 위대한 모험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험을 되새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빌보는 행복하다. 



잃어버린 선조의 땅을 찾아 떠난 난쟁이족. 그런데 정작 왕자님을 빼고 사진 찍음. 


빌보는 오매불망 또 한번의 모험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빌보의 염원은 소설 <호빗>의 속편이자 영화로는 앞서 나온 <반지의 제왕>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왕의 귀환>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반지의 제왕>에서 모험의 주인공은 빌보의 조카인 프로도 배긴스다. 빌보 못지 않게 위험천만한 모험을 겪은 프로도와 동료 호빗들은 샤이어로 돌아와 기나긴 뒤풀이를 한다. 함께 모험을 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평소 마음에 두었던 여인에게 구애한다. 결혼을 하고 책도 쓴다.


그러나 프로도의 표정에도 빌보와 마찬가지로 그늘이 서려있다. 모험은 그를 오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프로도는 늙어서 거동조차 불편해 보이는 삼촌 빌보와 함께 또다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정을 떠난다. 다른 호빗 친구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프로도는 그것만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한다. 


모험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정신의 욕창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험을 해야 한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모험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호빗> 속 중간계의 신비로운 숲, <인터스텔라>의 웜홀보다 깊고 신비롭다. 자신의 마음, 타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대단한 모험이다.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해야 우리는 조금 더 근사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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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내내 문화부 부근에 주로 있어서 정치인들과는 인연이 없지만, 고 김근태 의원과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2003년 가을 수습 기자 시절, 편집국 내 각 부서를 견학하다가 정치부에 들렀을 때였다. 정치부 선배는 10여명의 수습 기자들과 김 의원의 만남을 주선했다. 수습 기자들은 나란히 앉아 각자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자리 때문에 어쩌다 내가 첫 질문자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난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비슷한 이력을 걸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은 반면, 김근태 의원은 별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인터뷰이와 만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나랑 싸우자"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안다. 이 질문은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이 생각하지만 차마 면전에서 꺼내지는 못한 이야기라는 것은 훗날 들었다. 당시 자리를 주선한 정치부 선배(지금은 같은 부서에서 좀 더 책임있는 자리에 계신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김 의원은 허허실실한 미소를 지으며 "김 전 대통령은 양지에서 활동했고, 나는 음지에 주로 있었다"는 뉘앙스로 답변한 것 같다. 


오늘은 고 김근태 의원 3주기 추모전 '생각하는 손'에 다녀왔다. 김 의원의 아내인 인재근 의원, 딸인 김병민씨도 나와있었다. 김병민씨는 큐레이터로 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정치인의 추모전이라니 그럴듯하게 듣기 좋은 미사여구로 치장하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이 전시회에는 공들인 흔적이 묻어있었다. 주최측은 고인과의 친분을 고려하기 보다는, 고인이 품었던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을 우선 섭외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전시회는 '김근태라는 인간'이 아니라 '김근태가 품었던 생각'을 전하는데 주력한다. 예술은 원래 간접적이다.


전시회에는 '김근태의 서재'가 재현돼 있다. 고인이 타계하기 직전까지 글을 쓸 때 사용했다는 앉은뱅이 책상, 쌍으로 수배중이던 연인 인재근에게 보낸 연애편지, '열관리기사 1급' 같은 12개의 국가기술자격증을 볼 수 있다. 전시회장에 나온 인 의원은 앉은뱅이 책상 위에 놓인 교통카드와 전화카드에 대해 설명했다. 고인은 국회의원에서 떨어지자마자 승용차를 팔았으며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도청에 시달리던 과거가 있어서인지 공중전화를 애용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집에 다왔다고 하는데 안 들어와서 찾아보면 집 앞 공중전화에서 누군가에게 통화를 하는 모습을 수시로 목격했다고 한다. 


