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에 해당되는 글 50건

  1. 예술의 상상력과 정치의 각론 사이의 북한
  2. 죽어가는 뮤즈에게 보내는 레오나드 코헨의 마지막 편지
  3. 정동삼락 (2)
  4. 소아응급센터에서의 하룻밤
  5. 이름에 대하여 (6)
  6. 블로그 방문자 100만 시대
  7. 내 행동은 내 의지가 아니다, <요괴워치>를 보고
  8. 찬란한 날은 지났다 <더 지니어스: 블랙 가넷>를 보며
  9. 신해철과 그의 시대 (7)
  10. 시베리아, 시베리아
  11. 또봇 vs 파워레인저 혹은 매뉴얼의 중요성에 대해
  12. 잊어도 좋은 기억, 몰라도 좋은 사실
  13. 유아기의 끝 (2)
  14. 어떤 하루
  15. 음악인 주찬권(1955~2013)
  16. 세헤라자데, 아빠. (3)
  17. 엘지팬 여러분께 재차 사과드립니다. (389)
  18. 엘지팬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1005)
  19. 빵가게 습격 (7)
  20. 의견과 현상 (2)
  21. 축구 끊을까, 수아레즈의 '이빨 사건'을 보고. (3)
  22. 레고 듀플로와 레고. 아이는 자란다. (4)
  23. 철학자와 테러리스트의 만남: 사르트르와 바더의 경우 (4)
  24. 프리챌의 질문
  25. 아빠, 물리학의 법칙을 어겨주세요. (7)
  26. 싸이,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27. 무서운 아저씨 온다!
  28. 아이의 첫 쉬 (2)
  29.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아기보기
  30. 노른자에 대하여-부활절 스페셜



결말 보고 당황한 '길소뜸', 영화화 생각하면서 읽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실제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영화제작중이라고.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정작 소원 빌 일이 있을 때 ‘통일’이라고 말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을 본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데, 북한의 공산주의자가 사실 알고 봤더니 돼지나 늑대였다는 내용은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유치했다. 텔레비전에 북한 관련 소식과 북한 방송 내용을 전해주는 <통일전망대>란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같다. 제작진께는 죄송하지만, 요즘도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야 알았다. ‘일요일 오전 6시10분’이라는, 평범한 의지의 인간이라면 시청을 장담할 수 없는 방영시간만 탓해본다. 대학 시절엔 통일 문제에 특히 관심 많은 학우들이 있긴 했으나,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였을뿐더러 친해질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화석화한 인식의 틀을 사정 없이 부수곤 한다.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6일까지 열리는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중 <길소뜸>(1985)은 송길한과 명콤비였던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흔히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막상 보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화영(김지미)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보며 전쟁 중 헤어진 연인 동진(신성일)을 생각한다. 화영은 임신해 아이를 낳지만, 전쟁 중 동진과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다.




화영과 동진은 ‘이산가족 찾기’ 이벤트 덕에 재회한다. 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나서고, 유력한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져 거지떼를 따라다닌 남자는 화영, 동진같이 안온한 중산층 남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혈액검사 결과 남자는 둘의 아들임이 거의 확실해지지만, 화영은 “100%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동진이 아들일 게 뻔한 남자에게 “가끔 연락이나 하고 지내자”고 하자, 남자는 “하루 벌어 먹고살기 힘든데 그럴 시간이 어딨냐”며 가버린다. 동진 역시 화영의 연락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생이별했던 가족이 30여년 만에 만나는 모습에는 목석 같은 사람도 눈물을 참기 어렵지만, 송길한과 임권택은 대담한 상상을 시작한다. 그 만남은 결국 행복할까. 30여년이란 세월은 사람의 마음, 생각, 습관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을까. 피만 섞였을 뿐,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산 사람은 사실상 남이 아닐까. 같은 나라 안에서 떨어져 살던 사람의 결합도 이렇게 힘든데, 두 나라의 결합이 가능하긴 할까. 옳든 그르든, 이 질문은 필요하다.

장강명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한국의 젊은 소설가다. 신문기자 신분으로 뒤늦게 장편 데뷔작을 낸 그는 아예 언론사를 떠난 뒤 1년에 2~3편의 장편을 써내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그가 지난해 펴낸 <우리의 소원은 전쟁> 역시 통일 문제를 다룬다. ‘김씨 왕조’ 체제가 붕괴하자, 북한에는 통일과도정부가 들어선다. 통일과도정부는 즉각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핵사찰을 받아들인다. 미국은 휴전선 이북으로, 중국은 압록강 이남으로 내려가지 않기로 상호 합의한다. 북한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된다. ‘조선인민군’은 ‘조선해방군’으로 이름을 바꾼 뒤, 김씨 왕조 체제의 최대 수출품이었던 마약을 독점 공급하는 범죄조직이 된다. 이들은 넘쳐나는 마약을 새로운 시장인 한국에서 판매하려 한다.

이 소설 속 북한은 마약 조직의 힘이 군대 또는 경찰보다 더 센 중남미의 어느 국가처럼 보인다.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 국경을 넘어 영주권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하듯, 초토화된 북한의 주민들은 자본주의 한국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한국에는 북한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인종주의가 발흥한다.

앞에서 통일이든 북한이든 남의 일처럼 얘기했지만,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미국은 막강한 무기를 한반도 안팎에 배치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조성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수시로 “곧 전쟁이 난다”는 풍문이 떠돈다. 실제 북한의 성명이나 미국 정치인의 말만 들으면 곧 전쟁이 터질 것 같다. 그 무서운 말들이 모두 ‘협상용 허풍’일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만, 그 허풍은 우리의 불안감에 젖줄을 대고 또 부풀린다.

19대 대선이 1주일도 안 남았다. 사드를 배치하자 말자, 북한과 대화를 하자 말자, 한국에 전술핵을 들이자 말자 후보 사이에 논쟁이 오간다. 하나같이 중요한 논쟁거리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엔 각론을 넘어선 비전이 필요하다. 사드를 배치하는 궁극적 목적, 북한과 대화하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대선후보들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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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드 코헨의 노래 중 'So Long, Marianne'이란 곡이 있다. 그 마리앤은 실존 인물이었으며 7월 29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코헨은 1960년대 그리스의 한 섬에서 마리앤 이랜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마리앤의 오랜 친구이자 코헨과의 사연을 알고 있는 친구가 코헨에게 연락해 마리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코헨은 두 시간만에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전했다. 친구는 다음날 그 편지를 병상의 마리앤에게 읽어주었다. 마리앤은 편지를 듣고 기뻐했으며, 이틀후 의식을 잃었다.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마리앤. 우리가 정말 늙고 우리의 몸이 허물어져내리는 시간이 왔네요. 나도 곧 당신을 따라갈 것 같아요. 내가 당신 곁에 있으니, 당신이 손을 뻗는다면 내게 닿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언제나 사랑했어요. 당신은 이미 그 모든걸 알고 있을테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네요. 지금, 당신이 좋은 여행을 하길 빌 뿐입니다. 내 오랜 친구, 영원한 사랑이여 안녕. 곧 다시 만나요."


마리앤 이랜의 죽음은 코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그곳엔 이렇게 써있다. "'So Long, Marianne'이란 노래를 통해 불멸의 이름이 된 마리앤 이랜이 지난주 사망했습니다. 이는 마리앤을 잘 알던 이들, 마리앤을 코헨의 뮤즈로만 알던 이들, 그리고 실제 마리앤이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들에게조차 크나큰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애플뮤직 3개월 무료 가입한 김에 오랜만에 찾아 들어야겠다. 기사는 가디언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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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정동야행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흥미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가보지 못했다. 뒤늦게 들으니 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미 대사관저 개방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동에 있는 회사를 다닌 지도 10년을 훌쩍 넘겼다. 이 정도면 주변의 환경을 거저 주어진 것, 혹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만한 시간이지만, 난 여전히 이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을 감사히 여긴다. 특히 요즘 같이 좋은 날이 이어지는 계절이면 기쁨이 더욱 크다. 정동은 많지 않은 급여에 덧붙여진 보너스라고 정신승리를 하기도 한다. 


갑자기 생각난 김에 정동삼락을 꼽아보노라니, 우선은 모두에게 익숙한 덕수궁 돌담길.



  언젠가 야근 후 돌아가는 길에 찍은 듯. 


이화여고 내의 공연장으로 가는 문의 가을 풍경. 들어가면 카페도 있다. 


시민의 요구와 지자체의 자각으로 서울에도 걸을 만한 길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덕수궁 돌담길은 전통적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난 대체로 2호선 시청역을 통해 출퇴근을 하기에, 하루에 이 길을 한 번 이상은 왕복한다. 급한 나머지 빠르게 종종걸음치는 날도 많지만, 다른 이들은 따로 시간을 내 찾는 길이다. 돌담길은 사계절의 운치가 다른데, 특히 가을엔 늘어선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한번은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신혼 부부가 길 한가운데서 웨딩 사진을 찍는 것도 봤다. 평소라면 경적을 울리고 난리쳤을 차들이 잠시는 기다려 주더라. )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남들은 잘 와본 적 없을 밤의 돌담길을 걸을 수도 있다. 최근엔 영국 대사관에 의해 막힌 일부 구간이 130년만에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잘 돼서 덕수궁을 한 바퀴 도는 산책 코스가 빨리 마련되면 좋겠다. 





다음은 인왕산. 산이라고는 하지만 정상까지 오를 여유는 없고,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인왕산 자락을 둘러 수성동계곡을 거쳐 서촌쪽으로 내려와 회사로 돌아오는 코스를 자주 걷는다. 이 경로를 걷는데는 약 1시간이 걸린다. 특히 수성동계곡은 옥인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 2012년 복원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오세훈 시장의 최대 치적"이라고 말하고 다니곤 한다. 겸재 정선이 수백년 전 그렸던 그 풍경을 똑같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최근엔 이런 산책로도 마련됐다. 




수성동계곡을 지나 서촌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있는 박노수 화백 가옥의 정원. 박 화백이 사후 기증해 현재 종로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일제시대부터 법원으로 쓰이던 건물로, 법원이 서초동쪽으로 옮겨간 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라 불리는 인상파 화가의 대관 전시를 많이 했으나, 현재의 김홍희 관장이 온 이후로 대관은 거의 하지 않고 자체 기획전을 연다. 그래서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 난 지금의 프로그램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대부분 전시가 무료라서 언제든지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지금은 윤석남 전을 하고 있으며, 다음주부터는 무려 지드래곤(!)을 주제로한 현대 작가들의 협업전이 열릴 예정이다. (오랜만에 아수라장이 벌어질 것 같다)




 한 어린이가 미술관 정원에 있는 청동 인물상의 뒷태를 훔쳐보고 있다. 배형경 작가의 이 인물상은 정원 곳곳에 있으며, 최근엔 정동길 한가운데의 분수대에도 설치됐다. 



그외에도 정동의 좋은 점은 더 있다. 서울도서관, 종로도서관 등이 인접해 있고, 쓸만한 식당도 꽤 있다. 그러나 정동사락이니 정동오락이니 하면 운율이 맞지 않고 더 쓰기도 귀찮으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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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밤중에 응급실에 갈 일이 몇 번은 생긴다는데, 우리는 다행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이 그날이었다. 아이가 샤워를 하던 도중 갑자기 답답하다면서 코를 감싸쥐더라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나는 마침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당장 크게 아픈 것은 아닌 듯해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보자는 의견과 당장 가보자는 의견이 우리 부부와 처가 사이에 갈렸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아내와 아이는 병원으로 향했다. 나 역시 야근을 끝낸 뒤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 소아응급센터로 갔다. 그 시간에도 1호터널은 꽤 막혔다. 싱숭생숭했다. 


먼저 도착한 아내와 아이는 진료와 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응급실과 이비인후과 진료병동을 오갔다. 평소 잠드는 시간을 한참 넘긴 아이는 피로와 진료에 대한 공포로 힘들어했다. 작은 코 속으로 가느다란 내시경을 넣어 살펴볼 때 아이는 온몸에 힘을 주고 반항했다. 결국 엑스레이까지 찍었다. 다행히도 의사들은 별 이상이 없어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늦은 봄밤, 병원앞은 서늘하고 한산했다. 집에 들어와 간단히 씻고 나니 어느덧 1시. 잠들기 전엔 예쁜 그림을 그리려던 꿈에 부풀었던 핑크색 색연필이 난데없이 콧구멍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핑크색 똥이 되어 나온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아이야. 앞으로 부러진 색연필 조각 같은 건 콧구멍 속으로 넣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 와중에 사진 찍은 걸 보면 제 정신을 갖고 있었던 듯. 


다음날의 몇 가지 이야기. 

1. 진료 받는 아이가 심하게 몸부림을 쳐서 달래느라 이런저런 말들을 쏟았다. 오늘 아침 아이는 그 말들을 고스란히 되갚았다. 그래서 메가테릭스는 언제 사줄 거예요? 잘해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울고 불고 하는 와중에 그걸 다 듣고 기억할줄은 몰랐다.


