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왓슨은 지금보단 연기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미녀와 야수'는 흥행했지만.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는 18세기 프랑스 동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흉측한 외모의 야수와 용기 있는 미녀가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호소력이 있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미녀와 야수>는 1991년 선보인 동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리메이크다. ‘미녀와 야수’ 모티브는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이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큼 광범위한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원작의 인기를 계승하는 동시에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프랑스 어느 고성의 왕자(댄 스티븐스)는 오만한 언행 때문에 저주를 받아 야수의 외모를 갖는다.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면 저주가 풀리지만, 문제는 무서운 외모의 야수를 사랑할 여성이 없다는 점이다. 인근 마을의 젊은 여성 벨(에마 왓슨)은 야수의 성에서 꽃을 꺾으려다 붙잡힌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의 포로가 된다. 벨은 차츰 야수 내면의 다정함과 지성에 끌린다.






<겨울왕국>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21세기 디즈니 영화 속 여성은 더 이상 왕자의 키스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다. <미녀와 야수>에서도 그렇다. 벨은 마을에 얼마 되지 않는 책을 빌리고 또 빌려 읽는 책벌레이며, 당나귀를 이용한 ‘세탁기’를 만든 발명가다. 벨이 야수에게 처음 반하는 계기 역시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야수의 지성이었다. 벨은 핍박받는 야수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말을 달릴 때 아름다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마을의 모든 여성이 선망하는 전쟁영웅 개스톤(루크 에반스)의 구애를 간단히 물리치는 당찬 성격도 가졌다. 개스톤이 겉으론 용맹하지만 사실 무례하고 소유욕에 사로잡힌 ‘옛날 남자’라면, 야수는 내면이 따뜻하고 지적인 현대적인 남성상을 구현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똑똑한 헤르미온이자, 스크린 밖에서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에마 왓슨은 ‘벨’이 되기 위한 여러 요소를 두루 갖췄다.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상을 통해 한국 기자들과 만난 왓슨은 “영화는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며 “여성이 동등한 사회의 일원임을 상상하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스톤의 친구인 르푸(조시 게드)가 성소수자처럼 보인다는 점도 <미녀와 야수>의 새로운 요소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지역 극장에서는 <미녀와 야수>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빌 콘돈 감독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는 포용”이라고 말했다.게드 역시 “사람들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개스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야수가 마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해 공격하려 하는데, 이런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녀와 야수>는 한동안 거의 만들어지지 않다가 <라라 랜드>로 재조명된 뮤지컬 장르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미녀와 야수>의 전반부는 <라라 랜드>의 성취가 특수한 사례였음을 확인시켜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은 분명 판타지이지만, 한동안 관객은 이 판타지적 관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두운 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벨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장르를 가동하지만, 왓슨과 여러 배우들의 노래와 춤은 마치 현실을 모방한 애니메이션을 다시 따라 연기한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벨과 야수의 본격적인 감정선이 드러나 관객을 몰입시키기까지는 그 어색함을 참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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