'김근태의 서재'를 재현한 리무부아키텍쳐는 <근태의 방이란다>란 소책자도 편집해 발간했다. 이 책에는 고인의 편지, 강의노트, 복지부 장관 재직시의 메모, 인재근 의원의 탄원서, 공판 기록 등이 원문 형태 그대로 수록됐다. 나 역시 부모가 된 입장이라, 어린 딸이 교도소에 있는 아빠에게 보낸 편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감 하다가 슬쩍 보는데 더 읽다간 울 것 같아서 덮었다 나중에 다시 꺼내들었다 


어린 병민은 자신이 자라는데 함께 있어주지 않은 아빠를 슬쩍 원망하면서도,아빠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끝없이 드러낸다. 5년간 투옥됐고, 또 많은 시간 수배를 피해 숨어다녀야했던 아빠는 그만큼의 시간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했다. 아이가 나고 자라 웃고 걷고 말하고 자라나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게 부모의 큰 기쁨인데, 김근태는 그 기쁨을 송두리째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김병민씨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아빠가 나를 덜 사랑해서 멀리 계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립지만 참았던 것 같다. 아빠가 옳은 일을 하기 때문에 쫓기고, 수감되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 멀리 떨어져있어도 아빠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믿음을 주었고, 아빠의 일이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자식에게 이런 믿음을 주는 아빠가 얼마나 될까. 특히 아빠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힘에 맞서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그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는데도. 천하의 악당이 집에서는 '좋은 아빠'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가정에선 '나쁜 아빠'일 수도 있다. 공과 사는 다른 영역이라고 인식하지만,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혼란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추정컨대, 김근태는 좋은 아빠, 좋은 정치인,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 김근태 의원의 딸 김병민씨가 어린 시절 아빠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 김 의원의 각종 자격증.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갤러리에 고 김근태 의원(1947~2011)의 서재가 마련됐다. 노동 잡지, 미술 서적, 대학시절 강의노트, 건설기술자면허증을 비롯한 12개의 국가기술자격증도 볼 수 있다.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띈다. 수배 중에 보일러공으로 일하던 김 의원이 보일러를 때던 밤 잠시 책상에 앉아 역시 수배중이던 연인 인재근 의원에게 보낸 연애편지다. 본명을 쓸 수 없어 ‘옥순이’라는 가명 앞으로 보낸 편지에는 “오늘밤 꿈 속에서 우리 아가씨 귀여운 아가씨를 만나기로 하고 안녕” 같은 글귀, 자기만 아침을 챙겨먹고 나와 연인을 배고프게 한데 대한 변명 같은 것이 써있다. 1978년 봄에 만난 두 노동운동가는 같은 해 여름 별도의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살림을 차렸다. 


서재 가운데에는 작달막한 앉은뱅이 책상이 있다. 이 책상은 인 의원이 초등학생 때부터 썼던 것으로, 김 의원이 탐내 훗날 살림집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새로 니스칠까지 하는 등 책상에 공을 들였던 김 의원은 생전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이 책상에 앉았다. 고인이 사용했던 안경, 핸드폰, 교통카드, 펜 등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김 의원 3주기를 맞아 4일부터 21일까지 DDP 갤러리 문에서 추모전 ‘생각하는 손’이 열린다. ‘김근태의 서재’를 재현한 리무부아키텍쳐를 비롯해 김진송, 임민욱, 정정엽, 옥인콜렉티브 등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온 11명(팀)의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생각하는 손’은 정정엽 작가의 회화이자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다. 손의 형상에 붉은 핏줄을 복잡하게 그려넣어 마치 잔가지 많은 나무가 뻗어나가는 듯한 느낌을 냈다. 박계리 큐레이터는 “손과 머리가 함께하는 세계, 일과 놀이가 함께하는 사회를 ‘생각하는 손’이란 타이틀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손'에 전시된 리무부아키텍쳐의 '김근태의 서재', 이윤엽 작가의 '까마귀'(왼쪽)와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정정엽 작가의 작품들(위로부터)


생전 김 의원은 문화를 사랑했다. 문화계에서도 이에 화답하듯 영화(남영동 1985), 만화(짐승의 시간), 소설(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등 각 분야에서 김 의원을 기리는 작품을 잇달아 내놨다. 4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인 의원은 “화장실 휴지도 3칸만 쓸 정도로 굉장히 검소한 사람이 유일하게 사치를 부린 건 화집을 살 때였다”고 회고했다.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딴 건 안 사도 비싼 화집은 사왔다고 한다. 박계리 큐레이터도 김 의원의 서재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화를 전했다. 정정엽 작가조차 잃어버려 갖고 있지 않았던 전시 도록이 김 의원의 서재에 있었다는 것이다. 