2. 아이는 유치원에서 간밤의 무용담을 자랑할 기대에 부풀었다. 길고 무섭게 생긴 기계를 콧구멍에 넣은 이야기, 엑스레이로 찍은 자기 해골을 본 얘기...


3. 평소 내성적이고 지나친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오히려 조금 걱정을 안겼던 아이가 바깥에서 이런 일을 하고 다닐줄은 몰랐다. '아이가 뭘 하고 다니는줄 알 수 없다'는 건 모든 부모의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아이는 독립적 개체로 자라고 부모는 더 좋은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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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사용해야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름이다. 성별, 국적, 가족 등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야 생득적이라고 하지만, 이름은 그렇지도 않은데 스스로 고르지는 못한다. 물론 필명, 예명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개명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주어진 이름을 평생 갖고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가운데 글자는 돌림자다. 그래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 중 내 이름과 한 글자만 다른 사람들이 꽤 있다. (내 성씨의 본관은 하나 뿐이다)


근래 내 이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SNS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한 마디씩 하며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KBS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주인공인 신입PD의 이름이 '백승찬'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나(물론 2년전에도 이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죠), 극중 윤여정이 "이름이 어렵네"라고 논평하지 않나, 이런 저런 입길에 오르내린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내가 떠올라 몰입이 안된다는 분(죄송합니다), 반대로 몰입이 잘된다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작가가 나와 친분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친분 전혀 없습니다)


일단 백승찬 역의 김수현하고 나는 성별과 국적 빼고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함께 티비를 보던 아내를 돌아보며 "안녕하세요. 김수현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아내의 얼굴에 나타난 당혹과 분노의 기색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재차 다른 장난을 치려다가 스스로 견딜 수 없어 그만두었다. 


왜 <프로듀사>의 제작진이 김수현에게 '백승찬'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인들에겐 하나같이 "내 이름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어울리는 쿨쉭한 이름"이라고 이야기해 두었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평생을 달고 살아온 이름이 주는 느낌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이 이름은 고풍스럽진 않고, 그렇다고 트렌디하지도 않다. 흔하지는 않지만 너무 특이한 이름도 아니다. 40년 전에 지었어도 그렇고, 40년 뒤에 지어도 그럴 것 같다. 


<프로듀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백승찬'은 "뒤끝있는 소심한 캐릭터이지만 섬세한 면도 있는 예능국의 신입피디"라고 적혀 있다. 작가가 '백승찬'이란 이름이 저런 성격을 암시한다고 여겨 그 이름을 사용했다면, 역시 '스타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네. 저는 저 분과 정반대로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름에도 분명 유행이 있다. 간혹 신생아에게 인기 있는 이름 순위가 나오곤 하는데, 요즘은 '시'나 '서'자가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의 아이만 봐도 그렇다) 우리 부부는 아이 이름을 지을 때 3가지 선택지 중 고민을 했는데, 난 좀 고풍스러운 것으로 선택하려 했으나 아내를 중심으로 한 여론에 밀려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붙여 놓고 7년을 그렇게 부르고 보니 입에 붙었고, 이제 다른 이름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름이란 것은 그렇게 한번 붙이면 떼어낼 수 없는 표식이다. 


별다른 사건이 없다면 나도 지금의 이름을 달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겠지. <프로듀사>의 방영이 끝나고, 김수현의 인기가 많은 해외에서 이 드라마가 방영되고, 한동안 드라마가 회자된 후 김수현은 차기작을 찍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스타가 김수현을 대체하고, 김수현의 옛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거의 사라진 뒤에도 나는 지금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다만 같은 이름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므로, 혹시라도 <프로듀사>를 보고 이 이름을 따라 짓는 부모는 많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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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30일 개설한 이 블로그의 방문자가 어제(2015년 5월 8일) 100만명을 넘었다. 전에도 싸이월드, 이글루스 등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긴 했지만 둘 다 방문자를 의식하고 글을 쓰는 공간은 아니었고 그래서 방문자수도 적었다. 그러나 이 블로그는 다르다. 개인의 공간이라곤 하지만 애초 회사의 권유에 따라 만든 곳이다. 개인과 회사에 동시에 속한다는 이 블로그의 성격 떄문에 컨텐츠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생긴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누구도 그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은 없지만, 언제나 글을 쓸 때 스스로 제약을 둔다.(기자 신분 밝히고 운영하는 SNS에서 '회사 입장과 상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건 면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끔 링크를 걸거나, 나 스스로 SNS에 가끔 링크를 하고, 또 내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찾기에 방문자수도 싸이월드나 이글루스에 비해 현저히 많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회사에서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의 금색 메달로 '2015 경향 파워 블로거'라는 이미지를 달아주었다. 상당히 민망하다)  


2011년에는 월 방문자수가 5000~1만 사이에서 대중없이 오르내렸고, 2012년부터 2014년 9월까진 월 1만 안팎을 꾸준히 유지했다. (2013년 6월은 예외. 트위터에 특정 야구단을 비방하는 글을 써서 분노에 찬 해당 구단의 팬들이 항의방문을 하셨다. 이틀 동안 방문자수가 6만6000.) 그러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2014년 10월부터 갑자기 방문자가 폭증해 그해 12월에는 7만7000까지 올라갔다. 이후로 조금씩 떨어져 지난달에는 4만1000이었다. 난 아직까지 왜 그때 방문자수가 갑자기 늘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글을 많이 쓰거나 인기 있는 주제를 건드린 것도 아닌데. 





아무튼 내가 이렇게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것은 이 매체의 성격이 나의 글쓰기 방향과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글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걸 즐기지 않는 편인 듯하다. 많은 이들이 SNS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분노나 기쁨 같은 순간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지인 혹은 불특정 다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난 그 모든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블로그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겠지만, 솔직히 말해 독자의 반응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감정과 생각을 좀 더 걸러낸 글을 쓰고, 글을 범주화해 모아둘 수 있으며, 간단하게나마 이미지를 편집해 올리거나 페이지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곳이 블로그다. (아쉽게도 디자인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모바일에서도 보기 편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 때문에 쓸 수 있는 스킨이 제한돼 있다) 사실 블로그는 이미 유행이 지나간 형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내가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매번 세상 흐름을 따를 수도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블로그 운영은 계속할 것 같다. 


그동안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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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몇 번 <요괴워치>를 봤다. 이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서 접한 상태였다. 뭔가 싶어서 봤는데.


'은근히 재밌다'고 말하는 건 솔직하지 않다. '상당히 재밌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작품 전후의 맥락을 모르고 봤는데도 오랜 시간 피식거리며 웃으며 봤다. 아이도 이 유머를 이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본 설정은 '우리 생활 속 일어나는 기이한 일은 모두 요괴의 장난 때문'이라는 것. 보통 사람은 그러한 일이 요괴 때문인지 모르는 채 넘어가지만, 요괴 워치를 가진 소년이 이를 알아챈다. 그리고 자신의 시계 속에 봉인된 또다른 요괴를 소환해 말썽을 부린 요괴와 대결을 시키고, 이기면 그 요괴를 상징하는 코인을 얻는다. 그러면 다음번 필요할 때 그 요괴를 소환할 수 있다. 


한국어의 '요괴'라는 어감 때문에 '요괴 장난'이라고 하면 꽤 심각한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갑자기 방귀가 나오는 건 뽕쟁이라는 요괴의 장난이다. 소년은 이 요괴를 벌하려다가 도리어 방귀를 참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옥상으로 뽕쟁이를 불러내 대결을 한다. 소년은 뽕쟁이에게 고구마를 먹여 대결을 이긴다. 고구마를 먹고 방귀를 끼기 시작한 뽕쟁이가 그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에피소드에는 주인공의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자꾸만 음식을 집어먹는다. 아들에겐 못 먹게 하면서, 자기가 만든 이런저런 반찬들을 자꾸 하나씩 먹어버린다. 이것 역시 음식을 중간에 집어먹게 만드는 요괴의 장난. 주인공 소년은 '공복노인'이라는 요괴를 소환해 집어먹기 요괴와 대결시킨다. 공복노인은 아예 큰 공복을 느끼게 하는 요괴로서, 엄마가 도중에 조금씩 집어먹기를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을 먹어버리게 만든다. 이것으로 공복노인의 승리. 엄마와 주인공 소년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퇴근한 아빠는 컵라면을 끓여먹는다는 내용. 



오늘 아이가 구입한 지바냥 프라모델. 자동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의 요괴라고 한다.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급인 것 같다.   


갖가지 속성을 가진 온갖 판타지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포켓 몬스터 같기도 하다. 사실 한국 전통에서 요괴 같은 상상 속 존재는 대체로 인간을 해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기에, 이를 이용해 현대의 대중문화 콘텐츠로 꾸밀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본은 기본적으로는 동물 모양에서 따온 요괴, 몬스터를 친숙하게 다룬다. <요괴 워치> 같은 애니메이션도 그렇다. 이런 정서, 문화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특히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수밖에 없다. 갓파, 엘프, 호빗니, 토토로 같은 것들이 있는 편이 없는 편보단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드는데 유리할 것임에는 분명하니까. 


<요괴 워치>는 근 몇 년 사이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 <모든 것은 빛난다>의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에 대해 경외감을 가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와 같은 태도를 찬양한다. 헬레네가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이유는 '금빛의 아프로디테'에 호응한 것 뿐이기에, 헬레네의 남편조차 그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드는 순간에도 수면을 관장하는 신에게 감사와 당부의 기도를 올렸다. 삶의 모든 사건에는 신의 의지가 반영돼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매순간을 열심히 살면 된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현대인의 정신이 빠지기 쉬운 허무, 무의미는 낯선 질병이었다.  


<요괴 워치>는 <모든 것은 빛난다>가 극찬한 세계관을 조금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내 행동이 전적으로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 이해하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볍게는 나쁜 습관, 사소한 일탈에서 크게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의지가 박약하거나 악의가 발현된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뻔뻔한 인간이 될까. 아니면 근대 이후의 인간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자율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조금 더 겸손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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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EPL 첼시 경기, 아내는 tvN의 <더 지니어스: 블랙 가넷> 뿐이다. 아내가 볼 때 함께 <더 지니어스: 블랙 가넷>를 보곤 하는데, 최근 두 차례의 방영분은 꽤 인상 깊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번 규칙이 복잡한 게임을 제시한 뒤 출연자들을 하나씩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종 탈락자를 정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2명이 데스 매치를 벌인다. 매번 나오는 게임의 규칙이 복잡해, 나같은 시청자는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참가자들도 게임의 핵심을 신속히 파악해 플레이하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한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에 편을 먹거나 견제하거나 속이는 심리전이 벌어진다. 명석한 두뇌, 강한 정신력, 다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친화력 혹은 카리스마를 두루 갖춰야 게임에 유리하다. 


젊은 여성 참가자 2명이 있었다. 아나운서 신아영과 배우 하연주다. 신아영은 하버드대 출신이고, 하연주는 멘사 회원이다. 그러나 둘은 여러 회차를 거듭해도 게임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남자 출연자들은 굳이 여성 출연자를 지목해 떨어뜨리지 않는 '신사도'를 발휘했다. 그러나 신사도도 초중반 뿐이다. 후반부로 가면 이 여성 출연자들도 어차피 탈락의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연주는 마지막 남은 5명 중 홍일점이었다. 데스 매치를 벌여야 했던 프로 포커 플레이어 김유현은 자신의 상대로 하연주를 지목했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기 위해선 가장 약한 사람을 골라 대결해야했고, 참가자는 물론 시청자도 하연주가 그 대상이 되리라 쉽게 예상했다. 게다가 게임은 김유현이 바로 직전 회차에서 또다른 여성 참가자 신아영을 손쉽게 이긴 '기억의 미로'였다. 누구나 김유현이 이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하연주는 보는 사람이 "쟤 왜 저래?" 할 정도로 이상한 수를 써 김유현을 혼란에 빠뜨렸다. 김유현은 당황했고 스스로 무너졌다. 스튜디오를 떠날 준비를 해야할 것으로 여겨지던 약자의 숨은 한 방이었다. 



하연주, sks 꽃병풍




다음회인 10화에서 하연주는 다시 장동민과 데스 매치를 벌였다. 이날 장동민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정신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데스 매치를 하면서도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악수를 두었고, 하연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군'을 불렀다. 탈락이 확실시되던 장동민은 말도 안되는 한 수를 던졌다.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이 "내 밑에 헬리콥터가 대기중이다"라고 외치는 꼴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그런 허풍에 개의치 않고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하연주는 생각했다. 저 수는 엄청난 묘수가 아닐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임의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장동민은 <더 지니어스>가 진행되는 내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결국 하연주는 장동민의 허풍에 말려 악수를 두었고, 장동민은 바로 다음 턴에 게임을 끝냈다. 


하연주는 인터뷰에서 울면서 말했다. "스스로를 못 믿은 것 같아요."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면, 그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임을 확신했다면, 하연주는 2회 연속 이변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과대평가,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가 패배를 불렀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중 요즘 사람들의 경향이 어디에 치우쳐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일견 과대평가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시선을 끈다는 세상 이치를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못믿는 사람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고도 중요하다. 


