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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라우마와 킬러와 소녀, '너는 여기에 없었다'


**스포일러 있음

'케빈에 대하여'(2011)는 근 10년간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무섭다. 1시간 52분이면 긴 상영시간도 아닌데, 그 시간 내내 온몸이 굳어 있었다. 나중에는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봐도 무서웠다. 이 영화에서 '케빈' 역을 맡은 에즈라 밀라는 이후 어디서 봐도 무서워하게 됐다. 아무리 멀쩡한 역을 연기해도 무섭다. (하긴 멀쩡한 역이 별로 없는 것 같긴 하다) 기자회견이나 팬미팅에서 활짝 웃고 있어도 무섭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린 램지가 '케빈에 대하여'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영화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받았다. '케빈에 대하여'만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온몸의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다. 

조(호아킨 피닉스)는 실종 혹은 납치된 사람을 구출하는 일을 하는 남자다. 물론 구출 과정에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수반되기에, 조는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노모와 함께 살아간다. 조에게 상원의원의 딸 니나를 구출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미성년자인 니나는 아마도 성적 착취를 당하는 곳에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조는 (올드보이 최민식처럼) 망치 하나 들고 악당의 소굴에 잠입한다. 

소녀와 그를 지키는 킬러. 금세 '레옹'이나 '아저씨'가 떠오를만큼 대중영화에서 흔한 구도다. 램지는 킬러의 트라우마에 조금 더 접근한다. 물론 아저씨(원빈)나 레옹(장 르노)도 나름의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조는 그 양상이 조금 심각하다. 조는 일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 종종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친다. 짐작컨대 그는 어린 시절 심각한 가정폭력이 횡행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돼 군인으로 복무했으나 여전히 무언가 끔찍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도 여러 차례 목격한 것으로 짐작된다. 조는 일을 할 때는 폭력적인 남자지만, 평상시엔 자기파괴적인 남자다.조는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한 나머지 종종 자살을 흉내낸다. 비닐 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거나 칼을 입 안으로 넣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꽤 체중을 불린 호아킨 피닉스가 그 육중한 육체 안에 갇혀 자기 자신과 싸운다. 트라우마는 이 남자의 온몸을 병들게 한 것 같다. 


자기가 죽인 남자 옆에서 괴로워하는 조(왼쪽). 


장례식을 치르는 조. (어머니 시체를 검은 비닐로 싸서 강물에 유기하는, 장례식 맞습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도피하는 어린 시절의 조


조와 그가 구한 소녀 니나. 최종 보스의 결말은 예상밖으로 이뤄진다. 


'트라우마 탐구'라는 영화의 '예술적' 주제가 '킬러와 소녀'라는 대중영화의 구도와 정확히 어울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 각본상을 주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 남자가 과거의 트라우마로 홀로 버둥거리는 모습을 89분간 관찰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남자가 무언가 극단적으로 어려운 일을 하다가 자신의 과거에 발목잡히는 구도가 영화를 풀어가기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의 남우주연상엔 이의가 전혀 없다. 실제로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70%는 호아킨 피닉스다. 피닉스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 크리스찬 베일과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메소드 액팅 남우가 아닐까.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은퇴를 선언했으니, 이제 걷는 뒷모습만으로도 긴장감을 주는 배우는 많지 않다. 베일의 연기를 보면서도 가끔 느끼는 거지만, 이 영화에서 피닉스를 보면서 "저러다 죽는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니.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이른 은퇴를 선언한 이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대단한 무당이라도, 접신을 반복해 신체와 정신을 변환하다보면 원래의 자기 자신을 건강히 유지할 수 있을까. 게다가 피닉스 같은 배우가 맡는 역할이라는 것이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처럼 거대한 고통을 체내에서 삭혀야하는 일이고 보면, 괜한 걱정은 아닐 듯하다. 

피닉스가 70%라면 나머지 30%는 음악을 맡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다. 도입부의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부터 압도적이어서,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초반부터 관객의 기선을 제압한다. 카메라에 무엇이 찍혔든,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을 배경에 깔면 일단 그 영상은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호아킨 피닉스와 조니 그린우드를 불러모은 감독의 역할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