박계리  큐레이터는 “말로 할 수 없는 것, 채워지지 않는 것을 미술로 추모하고자 했다”며 “고인이 자기 몸조차 돌보지 않고 지키고자 했던 ‘따뜻한 시장경제’라는 화두를 되새기는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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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비극의 탄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순수이성비판>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 고전의 오래된 정의다. 




21세기 한국의 베스트셀러 저자 프리드리히 니체(위)와 이마누엘 칸트. 무덤에서 소식 듣고 놀라실듯. 


전날까지 반값 또는 그 이하로 할인 판매된 책들이 21일부터는 정가를 회복했다. 신간, 구간, 실용서, 참고서 등 예외가 없다. 가격, 쿠폰, 마일리지를 합해도 할인율은 15% 이내로 제한됐다. 이제 서점은 태풍이 쓸고간 뒤처럼 조용하다. 모두들 숨죽인 채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향후 6개월 정도는 책 판매량이 뚝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할인 경쟁 속에 모두들 지쳐있었다. 작은 반칙은 큰 반칙을 불렀다. 모두 힘을 합해 자정했으면 좋았겠지만, 21세기의 혼탁한 시장에서 점잖은 선비님 말씀은 듣기 힘들었다. 이럴 때는 법, 제도 정비가 우선이다. 


도서정가제의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짚어야할 대목이 있다. 우선 도서정가제는 인터넷 서점과 할인 경쟁을 할 수 없었던 동네서점을 살릴까. 그렇지 않다. 십 수 년 전 인터넷 서점이 등장한 이래 동네서점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동네엔 동네서점이 없고, 있다 해도 학생 참고서를 판매할 뿐이다. 독자의 책 소비 패턴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 혹은 인터넷 서점으로 양분됐다. 동네서점을 이용하면 골목상권을 살리고 이웃도 도울 수 있겠지만, 소비자는 윤리가 아니라 편익을 따라 움직인다. 같은 가격이라도 독자는 수만 종의 책을 세련되게 진열한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나, 택배 기사가 책을 손에 쥐어주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이다. 이제 동네서점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엔 없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 손님과의 스킨십, 주인의 독특한 취향 표출, 머물기 편안한 분위기 등 무엇이든 좋다. 


다음으로, 도서정가제는 ‘제2의 단통법’일까. 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분석 결과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책 가격은 평균 220원 상승한다. 220원 더 쓰기 싫어서 사고 싶었던 책을 안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할인율이 컸던 구간이나 실용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겠지만, 지금까지 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책정했던 출판사들이 앞으로는 정가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책값이 낮아지면 책을 사서 읽을 것인가. ‘싼 맛에 책 읽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장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관찰해봤다. 같은 칸에 탄 40여명 중 신문 읽는 사람이 5명 정도,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거나 멍하니 있었다. 종이책 읽는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변하고 있다. 문명과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옛 습관을 회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흘러간 강물을 되돌리려는 시도와 같다. 책은 인류 지식문화의 보고다. 책에는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잔재주를 넘어, 문명의 전환에 대한 근본적 성찰, 구태를 일거에 무너뜨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출판인들은 그 길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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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골목’이란 이름의 엘피바를 운영하는 김진아씨(39)는 낮시간의 동네 풍경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부동산업자들이 사모님들 모시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언론에선 연일 ‘마지막 노른자위 땅’ 같은 기사를 내고, 그러면 임대료는 또 올라요.”