11회에는 한의사 최연승이 카이스트 학생 오현민과 데스 매치를 벌였다. 최연승은 메인 게임에서 강한 모습은 보이지 못했으나, 정신의 회복탄력성이 좋아 쉽게 탈락하지 않는 참가자였다. 반면 출연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오현민은 매번 게임의 핵심을 즉각에 파악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이날 데스 매치에서도 오현민은 압도적인 게임 이해력으로 최연승을 쉽게 눌렀다. 


최연승은 탈락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도 현민이처럼 당당한 나날이 있었는데 하필 그런게 사라져가는 시점에 지니어스에 출연했어요. 평범함으로 비범함을 이기려 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학생 오현민(위), 사회인 최연승 



최연승은 과학고 출신에 한의대에 진학해 강남에 한의원을 열었다. 세속적 기준에서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평범함' 운운하는 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교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수백억 대 자산가라도 재벌 옆에 서면 움추러든다. 게다가 최연승은 30대에 접어들었다. 그에겐 20대 초반으로 절정의 비상한 두뇌를 자랑하는 오현민이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하연주의 발언이 교훈적이었다면, 최연승의 발언은 감성적이다. 누구나 지적, 육체적으로 찬란한 시기를 갖는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자신이 찬란하다는 사실을 모른채 그 시기를 넘긴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바로 그때가 자신의 절정기였음을 알아채지만 때는 늦었다. 


물론 세월이 주는 선물도 적지 않다. 관계에 대한 적응력, 상황에 대한 이해력, 자기 조절 능력 등은 세월이 흘러 많은 경험을 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능력들이다. 최연승은 이런 능력으로 게임에 이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힘 역시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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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도 체력과 같이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야 한다. 끝없이 새로운 감수성을 계발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구려'진다. 본인은 자신의 감수성이 여전히 쿨한 줄 알겠지만,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한 감수성은 그저 구닥다리다. 


그러나 새 자극에도 좀처럼 바뀌지 않은 채 한때의 수준으로 고착화하는 감수성이 있다. 음악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새 음악을 찾아듣고 좋아하지만, 한창 음악을 들을 나이인 10대 때 듣던 음악은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한다. 난 근 몇 년 사이 주로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었지만, 지금도 여드름 난 소년 시절의 음악들(건스 앤 로지즈, 메탈리카, 레드 제플린, 그리고 이건 부끄럽지만 스키드 로 등등등)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음악을 들은 세대들은 신해철에게 추억 한 자락의 빚을 졌다. 오늘밤 들른 엘피바에서는 한 곡 건너 한 곡씩 신해철의 음악이 나왔다. 동행한 동료 한 명이 스마트폰 뉴스 알림 기능으로 신해철의 죽음 속보를 전한 뒤였다. 


신해철의 노래를 듣지 않은 지 10년도 넘었지만, 난 여전히 오늘의 술집에서 나오는 노래의 가사를 외울 수 있었다. 무한궤도 시절, 솔로 시절, 넥스트 시절을 거치며 나의 몸과 마음도 조금씩 자랐다. 비교적 짧게 활동한 뒤 은퇴를 선언한 서태지는 음악적으로 더욱 강렬하고 세련됐지만, 난 그와 함께 성장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한 가수만이 나와 한 세월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무한궤도의 멤버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1988년의 신해철 



지금 다시 들으면 신해철의 가사는 자의식 과잉이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는 가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재밌는건 내가 이 대목을 포함한 노래 후반부의 랩을 전부 외우고 있다는 사실. 


요즘 이런 가사를 쓰면 그냥 '허세'란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말하던 시대였다.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고 믿는 시대였다. 실제론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를 따지면서도, 그렇게 대놓고 밝히는 걸 조금 부끄러워하던 시대였다. 


오늘 술자리에 동석한 또다른 동료는 항상 노래방 마지막 곡으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합창했다고 증언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면서도 마지막엔 서로 어깨를 겯고 이런 무시무시한 다짐을 하던 시대였다. 


우스꽝스럽다고 해도 좋다. 그게 20년 전의 우리였다. 난 <응답하라 1994>를 한 회도 시청한 적이 없다. 그때는 나의 시기였고, 그곳은 내 장소였다. 내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내 도덕성이 가장 엄격하고, 내 욕망이 가장 강렬했던 1994. 그때, 그곳이 누군가에 의해 재현되는 걸 볼 필요가 없었다. 낯간지럽기도 했다. 그저 요즘 드라마를 거의 안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난 지난 자리는 돌아보지 않지만, 신해철의 부음을 접한 오늘만큼은 1994년을 떠올려보고 싶다. 신해철이 명민했고, 시대는 꿈틀거렸고, 나도 더 젊었던 그때. 때이른 죽음을 맞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 난 생전 신해철을 한 번 인터뷰했다. 그는 여느 한국의 가수들과 달리 이런저런 사회 현안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내놓는 이였다. 2005년 6월 8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아래 인터뷰는 인터넷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것이었다. 벌써 10여년 전 일인데, 신해철의 말을 들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가수 신해철(37)이 인터넷 매체의 선정성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MBC 표준FM‘고스트 스테이션’의 1시간 방송 시간 중 26분을 할애해 인터넷 매체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했다. 손호영, 이병헌, 양희은, 이문열씨 관련 보도 내용을 예로 들며 “요즘 매스미디어를 보면 미쳤거나 덜 떨어졌거나 아니면 뇌를 다쳤거나 그런 상황인 것 같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네티즌들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거나, 기초적인 취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기사를 내보내는 작금의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후 공교롭게도 신해철 자신도 왜곡 보도의 피해자가 됐다. 부산 부경대에서 한 문화강연 중 ‘지난 대선 당시 정치 참여를 후회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후회한다. 하지만 후회할 줄 알고도 정치적 소신에 따라 참여했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이 답변이 지역 일간지에 의해 ‘신해철, 정치참여 후회한다’는 식으로 요약 보도됐고, 다시 보수성향 인터넷 매체에 의해 ‘신해철, 노무현 후보 지지 후회한다’고 왜곡 보도됐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신해철을 만났다. 그는 저녁부터 이어질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촬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왜 인터넷 언론 비판 발언을 했나? 

“각 포털이 신생 인터넷 언론에 자리를 내주면서 광태에 가까운 폭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의 조폭적 행태다. 우리나라의 ‘떼거리문화’ 경향과 이들 언론이 결합하니까 상황이 심각해졌다. 무책임하게 긁는(기사를 쓰는) 놈, 거기 몰려가는 놈이 모여 가관이다. 이들에게 제일 재미있는 타깃이 연예인이다.” 

-며칠후 당신도 피해자가 됐다. 
“인터넷 언론들은 한마디로 게으르다. 취재는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놀고 있다는 게 티난다. 예를 들어 양희은씨의 ‘간호조무사 비하 발언’ 사건이 있다. 당사자는 하지도 않은 말이었는데 게시판의 잘못된 글을 보고 기사화했다.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 관계자에게 전화 한통 안했다. 내게도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역시 원인은 인터넷의 연예 매체 난립인가? 
“대중들이 네트의 폭도가 되고 있다. 여기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이 매스미디어에서 활약해야 하는데, 오히려 폭도들에게 가서 붙는다. 반대 쪽에 서면 따돌림당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초딩’(초등학생의 속어.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을 일컬음)들은 인간이 가진 쾌감 중에 가장 비열한 부분에서 날뛰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휘두른 칼날은 결국 자신의 배를 찌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예인이 쉽게 조롱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물론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에서도 타블로이드지의 행태는 가관이다. 결국 다이애나를 죽인 것은 타블로이드지였다. 문제는 그렇게 단죄함으로써 사람을 매장하려고 하는가이다. 지금 영국 대중이 가장 ‘씹기’ 좋아하는 사람은 데이비드 베컴이다. 하지만 베컴을 놀리면서도 그를 국가대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비웃으면 비웃음으로 끝나야 하는데, ‘이 인간을 TV에 못나오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까지 정색하고 얘기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연예인이 자주 수난받는 이유는? 
“근대화 이전부터 연예인은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뿌리 깊은 인식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나라 대중보다 큰 분노, 소외감, 박탈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불특정다수에 대한 분노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연예인에게 흘러간다.” 

-대책은 있나? 
“연예인들의 권리가 매스미디어 앞에서 함몰되면,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도 함몰된다. 총체적인 난국이니까 총체적인 싸움이 돼야 한다.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시민의식이 늘어나면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들이 싸우지 않고서 무슨 상황이 바뀔 것인가. 이번 내 경우도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연예인 생활 그만하려고 그러느냐’며 말리지만, 싸우지 않으면 지나가는 누구나 한대씩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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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로 시베리아에 7박8일간 다녀왔다. 여정에는 13시간, 17시간의 버스 여정이 각각 한 차례씩 있었으니, 이틀은 그냥 버스 안에서 보낸 셈이다. 자다 깨니 나무, 자다 깨니 벌판, 자다 깨니 아까 그 나무... 정말 넓긴 넓었다. 카메라에 담아본 풍경을 올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우스트일림스크까지 가는 17시간의 버스 여정 중 잠시 내려 찍음. 노르스름하게 물든 것이 자작나무다. 하얀 줄기에 손을 대면 하얀 가루가 묻어나온다. 



버스 창밖으로 찍은 풍경.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땅이다. 




우스트일림스크의 숙소에서 바라본 앙가라강과 시가지. 300여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고, 그 중 하나만이 빠져나와 북으로 흐르는데 그 강이 앙가라 강이다. 





앙가라 강에 있는 세 개의 수력발전소중 가장 북쪽에 있는 우스크일림스크 수력발전소.




우스트일림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길. 돌아올 때는 조금 서둘러서 13시간밖에(!) 안걸렸다.



이르쿠츠크 공과대학의 자그마한 캠퍼스. 학생들이 담배를 피면서 노닥거리고 있다. 



1

마지막 일정이었던 바이칼호수 방문. 좌판 주인이 자리를 뜬 사이 찍었다. 모터보트가 떠나간 작은 선착장. 




바이칼호에서 호연지기를 발휘하는 아라사 아가씨와 객기를 부리는 아저씨. 햇빛이 저래도 온도는 몹씨 차다. 



늦은 오후, 역광의 바이칼. 



춘원 이광수(1892~1950)가 시베리아를 여행한 것은 그가 23세였던 1914년이었다. 1913년 세계여행을 하겠다며 재직중이던 오산학교를 떠난 춘원은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여비가 떨어져 바이칼호 근처에 머물렀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춘원의 여행은 그대로 끝났다. 


비록 도중에 멈추긴 했지만 춘원의 여행이 완전히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춘원은 이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1933년 <유정>을 발표했다. 당시 춘원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시국은 어수선했고 아내와는 불화를 겪었으며 제자뻘 되는 여성과 스캔들이 불거졌다. 춘원은 “순전히 정으로만 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일성과 함께 <유정>을 발표했다. 


친구가 세상을 뜨면서 맡긴 딸뻘 여성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유정>은 요즘 느낌으로는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지위와 명망을 갖춘 최석은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 남정임에게 흔들린다. 가정,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최석은 식민지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하고, 남정임 역시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뒤늦게 최석을 찾아 나선다. 


이광수의 시베리아는 이렇게 광막한 고독의 땅이었다. 그곳에서라면 세속의 혼잡한 일, 감정 따위는 잊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시베리아는 머나먼 유배지였다. 낡은 제정 사회를 뒤엎으려다가 좌절한 청년 장교들(데카브리스트), 남편과 함께하려고 귀족신분까지 버린 채 유배길에 동행한 아내들이 향한 곳이 시베리아였다. 


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였다. 데카브리스트들이 서유럽에서 일찌감치 받아들인 자유주의를 퍼트린 덕에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린다. 그러나 직접 가본 그곳은 역시 ‘파리’보다는 ‘시베리아’였다. 인천에서 대한항공 주2회, 시베리아항공 주1회의 직항편이 있는 국제도시라고는 하지만, 공항은 시골 간이역처럼 소박했고 다운타운도 한국의 시골 읍내 같았다. 


■버스타고 17시간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 북단의 소도시 우스트일림스크까지 950㎞를 버스로 달려봤다. 나무 사이로 뻗은 끝없는 길이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자작나무가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국의 구불구불한 소나무와 달리 시베리아 소나무는 반듯한 자세로 하늘 향해 치솟아 있었다. 하얀 자작나무를 만지면 손에도 하얀 가루가 묻어나왔다. 


<유정>의 최석과 남정임은 썰매를 타고 눈 덮인 벌판을 한없이 달렸다. <유정>만 읽으면 시베리아에는 겨울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사계가 있다. 9월 하순의 시베리아는 일찌감치 늦가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자작나무는 노랗게 물들인 이파리를 털어낼 준비를 하는 참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감상에 젖는 것은 처음 두어 시간이었다. 눈을 아무리 붙였다 떠도 풍경이 똑같았다. 나무 아니면 들, 들 아니면 나무. 시베리아에는 산이 없다. 이미 봤던 것처럼 보이는 들이나 나무가 몇 시간 후에도 똑같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나무의 구성은 미세하게 달라졌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자작나무가 드물어지고 소나무가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누군가 알려줘서 눈치챈 것일뿐 그곳의 숲과 들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달려도 마찬가지 모습으로 펼쳐진 것 같았다. 운전기사가 2명이 탈 때부터 심상치 않긴 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거리가 950㎞다. 분단된 반도에 사는 사람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거리다. 


