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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일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다른)는 1953년 창간된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가 게재해온 작가 인터뷰 중 12편을 묶어낸 책이다. 이 계간지가 지금까지 인터뷰한 인물은 250여명이라고 하는데, 출판사는 앞으로도 12명씩 묶어 두 차례 더 책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파리 리뷰' 인터뷰가 한국에 처음 묶여 나온 것은 아니다. <나의 삶 나의 문학>(책세상)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으며, 나도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헤밍웨이 편은 <나의 삶 나의 문학>과 <작가란 무엇인가>에 모두 실렸다. 


읽은 김에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 옮긴다. 12명의 작가 인터뷰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확실한 느낌은 '글쓰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세간에선 소설가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에 의지해 엄청난 작품을 써내는 '낭만주의적 천재'로 여기겠지만, 이 책 속 작가들은 전혀 다른 말들을 한다. 몸과 마음이 아프면 제대로된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을 한번에 몰아쓰는 일은 드물고 대체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정한 양 이상을 쓰도록 노력한다. 술에 취한 채 글을 쓰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나무 밑에 누워 사과가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소설가는 없는 모양이다. 


움베르토 에코

(성에 대한 묘사가 드물다는 질문에 대해)

"성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일을 안하는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아 그렇군요. 그런 일도 있어요. 제가 수술을 받았던 이들 동안은 일을 안 했지요."


(소설, 책, 읽기의 죽음을 선언하는 일에 대해)

"무엇인가의 종말을 믿는다는 건 전형적인 문화적 입장입니다. 그리스인과 라틴 시대 이후에 우리는 조상들이 우리보다 낫다고 믿는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오르한 파묵

"글을 쓰는 공간은 잠을 자거나 배우자와 공유하는 공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가정적이고, 길들여진 하루 일과는 상상력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을 사라지게 만들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도 제 글쓰기의 이상은 챈들러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에 집어넣는 거예요."

"섹스는 영혼을 헌신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섹스가 훌륭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상상력이 활력을 얻지요. 이는 더 높은 영역으로,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폴 오스터

"말들은 보이지 않는 작가인 신에 의해 돌 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과 피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매우 매혹적입니다."


이언 매큐언

"저는 등장인물이나 우리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시험이라거나 탐구라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제임스가 말했던 그 유명한 구절처럼, 사건이란 등장인물을 그러내는데 지나지 않아요. 아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성을 측정하기 위해 이런 가장 나쁜 경우들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필립 로스

"새 작품을 시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곤경에 빠진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을 시작하는데, 등장인물과 그가 처한 곤경 등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이 때문입니다. 주제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것은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지 못할 때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증표입니다.(...)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넘어갈 때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면, 계속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글을 쓸 때 '즐겨 읽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요. 대신 종종 저를 싫어하는 독자를 염두에 둡니다. '그가 이 작품을 얼마나 싫어하려나!'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필요로 하는 자극입니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존 베리먼은 작가를 죽이지 않을 정도의 호된 시련은 그에겐 멋진 일이라고 말했지요. 시련이 마침내 그를 죽였다고 해도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요."


"금기시된 사소한 비밀은 이제 더 이상 성(性)이 아닙니다. 이제 금기시된 사소한 비밀은 증오와 분노입니다.(...)도스토예프스키 이후 100년이 지났는데도(프로이트 이후 50년이 지났는데도) 그것이 여전히 금기라는 것은 기이합니다. 멋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증오와 분노와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레이먼드 카버

"첫 애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열일곱이었고 둘째를 낳았을 때는 열여덟이었어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청춘이라고 할 게 전혀 없었답니다. 어떻게 해내야 할지 모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단편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살아남고, 공과금을 내고, 식구를 먹이고, 동시에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고 글쓰기를 배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해 동안 쓰레기 같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글을 쓰려고 애쓰면서 제가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한 권에 2~3년이 걸이는 소설을 쓸 방법이 없었어요."


"예술은 오락의 한 형태 아닌가요? (...)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술은 당구를 하거나 카드 게임을 하거나 볼링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단지 뭔가 다른 형태, 아마도 더 고양된 형태의 오락이지요. (...) 아이작 디네센은 매일매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조금씩 쓴다고 말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의 진짜 직업은 저널리스트라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 제 생각으로는 소설과 저널리즘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소재도 같고, 주제도 같고, 글을 쓰는 방법이나 언어도 똑같습니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저는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을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젹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쿠바 혁명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지금까지 그 영향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깊이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작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써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은 경험이나 직관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종의 계산된 문학만을 조장하였지요."


윌리엄 포크너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가능한 일에 얼마나 멋지게 실패하는가를 기초로 우리들을 평가합니다."


"저는 너무 바빠서 독자들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누가 제 작품을 읽는지 궁금해할 시간도 없어요. 저나 다른 작가의 책에 대한 사람들 의견 같은 것엔 관심없답니다."


(두 세 번 읽어도 당신의 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가 있다고 하자)

"그 작품을 네 번 읽으시면 어떨까요?"


(작가에게 중요한 요소로 경험, 관찰, 상상력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영감을 포함시킬 수 있는지 묻자)

"저는 영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감이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저는 영감에 대해 들어는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책 뒷날개에는 다음번 책에 실릴 작가 12명의 명단이 있다. 오에 겐자부로, 스티븐 킹, 살만 루시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이 궁금하다.





위로부터 움베르토 에코, 무라카미 하루키, 필립 로스. 윌리엄 포크너. 최근 온라인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게티이미지에서 일부를 가져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