골목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니 아직 시간은 남았다. 김씨는 “한 번 정도는 더 재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장담하기 어렵다”며 “앞집에 세들어 살던 노부부도 얼마 전 어딘가로 이사간 것 같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서구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활발히 벌어지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홍익대 부근, 삼청동, 가로수길에 이어 최근엔 홍대 인근의 합정동과 상수동, 서촌, 경리단길, 성수동 등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난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스튜디오, 갤러리, 공방 등 예술가들의 거점이 생기고, 이를 따라 문화인들이 즐겨 찾을 만한 카페, 식당이 문을 연다. 동네가 ‘물이 좋다’고 소문나면 더 많은 카페와 식당이 개점하고, 이어 프랜차이즈 식당도 진출한다. 대형 패션 매장까지 생기면 한국적 젠트리피케이션의 순환 주기가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과 그들에게 필요한 세탁소 등 소규모 가게, 예술가들이 떠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효자동에 있던 바 ‘퍼블릭’은 2010년 12월 문을 열어 4년6개월 만인 올 5월 문을 닫았다. 퍼블릭이 개점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한적한 주택가였으나, 효자동이 ‘서촌’이란 이름의 관광명소로 묶이면서 주변이 들썩였다. 퍼블릭을 운영했던 구정아씨(40)는 “임대차보호법으로 보호되는 계약 기간 5년이 지나면 임대료 인상의 한계가 사라진다”며 “마침 건물주도 임대료를 올리려는 기미가 보여 가게를 접었다”고 말했다. 


상수동(위), 서촌같은 동네가...





홍대(위), 가로수길 같이 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연구원 미래사회연구실의 나도삼 실장은 이를 “한 지역의 생로병사”로 표현했다. 지역이 노후했다가 재생해 사람들이 다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도시 변천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서구와 달리 최근의 서울은 이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다. 나 실장은 “홍대, 대학로는 20년의 시간을 두고 이 과정이 이루어졌지만, 최근엔 5~6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며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학계에선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10일 성공회대 새천년관에서는 ‘아시아 도시에서 장소 형성과 공간 변환’ 워크숍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발제할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도시 공간의 변화를 “중산층 일부의 새로운 문화적 욕망과 취향의 출현”과 연관지었다. 그는 “19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30~40대 중에는 취직에 절대적 가치를 두기보다는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공간 사용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들이 서촌, 연남동, 해방촌, 성수동에 모여 공간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진아씨, 구정아씨는 각각 카피라이터, 영화 프로듀서라는 본업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음악인, 영화인들이 모이는 명소였다. 

지난 5·6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제1회 홍대앞 문화연구포럼이 열렸다. 이 모임의 주제 역시 ‘홍대앞 문화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었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부산의 예술 창작공간 ‘또따또가’의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예술 지원은 개인 창작기금 지원에 그쳐 왔는데, 또따또가에는 임대료를 지원했다. 이 소장은 “지자체가 해당 공간을 장기 임대계약하거나 매입한 뒤 복지 혹은 예술 공간으로 활용해 공공적 기능을 유지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대료 문제로 예술가, 업주가 떠나가면 지역의 활기도 사라진다. 한때 ‘젊음의 거리’로 이름 높았으나 이제는 활력을 잃은 신촌이 대표적이다. 최근 신촌의 일부 건물주들과 임차상인들은 ‘신촌 상권 임대료 안정화 협약’을 맺기도 했다. 계약 기간을 늘리고 임대료, 보증금 인상을 유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원재 소장은 “제도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주택 고급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까지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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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는 안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심의가 이뤄진다면 이런 영화들은 상영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영화 프린트가 늦게 들어온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심의위원들을 부산의 여관방으로 불러모아 ‘느슨하게’ 심의하도록 유도했다. 심의 규정을 위반한 영화도 더러 있었으나, 김 위원장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상영을 강행했다. 다행히도 2회 영화제까지 공연윤리위원회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3회부터 영화제 출품작은 심의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이 생겼다. 바다 건너 풍문으로 제목만 들었거나 수입됐다 해도 이리저리 잘려나간 영화들에 상심했던 영화팬들은 부산영화제에 열광했다. 관객의 호응은 영화제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올해 이런 원칙이 훼손된 사례가 두 건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불허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작품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을 문제삼았다. 관계자의 사퇴, 작가들의 작품 철수 소동이 이어졌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는 “홍 화백의 작품은 광주시의 돌출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해, 작품 철회에 시가 개입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출범 20주년을 맞은 비엔날레는 인권·문화 도시인 광주의 위상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추시켰다. 


그로부터 1달 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세월호 구조 과정의 난맥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중단 압력을 받은 것이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중앙정부에서도 국고 지원 중단 등을 거론하며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소문이 불거졌다. 부산이 광주와 달랐던 점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했다는 사실이다.