기사는 한국인 승객 중 알아듣는 이가 아무도 없는 러시아 영화를 틀었다. 휴식을 취하는 다른 기사가 보기 위한 것 같았다. 교통경찰도, 속도탐지기도 없었지만 버스는 꾸준히 시속 80㎞대를 유지했다. 도로가 포장돼 있긴 했지만 버스는 가끔 심하게 덜컹거렸다. 중국산 버스의 문제인지, 도로 문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서너 시간마다 차를 세우고 휴게소에 들렀다.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요의를 해결했다. 그러나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던 일행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나왔다. 차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럴 바에는 자작나무 숲에서 해결하는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일행은 한적한 길가에 버스를 대고 자작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호사를 누렸다. 


가끔 불이 난 흔적이 있었다. 자연발화에 의한 불이라고 한다. 그곳에선 불이 나도 끄지 않는다고 한다. 사방이 나무라 끌 수 없을 뿐더러 소방차가 출동하는 시간도 한없이 걸린다. 그저 스스로 타다가 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불타 죽은 나무 옆에는 여린 묘목들이 어느새 솟아 올라 있었다. 스스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시베리아 숲의 이치다. 


오후 8시가 넘어가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버스는 왕복 2차선 도로 전방으로 뻗어나가는 희미한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 주행했다. 가로등도, 인가의 불빛도 없었다. 저녁에는 ‘과연 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들더니 밤에는 체념이 밀려왔다. 3년 전 스마트폰에 넣어두었으나 한 번도 듣지 않았던 브루크너의 기나긴 9번 교향곡을 찾아 들었다. 여전히 버스는 어둠 속이었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쯤 버스가 멈춰섰다. 출발 오전 9시 30분, 도착 이튿날 오전 2시 30분. 총 17시간이었다. 하긴, 이 정도를 달리고 ‘시베리아의 광막함’을 운운하는건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우스트일림스크 북단으로 사람은 없지만 숲과 툰드라 지대가 2000㎞ 이상 뻗어 있다. 그 위로는 북극이다.  


■바다인가 호수인가, 바이칼호

바이칼호는 ‘시베리아의 진주’다. 2500만년 전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칼호는 이르쿠츠크에서 남쪽으로 60㎞ 정도에 위치해있다. 바이칼호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일행 중 한 명이 탄식하듯 말했다. “저게 어떻게 호수냐.” 


말 그대로였다. 누군가 호수인지 확인하겠다며 물을 찍어 맛보았다. 밍밍하다고 했다. 그래도 믿기 힘들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나는 바이칼호는 바다를 방불케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세상 민물의 20%를 담고 있다는 호수이니 그럴만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지만 물은 제법 차가웠다. 그곳에도 호연지기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덩치 큰 러시아 남자가 수영복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무로 짠 휴식처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음식을 사오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훈제 오물(청어와 비슷한 바이칼호 특산 생선) 안주를 곁들여 바이칼 맥주를 마시며 일망무제 호수와 그 속의 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끝없는 물 풍경에 지친 듯, 돌맹이를 가공한 장신구나 음식을 파는 장터를 떠들석하게 오갔다. 


시베리아에선 들, 나무, 물이 모두 아득했다. 사람의 흔적이 많이 닿지 않아서인지 ‘러시아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광수의 인물들도 러시아로 도피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없는 곳, 인습이니 윤리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는 곳을 찾았다. 이광수의 상상력은 “가이없는 벌판”이라고 묘사되는 시베리아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인천에서 4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이르쿠츠크 공항에 내린다. 이르쿠츠크는 한국과 시차도 없다. 이제 지구는 하나가 됐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사랑의 정념을 억누르기 위해 도피할 곳을 찾기란 이광수의 시대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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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뽀로로, 타요, 폴리를 거쳐 또봇의 세계에 입문했다. 또봇은 남자 아이들의 로망인 변신 자동차 로봇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동의 1위였던 레고를 제치고 대형할인점 완구 판매 1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있었다. 또봇은 꽤 인기가 있어 어느덧 14시즌까지 방영됐으며, 얼마전에는 여름방학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는 요즘 파워레인저를 본다. 또봇은 "시시하다"고 했다. IPTV에 무료로 나와있는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는데, 캡틴포스를 독파했고, 요즘은 미라클포스를 보고 있다. 케이블 어린이 채널에서는 다이노포스 시리즈를 방영중이다. 


그러나 오늘 하고픈 말은 컨텐츠가 아니라 그 부가 상품에 관한 것이다. 아이는 또봇 장난감을 꽤 가지고 있다. 또봇X, 또봇Y, 또봇Z, 또봇W, 또봇D, 또봇R, 쿼트란, 또봇 제로 등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꽤 많다. 칼이니 벨트니 종이접기니 하는 상품은 빼고서도 말이다. 이 로봇들은 대략 4만원~6만원이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또봇을 로봇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변신시켜주다 보면 어른이 먼저 화가 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봇의 매뉴얼은 많아봐야 앞 뒤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이다. 길게 펼친다 해도 4페이지 이상은 아니다. 제조사측에서는 이해가 쉽게 설명했다고 여기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리 매뉴얼을 따라 해도 변신이 잘 안되거나 동작이 뻣뻣할 때가 있다. 어른이 이 정도일인진데 이 완구를 직접 가지고놀 어린이들이라면 조작이 더 어렵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억지로 변신을 시키려다가 완구가 파손되는 경우도 있다. 포장 상자 한쪽에 있는 QR마크를 찍으면 변신동영상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매뉴얼로 변신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데 대한 변명이라고 봐야 한다. 




또봇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D(위)와 W.


물론 내가 손재주가 없거나 매뉴얼을 읽는 능력이 둔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엊그제 아이가 뜯은 파워레인저 티라노킹을 만지면서 또봇 매뉴얼에 대한 내 불만에는 근거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티라노킹은 또봇보다 조작이 쉬운데 매뉴얼의 분량은 훨씬 많은 16쪽에 달한다. 아마 일본에서 제작된 매뉴얼의 번역본일 것 같은데, 꼼꼼하게 읽고 따라하다보면 변신 혹은 합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당연히 동영상을 참조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알기 쉽고 상세한 매뉴얼을 작성하는 능력은 제품의 완성도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폰만 봐도 그렇다. 어린이도 포장을 뜯어 작동을 시키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아이폰에 관한한 모든 것이 직관적이어서 사용이 쉽다. 


사실 콘텐츠 자체는 또봇이 더 마음에 든다. 어른들이 보면 오히려 좋아할만한 이상하고 시니컬한 유머도 있고, 심지어 재벌의 지역상권 침해에 대한 풍자도 목격한 적이 있다. 로봇 마니아들 사이에는 디자인이 별로라는 말도 있는 듯하지만, 난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나랑 싸우자"를 연발하는 파워레인저에 호감이 덜 간다.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졸라 또봇을 얻어냈다. 그 아이들이 장난감 제조 기술에 실망해 조국에 환멸을 느낀다거나, 매뉴얼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독해력을 저주해 학업을 등한시 한다거나, 심지어 무리하게 변신을 시키다 부서진 장난감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는가. 콘텐츠,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잘 알려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좋은 리뷰어, 좋은 마케터, 좋은 기자가 필요한 이유다. 



파워레인저 티라노킹. 로봇 공룡 3마리가 합체한 모습이다. 모두 합체된 순간 삼바 음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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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가 들은 대화다. 둘은 부부로 추정됐다. 남녀는 연예인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화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로 이어졌다. 


남: 엄태웅이 이민정하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나왔네. 

여: 봤어?

남: 음...기억이 안나. 

여: 누구랑 봤어?

남: 안본 것 같아. 


여자는 3초 정도 침묵하다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이렇게 가정의 평화는 유지됐다. 


기억력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좋다고들 여기지만, 때론 잊어도 좋은 기억들이 있다. '트라우마'라 할만한 끔찍한 사건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50년전, 100년전, 200년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자극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그러한 자극들은 우리의 기억에 자꾸만 쌓인다. 그 많은 기억을 고스란히 쌓아두는 인간은 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쓸데없는 프로그램과 파일을 잔뜩 간직한 채 버벅대는 컴퓨터처럼.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기억에 연관된 드라마 한 편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채널4에서 방영된 '블랙 미러' 시즌 1의 세번째 에피소드 '당신의 모든 역사'다. 이 에피소드 속에서 사람들은 귀 뒤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저장할 수 있는 칩을 박아두었다. 그리고 확인이 필요할 때마다 조그만 리모컨을 이용해 자신의 눈 안에서 재생하거나 아니면 브라운관에 띄워 타인과 함께 본다. 예를 들어 입사 면접을 하고 돌아온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면접 영상을 보여주며 평가를 부탁한다. 아이를 보모에게 맡긴 뒤 외출하고 돌아온 부모는 아이의 시각을 재생해 보모의 학대 행위가 있었는지 살핀다. 공항의 검색원은 "지난 24시간의 기억을 64배속으로 돌려 주시겠습니까" 같은 요구를 한다. 



과거 기억을 재생하기 위한 인터페이스. 그리 쿨하진 않다. 


기술은 신식이지만 감정은 구식이다. 이 에피소드의 갈등은 지금까지 남녀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작품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즉 질투와 의심이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 이웃이 초대한 파티에 갔다가 아내와 주인 남자 사이의 시선에 묘한 기류가 흐름을 느낀다. 주인 남자의 시시한 농담에 아내는 유쾌하게 반응하고, 주인 남자와 스스럼없는 미소를 짓던 아내는 자신을 보고 얼굴이 굳는다. 남편의 느낌일 뿐일까. 과거의 남편 같으면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돌이키고 말겠지만, 이 에피소드의 남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고스란히 재생할 수 있다. 그는 주인 남자의 농담에 아내가 크게 웃는 장면을 브라운관에 재생한 뒤 보모에게 "저 농담이 웃긴지 안웃긴지 말해봐"라고 평가를 부탁한다.


남편은 집요한 탐색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몇 가지 장면들을 찾아내 아내를 추궁한다. 그리고 아내의 과거 영상을 재생한다. 마치 "나랑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랑 만났어? 그 남자 좋았어?"라고 집요하게 물은 뒤 답을 받아내는 사람처럼.



뜨거웠던 옛 추억들을 각자 재생한 채 관계하는 부부


찌질한 남자들의 행동은 기술의 발전과 상관 없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단 걸까. 내가 지하철에서 만난 부부와 달리, <블랙 미러>의 남자는 잊어도 좋은 걸, 알지 않아도 좋은 걸 기억하고 알아내려 했다. 


진실 앞에 눈감는 건 비겁한 행동이다. 불편하다 해도 알아야할 과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격언들이 남녀 사이에도 반드시 적용되는 건 아니다. 남녀 문제에 있어 진실은 상대적이다. 과거의 진실한 감정이 현재에도 진실하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현재의 관계가 그보다 진실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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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쓰던 물건들이 하나 둘씩 정리되고 있다. 따져보면 모빌, 기저귀, 젖병 등은 진작 처분됐지만, 사용한 기간이 적거나 크기가 작아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처분한 물건들은 아이가 꽤 오랜 기간 사용한데다가 크기가 커서 물건이 사라진 공간이나 느낌이 각별하다. 


먼저 부스터. (아마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모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부스터는 일종의 보조 의자다. 몸집이 작은 아이가 성인 의자에도 앉을 수 있도록 돕는 기구다. 여기저기 들고다니며 아이를 앉힐 수도 있다. 우리도 그랬다. 아이가 홀로 앉을만큼 허리 힘이 받쳐주지 않았을 때, 부스터를 들고가 거기에 앉혀두곤 했다. 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 같은 곳에 갈 때 그랬다.  


다행히도 아이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다. 이 부스터에 앉아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었을까. 쌀밥, 죽, 시리얼, 키위, 사과, 저지방 우유,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 볶은 멸치, 두부, 김부각, 복숭아 요거트... 많이 먹고 많이 흘려댔다.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음식을 엎고, 옷을 더럽혔다. 한 번 밥을 먹고 나면 식탁 주변에 밥풀이나 반찬 부스러기가 꽤나 떨어져 있어서, 식탁을 훔치는 것은 물론 바닥까지 청소해야 했다. 


그렇던 아이가 이제 부스터 없이도 의자에 앉을 수 있다. 외식을 할 때도 어린이 의자가 마련돼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의자에 부스터를 고정시키는 끈을 풀고 나니 마치 오래 한자리에 있었던 쇼파를 들기라도 한 듯, 그 밑에 이런저런 찌꺼기들이 가득했다. 아마 요란했던, 하지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이 유아기에 거쳤던 그런 식사의 흔적들이겠다. 


이제 아이는 음식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 손가락을 끼우는 고리가 있긴 하지만 젓가락을 사용한다. 어른처럼 국그릇을 들고 후루룩 들이키는 모습을 보인지도 꽤 오래 됐다. 식탁이 아이의 앉은키에 조금 높아보이긴 하지만, 부스터에 앉으면 오히려 더 불편할 것이다. 


