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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영도다리>, <레퓨지>

이 험하고 슬픈 세상에 새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까.


임신과 출산은 낭만, 감격보다는 당황,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신보다는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깔끔한 거실에서 살아가던 부모는 아기의 울음과 똥과 토사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똥을 피하는 건 거기에 몸을 해치는 병균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기의 똥기저귀를 갈면서 진화의 유구한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셈입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전수일 감독의 <영도다리>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레퓨지>는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 이후의 선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도다리>의 주인공인 19세 소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했으며, 출산 직후 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깁니다. 하지만 배에 난 수술자국, 배어나오는 젖, 우연히 찾은 아기 신발을 본 소녀에겐 자꾸만 아기 생각이 떠오릅니다.



영화 <레퓨지>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퓨지>엔 실제 임신한 여배우가 출연합니다. 감독은 여배우의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를 카메라로 어루만집니다. 여주인공은 함께 마약을 하던 남자친구가 사망해 홀로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임신 중임을 알게 됩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출산을 원치 않지만, 여자는 홀로 자신만의 피난처를 찾아 아기를 낳기로 합니다. 이 피난처에 죽은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찾아옵니다.


두 영화 속 공간 모두 아기가 태어나 살 곳은 못됩니다.
<영도다리> 속 세상은 폭력과 약탈과 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합니다. 일자리도 찾지 못한 소녀에게 남은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소녀에게 아기는 잃어버린 마지막 희망입니다.
<레퓨지>의 엄마는 아이를 가질 준비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비 엄마는 한때 마약 중독자였으며 옛 상처를 간직해 날카로운 성격을 보입니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아기에 대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유사 이래 살기 편한 세상은 잠시도 없었을 겁니다. 새 생명을 키우기 힘든 이유도 수만 개에 달합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자기들끼리 잘 살고 싶은 부부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나와봐야 살기 힘들다는 부모들의 이타적, 예지적 판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아이를 많이 낳는 건 부의 상징이 됐습니다. <하녀>의 재벌집 안주인 서우가 그 예입니다. 그녀는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아 그들 모두가 지금의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누리고 살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도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종교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삶의 목적은 자신의 DNA를 후대에 퍼뜨리는 것이라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신을 닮은 아기가 울고 먹고 똥을 싸다가 마침내 한 번 웃었을 때 부모는 숨겨져 있던 삶의 마지막 조각 하나를 발견합니다. 아기가 주는 기쁨은 종교적 환희와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믿는 사람에겐 있고, 안믿는 사람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를 부모가 가진 삶의 의미 전부로 받아들여선 곤란할 겁니다. 아이는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로봇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기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아니지만, 나 아닌 것도 아닌 그 어떤 존재가 내 삶의 한 부분을 만들어준다는 것.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체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