지역 문화행사에 정치적 이유를 들어 개입하려 한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멍청했다. 그 이유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작품의 위상이 오히려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312편 중 1편이었고,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 당시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세월오월’ 역시 광주비엔날레 본전시를 앞두고 열린 특별전 출품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작품들은 어쩌면 일부 관객의 관심만을 산 채 조용히 묻히거나, 아예 작품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의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관이 개입했고, 그 결과 작품의 창작자들은 ‘권력에 대항한 예술가’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나온 어느 여당 의원은 <다이빙벨>이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해당 의원이야말로 마케팅의 일등공신이다. 


‘예술의 자율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에도 예술은 권력, 자본과 갈등하고 타협, 즉 ‘밀당’했다. 그리고 이 긴장감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들았다. 그러나 올해 광주와 부산에 ‘밀당’은 없었다. 돈줄 쥔 자가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 이 권력, 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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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2008)는 <노예 12년>(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맥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있던 IRA 죄수들은 ‘안씻기’ 투쟁을 벌였다. 벽에 똥칠하기, 복도에 오줌 흘리기, 먹다 남은 음식 벽에 붙이기 등이었다.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끌어내 구타한 뒤 강제로 소독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자, IRA 죄수들은 마지막 남은 저항 수단을 택한다. 바로 단식이다. 



죄수들을 강제로 소독중인 간수들


단식 투쟁을 주도한 보비 샌즈가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지켜보기가 괴롭다. 샌즈는 면회온 신부에게 단식 투쟁의 결심을 알린다. “할 일이 없어서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게 아니에요. 옳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병상 옆에는 소시지, 오믈렛, 베이컨 등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지만, 샌즈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샌즈의 뼈와 가죽이 들러붙고, 피부에는 상처들이 생기고, 변기에 앉으면 혈변이 나온다. 의사는 말한다. “간, 콩팥, 췌장의 기능이 약화됐습니다. 골밀도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심근도 기능장애를 일으킬 겁니다. 저혈당이 올테고, 에너지 부족으로 근위축이 오겠죠.”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샌즈가 주도한 7개월간의 단식 투쟁 기간 동안 9명이 더 죽었다. 




보비 샌즈 역의 마이클 파스밴더(사진 위). 단식에 들어가기 직전의 보비 샌즈와 신부가 대화하는 15분 가량의 롱테이크 장면.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45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노모와 남은 딸의 설득에 김영오씨는 다행히도 샌즈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다. 단식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손을 잡았고 야당 정치인과 시민들이 단식에 동참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김영오씨를 폄훼하는 여론전이 벌어졌다. 이혼한 처가쪽 사람들 말을 비려 ‘아빠 자격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였고, 자식 잃은 충격에 내뱉은 거친 말을 ‘폭언 파문’이라고 수식했다. 평범한 중년 남자의 처가 사람들, 취미, 언행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인가, 흥신소가 할 일인가.  


김영오씨 단식의 결과는 무엇일까. 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주자는 세월호 유족들의 의견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 말을 믿고 나선 유족들을 청와대 멀찌감치서 가로막고 고립시켰다. 겉보기에 이 단식 투쟁은 얻은 것이 없다.   


보비 샌즈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대처 정부는 IRA 죄수들의 정치범 지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대처의 행동이 “영국병을 치료했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영국 분위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정치적 반대자조차 애도를 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처가 죽었을 때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녀가 죽었다” “지옥불에서 타라”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서 가장 싼 업체에 맡기자”는 말들이 나왔다. 거리에서는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다. 


단식 투쟁은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약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행동이다. 이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치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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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시스템상 취재 기자는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이 칼럼을 쓰면서는 마음 속으로 두 가지 정도의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그 중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제목을 편집자가 정확히 뽑아주셨다. 



5월 8일 밤, KBS를 항의방문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박민규 기자



세월호 유족들에겐 청와대로 가지 않을 수차례 기회가 있었다. 