부스터 없이 함께 식사를 시작한 이후, 우리는 진짜 '겸상'을 하고 있다. 아이는 누군가 밥을 떠먹여 주거나 자리를 따로 마련해줘야 할 정도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란히 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다. 같은 음식을 두고 숟가락을 드는 우리의 눈높이는 같다.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또 하나 처분한 물건은 미끄럼틀이다. 이건 정말 컸다. 거실의 절반을 가로지를 정도였으니까. 그 크기를 미처 생각 못하고 주문한 뒤 설치했을 때는 그리 잘 꾸며지지도 않았던 거실의 정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많은 어색한 것들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지나니 미끄럼틀은 마치 원래 거기에 붙박이로 있었던 것처럼 우리 집의 일부가 됐다.  


야심차게 들여놨지만 사실 아이는 미끄럼틀을 잘 타지 않았다. 차라리 미끄럼틀을 이용한 장난을 더 많이 쳤다고 할 수 있겠다. 미끄럼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거나(그래서 미끄럼을 타면 바지에 크레파스를 묻히거나), 미끄럼틀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미끄럼틀 아래의 공간을 은신처로 삼아 장난을 치거나, 미끄럼틀 위에 올라서 아빠가 절벽을 타고 올라오게 하는 인형을 막아내는 놀이를 하거나, 급기야 최근에는 미끄럼틀 위에서 선 채로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놀이를 선보여 엄마를 놀라게 하거나.


미끄럼틀을 처분하기 전 아이에게 혹시나 하고 물었다. 어떤 동생에게 주려고 하는네 섭섭하지 않겠느냐고.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요"라고 했다. 아내는 육아 관련 카페에 '드림'글을 올렸고, 글을 올리자마자 1시간만에 동네 주민이 나타나 미끄럼틀을 가져갔다. 


"괜찮아요"라고 한 아이의 진짜 마음을 나는 모르겠다.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이제 미끄럼틀 같은 것에 집착해 떼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거실 한 켠이 텅 비어, 마치 이사를 하다만 것 같은 내 마음은 어쩐지 허전하다. 저 텅 빈 한 구석에 무언가 가구를 사서 들여놔야 할 것 같은 느낌. 아무튼 아이는 미끄럼틀을 찾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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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에 한 번 일요일 근무를 하고, 그 주는 금요일 휴무를 한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이렇게 3주에 한 번 있는 금요일은 아침에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가 올 때까지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가끔 영화를 보고, 남는 시간엔 분리수거,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한다. 밀린 외고를 쓸 때도 있었고. 


그런데 오늘은 마침 아이 유치원에서 1년에 한 번인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참관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이럴 때 의무를 느낀다. 난 2시까지 유치원에 가야했다. 


오전엔 왕십리 아이맥스관에서 <그래비티>를 봤다. 무려 1만8000원. 여느 영화 두 편 값이다. 그나마 왕십리 아이맥스관은 인기가 좋아서 어제 예매했음해도 자리가 좋지 않았다. 영화는 내 예상만큼 감정을 움직이진 않았다. 그러나 감정은 움직이진 않았지만 감탄은 했다. 감탄의 대상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리함이다. 영화의 주요한 재능들이 브라운관으로 달려가고 있는 시대, 쿠아론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다시 강조한다.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의 막막함, 그곳에서 느끼는 고독과 아름다움을 작은 화면으로 느끼긴 어렵다. 이것은 오직 캄캄하고 넓은 공간, 여러 사람이,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만 다가오는 감동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시각을 넘어선 공감각적 체험을 요구한다. 그걸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나 40인치 브라운관에서 느꼈다고 말하진 말라. 


집에 들렀다 유치원에 가긴 애매한 시간이라 왕십리에서 원치 않는 점심을 먹고 잠실로 향했다. 백화점에 들어가 옷가게 사이를 거닐고, 지하에 내려가선 빵을 샀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석촌호수 주변을 걸었다. 돌계단에 앉아 호수 건너 롯데월드의 놀이기구를 쳐다봤다. 사람들의 괜한 비명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석촌호수에 왔지만 삼전도비를 유심히 본 것도 처음이었다.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인 이 비석은 병자호란 패배후 청의 요구에 의해 조선이 세웠다고 한다. 찾아보니 어리석은 조선의 왕이 위대한 청의 황제에게 실수로 대들었음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설명에는 '굴욕의 역사' 운운하지만, 400년 다 된 일에 대해 그럴 필요 있나 싶다. 사정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갈리아, 게르만, 브리튼을 정복한 로마에게 프랑스, 독일, 영국이 지금까지 '굴욕'을 느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어차피 청 이전까지의 한족 왕조엔 충성을 맹세했던 한반도의 국가들 아니던가. 다만 왕의 명으로 이 글을 써야했던 문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참관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도 애매했다. 집에 들어가려니 잠깐 앉았다가 다시 유치원 버스를 맞이하러 나와야할 것 같았다. 프렌차이즈 카페에 가서 가장 싸면서도 내가 즐기는 '오늘의 커피 숏사이즈'를 시켰다. 별로 맛이 없었지만, 먹다 남은 커피를 굳이 들고 나왔다. 세탁소에 들러 옷을 찾고, 주민센터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하교길의 중, 고교생이 많았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일없이 쏘다닌다. 북촌으로 인사동으로 남한산성으로 걸어다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속내를 드러내고 위선을 떤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 속에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오늘은 만추의 햇빛이 아름다웠고, 바람은 많이 불었다. 야외에 오래 앉아있으면 조금 쌀쌀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햇빛이라면 감수할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날씨. 어떤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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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20일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향년 58세. 


'Too young to die, too old to rock'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폴 매카트니가 60~70이 되도록 월드 투어를 도는 세상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롤링 스톤스의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를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짝 마른 할배들이 2시간동안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고 소리지른다. 젊었을 때 건강에 좋지 않은 '짓'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타고난 사람들은 그런 것 상관없나보다)


난 들국화의 전성기를 동시대에 경험한 청중은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들의 명성을 듣고 몇 장의 엘피를 사모았다. 그리고서야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세상' 등 익숙했던 노래들이 들국화의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온전히 들국화에 빠져버린 건 아니다. 훌륭한 밴드, 아름다운 노래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취향과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8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 중에선 시인과 촌장, 조동진을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평단의 평가는 확고했다. 2007년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대중음악 전문가 52명의 설문을 바탕으로 꼽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들국화의 데뷔 음반은 확고한 1위로 꼽혔다. 52명중 45명이 이 음반을 명반으로 꼽았다. (참고로 시인과 촌장의 '푸른 돛'은 13위, 조동진의 데뷔 음반은 39위였다.)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주찬권과는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2005년 비교적 초년 기자였던 시절, 그의 다섯 번째 솔로 음반을 계기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직접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음반 발매 소식을 알렸다. 매니저도, 기획사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루에 수백 통씩 e메일이 들어오지만, 제목을 유심히 살펴본 뒤 지워야하는 이유다. 


전인권도 한 차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적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을 낸 것이 계기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위에 언급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를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당시엔 그가 필리핀에 체류하며 연락이 거의 닿지 않아서 결국 인터뷰는 무산됐다. 들국화 멤버 중에서는 최성원을 가장 좋아했는데, 별 계기가 없없는지 대중음악 담당 시절 그와 만날 기회는 없었다. 


아래에 주찬권의 2005년 7월 26일자 경향신문 인터뷰를 옮겨 놓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들어왔다. 수많은 스팸 메일 중 하나겠거니 하고 삭제하려는 순간 낯익은 이름이 한 구석에 보였다. "저는 드러머 주찬권이라고 합니다. 들국화라는 그룹에서 오랫동안 드럼을 연주했죠."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룹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전인권, 최성원이 들국화에 포크 향기를 입혔다면, '신중현계'에 속했던 주찬권은 들국화가 보여준 '록의 얼굴'이었다.
주찬권이 5년 만에 다섯번째 솔로 음반 'Low'를 내놨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은 물론 보컬, 코러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모두 스스로 해낸 '원 맨 밴드' 음반이다. 심지어 보도자료도 '독수리 타법'으로 직접 작성했고,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법한 기자들의 e메일을 찾아내 음반을 발송했다. 자켓 디자인은 딸에게 맡겼다.
음반은 70∼80년대식의 힘찬 록음악으로 가득차있다. 육중한 하드록 넘버 'Rock이 필요해'가 타이틀곡이다. 블랙 사바스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30년여간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이 만든 음악같이, 세상 음악의 빠른 흐름과는 다른 원형적인 록의 기쁨으로 충만하다. '낯설은 골목에서 서성거리네/쫓기는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이럴 때 필요한 건 Rock Rock'으로 이어지는 록 찬가다. 친한 친구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별에게'는 나른하게 늘어지는 주찬권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영미권의 로커들은 한곡만 빌보드 차트에서 인기를 끌어도 평생 캘리포니아 해변 저택에서 여생을 즐기며 산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로커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스스로 자신을 알리고 다니는 것도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다. 녹음실 대여할 돈이 넉넉지 않아 한번에 녹음을 마친 곡도 꽤 된다. 드럼 녹음은 두 프로(녹음 시간의 단위. 1프로는 약 3시간)에 끝냈다. 어딘지 사운드가 비어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찬권은 "만족스럽진 않지만 더 이상 녹음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화려했던 들국화 시절은 영광이자 멍에. 5장의 솔로 음반을 냈지만 여전히 팬들은 '들국화의 주찬권'을 기억한다. 주찬권은 "이름없이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지만, 사람 일이 다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들국화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지만, 대충해서 판을 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로커 주찬권. 열정은 모든 것을 이긴다. 가난도, 과거가 지우는 부담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도 장애가 아니다.
"지금까지 애들 키우느라 '일'로서의 음악을 했어요. 이제부터 슬슬 내 음악을 해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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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이를 재울 때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아이는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지웅이와 윤우 이야기, 지웅이 이야기. (윤우는 옆 동에 사는 사촌동생인데 언젠가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이야기의 조연으로 끼어들었다. 대부분 극 초반부에 등장한 뒤에 빠진다)


전자는 일종의 판타지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하되, 판타지 요소를 살짝 섞는다. 마치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9와 3/4 플랫폼으로 가면 호그와트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이 판타지 세계는 시간적으로 현실 세계와 겹쳐있고, 공간적으로 현실 세계와 독립돼 있다. 예를 들어 오늘밤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웅이와 윤우가 살고 있었어요. 윤우는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고, 지웅이는 밤마실을 나가고 싶었어요. 엄마가 집을 청소하는 사이, 지웅이는 아빠와 차를 타고 마트에 갔어요. 지웅이는 마트에서 물고기도 보고, 시식 빵도 먹고, 시식 사과도 먹고, 시식 두부도 먹고, 라바 스티커도 사고, 오레오 과자도 샀어요. 그래도 지웅이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지웅이는 아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먹자고 졸랐어요. 아빠는 지웅이를 아이스크림 가게에 데려갔어요. 그런데 지웅이는 큰 고민에 빠졌어요. 바닐라맛도 먹고 싶고 초콜렛맛도 먹고 싶은데, 아빠는 하나만 골라야 된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스크림 통 사이에서 자그마한 요정이 나타났어요. 요정은 지웅이의 고민을 듣고는 말했어요. "그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초콜렛이 박혀있는 쿠키 앤 크림을 먹으면 돼!" 지웅이는 아빠에게 쿠키 앤 크림을 사달라고 했어요. 아빠가 계산하러 간 사이 지웅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꿈에 부풀었어요. 그때 요정이 다급하게 외첬어요. "지웅아,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해. 이걸 지켜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어. 아이스크림은 한 번에 하나만 먹어야해. 더 먹겠다고 조르면 배가 아파서 다시는 나를 만날 수 없을지 몰라." 지웅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요정과 약속했어요. 아빠가 통밀콘 위에 받아들고 온 아이스크림은 참 맛있었습니다. 



이미지는 물론 본문과 관계없음. 



후자는 주로 우화, 교훈적 설화의 구조를 차용한다. 그런데 난 이쪽이 좀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오늘 이야기는 이랬다. 


지웅이는 아주 빨리 달리는 아이였어요. 지웅이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어느날 지웅이는 터보라는 이름의 달팽이를 만났어요. 지웅이는 터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어요. 지웅이는 터보에게 달리기 경기를 하자고 말했어요. 터보는 자기는 느려서 지웅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지웅이가 원한다면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어요. 출발 신호가 울리자 지웅이는 재빠르게 달려갔어요. 터보는 한참을 뒤쳐졌어요. 지웅이는 갑자기 경기가 따분해져서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기로 했어요. 아무리 오래 자도 터보가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지웅이가 그렇게 늘어지게 자는 사이, 터보는 힘을 내서 지웅이를 앞질렀어요. 잠에서 깬 지웅이는 터보가 자기보다 한참 앞서 달려가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지웅이는 부리나케 달려갔어요. 지웅이, 터보, 지웅이, 터보...누가 이겼을까요. 지웅이가 가까스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지웅이는 앞으로 자기보다 느린 이를 비웃지 않고, 스스로 잘 달린다고 자만하지도 않기로 했어요. 


