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사용해야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름이다. 성별, 국적, 가족 등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야 생득적이라고 하지만, 이름은 그렇지도 않은데 스스로 고르지는 못한다. 물론 필명, 예명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개명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주어진 이름을 평생 갖고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가운데 글자는 돌림자다. 그래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 중 내 이름과 한 글자만 다른 사람들이 꽤 있다. (내 성씨의 본관은 하나 뿐이다)


근래 내 이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SNS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한 마디씩 하며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KBS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주인공인 신입PD의 이름이 '백승찬'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나(물론 2년전에도 이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죠), 극중 윤여정이 "이름이 어렵네"라고 논평하지 않나, 이런 저런 입길에 오르내린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내가 떠올라 몰입이 안된다는 분(죄송합니다), 반대로 몰입이 잘된다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작가가 나와 친분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친분 전혀 없습니다)


일단 백승찬 역의 김수현하고 나는 성별과 국적 빼고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함께 티비를 보던 아내를 돌아보며 "안녕하세요. 김수현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아내의 얼굴에 나타난 당혹과 분노의 기색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재차 다른 장난을 치려다가 스스로 견딜 수 없어 그만두었다. 


왜 <프로듀사>의 제작진이 김수현에게 '백승찬'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인들에겐 하나같이 "내 이름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어울리는 쿨쉭한 이름"이라고 이야기해 두었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평생을 달고 살아온 이름이 주는 느낌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이 이름은 고풍스럽진 않고, 그렇다고 트렌디하지도 않다. 흔하지는 않지만 너무 특이한 이름도 아니다. 40년 전에 지었어도 그렇고, 40년 뒤에 지어도 그럴 것 같다. 


<프로듀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백승찬'은 "뒤끝있는 소심한 캐릭터이지만 섬세한 면도 있는 예능국의 신입피디"라고 적혀 있다. 작가가 '백승찬'이란 이름이 저런 성격을 암시한다고 여겨 그 이름을 사용했다면, 역시 '스타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네. 저는 저 분과 정반대로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름에도 분명 유행이 있다. 간혹 신생아에게 인기 있는 이름 순위가 나오곤 하는데, 요즘은 '시'나 '서'자가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의 아이만 봐도 그렇다) 우리 부부는 아이 이름을 지을 때 3가지 선택지 중 고민을 했는데, 난 좀 고풍스러운 것으로 선택하려 했으나 아내를 중심으로 한 여론에 밀려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붙여 놓고 7년을 그렇게 부르고 보니 입에 붙었고, 이제 다른 이름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름이란 것은 그렇게 한번 붙이면 떼어낼 수 없는 표식이다. 


별다른 사건이 없다면 나도 지금의 이름을 달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겠지. <프로듀사>의 방영이 끝나고, 김수현의 인기가 많은 해외에서 이 드라마가 방영되고, 한동안 드라마가 회자된 후 김수현은 차기작을 찍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스타가 김수현을 대체하고, 김수현의 옛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거의 사라진 뒤에도 나는 지금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이다. 다만 같은 이름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므로, 혹시라도 <프로듀사>를 보고 이 이름을 따라 짓는 부모는 많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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