유족들의 거친 항의는 방영하지 않고, 그들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인자한 얼굴만 방영하는 공영방송의 행태에 분노한 유족들은 KBS 간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엔 안산 합동분향소에서였다. 그러나 책임지고 사과 혹은 해명할 KBS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족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직접 한밤의 여의도로 향했다. 이때라도 KBS의 책임있는 누군가가 모습을 보였다면 유족들은 수긍하고 뒤로 돌아섰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 경찰 등이 유족과 KBS 사이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바삐 오갔으나 사장, 보도국장 등 사태의 중심 인물은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KBS 관계자들이 유족을 막아섰다. 그들은 유족들에게 “출입증을 패용하라” “들어오기로 약속한 사람 숫자가 다르지 않느냐”는 등의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유족들은 꾹 참아왔던 마지막 말을 외쳤다. “청와대로 가자.”


유족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밤을 지새며 청와대 수석들을 만났다. KBS 사장은 그러고 나서야 유족 앞에 나타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만일 유족들이 청와대로 가지 않고 KBS 앞에서 농성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열흘 밤을 지샜어도 KBS 사장의 사과는 듣지 못했을 것 같다.   


 

유족들이 KBS를 방문한 다음날,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한 뒤 사의를 표하고 자리를 뜨는 KBS 김시곤 보도국장 /강윤중 기자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대통령 탓하는 건 잘못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세월호의 키를 잡지도, 실종자 구조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믈론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연안 여객선의 안전 점검 체계, 신속 구조 체제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지 못한 책임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월호 참사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왕정 시대도 아니다. 홍수가 나나 가뭄이 드나 “짐이 부덕한 탓이요”라고 가슴을 치며 하늘로 머리를 조아리던 날들은 지났다. 그런데 왜 여전히 진도 앞바다의 재난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대통령에 책임을 묻는 현상 역시 대통령의 책임이다. 국무총리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도록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킨데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유난히 강한 한국의 정치 체제이지만, 과거의 중도·진보 정부들은 그 권한을 조금씩 분산시키려고 노력했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냈고, 국정원·검찰 등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평검사와 대통령의 ‘맞짱 토론’이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기도 했다. 


대통령과 평검사가 직접 토론하는 일이 적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자. 아무튼 그런 일은 현 정권 아래에서는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 지금 대통령은 평검사와 토론하기는커녕, 유권자를 대신한 언론의 질문에도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한다 혼자 말한다. 구미시장의 표현처럼, 대통령은 ‘반인반신’의 딸인가. 


그 효과는 여러 방면으로 퍼졌다. 경찰은 대통령을 풍자하는 포스터를 헌옷 수거함에 붙인 시민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명예훼손, 모욕죄가 법리적으로 적용되지 않자 엉뚱한 혐의를 꺼내들었다. 지금 권력기관, 관료, 공영방송은 시민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시민들은 세월호 유족처럼 행동한다. 국무총리 이하 모든 책임자들이 “청와대로 가자”는 시민의 말을 듣고서야 움찔하기 때문이다. 


동양적 태평성대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요순시대의 어느 왕이 평민 복장으로 순찰을 나섰다. 왕은 농부에게 “이 나라 왕이 누구인가”라고 물었고, 농부는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므로 왕의 이름 따위 알고 싶지도 않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박근혜가 누구예요?” 


5월 9일 낮 청와대 부근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막기 위해 세워둔 경찰버스, 경찰버스에 붙은 노란 종이배/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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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박지성이 5월 14일 은퇴를 발표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축구를 시작한 지 24년만의 일이다. 지금 그의 나이는 33세. 박지성이 전성기를 보냈던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을 살펴봐도 그의 은퇴가 이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가 유력한 라이언 긱스는 박지성보다 8살 많고, 프랭크 램퍼드는 3살, 스티븐 제라드는 박지성보다 1살 많다. 특히 램퍼드와 제라드는 박지성이 마지막 한 해를 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리그보다 훨씬 격렬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도 주전이고, 다가오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뽑혔다. 


박지성은 은퇴 이유를 '무릎'이라고 꼽았다. 나카타 히데토시처럼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은퇴하는 대신,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를 댄 것이다. 그는 "지난 2월부터 (은퇴에 대해) 생각해왔다. 더는 지속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에 안 좋았다"고 말했다. 