앞으론 웬만하면 판타지만 해주려고 한다. 즉석에서 (비록 표절, 오마주, 패스티쉬로 범벅돼 있기는 하지만) 두 가지나 지어내기도 힘들다. 오늘밤에도 "내일부터는 '지웅이와 윤우 이야기'만 하자"고 약속했다.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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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승찬입니다. 


지난 저녁 제가 한 경솔한 말로 많은 엘지팬분들이 상처 입으신데 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미진하다고 여기신 분이 많으신 듯 합니다. 아마 사과문에 조롱이 섞였다고 생각하신 듯 한데요,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진심입니다.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말 한 마디를 해도 더욱 신중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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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농담으로 엘지팬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이렇게 사과문을 쓰면서 다시 한번 반성하고 있습니다. 너무 놀라 트위터는 계폭했지만, 혹시 여기를 찾아 주시는 분들께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요즘 엘지 경기를 보면 문선재, 김용의, 봉중근 선수가 참 잘 하더군요. 일요일 넥센 경기를 보았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1점차 승리를 지켜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엘지가 지금처럼 멋진 경기 해서 팬 여러분도 유광점퍼 입고 가을에 응원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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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에서 따왔다. 그러고 보면 무라카미는 제목을 참 잘 짓는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제목만 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인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는 빵가게에 자주 간다. 이틀에 한 번은 간다. 아침에 빵을 먹기 때문이다. 물론 습격 같은 걸 한 적은 없고, 조용히 들러서 빵을 고른 뒤 값을 치르고 나온다. 


아무튼 그렇게 자주 빵가게에 다니다보니,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빵을 사야할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하루에서 중요한 일이 되었다. 카페 베네보다 많을지도 모르는 ㅍ사 빵을 매일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난 ㅍ사의 빵은 식빵을 빼고는 거의 사지 않는다. 다만 이태원 블루스퀘어에 뮤지컬을 보러갔다가 근처에 있는 ㅍ빵가게 본사의 최상급 매장에는 가본 적이 있다. 듣기로는 그곳에서는 빵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내놓은 뒤 반응이 좋으면 대중화해 전국의 ㅍ빵가게에 내놓는다고 한다. 역시 명성답게 그곳의 빵은 맛있었다. 


영화 담당이었을 때 극장을 오가느라 외근이 잦을 때는 그날 어느 극장에서 언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들를 수 있는 빵가게를 구상하곤 했다. 서대문역을 거치면 경찰청 뒤쪽으로 있는 ㅇㄱㅇ빵집에 갔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작은 빵집인 이곳은 일본식으로 잘 조미된 빵이 특기다. 오코노미야키 빵, 레몬빵, 단호박 빵 등을 팔았다. 나는 잘 사지 않았지만, 쿠키의 종류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종류의 빵은 나른한 오후에 먹으면 기분이 금세 좋아지게 하지만, 아침에 먹기엔 맛이 조금 요란스럽다. 그래서 매우 자주 들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 별미삼아 먹으면 맛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가니 가게는 남아있되 빵은 더이상 팔지 않는다고 했다. 슬펐다. 



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으나, 맛있게 보임.


종로쪽에는 ㅇㅂㅃ이 있다. 한때 서울시경 부근에도 지점이 있었으나 언젠가 사라졌다. 파이와 크로아상 종류가 괜찮다. 이곳 빵 역시 대체로 달착지근해서, 식사보다는 간식으로 적당하다. 디민 그 단맛이 일본풍의 아니라 서양풍이다. 이런 빵을 먹으면서 커피에 설탕까지 넣는다면, 입이 쩍쩍 달라붙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종로까지 동선을 넓힐 일이 적어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다. 


한때 광화문역 부근 대로변에 있다가 잠시 사라진 뒤 다시 조금 골목 안으로 들어가 생긴 ㄴㅁㅇㅂㄷ은 내가 요즘 제일 자주 가는 빵가게다. 아무래도 위치상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 들르기 좋다. 이곳은 겉이 딱딱하고 속이 부드럽게 발효된 빵을 주특기로 한다. 내가 자주 사는 빵은 초콜렛 트위스트, 치즈스틱, 스콘, 머핀, 잡곡빵 종류다. 이곳 케이크도 사본 적이 있는데, 맛이 괜찮았다.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에 넣을 수 있는 소스 등도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시청 지하철역이라 해야하나, 플라자호텔 지하라 해야하나, 아무튼 그곳에는 ㅇㄹㅋㅈㄹ가 있다. 이곳은 푸거스 종류가 인기 있다. 나도 푸거스를 종류 별로 한참 사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질려서 더 이상은 사지 않는다. 치아바타와 파이 종류가 상당히 많다. 서울에 지점을 낸 지 1년이 되었다며 그 기념으로 내놓은 '빵드세울'은 빵 안에 화이트 초콜릿 조각을 박아놓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언젠가 우연히 어느 달 1일에 들른 적이 있는데 바케트 데이라면서 1000원에 팔길래 냉큼 사왔다. 바케트는 보통 썰어서 바로 먹지 않으면 딱딱해져서 먹기 힘든데, 이 바케트는 하루 이틀 뒤에 먹어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화문, 시청 부근에서 빵을 사는데 실패했다면 집 근처의 ㅁㅇㅊㄷ에 간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곳은 나가사키 카스테라, 애플 파이, 그리고 최근 나오기 시작한 치즈 치아바타가 맛있다. 대체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애플 파이에는 속이 꽉곽 들어차있고, 카스테라 역시 부드럽고도 달지 않다. 여기 빵만 먹으면 잘 모를 수 있지만, 이 카스테라를 먹다가 다른 곳, 예를 들어 ㅍ의 카스테라를 먹으면 그 퍽퍽함에 놀랄 수가 있다. 


회사 부근 산책길에 최근 발견한 빵집이 있다. 축구회관 바로 앞의 ㅃㄲㅃㄹ다. 사실 이곳이 빵가게임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가게가 2층에 위치한데다가, 1층의 유리창에는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글로 빵가게임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들어가본 뒤에는 더욱 깜짝 놀랐다. 금발의 백인 여성이 종업원으로 빵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다른 백인 남성과 아이들까지 와 있는 것으로 봐선 아마 서양 어느 곳에서 온 친구나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 같았다. 이곳에서 주는 빵봉투에 광화문 부근의 카페 이름이 적혀 있기에, 그곳에 가서 물어보니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빵 종류는 광화문의 ㅍㅌㅅㄹㅂ 카페가 조금 더 많았다. 오늘 아침은 이곳에서 산 살라미 크로아상을 먹고 나왔다. 그러나 ㅃㄲㅃㄹ는 서양인이 일하는 곳답게, 문을 여는 시간이 매우 짧다. 낮에 가면 닫혀있기도 하고, 오후 6시가 넘으면 또 닫혀있을 때도 있다. 그 도도한 장사 방식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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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좀 뜬금없어 보이는 비유.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곤 하는 연쇄살인마들은 종종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테크닉의 독창성, 행동의 과감함 혹은 무모함, 그리고 삶에서의 무용함 등 어찌 보면 살인과 예술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그 기괴한 살인은 예술이 아님을 알고 있다. 대단한 미학 이론을 배우지 않았다해도, 그저 직관적으로 '안다'. 



요즘 인기있는 예술가, 아니 살인자 한니발


난 요즘 언론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언론에서 헷갈리는 건 '예술과 살인'이 아니라 '의견과 현상'이다. 특정한 정파 혹은 이익집단의 목적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지가 아니라면, 언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의견을 고루 청취할 필요가 있다. 그 아무리 보수적인 언론이라도 진보적인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쪽의 주장이 아무리 근거가 강하다 해도, 그 반대의 항변도 일단은 들어봐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시늉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 언론은 '정론'이라는 이상에 조금씩 근접한다. 


그러나 사회 속 여러 사람, 집단의 '반응'을 모두 '의견'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의견'이란 그것이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될만큼 합리적, 이성적이며, 그래서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청취할만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 등장하는 어떤 '의견'은 그렇지 않다. 


에를 들어 일간베스트. 5.18에 대한 이들의 폄훼는 '의견'인가. 아니면 한기총.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 토론에서 이들을 '반대'쪽 패널로 섭외하는 것이 올바른가. 나는 이들의 반응이 공론의 장에서 다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마치 "난 계란을 풀지 않은 라면을 좋아해", "난 비오기 전날 밤 기분이 좋아"와 같은 말에 대해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것처럼. 


물론 이들은 분명 한국 사회의 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과소대표됐는지 과대대표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언론에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난 그것을 '의견'이 아니라 '현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한기총 대표의 말들은 오피니언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다뤄야 한다. 


이들의 생각을 오피니언면에 게재한다면, 그 면이 흥미진진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언론'은 그렇게 한다. 종편이나 케이블 텔레비전을 보면 양극단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이런  프로그램엔 종종 '끝장'이라는 말이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이런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각자의 생각이란 것을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언어로 반대편 허공에 쏘아대고는 출연료와 약간의 유명세를 얻어 사라진다. (그렇게 싸우는 척 한 뒤 카메라가 꺼지면 히히덕대며 술이라도 한 잔 하러 갈지도 모르지) 이런 말싸움은 가끔 재미있고, 시청률도 얼마간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선정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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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의 첼시-리버풀 경기의 심리적, 신체적 후유증으로 시즌 끝까지 축구를 끊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어제의 (안티)히어로는 리버풀의 수아레즈. 전반에 별 활약이 없던 그는 동점 상황에서 어이 없는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헌납하더니, 첼시 진영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수비수 이바노비치의 팔을 물어뜯고(!!!), 후반전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이 흐르던 마지막 순간 기가 막힌 버저 비터 헤딩골을 넣어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안필드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가운데 중계가 마무리 됐다. 2:2 동점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너무나 극적이고 또 어이가 없기도 해서 대체 경기가 언제 끝났는지, 시작은 한 것인지, 아니 이 경기가 열리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멍한 상태로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리버풀의 수아레즈가 첼시의 이바노비치의 팔을 물어뜯는 장면! 전반적으로 돌출돼 "루이스 수아레즈, 너의 이빨이 오프사이드야"라고 상대 서포터들이 조롱하는 노래까지 만들어진 그 입이 다시 한번 사고를 쳤다. 


흔히 정치를 '결과의 게임'이라고 한다. 빛나는 이상과 순백의 선의를 가진 이라 하더라도, 현실 정치에서 결과를 못내면 실패한 정치인이다. 당선 무효형을 받을 정도가 아닌 다음에야, 선거에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승리라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기기 위해 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상대를 비방하고, 때론 그 상대와 손을 잡는다. 그래서 결과를 내려 한다. 


수아레즈는 아약스 시절에도 상대 선수를 물어 7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영국축구협회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조사에 착수하고 나름의 징계를 내릴 것 같다. 그러나 해당 경기의 심판은 수아레즈가 이빨을 사용해 반칙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이바노비치가 이빨 자국이 난 자기의 팔뚝을 내보이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판이 그 장면을 봤다면 분명 옐로우 카드, 혹은 레드 카드를 줬을 것이다. 옐로우 카드였더라도 수아레즈는 퇴장이다. 이미 그 전에 핸들링 반칙으로 옐로우 카드를 한 번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버풀은 수적 열세를 안은 채 후반의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고, 첼시의 영리한 경기 운영 추세로 봤을 때 만회골을 넣기 힘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수아레즈는 종료 직진 동점골을 넣지 못했을 것이다. 리버풀에서 그 순간 그런 골을 넣을 선수는 수아레즈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가정이 부질 없다. 위에서 정치를 결과의 게임이라고 했지만, 스포츠야말로 그보다 더욱 냉정한 결과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스포츠의 역사에는 결과만이 남는다. 패자는 승자에게 "비열하다", "비겁하다" 어쩌구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 건 진 거다. 어제의 경기는 스포츠의 냉정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난 때로 이런 패배, 결과의 냉정함을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매번 이기는 최고의 구단을 응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말 축구 끊는 걸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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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가 아침을 먹고 난 식탁을 보고 조금 놀랐다. 닦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식탁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침 등원을 내가 책임지기 시작한 것은 약 1년전 쯤이었다. 난 꽤나 긴장했다. 나 하나 씻고 옷입고 먹고 뛰쳐나가기 바쁜 것이 보통 직장인의 아침 아닌가. 거기에 아이까지 챙겨서 어린이집(지금은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니. 밥 먹는 것은 그중에서도 큰 일이었다. 아이는 비교적 밥을 잘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먹는 속도가 느리고 때론 투정도 한다. 처음엔 거의 떠먹여주었고, 아이가 혼자 먹는데 익숙해진 뒤에도 식탁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식탁만이 아니라 자칫하면 옷까지 엉망이 됐다. 가재 수건을 목에 하나 걸고 가슴팍에 하나 받치는 것이 필수였다. 음식은 식탁엔 물론, 부엌 바닥에까지 튀어있기 일쑤였다. 아이가 딩동댕 유치원을 보며 얼어붙어 있는 사이, 난 씻고 옷을 입고 그릇을 치우고 행주로 식탁을 훔쳤다. 