박지성의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려져 있었다. 박지성은 PSV에인트호벤 시절인 2003년부터 무릎에 물이 차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번 시즌에도 한 게임을 뛰면 며칠을 쉬어야 할 정도였다. 박지성의 무릎이 그토록 빨리 닳아버린 것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박지성은 쉴 새 없이 뛰는 선수였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인 2009~2010 시즌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상대팀 에이스인 피를로를 밀착마크했다. 피를로가 어디를 가든 박지성이 따라다녔다. 이 게임의 목적은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피를로를 따라다니며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이라는 듯했다. 피를로는 올해 출간된 자서전에서 당시 경기를 회상하며 박지성을 '맨유의 경비견'이었다고 표현했다. 조금 비하하는 뉘앙스이긴 했지만, 맨유의 감독 퍼거슨이 박지성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그 경비견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이 박지성의 무릎을 갉아먹었다. 테크니션이었기에 박지성만큼 뛸 필요가 없던 피를로는 박지성보다 2살 많지만 여전히 빼어난 기량을 보인다. 


사실 축구선수라면 누구도 이런 스타일의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최전방의 스트라이커나 팀의 플레이를 풀어가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로 축구팬의 시선을 받는다. 마치 밴드에서 보컬이나 기타리스트의 인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정작 박지성은 "현란한 테크니션이 아니었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내 장점은 당연히 활동량이었고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최대한 부각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였다"는 말도 했다. 


박지성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 활약에 비해 해외의 축구팬들 사이에선 인기가 덜한 한 요인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이라면 누구나 이런 선수가 필요하다. 스스로 빛나기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할줄 아는 조직원. 그것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 적응하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대로 범죄에 가담하는 국가정보원 요원을 따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규칙을 지키는한, 스포츠에서 승리는 '선'이다. 선의 실현을 위해선 팀원들의 충성이 필요하다. 11명의 선수가 하이라이트에 나올법한 묘기를 선보인다해도, 이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요즘 세상에 헌신, 충성 같은 가치를 강조하면 '시대착오'라는 이야기를 듣기 딱 좋겠지만, 어쩌면 바로 그러한 희소성 때문에 이 가치는 소중하다. 헌신과 충성이란 조직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윤리다. '나'라는 좁은 틀을 버리고 '우리'라는 큰 공동체에 들어가는 열쇠다. 박지성은 바로 그 희귀한 가치의 표본이었고, 그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무릎을 바쳤다. 


박지성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울지 않았다. 울기는커녕 특유의 담담한 표정에다가 때로 미소까지 지었다. 자신의 커리어를 이른 시기에 끝내면서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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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맘놓고 볼 수 있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세월호 사고 전 <개그 콘서트>에서 '끝사랑'은 가장 뜨거운 코너였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 코너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의 풍상을 겪은 나이에 새 사랑을 시작하는 두 커플을 비교해 웃음을 선사한다. 점잖은 커플(권재관, 박소라)은 한국 사회가 중년에게 통상 기대하는 그러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둘은 데이트를 하면서도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조차 남들 볼까봐 부끄러워 한다. 반면 닭살스러운 커플(정태호, 김영희)은 온갖 시끌벅적한 연애 행각을 벌인다. 가장 뜨거운 연애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조차 하지 않을법한 그런 행동들이다. 정태호는 점잖은 커플의 밋밋하기 짝이 없는 연애를 보며 늘 이렇게 말한다. "저거 사랑 아니야."


사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연애 상담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례 중 태반이 이런 이야기다. 기념일은 챙기는게 진정한 사랑 아닌가요, 남자친구의 일정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게 진정한 사랑 아닌가요, 나와 함께 있을때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닌가요 등등등. 사람의 관계는 디테일과 맥락이 중요하기에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0명의 사람이 그리는 사랑은 100개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저마다의 시간을 누리며 때로 만나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누구도 '내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거나, 정태호처럼 "저거 사랑 아니야"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세월호 사고는 이 공동체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참사다. 인터넷 공간도 각종 애도와 탄식으로 넘쳐나고, 관련 기사와 게시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간혹 마치 정태호처럼 "저거 슬픔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표현 방식으로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으면, 마치 세월호 사고를 가벼이 보거나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처럼 몰아대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데에는 수많은 방식이 있다. 누구는 마치 제 자식을 잃은 것처럼 통곡을 할 것이고, 누구는 진도에 자원봉사를 하러 갈 것이다. 누군가는 안산의 합동분향소 앞에서 3시간씩 줄을 설지도 모른다. 누구는 이런 사고를 낸 선장과 선원을, 누구는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할 것이다. 누구는 청소년을 지금 같은 교육 환경에 방치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 그것을 개선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표현하는데 서툴렀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기 시작할 것이다. 이걸 모두 슬픔을 나타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걸까. 