그러던 아이가 오늘, 음식을 거의 흘리지 않고 먹었다. 1년 동안  아이는 아주 조금씩 그 작은 손가락의 근육을 움직이는 법, 적당한 타이밍에 입을 벌리는 법, 음식이 숟가락을 넘치지 않도록 적당량 뜨는 법, 그릇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법을 익혀나간 것이다. 


얼마전엔 그런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유아가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큼직하게 나온 레고 듀플로를 사줬는데, 지난 토요일에 처음으로 보통 레고를 사줬다. 조금 걱정이 됐다. 아이는 아직 이 작은 레고를 가지고 놀만큼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고 듀플로(왼쪽)와 레고. 급찍음.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다. 아이는 큼직한 조각들은 곧잘 맞췄지만, 작은 조각을 끼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긴 그런 조각들은 나도 맞추기 힘드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제뜻대로 블록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징징거리며 운다는 사실이었다. 레고를 붙잡고 화를 내며 징징대는 아이에게 어떻게 맞추고 싶은지 물어보고 대신 맞춰준다. 아이는 혼자 가지고 놀다 다시 징징댄다. 그러면 다시 맞춰준다. 조금 놀다가 또 징징댄다. 이하 반복. 


아이가 징징댈 때마다 말했다. 울지 말고 아빠를 부르라고. 그러면 아빠가 도와줄 거라고. 그래도 아이는 징징댔다. 난 그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는 3초 정도 징징대다 멈칫하더니 아빠를 불렀다. "아빠, 도와주세요!" 


아이는 자란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란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나날의 육아는 정말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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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계신 JS가 한 젊은 논객에게 "영어 공부를 하라"고 권한 코멘트를 읽었다. 그렇다. 나도 한때 짧게나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영어 강의를 한 학기에 4개씩이나 듣던 몸이다. 번역본이 실하지 않단 이유로 <유년기의 끝>이나 <어둠 속의 웃음소리> 같은 소설을 원문으로 읽던 몸이란 말이다. 영어 텍스트를 능란하게 읽을 수 있으면(그리고 쓸 수도 있으면), 인식의 지평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돌아보니 고만고만한 한글 텍스트만 너무 많이 읽어왔다. 어디선가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만 줄창 각주로 다는 것을 보고 일본학계의 성취라든가 자신감에 대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누가 좋은 텍스트를 번역해주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마감이 끝나서 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같은 곳만 빙빙 돌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약간의 반성으로 오래전에 즐겨찾기 해두었다가 좀처럼 찾지 않던 사이트에 들어갔다. 세계 여러 언론의 문화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두는 곳이다. 들어가보니 가장 위에 슈피겔지의 영문판 기사가 올라 있었다. 제목은 '철학자와 테러리스트'. 낚여서 클릭했고, 낚일만큼 흥미 있었다.


내용은 장 폴 사르트르와 안드레스 바더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당시 69세였던 프랑스의 노철학자는 독일의 감옥에 갇혀있던 적군파 수장 안드레스 바더를 면회간다. 1974년 12월 4일의 일이다. 




사르트르(위)와 바더


여론은 사트트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스타 철학자인 그는 면회를 마친 후 독일 감옥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 비난했다. 바더가 방음 처리됐으며 인공 조명이 항상 켜진 독방에 수감됐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것이 "나치와 같은 고문은 아니지만, 심리적 혼란으로 이끄는 또다른 형태의 고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경로로 알려진 바로는, 당시 바더가 수감된 교도소는 새로 지어져 꽤 괜찮은 시설을 갖췄으며, 텔레비전과 소규모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 몇몇 전문가들은 당시 반쯤 실명 상태였던 사르트르가 방을 착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론은 바더에 대한 면회와 이후의 코멘트가 사르트르의 최대 실책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 슈피겔은 당시 면회에서 사르트르와 바더가 나눈 대화를 입수했고, 실상은 알려진 것과 조금 달랐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둘의 만남은 냉랭했다. 


사르트르 : 적군파의 행동은 민중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더 : 20%의 민중이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르트르 : 알아요. 그 통계는 함부르크에서 나온 것이지요. 

바더 : 합법적, 불법적인 소규모의 그룹들이 독일에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사르트르 : 이런 행동들은 브라질에선 정당화될지 모르지만 독일에선 아닙니다. 

바더 : 왜요?

사르트르 : 브라질에선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독립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필수적인 사전 작업입니다. 

바더 : 여기하고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르트르 : 여긴 브라질과 똑같은 유형의 프롤레타리아가 없습니다. 


둘의 만남은 사르트르와 적군파의 이해가 맞았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나치에게 전쟁 포로가 된 적이 있는 사르트르는 서독 군대가 '나치 독일'의 계승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적군파는 레지스탕스의 일종이라 여겼다. 적군파 역시 사르트르를 통해 바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그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하려 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이전부터 적군파가 정부의 주요 요인을 암살하는데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자, 바더는 그를 좋지 않게 여겼다. 통역을 사이에 둔 둘의 대화는 무척 딱딱했다고 한다. 둘의 심신이 건강치 못했다는 점도 면회가 생산적이지 않은 원인이 됏다. 이미 2차례의 심장 발작을 겪은 적이 있는 사르트르는 지적 능력이 감퇴하고 있었고, 바더 역시 단식 투쟁의 여파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혁명과 투쟁 전략에 대한 바더의 횡설수설을 사르트르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바더가 '꼴통'이라고 말했고, 바더는 사르트르가 "날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둘의 만남은 60분만에 끝났다. 




영화 <바더 마인호프>의 포스터와 영화 속 안드레아스 바더. 테러리스트라기보다는 갱스터같음. 


원문은 여기(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transcript-released-of-sartre-visit-to-raf-leader-andreas-baader-a-8813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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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상에. 다음달 18일 자정부터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프리챌에 들어가 보았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본 지가 어언 7~8년은 된 것 같다. 내가 가입한 클럽 몇 개와 마스터로 있는 클럽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한 때 활동하는 영화 관련 웹진 모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와의 2인 클럽이었다. 


여자친구가 교환학생을 떠나기 직후 시작해 글은 약 1년 8개월 가량, 사진은 2년 10개월 가량 올라온 터였다. 정말 세상에. 이 클럽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국으로 간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심정, 진로에 대한 고민, 생활의 감상들이 이래저래 적혀 있었다.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생각도 있었고, 언제 이런 생각을 했었나 하는 것도 있었다. 하나마나한 소리도 있었고, 신선한 아이디어도 있었다.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복사해 쟁여두었다. 두어 해 전의 경험 같은데 그곳에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짤막한 이야기도 있고, "할 일이 없었군"하는 생각이 나게 만드는 긴 글도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별 쓸데없는 걱정을..."하고 여겨지는 고민도 있었고, 지금도 진지하게 생각할만한 화두도 있었다.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의 모습을 찍고 그 감정을 적어내려간 것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때 나와 여자친구는 정말 젊고 또 사랑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때 30을 앞두고 있던 나는, "이제 정말 봄날은 갔다"라고 적고 있었다. 살면서 존재가 조금씩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혹 속에 저장해 놓은 지방을 소모하는 낙타처럼 "존재가 사위워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때와 지금, 나의 존재는 어떤가. 풍성해졌나, 얄팍해졌나. 


10년 전의 내가 나타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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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네 살'이란 말이 있었나? 미운 다섯 살이었나? 아무튼 요즘 아이는 '미운' 행동을 종종 한다. 그 대부분은 바로 터무니 없는 떼다. 엄마, 아빠가 인도하는대로 고스란히 따르며 행복해하던 아이는 영원히 사라졌다. 


아이의 '미운' 행동이란, 대체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데서 나오는 것일게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 판단, 행동은 아직 깊거나 넓지 않으니, 그 바깥을 볼 수 있는 어른들과 부딪히는 건 당연하다. 아이가 떼를 쓰는 건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라고 육아 교과서에 나올 법한 생각을 하면 좋겠지만, 그건 유아교육 전문가나 의사 정도나 돼야 할 수 있는 것.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본 부모로서는 순식간에 억장이 무너지고 자아가 붕괴되고 세상이 끝나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거다. 


텔레비전을 더 보겠다거나, 과자를 더 달라거나, 잠을 안자겠다거나 하는 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들어줄 수도 있는 떼니까. 문제는 아이가 물리학의 엄격한 법칙을 거슬러달라고 요구할 때다. 뉴턴이든 아인슈타인이든 호킹이든, 지구인이라면 다들 지켜야 하는 법칙을 깨라고 요구할 때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 아이가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이 이미 끝났다. 그런데 아이는 <딩동댕 유치원>을 보고 싶다고 한다. 난 이미 끝났다고 대답한다. 아이는 그래도 보여달라고 한다. 난 네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이미 끝났다고 한다. 아이는 그래도 보여달라고 한다. 나의 출근 시간은 다가온다. 난 얼른 밥을 먹고 씻자고 한다. 아이는 여전히 보여달라고 한다. 그리고 운다. 운다. 운다. 


또 이런 경우. 식당에 가서 만두와 칼국수를 시켰다. 먼저 나온 만두를 조그맣게 잘라 아이에게 먹어보라고 줬다. 아이는 안먹는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먹어보라고 했는데 여전히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아내가 만두를 다 먹었다. 곧이어 칼국수가 나왔다. 아이는 칼국수를 조금 먹더니 만두를 달라고 한다. 네가 안먹겠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다 먹었다고 했다. 아이는 만두, 만두, 만두 하면서 울어댄다.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만두, 만두, 만두하고 울어댄다. 


아이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한다. 지구에 살던 이 중에는 오직 슈퍼맨만이 시간을 되돌렸다. 그는 죽은 연인 로이스 레인을 되살리기 위해 지구를 자전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날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건지는 안해봐서 모르겠다) 슈퍼맨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순간, 아버지인 말론 브란도의 목소리가 목욕탕 안에서처럼 울린다. "시간을 되돌리는 건 금지된 일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퍼맨에겐 아버지의 말씀보다 애인이 더 중요하다. 



시간을 거스르는 남자, 크리스토퍼 리브(1952~2004). '슈퍼맨' 리브는 <남아 있는 나날>에서 이상적이지만 무능한 미국인을 연기했다. 


아이는 슈퍼맨이 아니지만, 세상에 적용하는 자신만의 미학적 기준이 공고하다. 그 기준은 자석 블록이나 레고를 만들 때 형상화된다. 아이는 블록들을 이리 저리 더덕 더덕 붙이면서 무언가 기괴한 형상을 만든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집이라든가, 비행기라든가, 자동차라고 답한다. 내가 보기엔 전혀 집, 비행기, 자동차 같지 않지만, 아이가 그렇게 답하기 때문에 "우와 멋지다!"라고 칭찬해준다. 아마 천상 혹은 마음 깊은 곳의 이데아가 그렇게 표출되는 것 같다. 재밌는 건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구조물에도 어떤 완성의 지점이 있다는 거다. 구조를 허약하게 만들다보니 조금 들어 이동하면 부서질 때가 있는데, 아이는 당연히 울고불고 난리다. 내가 얼른 비슷하게 맞춰져도 소용이 없다. 작은 블록 하나만 어긋나도, 아이는 그것이 3분 전에 만들었던 그 걸작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멀쩡한데 "이것도 아니야!"라고 성질을 내면서 도자기를 깨뜨리는 도공의 심정일까. 


아무튼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곤히 자는 한밤중에 블로그에 이런 헛소리를 쓸 소재도 얻는다.  



인터넷에서 불 펌. 아이가 이 모양으로 울면 부모는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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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하는 싸이 애기에 한 마디 보태는 것 같아 민망하긴 하지만, 요즘 싸이의 인기를 보니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다. 그곳에서는 가을에 시화전도 열고 문집도 냈다. 난 그와 절친한 편은 아니었기에 오다가다 그의 시를 읽는 정도였는데, 솔직히 가관이었다. 내가 시를 읽어내는데 별 재능은 없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의 시가 매우 나쁘다는 것 정도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단어들이 이리저리 연결된 정도였는데, 때로는 숫제 단어가 아니라 컴퓨터 자판의 특수기호까지 그 '시' 안에 들어 있었다. 음, 이 한글 음절과 특수문자의 조합을 어떤 사람들은 시라고 부르는 것인가. 그럼 이거 한번 네가 읽어봐. 아주 명문이거든. "나는 오늘 저녁*^&*&*&*나느다ㅓㅏㅓㅇ\\98ㅕ29기ㅏ38857917%$^%*&%&*532 ㅁㄴ아드 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난 군대에 갔다. 아마 그 친구도 갔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 보니 그 친구도 있었다. 그때도 여전히 오가다 눈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친구의 시를 다시 봤다.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문집이었나, 아니면 교내 학보에 발표된 시였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느낌은 남아있다. 시가 좋았다!  거센 물결에 조금씩 모난 부분이 깎여 멋진 모양이 된 바위처럼, 영문을 모를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그의 시어는 그럴싸한 틀 안에 안착해 있었다. 그렇다고 시가 갑자기 얌전해졌다거나 지루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년 전의 패기와 실험도 그 한 구석에 반짝이면서, 시 읽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따.  


싸이의 연대기 기사를 보며 확인하니 10년도 더 된 때의 일이었다. 그때 같은 집에 살던 여동생이 자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호들갑스럽게 나를 불렀다. "오빠! 이리와봐! 방송사고야!"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평일 저녁의 가요 프로그램에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 가수랍시고 나와 욕이 섞인 것 같은 노래를 막 불러제끼고 있었다. 이 십원짜리야 어쩌구 하면서. 그게 싸이였고, '새'라는 노래였다. 그렇게 한 차례 쇼킹한 무대를 꾸미고 조용히 사라질 것 같던 사람이 어젯밤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10만명을 세워두고 무료공연을 했고, 각 언론이 그 공연을 크게 다뤘다. 


대학 시절의 친구는 지금도 시를 쓸까. 난 그가 쓰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안 쓸 것 같다. 그래도 네가 대학 시절 후반부에 썼던 시는 좋았어. 어떤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미친 짓도 10년 정도 하면 근사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너나 나나 이제 미친 짓 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다수의 그것과 조금 다를 때에도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보자.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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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가끔 떼를 쓴다. 이유가 없어 보이고 들어주기도 힘든 떼다. 그럴 때 부모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 있다. "무서운 아저씨 온다!" 요즘 우리 아이도 이 말을 가끔 듣기 시작하는데, 난 솔직히 이 방식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며칠전 날씨가 좋아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한성백제문화제에 갔다. 백제 군인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음식 장터가 열리고,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쇼가 벌어졌다. 딱 지자체가 주최하는 지역 주민용 행사였으나, 아이는 그것마저도 신난 모양이었다. 하긴 집에 가봐야 매일 보는 장난감과 책 뿐이었으니까. "집에 가자"고 하자 아이는 "집에 안가"하고 찡그렸다. 주차장에 갈 때까지 내 그 소리였다. 


참다 못한 아내가 차 안에서 그 말을 꺼냈다. "무서운 아저씨 온다!" 아이는 금세 얼굴색을 바꾸었다. "무서운 아저씨 어딨어요?" 아내는 아이가 말을 잘 들어서 다른데로 갔다고 말했다. 몇 분 후 아이는 다시 물었다. "무서운 아저씨 어딨어요?" 아내는 같은 답을 반복했다. 아이는 5분전 자신이 집에 가기 싫어 징징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 속마음까지야 알 수 없지만, 그리 놀라거나 무서운 표정은 아니었다. 차라리 '무서운 아저씨'란 사람들이 있기나 한 것인지, 있다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해하는 표정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상상 속의 '무서운 아저씨' 덕분에 귀가길은 편했다. 


아이는 '무서운 아저씨'가 있기에 아무데서나 떼를 써서는 안된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무서운 아저씨'가 있기에 잠을 자기 싫다고 억지를 쓰면 안되고, 아파트에서 뛰어선 안되고, 아이스크림을 2개씩 먹자고 졸라도 안된다는 걸 알아간다. 솟구치는 욕구에 마냥 응답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렇게 해서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초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든가,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초자아는 필요하다. 몇 해 전 어느 예능 토크쇼에서 유명한 가수를 본 적이 있다. 불혹이 넘은 나이였는데 초자아가 거의 형성되지 않았거나 너무나 약한 사람 같아 보여서 깜짝 놀랐다. 1시간이 채 안되는 토크쇼에서의 말로 한 사람을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측근도, 가족도, 심지어 팬도 아니기에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바 아니다. 그가 아이처럼 군다고 내가 피해를 입을 일도 없다. 게다가 예술가는 저 깊숙한 곳에 도사린 이드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때가 있는 족속들이다. 피카소나 파스빈더나 피츠제럴드가 엄격한 생활 태도, 위엄있는 인격으로 사랑받은 것은 아니다. 초자아가 있건 없건, 좋은 작품만 만들어달라. 그것이 멀찌감치서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나의 바람이다. 그 가수의 문제는 그의 음악이 더이상 들을만하지 않다는데 있을 뿐이다. 


'무서운 아저씨'를 자주 호출하는 건 좋지 않겠지만, 아무튼 아이가 적당한 힘을 가진 초자아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만큼은 성숙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게 있다. 너무 주눅들지 말기.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그리고 때론 초자아를 속이거나 어르거나 협상하는, 그렇게 꾀많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은 위의 글과 조금 관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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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아이의 오줌 사진이었다. 아이의 배변 연습을 위해 몇 달 전 마련한 펭귄 소변기가 드디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시기 전후에 들여놓는 몇 가지 육아서적이 있다. 서양 저자의 책과 한국 저자의 책이 고루 있다 '대처법'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배변 연습 시기에 관해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서양 책에는 1살이 되기 전 배변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아예 늦어버린다는 경고도 있다. 반면 한국 책은 3살 이전을 추천한다. 너무 일찍 배변 연습을 시키면 아이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염려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결국 한국 저자의 말을 따랐다.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아이에게 대소변 가리기를 가르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아이는 너무 어리고 약해 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옆에서 지켜보고 돌봐줘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자랐다. 12월이면 만 3세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다. 가장 큰 사이즈의 기저귀를 찬 지도 오래 됐다. 게다가 배변 연습은 바지를 안입고 지내도 괜찮은 여름에 하기 좋다. 게다가 아내가 방학을 해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도 늘었다. 그러니 요즘이 기회다. 


우리는 몇 달 전부터 아이에게 넌지시 똥이 마렵거나 눴으면 이야기하라고 말해왔다. 한 달 전쯤, 아이는 아직 침대 위에서 아침 잠에 취해있는 내게 다가와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똥 눴어". 아이의 수줍은 듯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 후에는 밥을 먹으려다말고도 "똥 눴어"라고 말했다. 기저귀를 확인해보니 아니었다. 내가 "똥 없는데?" 하고 말하니 아이는 "방구하고 헷갈렸나봐"라고 답했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목욕을 시킨 뒤 한동안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내버려두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줌이 마려우면 이야기하라고, 같이 가서 오줌을 누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냥 참거나, 아니면 방바닥 어디에 오줌 방울을 조금 흘리기도 했다. 오늘도 오전에 엉덩이를 내놓고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아내는 아이가 고추를 잡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몇 차례에 걸쳐 펭귄 소변기 앞에 데려가니 마침내 참지 못한 듯 오줌을 누었다고 전해주었다. 아내는 내게 사진을 보내면서 전화도 했고, 난 전화기 너머의 아이에게 "잘했어요!"하고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쯤 그냥 마룻바닥에...)


아이는 그동안 펭귄 소변기를 목욕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삼아왔다. 오늘 거기에 처음으로 오줌을 누면서 용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아이는 앞으로 대변기에 똥도 눌 것이다. 물론 실내에 똥냄새가 나면 대단하겠지. 우리는 아이가 다른 방에서 기저귀에 똥을 눴을 때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후각(+알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조금씩 하나의 어엿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돕고 지켜본다는 것을 잠시 똥냄새를 맡을 때의 괴로움과 비교하는 아빠가 있기나 할까. 


바로 그 오줌. (이런거 올릴줄 나도 몰랐지만, 그래도 이것은 역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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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에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낸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전날밤부터 부담이 되고 아침이면 긴장을 해 초조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7시가 조금 지나면 아이가 주섬주섬 일어나 침대 옆에 서서 아빠를 깨우거나 내가 먼저 일어나 조용히 방을 나간다. 내가 나가도 아이는 금세 알고 일어나니 굳이 조용히 나갈 필요가 없긴 하다. 아이는 사랑하는 인형 친구 '크크'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가장 먼저 관심을 끄는 책이나 장난감을 집어든다. 책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장난감 이름을 발음하며 자신의 어휘력을 뽐낸다. 


아이와 잠시 놀아준 나는 아침을 챙기러 간다. 이때가 조금 고비다. 아이가 혼자 놀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같이 놀아달라고 올 때가 있다. 커피를 내리거나 수프를 끓일 때 아이가 다가오면 낭패다. 최대한 달래 부엌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아니면 주전부리를 아무거나 챙겨줘 시간을 번다. (아이가 먹는걸 좋아해 다행이다)


아침이라 해봐야 별 건 없다. 시리얼에 과일을 섞어주거나, 아내가 미리 끓여놓은 수프를 준다. 죽이나 빵을 대령할 때도 있다. 아이는 서툰 숟가락질로 잘도 떠먹는다. 테이블과 옷에 음식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허나 옷은 빨면 되고, 테이블은 닦으면 된다. 난 그 옆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는데, 가끔 아이가 아빠 음식에 호기심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면 조금 떼어준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시각의 왜곡 현상은 생득적이라는 사실이 경험을 통해 입증됐다.   


시간은 어느덧 8시. 아이는 세수하고 손 씻기를 귀찮아하는데, 밥 먹자 마자 잘 달래서 목욕탕으로 안내한다. 아이는 이때 텔레비전을 보여달라고 하기 때문에, 난 세수를 하면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아이는 눈을 꼭 감은 채 얼굴에 물을 적시며 3분 뒤 이루어질 약속을 기대한다. 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EBS의 <딩동댕 유치원>을 보여준다. <딩동댕 유치원>에는 주황색 머리를 한 여자아이 랄라와 그의 선인장 친구 장이 나와 이런저런 코너를 소개한다. (솔직히 랄라의 머리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즘엔 박경림이 어린이 인권을 홍보하겠다며 나오고, 얼마전엔 피아니스트 진보라가 나와 아이들의 동요 반주를 했다. 다들 어디 있나 했더니.)


이후 30분간 아이는 프리즈. 그러면 나는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훔친다. 출근 준비를 하고는 아이의 몸단장도 시킨다. 로션을 발라주고, 기저귀를 갈고, 외출복을 입힌다. 요즘 날씨가 급변해 옷 선택에 고민이 많다. 안에 입은 옷과의 코디가 완벽하지 않아 외투를 세 번 정도 갈아입힌 적도 있다. 이 아이의 미감을 너저분하게 만들 순 없다. 


여기서 갑자기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겠다.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니코마코스 윤리학) 마이클 샌델은 "덕성은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증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뜬금없는 패러디를 허용한다면 "부성은 실천함으로써 증진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2달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아기를 보는 일은 전혀 손에 익지 않았고, 그래서 준비는 부실하고 시간은 쫓기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제 난 아이의 리듬과 습관과 호오를 알아내고, 그걸 이용하고, 아이는 다시 내 손길에 기대는 원활한 리듬이 만들어졌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양쪽 노를 젓는 선원처럼, 아빠와 아기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생각 하면 많은 일이 괴롭다. 작은 괴로움의 가능성이 거대하게 부풀기도 한다. 막상 몸으로 부딪치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이 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해도 안될 때도 있다. 안되면 안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기 보는 일을 차츰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건과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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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날씨가 좋기에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가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사이, 얼굴에 웃음을 띤 젊은 여성 몇 명이 다가왔다. 오늘은 부활절. 인근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예쁘게 포장된 달걀을 나눠주러 온 것이다. 아이는 넙죽 받았다. 

아이와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짜장밥. 별 생각 없이 식탁 위에 놓아둔 달걀을 아이는 계속 가지고 놀려 했다. 그러고보니 짜장면에도 삶은 달걀 반 쪽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난 달걀을 까서 아이에게 주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노른자를 먹지 않았다. 처음엔 밀쳐내더니, 다음엔 무심코 먹었다가 뱉어냈다. 대신 흰자는 다 먹었다. 이게 놀라운 이유는, 나도 노른자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계란 과자, 스크램블드 에그, 오믈렛 같은 것은 먹는다. 하지만 노른자만 따로 있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계란 후라이라든가, 냉면 위의 삶은 계란 같은 것. 흰자는 먹지만 노른자는 안먹는다. 노른자 특유의 구린 냄새가 싫어 어릴 때부터 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 최초의 기억은 노른자에 대한 것이다. (나보코프는 요람에 누워 나무 그늘 사이로 이동한 순간의 기억을 자서전에 적었지만, 난 그런 '비범한' 작가가 아니다.) 어린 시절엔 노른자를 먹으면 헛구역질이 났다. 엄마는 내가 편식을 하는줄 알았던 것 같다. 몇 번이고 노른자를 다 먹지 않으면 식탁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강제하곤 했다. 그렇게 세 차례 정도 눈물을 흘리며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를 다 먹은 적이 있다. 노른자를 손톱만큼 먹고 물을 반컵 마신다.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입술에 묻은 노른자가 투명한 물 아래로 먹물처럼 퍼져나가는 걸 봤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를 다 먹었다. 노른자 빼고는 달리 편식한 것도 없는 듯한데, 왜 굳이 노른자를 먹어야 했을까. 엄마는 결국 포기했다. 난 이후에도 노른자를 먹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때 그 테이블에서의 노른자는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오늘같은 날 불현듯 그 순간이 기억나니까. 그리고 대체로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도 유독 뚜렷한 풍경이니까. 

노른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어서 신기하고 반갑다. 아이야, 걱정 말아라. 노른자 같은거 안 먹어도 비교적 멀쩡하게 자랄 수 있단다. 



사진 속 계란은 본문과 관계 없음. 회사에 방문한 한 카톨릭계 출판사에서 주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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