비가 와도, 안와도 나랏님 탓을 하는 왕정 시대식 사고는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 무책임, 공감능력부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그 비판의 정점에 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사고를 대하는 슬픔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머뭇대는 사람을 머저리 취급해서는 안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의 엄밀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의견에 대해 '쿨쉭한 척 한다'며 비아냥대는 태도도 못마땅하다. 


지금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하도록 놔두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표현 방식에 대해 "그거 슬픔 아니야"라고 훈장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영논리가 극심한 한국 사회 지형상, 아무튼 싸움은 곧 벌어질테니까. 



27일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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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머금고 글을 쓴다. 뉴스의 최전선에 있는 처지라 뉴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럽다. 이렇게 심약해서 무슨 기자냐고 자책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간히 눈물을 훔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 


사고 당일 아침까지도 기자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곧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에 접어들어 정부가 구조자의 수를 정정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원 구조, 368명 구조, 164명 구조…. 이날 서울에 가득했던 미세먼지같은 우울, 슬픔, 탄식이 기자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사회부로 전입온 뒤 여러 건의 죽음을 접했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의 대학생들, 송파의 세 모녀에 이어, 여객선 세월호의 고교생들까지. 이런 죽음들을 접하면 할 말도, 써야할 글도 생각나지 않는다. 굳고 커다란 벽 앞에 선 기분이다. 말이나 글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감기 몸살에라도 걸린 듯 몸이 떨렸다. 소화가 되지 않아 죽을 먹었다. 하루종일 우왕좌왕 동분서주하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힘껏 껴안았다. 아이가 뒤척였지만 잠시 그렇게 있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곁에 뜨겁게 숨쉬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그러다가 갑자기 진도 앞 차고 검은 밤바다가 떠올랐다. 아직도 그곳에 있을지 모르는 또다른 생명들에 죄책감이 들었다. 

 

인과의 고리를 찾는건 현대인의 본성이다. 특히 어처구니 없고 황망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앞장서 그 원인을 파헤친다. 이 과정에는 흔히 분노가 동반된다. 누가, 무엇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분노는 때론 정확한 방향으로, 때론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아이들의 죽음 같은 큰 일이 터졌을 때, 이 분노를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은 화낼 기운보다는 울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상가에서는 일단 울어야 한다. 충분히 울지 않으면 화낼 기운도, 앞으로 살아갈 힘도 낼 수 없다. 마음의 응어리는 절로 풀리지 않는다. 깊고 깊은 애도만이 응어리를 풀 수 있다. 


공동체의 역량은 재난과 그에 대한 애도 과정에서 드러난다. 지난 15일은 영국 셰필드의 힐즈버러 스타디움에 모인 축구팬 96명이 불의의 사고로 압사한 지 25주기 되는 날이었다. 이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모든 경기는 평소보다 7분 늦게 시작했다. 참사 당시 경기가 사고로 6분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참사를 기억하며, 프리미어 리그 중계를 시청하는 전세계의 축구팬도 그들의 경건한 순간을 목도했다. 


또 이날은 미국의 보스턴 마라톤 테러 1주기이기도 했다. 추모식에서 드발 패트릭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여기 일어난 일들은 우리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 우리는 타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들에, 공통의 운명에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공포, 같은 희망, 같은 공동체를 공유합니다”라고 말했다. 영국과 미국의 공동체가 아직 건강하다면, 바로 이런 애도와 추모의 문화를 하나의 증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망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산 자를 살게할 수는 있다. 인간은 그것을 해야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방식으로 추모하기. 떠난 생명을 안타깝게 여기고, 살아남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남은 사람의 곁에 서주기. 우리의 공동체가 유지되거나 혹 강해지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쓴다.



18일 저녁, 실종된 학생들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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